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69)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69화(469/576)
제469화
김미소 비서는 잠시 생각하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이럴 땐 내가 먼저 나서줘야지….]나는 얼른 말을 이었다.
“김 비서님, 이건 일이에요. 어차피 칸 영화제 내내 제 일정 따라서 움직이셔야 하니까, 같이 가시죠.”
“대표님….”
나를 부르는 김미소 비서의 목소리가 조금 어두웠다.
“혹시… 저를 이용하시는 건가요? 엠마 왓튼 때문에요?”
“흠… 정확히는 엠마 왓튼 때문이 아니라 언론 때문에요. 보나 마나 저와 엠마 왓튼이 레드 카펫에서 만나면 어떻게든 다시 엮으려고 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저도 따라서 준비하겠습니다.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는 것 자체가 영광이잖아요, 대표님.”
김미소 비서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런데 뭔가 좀 석연치 않았다.
김미소 비서는 정말 이 일을 일로만 여기는 걸까? 아니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삼청동 이 선생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이번 생의 업보들을 다 정리하기 전에는 절대 연애 불가! 결혼 불가!
* * *
– 전성국 대표, 첫 제작, 투자한 영화 <채찍>으로 칸 영화제 비경쟁 부분 초청! 전성국 대표의 거침없는 행보에 영화계도 주목!
– 전성국 대표와 엠마 왓튼과 레드 카펫에서 만날지에 대해서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중.
정말 유명인의 삶이란….
이번 생에서 제일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이 사생활 관련 부분이었다.
물론 저번 생에서도 나의 결혼이나 불화에 대해 언론에서 떠들긴 했지만, 이렇게 만남 하나하나 가지고 떠들어대진 않았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띠. 띠. 띠. 띠.
공포의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태국이 들어섰다.
“성국아, 준비 다 됐어?”
“그냥 있던 옷 입고 가면 안 될까요?”
“칸 레드 카펫은 블랙 슈트가 기본이야. 이건 영화제 룰이니까 맞춰줘야지.”
[나도 그건 안다고….]칸의 레드 카펫에 서려면 남자는 슈트, 여자는 드레스를 갖춰야 했다.
“선희 누나가 너랑 지희랑 김 비서랑 다 데리고 오래. 자기가 이번에 칸에 입고갈 옷 다 쏜대. 김미소 비서랑 지희는 같이 오라고 차도 보냈대.”
“근데 형…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가 궁금한데?”
“원래 형이랑 선희 누나네랑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잖아요.”
“내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아버지들끼리는 원수지만, 나랑 선희 누나랑은 사이 괜찮아.”
저번 생에서는 나랑 전선희랑 그렇게 잘 지내지는 않았다.
원수는 아니어도 만나면 서먹한 사이라고 할까?
“그리고 내가 삼전 물려받으면 선희 누나랑은 좀 친하게 지내려고. 분야도 다른데, 서로 도울 일 많지 않을까 싶어. 누나네 방송국이나 영화 같은데, 삼전 PPL할 수도 있고….”
[제법인데, 서당 개?]전태국은 나날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나는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가보죠. 참, 저 이번에 레드 카펫에 파트너가 있어요.”
“누군데?”
“김미소 비서님이요. 같이 레드 카펫 밟으려고요. 그래서 같이 가는 거잖아요.”
순간, 전태국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너, 혹시?”
“그냥 일일 뿐이에요. 엠마 왓튼이랑 레드 카펫에서 만나게 될 때, 좀 덜 껄끄러운 게 좋잖아요. 서로 파트너가 있으면 언론도 좀 조용할 것 같고요.”
“성국아, 나도 그 정도 머리는 돌아. 근데 너, 비서를 너무 이용해 먹는 거 아니야? 난 그거 물어보려고 했지. 근데, 너 엄청 당황한다.”
“제가요? 제가 언제 당황했다고 그래요. 그냥 형이 또 넘겨짚을까 봐 그런 거죠.”
“그런가…. 암튼, 선희 누나 기다리겠다. 어서 가자.”
전태국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갔다.
* * *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평소 이용하던 삼전 백화점이 아니라 청담동의 한 명품 편집 매장이었다.
문이 열고 들어서자, 아침부터 샴페인을 마시고 있던 전선희가 우리를 격하게 반겼다.
“전 대표! 볼 때마다 이렇게 멋있어지기야?”
“과찬이세요.”
“누나, 저도 있거든요.”
