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56)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56화(456/576)
제456화
선댄스 영화제의 폐막을 알리는 파티는 유쾌했다.
간만에 나와 데니스는 약속한 대로 술을 진탕 마셨고, 데니스의 <채찍>을 흥미롭게 본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데니스의 연락처를 따갔다.
물론 데니스는 그때마다 나에게 속삭였다.
“성국, <드림랜드>는 너랑 꼭 같이할 거야!”
아무래도 내일 아침 눈 뜨자마자 데니스에게 계약서를 내밀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얼른 한국에 있는 김미소 비서에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계약서 한 장 보내라고 했다.
김미소 비서는 평소처럼 준비가 되는 대로 보내겠다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평행선 같은 관계라는 말이 있다.
나와 김미소 비서가 그런 관계였다.
둘이 나란히 달리고 있는데, 간격이 절대 좁혀지지 않는.
하지만 언제나 교차하고 만나는 게 인생이니, 그런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성국, 뭐가 그렇게 심각해?”
“너 같은 좋은 감독을 어떤 조건으로 잡아야 할지, 고민 중이지.”
“그런 건 내일 생각하자고… 참, 나 고백할 게 있어.”
갑자기 무슨 고백이지?
나는 술에 살짝 취한 데니스를 쳐다봤다.
“<드림랜드> 말이야. 내가 초고를 써둔 게 있거든.”
역시 성공하는 사람은 달랐다.
데니스는 <채찍> 작업을 하면서도 틈틈이 드림랜드 작업을 해온 것 같았다.
“사실 그 <드림랜드>의 여주인공으로 엠마 왓튼을 염려해두고 있었거든.”
“흠… 그 이름 오랜만에 들어보네.”
나와 엠마 왓튼이 사귀다 헤어졌다는 것은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었다.
“근데… <드림랜드>를 너와 또 함께한다면 아무래도 엠마 왓튼은 힘들겠지?”
“데니스, 그런 건 신경쓰지 마. 네가 생각하는 여자 배우의 이미지에 제일 맞는 배우를 쓰는 거지. 나는 일에 사사롭게 개인적인 감정을 넣을 생각은 없어.”
데니스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말이라도 고마워. 다른 배우도 한번 고민은 해볼게. 엠마 왓튼이 오히려 내 시나리오를 깔 수도 있잖아.”
“네 시나리오를 까는 배우는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이 없는 거지.”
내 말에 잔뜩 기분이 좋아진 데니스는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저번 생에서 <드림랜드>의 원래 여주인공이 엠마 왓튼이었다는 가십은 들은 적이 있었다. 다른 영화와 스케줄이 겹치면서 <드림랜드>를 고사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 엠마 왓튼은 아마 나 때문에 <드림랜드>의 여주인공 자리를 버리는 모양이었다.
[또 한 번 가십란에 좀 오르내리겠군.]나는 머리를 쓱 쓸어 올렸다.
이때, 앞에서 웃음이 예쁜 여자가 한 명 나와 데니스에게 걸어왔다.
나는 그 여자가 한눈에 <드림랜드> 여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엠마 스통!
심지어 이름마저 엠마 왓튼과 같았다.
엠마 스통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데니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엠마 스통이라고 해요. 감독님, <채찍> 너무 잘 봤어요!”
엠마 스통은 거미맨의 여인으로 헐리우드에서 막 떠오르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고마워요, 엠마. 엠마가 나온 영화 저도 너무 좋아해요.”
“혹시 거미맨만 보신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엠마가 나온 하이틴물도 다 봤어요.”
어느새 데니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엠마 스통을 추천하지 않아도 <드림랜드>의 여주인공은 엠마 스통으로 점차 기울어져 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두 사람을 두고 밖으로 나갔다.
선댄스 영화제의 마지막 날.
바깥 공기는 차가웠고, 주위는 온통 눈이었다.
나는 들고나온 병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데니스 샤젤과 하버드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나서 여기까지 온 그 역사를….
내가 옛 생각에 피식 웃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전성국 대표님?”
뒤돌아본 곳에는 엠마 스통이 서 있었다.
