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55)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55화(455/576)
제455화
전선희 대표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나는 그 계약서를 지희에게 건넸다.
“지희야, 이건 네 첫 사업이야.”
지희는 흐뭇한 얼굴의 자신이 이룬 첫 성과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희야, 앞으로 이 언니가 놀아달라고 하면 놀아줄 거지?”
지희를 바라보는 전선희의 눈에는 여전히 꿀이 떨어졌다.
“대표님.”
“대표님 말고 앞으로는 언니라고 불러. 그렇게 불러줘라, 제발. 나도 너처럼 이쁜 동생 하나 갖고 싶은데, 없거든.”
전선희는 위로 오빠만 두고 있었다.
“네, 언니. 그런데 전 놀기 전에 할 일이 좀 있어서요.”
“이제 서울대 들어갔는데, 놀아야지. 무슨 소리야?”
“이제 겨우 서울대 들어간걸요.”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겨우 서울대 들어간 거야. 전지희!]“사시 패스까지는 멀고 먼 길이라서요. 재학 중에 사시 패스하는 게 제 목표거든요. 그 이후에 놀아드리면 안 될까요, 언니?”
지희의 말에 전선희 대표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때 꼭 놀아줘야 해. 사시 패스 응원하고 있을게. 아니다. 태국아, 네가 지희 재학 중에 사시패스할 수 있게 팍팍 밀어줘. 사시도 뭐 족집게 선생님 같은 거 있으면 붙여주고.”
“사시도 그런 게 있나.”
전태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붙여줘!”
그 말에 지희가 고개를 저었다.
“언니, 전 혼자서도 충분히 붙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저희 집안에서 그런 편법 써서 붙으면 평생 큰오빠한테 놀림당하기 때문에, 사시 패스는 꼭 혼자 힘으로 해내고 말 거예요!”
지희는 작은 두 주먹을 앙 쥐었다.
[지희야,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혼자 힘으로 해낸다고 해도 이 오빠는 크게 놀라지 않아. 우리 집안에서 사시 패스하는 게 뭐 대수니? 한 명은 세계적인 기업가. 또 한 명은 세계적인 아이돌이 될 텐데… 국내 사시 정도야.]* * *
호텔로 돌아온 지희는 호텔 방을 이리저리 오가며, 디즐리 독점권을 가진 영화 수입사에 대한 온갖 구상으로 분주했다.
“오빠, 우리 회사 이름도 지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지어야지.”
“뭐로 할까?
“글쎄….”
“JJ 수입사 어때?”
“왜 JJ야?”
“전지희, 전성국의 수입사라서.”
정말 심플한 작명이었다.
지희는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확실히 법률가가 잘 어울렸다. 직관적이고 논리적이었지만, 예술성은 많이 부족했다.
“JJ는 별로인 것 같은데.”
“그럼, 오빠도 하나 생각해 봐. 난 이게 최선이야.”
지희는 낮은 한숨을 쉬고는 어디 해보라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그런 눈빛에 쫄 것 같아, 전지희?]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부터 생각해둔 게 있었다.
“흠… 이름 짓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긴 한데… 외국도 그렇구, 우리나라도 그렇고.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이름은 좀 재미있게 짓는 경향이 있잖아.”
“그래서?”
“이건 너와 나의 첫 비즈니스니까, 패밀리 비즈니스 어때? 패밀리 비즈니스는 말 그대로 가족 사업, 가업 정도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마피아 영화에서 보면 뭔가 피로 이어진 끈끈한 가족 사업 느낌으로 패밀리 비즈니스라고도 하잖아.”
“패밀리 비즈니스 수입사?”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지희야, 남이 만든 영화 수입만 할 거야?”
“그, 그럼?”
“수입으로 시작하지만, 앞으로는 영화사도 될 수 있고. 드라마 등의 제작사도 될 수 있지. 한마디로 한류을 이끌어갈 제작사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 시작이 디즐리의 독점권을 산 거고. 그런 의미에서 패밀리 비즈니스 제작사, 어때?”
“좋은데, 오빠!”
지희는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나를 간절한 눈으로 쳐다봤다.
“오빠, 패밀리 비즈니스 제작사 말이야. 내가 운영하면 안 돼?”