“넌 볼 때마다 여전해. 그것도 네 매력이지, 태국아.”
“누나, 저 이제 다이어트도 많이 해서 어디 가서 꿇리지 않거든요.”
“태국아, 네가 아무리 다이어트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아도 전 대표 옆에 있으면 평가절하지. 너도 그거 알고 같이 다니는 거 아니야?”
“누나, 저도 샴페인 한잔 줘요. 아침부터 속 타네요.”
전선희는 웃으면서 샴페인을 내밀었다.
나는 매장을 잠시 쭉 훑었다.
쇼핑을 좋아하진 않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세계 각국의 명품을 바잉해서 파는 편집샵이었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브랜드들이 많이 보였다.
곧 지희와 김미소 비서도 함께 도착했다.
전선희는 지희를 보자마자 눈에서 꿀이 떨어졌다.
“지희야, 오랜만이야.”
“언니, 잘 계셨어요?”
“우리 지희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지희야, 서울대 입학 사진 인터넷에 떠돌던데. 어쩜 그 사진도 예술이니… 진짜 이 집안 식구들은 연예계에 데뷔시켜야 하는데. 지희야, 공부하기 힘들면 배우 해볼래?”
“언니, 배우 아무나 되는 거 아니잖아요. 전 공부가 더 쉬워요.”
“어쩜, 우리 지희는 말도 이렇게 똑 부러지게 하니….”
전선희는 여전히 지희바라기였다.
나는 조용히 김미소 비서 곁으로 다가갔다.
“전선희 대표가 지희를 좀 좋아해요.”
“저라도 지희 같은 여동생 있었으면 이뻐했을 것 같아요.”
“저번에 나랑 태국이 형한테 고맙다고 메시지 보낸 거 김 비서가 시킨 거죠?”
“노코멘트 할게요.”
김미소 비서는 빙긋 웃었다.
김미소 비서의 가장 큰 장점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노코멘트라는 말은 긍정의 의미였다.
“아니, 거기 두 사람은 왜 그렇게 소곤대?”
전선희 대표는 샴페인을 들고 김미소 비서에게 건넸다.
“안녕하세요. 전성국 대표님 비서 김미소라고 합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태국이가 그러던데, 원래 삼전 비서라면서요?”
“네, 미진 아가씨 담당이었습니다.”
“속 많이 썩었겠다.”
“아니에요. 미진 아가씨가 개인적으로는 친절하세요.”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인데, 뭐….”
김미소 비서는 전선희가 건넨 샴페인을 받아들고는 애매하게 미소를 지었다.
“참, 이번 칸에 미진이도 올 거야. 태국아, 연락받았지?”
“누나, 연락은 받았는데요. 저랑 미진이랑 마주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너희는 남매끼리 좀 친하게 지내라.”
“삼전가에서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잖아요. 누나도 재진이 형이랑 안 친하잖아요.”
“하긴….”
전재진은 전선희의 오빠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선이 겹치는 행사는 거의 없었다.
* * *
샴페인을 한 잔씩 마시는 동안 유명 스타일리스트가 들어와서 우리에게 슈트와 드레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누나, 난 구씨 거 입을 거예요. 제가 구씨 매니아잖아요.”
“이번 구씨 디자이너 바뀌면서 좀 별로던데….”
전태국은 여러 의상 중에 언제나 즐겨 입는 구씨를 선택했고, 나는 구씨에서 나와서 자신의 브랜드를 차린 톰 파드의 슈트를 보자마자 선택했다.
“전 대표, 전 대표는 역시 보는 눈이 달라.”
전선희는 내 안목에 감탄하는 것 같았다.
[전선희 대표, 나도 저번 생에서는 재벌이었다고. 이 브랜드들 늘 입던 거고….]내가 일찍 옷을 고른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전선희와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 대표님, 이번 칸에서도 파티 여시죠?”
“물론이죠.”
전선희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더니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전 대표님,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거 다 이유가 있는 거죠?”
“조금은요.”
“역시 우리 전 대표는 목적 없이 움직이는 법이 없다니까. 이런 거 보면 어떨 땐 태국이보다 전 대표가 작은아버지를 더 닮은 것 같기도 하단 말이에요.”
전선희의 작은아버지는 바로 전태국의 아버지인 전재형 회장이었다.
“그래, 원하는 게 뭐예요? 우리 파티에는 당연히 초대할 건데요.”