“엠마?”
“혼자 여기서 뭐 하세요?”
“그러는 엠마는요? 데니스랑 이야기하던 거 아니에요?”
“감독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어서, 제가 혼자 독식할 수가 없네요. 이런 유쾌한 자리는 오랜만이라서 술을 몇 잔 마셨더니, 차가운 바람이 쐬고 싶어서요. 대표님도 그러신 거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엠마 스통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와 비슷하게 통통 튀는 매력이 있었다.
추위 속에서도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머, 대표님도 연기를 하셨다고요?”
“광고니까, 제대로 된 연기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기억도 잘 안 나는 어릴 때였고요.”
“와우, 그래서 영화가 관심이 많으시구나!”
사실은 돈에 관심이 많은 거지만, 나는 적당히 응수했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갈 때쯤 엠마 스통이 자연스럽게 물어봤다.
“대표님, 제가 대표님 연락처 물어보는 거 실례가 안 될까요?”
“전혀 실례 아니죠.”
나 또한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건넸다.
엠마 스통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표님, 한국에는 언제 돌아가실 건가요?”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페이스 노트’ 일 좀 봐야 해서 일주일 후쯤 돌아갈 것 같아요.”
“혹시 제가 샌프란시스코 가면 피자 사주실 수 있죠?”
[데이트 신청인가?]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 * *
엠마 스통이 들어가고, 나는 호텔로 걸어갔다.
이때, 앞에서 전태국이 걸어왔다.
전태국은 나 대신 지희와 놀아주느라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다.
“성국아, 이제 들어오는 거야? 데니스는?”
“데니스는 오늘 밤의 주인공이잖아요. 파티를 더 즐겨야죠. 형은 왜 나왔어요?”
“지희가 자기 공부한다고 해서 심심해서 산책 나왔어. 근처에 문 연 펍 있으면 한잔할까, 싶기도 하고…. 성국아, 같이 가자.”
오늘은 왠지 서당 개랑 술을 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요, 형.”
우리는 근처에 문 연 펍을 찾아서 들어갔다.
흘러간 팝 음악이 나오는 조용한 펍이었다.
“형, 여기는 제가 살게요. 저, 파티 간 동안 지희 봐주셨잖아요.”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뭘. 파티는 어릴 적 많이 다녀서, 이제 흥미가 안 생기네. 이런 데서 조용히 맥주나 위스키 한잔하는 게 더 좋고.”
[서당 개, 왜 이렇게 얌전해진 거야?]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전태국을 쳐다봤다.
“형,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그게….”
때마침 주문한 맥주가 나왔고, 전태국은 맥주를 들이켰다.
나는 가만히 맥주를 마시는 전태국을 쳐다봤다.
전태국은 맥주를 반쯤 비우더니, 입을 쓱 닦았다.
“박 비서한테 전화가 왔어. 부모님 이혼 합의하셨대.”
그동안 전재형 회장과 철의 여인은 소리 없는 전쟁 중이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약점을 들추며 재산 하나라도 더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솔직히 두 분 사이가 좋은 적이 별로 없어서 이혼한다고 하셨을 때도 별로 놀라지는 않았어.”
두 사람 사이가 안 좋은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저번 생에서는 내가 중재를 잘한 덕분에 그나마 이혼은 하지 않고 살았다.
“그래도 막상 이혼에 합의하셨다는 이야기 들으니 기분이 울적하네. 위태로운 가정이었지만, 그래도 가족 행사 때는 모이던 가족인데… 이젠 그럴 일도 없어진 거잖아.”
전태국은 맥주를 쭉 들이켰다.
[이럴 땐 위로를 어떻게 해줘야 하지?]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전태국이 이런 날 보더니, 빙긋 웃었다.
“성국아, 너 속으로 위로 어떻게 하지 같은 그런 생각하고 있었지?”
“뭐, 비슷해요.”
“그냥 오늘은 내 옆에서 맥주나 같이 마셔줘. 그러면 될 것 같아.”
“그거라면 자신 있죠.”
전태국은 씁쓸하게 웃더니 다시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마크였다.
