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71)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71화(471/576)
제471화
엠마 왓튼과 해리스 왕자는 같은 호텔에 묵었지만, 해리스 왕자는 전선희 대표의 파티 바로 다음 날 영국으로 떠났다.
홀로 남은 엠마 왓튼은 파트너 없이 칸 영화제의 모든 일정을 치렀다는 후문이 들렸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는 넷플렉스의 리드 스팅스 주니어와 봉주노 감독이 함께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지희가 있었다.
지희는 그 둘 사이에 앉아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물론 봉주노 감독의 영어 실력도 훌륭했지만, 구체적이고 자세한 소통을 위해서는 지희 정도의 실력가가 필요하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는 척하면서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봉 감독님, 지금 전선희 대표와 준비 중인 영화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까요?”
“그게… 사실은 여러 할리우드 제작사들과 접촉도 했는데, 그들이 굉장히 난색을 표하더라고요.”
“왜요?”
“제가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흠….”
봉주노 감독은 영어로 이야기하다가 막히자, 지희에게 한국어로 설명했다.
“10년 동안 친구로 자란 돼지가 사실은 유전자를 개량해서 개발한 슈퍼 돼지였던 거야. 그래서 그 친구인 돼지를 다국적 기업이 납치해 가서, 친구를 구하기 위한 소녀의 혈투극인데… 도살장 장면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거든. 그거에 할리우드는 난색을 표했다고 설명 좀 부탁해도 될까?”
“네.”
봉주노 감독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지희는 봉주노 감독의 장황한 설명을 잘 정리해서 리드에게 전달했다.
“봉주노 감독님은 다국적 기업에서 개발한 슈퍼 돼지를 10년 동안 친구로 알고 지낸 소녀가 어느 날, 친구가 납치되자 친구를 구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살장 장면이 필수인데, 할리우드에서는 모두 난색을 표했다고 하시네요.”
“아하…”
리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봉주노 감독도 지희의 통역이 꽤 마음에 든 눈치였다.
“할리우드가 원래 좀 보수적이죠. 봉 감독님, 저는 그 이야기에 무척 흥미가 가거든요. 지금 진행 상황 좀 여쭤봐도 될까요?”
“시나리오 작업 중입니다.”
“투자는요?”
“우선 전선희 대표가 하긴 하는데, 워낙 사이즈가 있어서 좀 더 필요한 상황이기는 해요.”
“제가 한국 가서 본격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네요.”
그 말에 봉주노와 지희 모두 좀 놀란 눈치였다.
사실 리드 스팅스 주니어에게 같은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를 끊어준 건 나였다.
파티에서 봉주노 감독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리드는 봉주노 감독과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칸 영화제 일정상 시간을 빼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난 리드의 한국행을 추진했다.
리드는 넷플렉스의 한국 진출을 고민하고 있던 터라 바로 승낙했다.
곧 봉주노 감독의 반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넷플렉스 같은 새로운 매체와 한번 일해보고 싶네요.”
* * *
공항에 내리자마자, 봉주노 감독이 나에게 조용히 다가왔다.
“전 대표님, 이번 자리 마련해준 거 너무 감사해요. 사실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제대로 안 굴러가서 좀 속상했는데, 리드를 만나서 잘 해결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감사 인사는 잘되면 그때 받을게요.”
“참, 대표님. 지희 양이요. 영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공부는 빡세게 시켰거든요.”
영어를 잘하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한국 사람도 없는 미국 땅에 홀로 떨어뜨리기.
물론 지희는 미드를 보고 터득한 영어였지만, 미국 땅에서 스스로 배운 것들도 많았다.
“좋은 오빠를 뒀네요. 지희 양이 이쪽 일에 관심이 엄청 많던데요.”
“법학 전공인데, 저작권법을 앞으로 세부적으로 더 공부해서 콘텐츠 쪽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혹시… 이런 부탁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봉주노 감독은 망설였다.
하지만 나는 봉주노 감독이 하는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희 양이 시간이 된다면, 제가 앞으로 영화제나 여러 곳에 나갈 때 통역을 부탁해도 될까요? 전문 통역사를 붙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많아서요.”
“우선 지희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지만, 제 생각에는 지희도 무척 좋아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러네요. 그럼, 제가 지희 양한테도 따로 말하겠습니다.”
“네.”
봉주노 감독은 사람 좋게 웃더니 막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지희에게 다가갔다.
[우리 지희,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봉주노 옆에 서서 통역하는 건가?]나는 흐뭇하게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봤다.
역시 어릴 적부터 돈 들여서 스파르타식으로 공부시킨 보람이 있었다.
전태국이 옆으로 다가왔다.
“성국아, 봉주노 감독이 뭐래?”
“지희한테 앞으로 통역 좀 부탁하고 싶다고요.”
“네가 샌프란시스코에 지희 끌고 와서 한국 사람 한 명 없는 기숙 학교에 보낸 효과가 나타나네.”
“그럼요. 저는 자유를 존중하지만, 믿지는 않거든요. 특히 교육에서는요. 공부야 누구나 다 하기 싫죠. 그러니 그럴 땐 무조건 시키는 게 답이에요.”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암튼 못 말려. 어….”
갑자기 전태국이 말을 하다 멈췄다. 무슨 일이지?
“형, 무슨 일 있어요?”