“얼마 전에 미국에서 방영한 드라마 한 편이 요즘 화제더라고요.”
“흠… 뭐지?”
“<카드로 만든 집>이요.”
“아하, 그 미드? 나도 재미있게 봤어요. 거기 감독이나 작가를 알아봐 줄까요?”
“전 그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거기 제작사를 만나고 싶어서요.”
“제작사라면?”
“넷플렉스요.”
전선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스트리밍 사이트 회사 말하는 거죠?”
“네. 이번 칸에도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만나는 자리를 한번 가졌으면 해서요.”
“전 대표, 지금 나보고 넷플렉스 대표를 초대해달란 말이죠?”
“혹시 안 하셨으면요.”
나는 빙긋 웃으면서 샴페인을 마셨다.
“아마 안 한 것 같아요. 아직 칸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비서 통해서 초대하죠. 근데, 전 대표가 넷플렉스에도 관심이 있어요?”
“전 새로운 거에 언제나 관심이 많거든요. 극장이나 TV는 이제 오래된 매체잖아요.”
“역시 그런 생각이 SNS의 제왕으로 만든 거군요. 그리고 또 원하는 게 있나요?”
전선희는 대놓고 물었다.
원래 전선희의 성격이 그랬다. 거침없이 질문하고, 마음에 들면 한없이 밀어줬다.
“봉주노 감독도 이번에 칸에 가시잖아요.”
“네, 우리 파티에도 당연히 올 거고요. 차기작은 우리랑 계약했거든요.”
“그 작품을 넷플렉스랑 연결해 보는 게 어떨까 해서요.”
“넷플렉스랑요?”
전선희는 이 지점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봉주노 감독은 한마디로 티켓 파워가 있는 감독이었다.
그런 감독이 굳이 스트리밍이나 하는 사이트와 함께할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하기를 원하잖아요. 제가 너튜브를 운영해보니까, 사람들은 굳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시간을 맞추는 것에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아서요. 내가 원할 때,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소비하는 방식이 앞으로 유망해 보이거든요.”
“그 말은 극장과 TV의 종말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말처럼 들리네요.”
“종말이라면 너무 거창하고요. 어떤 산업이든 혹한기는 있으니까요.”
전선희는 샴페인을 쭉 들이켰다.
“좋아요. 칸에서 한번 자리를 제대로 마련해보죠. 그 자리에 봉주노 감독과 넷플렉스, 그리고 전 대표도 함께하고요.”
“감사합니다.”
나는 깍듯하게 예의를 표했다.
봉주노 감독의 차기작은 넷플렉스에서 공개할 것이다.
넷플렉스가 한국 진출을 위해서 공을 들이는 작품이지만, 그렇게 재미는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넷플렉스의 도약은 그 이후이다.
세상이 코로나로 멈추고,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기를 무서워하는 그 시기가 오면 넷플렉스는 날개를 달고 도약한다.
물론 전선희 대표는 나와 넷플렉스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겠지만, 넷플렉스에 투자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도전을 두려워하는 어쩔 수 없는 한국 재벌들의 습성이었다.
마침, 드레스 피팅을 마친 지희와 김미소 비서가 나왔다.
지희는 아직 어린 나이에 어울리는 귀여운 드레스를 선택했고, 김미소 비서는 성격처럼 심플한 블랙드레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내 시선은 김미소 비서에게 멈췄다.
“대애박! 지희야, 그리고 김 비서! 둘 다 너무 완벽해!”
전선희는 환호했다.
* * *
5월의 칸은 환상적이었다.
적당히 따스한 날씨.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넘쳐나는 사람들. 그리고 유명인들을 찍으려는 사진 기자들.
나와 데니스 그리고 김미소 비서와 지희는 리무진을 타고 레드 카펫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데니스는 너무 긴장해서 다리를 쉴 새 없이 떨었다.
나는 데니스의 무릎을 꽉 잡았다.
“데니스, 긴장하지 마.”
“성국, 난 너처럼 강심장이 아니란 말이야.”
“끝나고 파티 가서 놀 생각하면 좀 편해질 거야.”
“하아… 어서 그 시간이 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드디어 리무진은 레드 카펫에 도착했다.
담당자가 오더니 곧 내릴 차례라는 신호를 보내더니 곧 리무진의 차 문이 열렸다.
나는 김미소 비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 비서님, 이제 레드 카펫 밟아볼까요?”
“네, 대표님.”
김미소 비서는 내 손을 꽉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