“안 돼!”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지희가 이런 제안을 해올 것이라고 나는 당연히 예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지희는 누구보다 나를 닮았으니까!
지희는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오빠, 디즐리 <겨울궁전> 괜찮다고 한 것도 나잖아! 그러니까, 이 사업의 시작은 나고, 내가 사시 패스하면 이런 회사 운영하기에도 좋을 거고.”
“전지희, 너는 아직 미성년자이고 전선희 대표에게 독점 수입권을 사 온 사람은 나야. 물론 내가 돈을 투자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 너는 그저 관람평 몇 마디로 회사 하나를 거저 삼키겠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난 앞으로 이쪽에 관련된 법률가가 될 것이고. 그럼 의미에서 영화사 운영도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거야.”
[하아, 지희는 헝그리 정신이 너무 부족해.]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집안에서 고생을 하지 않고 자란 사람은 전지희가 유일했다.
“전지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너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심이 많고, 이 분야를 다루는 법률가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네가 이룬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어. 넌 그저 서울대 입학예정자일 뿐이야. 그리고 말해두자면, 나 역시 <겨울궁전>이 잘될 거라고 생각해서 디즐리 독점 수입권을 산 거야. 100프로 네 의견 때문이라는 생각을 버려!”
“알았어. 그럼, 우선 사시를 패스한 다음에 이 사업에 다시 도전해도 돼?”
“물론이지. 하지만 이것도 알아둬. 너는 이 사업에 뛰어들려고 해도, 바닥부터 올라와야 해!”
“오빠는 나한테만 항상 가혹해.”
지희는 슬픈 목소리로 꼬리를 내렸다.
[전지희, 내가 그런 슬픈 목소리 낸다고 봐줄 줄 알아?]“전지희, 지금부터 이 오빠 말 한마디도 놓치지 말고 들어. 우리 집안은 전태국 형이나 전선희 대표처럼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가 아니야. 엄마, 아빠는 고아원에서 자라서 부모도 제대로 모르고 평생을 사신 분들이야. 나는 엄마, 아빠가 단칸방에서 살 때 낳아서 돌 때부터 카메라 앞에서 앞구르기, 옆구르기 하면서 우리 집안의 기초를 다졌다고!”
나는 한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민국이도 단칸방에서 태어나서 기저귀 차고 카메라 앞에서 웃으면서 돈 벌고, <세븐즈> 데뷔 위해서 논현동의 곰팡이 가득한 반지하 연습실에서 수년을 고생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는데. 전지희, 네가 한 고생이 뭐가 있어?”
“그거야.”
“없지?”
“없는 건 아니지만.”
“네가 바나나 하나 얻어먹겠다고 뜨거운 카메라 조명 앞에서 몇 시간을 웃어본 적 있어?”
“오빠. 근데….”
지희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오빠, 그걸 기억해? 그때, 오빠 겨우 돌 지났을 때인데.”
아차!
“그, 그거야. 그때의 기억이 아주 조금은 남아 있어. 원래 천재들은 그런 법이거든.”
“하아, 정말 큰오빠를 당해낼 수가 없네. 알았어. 사시 패스하기 전까지는 사업에 눈도 안 돌릴게. 그리고 그때에도 내가 이 사업에 관심 있으면, 바닥부터 시작할게. 됐지?”
[처음부터 그렇게 나올 것이지!]지희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나를 잡아당겼다.
“오빠, 데니스 오빠 영화 시작할 시간이잖아.”
아차!
오늘만 아차가 두 번이라니!
“어서, 가자!”
나는 지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 * *
– <채찍> 이번 선댄스 영화제 그랑프리!
– 데니스 샤젤 감독의 데뷔작 <채찍> 기립박수!
– 이 영화의 전액 투자자가 바로 ‘페이스 노트’의 전성국 대표!
– 영화는 훌륭하지만, 대중성은 의문?!
– 전성국 대표의 투자 무패 신화가 계속될까?
데니스가 씁쓸한 얼굴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성국, 왠지 내가 너의 커리어에 오점을 찍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다들 흥행도 할까, 그런 식으로 기사를 써서. 다들 내 영화의 흥행 참패가 네 첫 실패의 기록이 되지 않을까 지켜보는 것 같아.”
