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61)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61화(461/576)
제461화
서울대 정문이 보였다.
저번 생에서 갔던 대학 입학식의 기억이 조금씩 떠올랐다.
그땐, 삼전 그룹 아들이라는 것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서 홀로 입학식장으로 향했다.
옷도 최대한 검소한 것을 입었다. 시계도 별로 비싸지 않은 것을 찼다.
그런데도 입학식이 끝나고 모인 자리에서 사람들이 나를 돈 좀 있는 집 아들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제일 싼 모델이지만 롤아이도 차고 있었고, 애들이 하도 허접한 안주를 시켜 먹기에 그냥 몇 개 더 추가한 다음 카드로 결제했더니 다들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저번 생의 학교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성국아, 무슨 생각해?”
“서울대는 어떤 곳인가 해서요. 저는 하버드밖에 못 다녀봤잖아요. 그것도 중퇴고요.”
내 말에 전태국의 눈이 가늘어졌다.
“성국아, 너 제발 그런 이야기는 우리끼리 있을 때나 해.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엄청 재수 없어 할걸?”
“형이 우리랑 있을 때 삼전가 말하듯이, 저도 뭐 그러는 거죠.”
“너나 지희나 보면 자기 잘난 것에 대해서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
“원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에 대해서 잘 인식 못 하잖아요. 다들 그런 줄 알고….”
저번 생에서 나는 가난을 몰랐다.
단칸방은 시사다큐에나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생엔 내가 그런 곳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역시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때, 저 멀리 먼저 도착한 부모님 차와 민국이의 밴이 보였다.
“민국이 옷 잘 입고 왔겠지….”
“일요일에 고른 거 입고 왔겠죠.”
전태국은 내 재킷을 매만져줬다.
“역시 전성국은 뭘 입혀도 멋있단 말이야.”
나는 전태국의 강압에 못 이겨 결국 슈트를 빼입었다. 거기다 롤아이를 차고… 출장 온 헤어 디자이너분이 해준 머리까지.
타임지 화보 찍을 때도 이렇게까지는 안 한 것 같았는데….
드디어 전태국과 내가 찬 타가 주차장에 섰다.
전태국은 다시 한번 거울을 보면서 얼굴을 살폈다.
“형, 어서 내리죠. 다들 기다리잖아요.”
“어, 알았어. 참, 꽃다발 챙겨야지.”
나와 전태국은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차 문을 열어젖혔다.
동시에 귓가에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악!”
[또 시작인가….]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재킷의 깃을 만지려는 순간, 이 비명이 나를 향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이런 비명은 나를 향한 것인데?
보니까, 차에서 막 내린 민국이를 향해서 여자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전민국이다!”
“민국아, 여기 좀 봐줘!”
“대박! 얼굴 엄청 작아!”
“민국아! 누나야!!!”
민국이는 경호원에 둘러싸여 배시시 웃으며 이미 대기하고 있던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보다 정확히 2cm 작은 키.
거기다 정교하지 못한 이목구비. 물론 나보다!
하지만 미소 짓는 얼굴이 조금 귀여운 맛이 있긴 했다.
“성국아, 민국이 저렇게 슈트 입으니 진짜 잘생겨 보인다.”
“우리 집 식구 치고는 못생겼죠.”
이때, 기자 한 명이 소리를 쳤다.
“전성국 대표다!”
그리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나를 알아본 모양이군.]내 어깨가 살짝 올라갔고, 민국이가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형!”
그러자 그 순간, 서울대학교 주차장은 여자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 * *
– 오늘 서울대 입학식을 달군 전성국, 전민국 형제!
– 세계적인 기업가 전성국 대표와 <세븐즈>의 전민국. 그리고 삼전의 후계자 전태국 상무까지! 오늘 서울대 입학식은 여느 아이돌 콘서트장 못지않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전태국이 핸드폰으로 실시간으로 오르내리는 우리의 기사를 슬쩍 보여줬다.
“성국아, 사진 잘 나왔지?”
“저야 뭐 항상 비슷하죠.”
“너 말고, 나! 신경 쓴 티가 확실히 나는 것 같아.”
“조금은 나네요.”
전태국은 아침부터 메이크업한 효과를 조금은 보고 있었다.
“근데 입학식이 너무 지루한데… 언제 끝나는 거야?”