[이 시간에 마크가 무슨 일이지?]나는 얼른 핸드폰을 받았다.
“마크, 밤에 갑자기 무슨 일이야?”
– 성국아, 너 지금 선댄스 영화제에 가 있지?
“응. 내일쯤 샌프란시스코로 넘어가려고.”
– 성국아, 혹시 제일 빨리 오는 교통편으로 올 수 있어?
마크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크, 무슨 일 있어?”
– 미미가… 미미가… 지금 출산이 임박한 것 같아. 미미네 부모님도 내일 비행기라 모레나 샌프란시스코에 들어오실 수 있을 것 같고. 우리 부모님도 동부에서 오셔야 해서….
마크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마크, 진정해. 리미미 씨는 지금 어떤 상태야?”
– 그게… 병원에 가려고 하는데… 내가 너무 떨려서 운전이 안 돼서 지금 구급차를 부르긴 했는데… 내가 제대로 뭔가를 하고 있나 싶어서….
“마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지금 리미미 씨를 지켜줄 사람은 너밖에 없어.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 알아볼 테니까, 그동안은 네가 리미미 씨를 지켜야 해.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나하나 해나가.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당장 전화하고! 알았지?”
– 알았어, 성국.
“마크, 지금은 당장 전화를 끊고 리미미 씨 곁으로 가!”
– 어.
마크는 전화를 후다닥 끊었다.
전태국이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미미 씨가 출산할 것 같다는 거야?”
“네, 형. 저 좀 도와주세요.”
“뭐든 말해.”
“지금 여기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 좀 알려주세요. 아니, 예약 부탁드려요.”
“아, 알았어!”
전태국은 얼른 샌프란시스코의 삼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전선희까지 도와준 덕분에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지희와 데니스도 함께였다.
나는 얼른 마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성국아, 어디야?
“지금 방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어. 리미미 씨는 아직이야?”
– 어… 대기 중이야… 근데, 미미가 너무 힘들어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리미미 씨, 손 꼭 잡아주고 있어. 그게 지금 네가 할 일이야.”
– 알았어….
내가 전화를 끊자, 전태국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봤다.
“성국아, 근데 너… 꼭 애 낳아본 사람 같아.”
[저번 생에서 두 번이나 경험이 있다고.]물론 이번 생에서 그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지는 몰랐다.
이때, 우리를 마중 나온 삼전 샌프란시스코 지사 직원들이 보였다.
“형, 우선 마크한테 가보죠. 마크 혼자 감당하기에 좀 힘들어 보여요.”
“어, 그래. 어서 가보자.”
우리는 얼른 마크와 리미미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 * *
우리가 도착했을 때, 리미미는 이미 분만실에 들어간 상태였다.
마크가 분만실 앞에서 초조하게 오가는 게 보였다.
“마크!”
“성국아!”
마크는 우리를 붉어진 눈시울로 반겼다.
“마크, 리미미 씨 상태는 어때?”
“예상보다 일찍 나오는 거긴 한데, 의사 선생님 말로는 크게 무리는 없는 정도래.”
마크의 말대로 리미미의 출산의 예정일보다 조금 빨랐다.
“뭐라고 말씀하시면서 금방 나올 것 같다고 하시는데… 모르겠어.”
“분만실 들어간 지는 얼마나 됐어?”
“한 시간 조금 넘었어.”
분만실에 들어갔다는 것은 출산이 임박했단 의미였다.
나는 마크의 등을 도닥였다.
“마크,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 마.”
“응….”
마크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이때였다.
분만실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가 뛰어나왔다.
“리미미 씨 보호자 누구세요?”
“저요!”
마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지금 방금 출산하셨어요. 예쁜 따님이세요!”
그 순간, 마크가 눈물을 터트렸다.
“흐윽- 감사…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도, 전태국도 데니스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런 우리를 지희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오빠, 오빠가 애를 낳은 것도 아닌데 왜 울어?”
“우는 거 아니야….”
“그럼, 뭐야?”
“마크가 아빠가 됐잖아.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나는 그러곤 몰래 눈물을 훔쳤다.
[마크, 아빠 된 거 진짜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