“데니스, 뚜껑은 열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다들 영화에 대해서는 호평 일색이잖아. 이것만으로도 난 너무 네가 자랑스러워.”
입에 발린 말이 아니다.
나는 데니스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데니스는 내가 저번 생에 본 이 영화 그대로 이번 생에서도 제대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제대로 흥행할 것이고, 상도 쓸어 담을 예정이었다.
나는 축 처진 데니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데니스, 선댄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탔는데. 오늘 파티에 참석해야지.”
“성국아, 고마워. 암튼 여기까지 다 너 덕분에 올라온 것 같아.”
데니스는 나를 꼬옥 껴안았다.
그리고 나는 데니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데니스, 다음 영화 말이야…. 꿈을 찾아 할리우드에 온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잖아.”
“어, 그거 아직도 기억해?”
데니스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당연하지, 데니스. 그리고 이 두 번째 작품까지 내가 전폭적으로 투자할 거야.]왜냐하면 그 뒤로 데니스의 영화는 대박이 나지 않는다.
친구지만, 투자는 철저하고 잔인하게!
“난 그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거든. 그런데 아무래도 <채찍>보다는 예산이 큰 영화라서 조금 우려가 됐는데. 네가 <채찍> 만든 것을 보니 이제 그 영화를 준비 시작해도 될 것 같아.”
“성국아….”
데니스는 감동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데니스, 감동하지 마. 난 돈 될 영화에 투자하는 거야.]“데니스, 감동할 필요 없어. 능력 있는 감독에게 투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그리고 이번에 내가 디즐리 한국 독점 수입권을 사면서 제작사를 하나 차리려고.”
“진짜?”
“응. 그런 김에 네 영화에 정식으로 참여하고 싶어서. 오히려 내가 선점하는 거야, 능력 있는 감독을.”
“성국아, 그런 거라면 난 언제나 환영이지! 솔직히 하버드 나온 범생 정도로만 보던 나를 영화감독의 길로 이끈 건 너야! 아니지, 네가 날 영화감독으로 만든 거잖아!”
“데니스, 너의 재능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평소에는 잘난 척 잘하더니, 항상 이럴 땐 또 겸손하더라. 성국, 그럼 우리 파티 가면 진탕 취해볼까?”
“좋지!”
나와 데니스는 데니스의 차기작이 될 영화 <드림랜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댄스 영화제 폐막 파티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 * *
선댄스 영화제는 유명한 미국의 영화배우 로버트 레인지로버가 주연을 맡아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 <내일을 향해 달려라!>에서 맡았던 배역 이름인 선댄스에서 따와서 만든 영화제였다.
폐막식에는 이제 나이가 지긋한 로버트 레인지로버도 와있었다.
로버트 레인지로버는 데니스를 알아보고는 인파를 뚫고 다가왔다. 그러고는 먼저 악수를 청했다.
“<채찍> 정말 너무 잘 봤어요. 제가 요 몇 년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에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감사합니다. 로버트한테 칭찬을 들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아니에요, 데니스. 이번 선댄스 영화제의 주인공은 <채찍>이랑 데니스에요. 자, 우리 한잔할까요?”
“아, 참. 여기는 <채찍>에 투자한 제 친구이자 ‘페이스 노트’ 대표 성국이에요.”
로버트 레인지로버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로버트는 내게도 먼저 악수를 청했다.
“당연히 알죠. 안 그래도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이런 보석 같은 영화를 발견한 그 안목이 너무 대단하거든요. 이렇게 젊은 친구가요.”
[로버트, 인생 두 번 살면 그런 안목은 저절로 생겨.]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안목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습니다. 그냥, 전 친구를 잘 둔 것뿐이에요.”
“진짜 우문현답이라는 게 이런 거군요!”
나는 그저 웃었고, 데니스는 감동 먹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삼청동 이 선생이 그랬다.
이번 생에서는 주변을 도우며 살라고. 그들이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하버드 룸메이트이자, 재능은 있으나 삽질만 해대던 우유부단한 데니스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이것도 복 받을 일이겠지?
나는 로버트 레인지로버의 안내에 따라 데니스와 함께 파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 이 파티의 주인공은 바로 데니스와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