“곧 끝날 거예요. 형, 웃어요. 기자들이 있잖아요.”
“그래야지.”
전태국은 애써 미소를 지었고, 입학식 내내 우리를 둘러싼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도 끝났다.
우리는 강당으로 내려가서 지희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하지만 지희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그런 지희에게 전태국이 해맑게 꽃다발을 건넸다.
“지희야, 입학 축하해.”
“하아… 정말… 안 그래도 나이 어려서 튀는데, 거기다 오빠들까지. 왠지 제 대학 생활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나는 지희의 어깨를 꽉 잡았다.
“지희야, 넌 미성년자라서 술도 못 마시니까 환영회 이런 데 낄 생각 말고 집에 일찍 일찍 와서 사시 공부나 해.”
“정말 이런 말을 입학식 날 덕담이라고 해주는 오빠는, 전 세계에서 오빠 딱 한 명일 거야.”
“전 세계에서 나를 오빠로 둔 사람도 네가 딱 하나니까, 감내하고 들어.”
“정말….”
지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꽃다발을 다시 전태국에게 다 몰아줬다.
“오빠, 이건 저희 집에 잘 보내주세요. 저는 전공과목 수업이 있어서요.”
“원래 첫날은 수업 안 하는 거 아니야?”
“수업은 안 해도 교수님이랑 인사도 하고, 앞으로의 할 수업 커리큘럼 챙겨야죠. 오빠, 대학 너무 건성으로 다닌 거 아니에요?”
“그래도 난 졸업했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전태국은 대학 졸업에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내가 최선을 다해서 시켜준 것이었지만.
이때, 젊은 남학생 한 명이 웃으면서 지희에게 다가왔다.
“네가 전지희지?”
“네.”
“난 법학과 2학년 김영민이라고 하는데, 오늘 끝나고 신입생 환영회 있는데 시간 괜찮아?”
김영민을 바라보는 나와 민국이 그리고 전태국을 동시에 팔짱을 꼈다.
그리고 묵묵히 지희의 대답을 기다렸다.
“전 아직 미성년자라서요.”
“알지. 네가 이번 학년 수능 만점자잖아. 최연소 입학생이고. 아, 그리고… 여긴 그 유명한 오빠들이셔?”
김영민은 그제야 얼떨떨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지희의 큰오빠 되는 전성국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악수를 청했고, 김영민의 손을 꽉 잡았다. 최대한 세게!
그 뒤로 민국이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민국이라고 합니다. 지희 둘째 오빠예요.”
“아, 네. 안녕하세요. <세븐즈> 팬이에요.”
김영민은 전민국과 악수를 했고, 전태국이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었다.
“저는 지희가 친오빠들과 동급으로 여기는 삼전 그룹 전태국 상무라고 합니다.”
“네… 다들 유명하신 분들이라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뵙게 돼 영광입니다.”
동시에 전태국의 이마에 핏줄이 서는 게 보였다.
[전태국, 살살 잡으라고.]악수를 마친 김영민을 얼른 손을 빼더니 붉어진 얼굴로 지희를 다시 쳐다봤다.
“지희야, 바쁘면 참석 안 해도 돼.”
[그래, 잘 생각했어. 영민 군. 우리 지희 바쁘다고.]이때, 지희가 명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술은 못 마시지만, 참석해도 괜찮나요?”
“어?”
김영민은 오히려 우리 눈치를 살폈다.
“그, 그게….”
“오빠들 신경 쓰실 것 없어요. 몇 시까지 어디로 가면 되죠?”
전태국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지희야, 오늘 저녁 오빠랑 가족들이랑 먹기로 했잖아.”
“아… 그걸 깜빡했네.”
김영민은 얼른 손사래를 쳤다.
“지희야, 시간 안 되면 괜찮아. 오늘은 간단하게 환영식하고, 다음 주에 정식으로 또 할 거야. 그때 참석해.”
“흠… 오늘도 생각해볼게요. 어디서 하는데요?”
“오늘은 여섯 시에 녹두거리 할머니 파전집이야.”
“네, 알아는 둘게요.”
이때, 다시 전태국이 끼어들었다.
“할머니 파전집?”
“네에….”
김영민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서울대 학생들 환영회인데, 겨우 파전집에서 한단 말이야?”
“그, 그게… 환영회는 선배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주는 거라…. 저희가 여유롭지는 않거든요.”
“요즘 통계 보면 서울대 입학생 30%가 강남 출신이라던데….”
전태국은 어느새 통계도 찾아본 모양이었다.
“그런 친구들도 있지만, 우선 전 아닙니다. 저는 해남 출신이거든요. 근처 쑥고개에서 자취해요. 겨울방학 동안 신입생들 들어오면 밥 사주려고 과외 열심히 해서 모아둔 돈으로 오늘 환영회도 하는 거예요.”
김영민은 밝게 대답했다.
[가난한 대학생을 보니, 단칸방에서 바나나 먹던 어릴 적 생각이 나네….]전태국도 미간을 부여잡더니 김영민을 쳐다봤다.
“오늘 저녁은 지희랑 먹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다 같이 먹어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설마?
“자네가 2학년 과대표, 뭐 이런 건가?”
“네… 상무님.”
“내가 오늘 지희랑 삼전 호텔에서 밥 먹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오늘 신입생 환영회 참석하는 친구들 모두 삼전 호텔로 초대할게. 우리 지희가 서울대 입학했는데, 친구들 얼굴도 좀 알고… 술버릇도 좀 알아둬야지.”
지희가 커진 눈으로 어금니를 꽉 물고 전태국을 쳐다봤다.
“오빠, 그건 오바 같아. 그냥, 오늘은 부모님이랑 저녁 먹고. 내가 다음 주에 환영식 참석할게.”
이때, 전민국이 나섰다.
“지희야, 태국이 형 말이 전혀 일리 없는 건 아닌 것 같아. 네가 어린 나이에 서울대 입학해서 공부하는데, 파전집이라니. 그리고 부모님도 같이 공부할 학생들 알고 싶어 하실 거야.”
“오빠는 대학 입학도 안 해봤잖아.”
“그걸 꼭 해봐야 아니. 나도 듣는 귀가 있어.”
지희는 이제 마지막 이성인 나를 애타게 쳐다봤다.
[그래, 이제 내가 나서야 할 때이지.]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김영민을 쳐다봤다.
“영민 학생, 오늘은 삼전 호텔에서 간단하게 환영식 하지.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돈이야 나나, 태국이 형이나 남아도는 사람들이거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지희를 내려다봤다.
[지희야, 오빠 좀 멋있지?]* * *
셔틀버스가 삼전 호텔 입구로 들어왔다.
버스가 멈추자 학생들이 우르르 내렸고. 교수들의 얼굴도 보였다.
전태국은 김영민에게 학생들 명단을 받아서 박성희 비서에게 재빨리 넘겼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참석 학생들과 교수 명단이 확보됐고, 바로 셔틀버스를 예약했다.
그리고 삼전 호텔의 작은 홀을 잡아서 테이블이 세팅됐고, 음식까지 모두 준비한 상태였다.
로비에선 나와 민국이 그리고 부모님과 전태국이 이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김미소 비서와 박성희 비서가 뒤에서 우리를 보좌했다.
김미소 비서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속삭였다.
“대표님, 제가 아침에 같이 있었으면 좀 말렸을 상황 같은데요. 지희 양이 평범하게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저는 제일 좋은 것 같아서요.”
“김 비서님, 지희는 최연소 합격자에 수능 만점자예요. 그리고 저와 민국이를 오빠로 뒀잖아요. 이미 언론에도 여러 번 노출됐고요. 그런 지희가 평범한 대학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죠. 오히려 이렇게 지희의 상황을 처음부터 알려줘야 이상한 친구들도 접근 안 하고, 대학 생활 무난하게 할 수 있을 거예요.”
[김 비서, 이건 다 경험담이야.]저번 생에서 검소하게 대학 생활한다고 일반인 친구들에게 삼전 후계자라는 사실 숨기고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친한 친구 몇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삼전가 사람이라는 것을 흘렸다.
그 이후로 이름만 겨우 알던 동기들이 나에게 와서 친한 척을 하거나, 대놓고 재벌 적폐라며 재수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야 흔히 겪던 일이라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몇 년 후에 나와 술을 같이 마시며 동고동락하던 동기 녀석이 기자가 돼서 내 이야기를 기사로 쓴 것을 보고 깊은 배신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을 비춰보면 지희가 가진 것들이 지희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숨기기보다는 지금처럼 오픈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물론 지희가 이 오빠의 깊은 뜻을 알려면 멀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