“아버지가 좀 보자는데…. 난 본사로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 성국아, 이따 보자.”
전태국은 전재형 회장의 호출에 부리나케 공항을 빠져나갔다.
* * *
전태국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칸 영화제에서 오자마자 호출이라니….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회장실이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전태국은 미리 대기하고 있는 양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양 비서님, 아버지가 무슨 일로 호출하신 거예요? 귀띔 좀 해주세요.”
“회장님이 상무님의 부회장 승진에 대해서 고민 중이신데, 실적이 없다는 비판이 좀 있습니다.”
“제가 뭐 실적을 쌓아야 하나요? 그런 건 직원들이 해야죠.”
“그래도 부회장 승진을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해서요. 그 일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신 것 같습니다.”
“아부지는 그런 건 좀 나랑 이야기하고 하지….”
전태국은 투덜거리면서 회장실로 들어갔다.
* * *
회장실에는 평소와 달리 전재형 회장 혼자였다.
양 비서도 문을 닫고 밖에 대기했다.
전태국은 쭈뼛쭈뼛 소파로 다가갔다. 괜히 긴장이 됐다. 전재형 회장과 단둘이 어느 공간에 있을 때는 주로 맞을 때였기 때문이다.
“아버지, 무슨 일로 찾으셨어요?”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병원에서 내 업무가 너무 과중하다고 좀 줄이라고 하더구나….”
전재형 회장의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조언이었다.
“네가 상무로 있긴 하지만, 그동안 얼굴 내미는 장소에만 다녔고… 이제 슬슬 너도 제대로 된 자리 차지하고, 일도 해야지.”
“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일은 똑똑한 직원들이 하게 두라고요….”
“그랬지….”
전재형은 말끝을 흐렸다.
“너한테 큰 기대는 없어.”
전태국은 이제 전재형 회장의 독설에 상처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부회장 자리에 오르려면 실적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겠니? 대외적인 명분 말이야.”
“그동안 성국이 따라서 사업 좀 한 게 있는데요….”
“그걸 이번에 제대로 해보라고.”
전태국은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전재형 회장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단 의미였다.
“거기 자료 한번 봐라.”
전태국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자료를 들었다.
“e삼전? 이게 뭐예요?”
“IT 산업 위주로 투자를 해보는 거지. 하드 뱅크의 손정훈 대표가 하듯이.”
“유망한 IT 벤처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란 말씀이죠?”
“그래. 성국이랑 그동안 어울린 게 헛된 시간은 아닐 거란 생각도 들고… 네 투자가 성공만 하면, e삼전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니, 증여세나 상속세 걱정도 좀 더는 거지. e삼전은 지분 70%를 네 앞으로 해서 설립할 거거든.”
전재형 회장은 오늘따라 친절히 설명했다.
그럴수록 전태국은 괜히 긴장이 됐다. 더 잘하라는 채찍 같아서.
“아버지, 이 사업 만약에 제가 혹시라고 실패하면요.”
“그건 내 계획에 없는데….”
“그래도요….”
“그럼, 다른 명분을 만들어봐야지. 널 부회장으로 만들….”
전태국은 전재형 회장의 마지막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적어도 자신을 후계자 자리에서 쫓아낼 생각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 근데… 여기에 성국이 좀 영입하면 안 될까요? 성국이는 하는 투자마다 성공하잖아요.”
“태국아….”
전재형 회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태국을 불렀다.
전태국은 다시 바싹 긴장했다.
“네, 아버지.”
“만약 네가 성국이를 영입해서 투자에 성공한다면, 그걸 사람들이 너의 업적으로 보겠니?”
“그렇긴 하지만….”
“태국아, 난 네가 똑똑하지는 못해도 눈치는 있다고 보는데.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니?”
전태국은 전재형 회장의 속내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성국이 옆에서 유심히 투자를 관찰하란 말씀이시죠?”
“성국이를 영입하지 않고도, 네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란 말이야.”
“네, 아버지. 기억해둘게요.”
“다음 주부터 바로 법인 착수할 테니, 준비해라. 그리고 이 일은 성국이한테는 절대 비밀로 하거라. 내 말 알아듣지?”
“네….”
전태국은 자신은 없었지만, 우선은 대답을 했다.
* * *
강남의 한우 전문점.
리드 스팅스 주니어는 대한민국의 고기 굽는 방식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 구우니까 확실히 숯불 향이 나면서 먹기가 좋네요.”
“소스도 자극적이지 않아서 입맛에 맞으실 거예요.”
“잘 먹을게요, 성국.”
이 자리에는 나와 봉주노 감독도 함께였다.
봉주노 감독의 차기작을 확실히 넷플렉스와 하기 위한 초석이기도 했다.
“성국, 내가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리드, 제가 초대한 거잖아요.”
나는 얼른 잘 익은 한우를 리드 앞으로 보냈다.
“리드, 근데… 넷플렉스의 본격적인 한국 진출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솔직히 생각은 있지만,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아요.”
마음만 있단 소리였다.
“그럼, 이번에 봉 감독님 영화를 통해서 타진해보는 게 어때요? 봉 감독님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감독님의 영화가 넷플렉스에서 최초 공개된다면, 사람들도 당연히 넷플렉스에 엄청난 관심을 가질 거예요. TV 광고보다 수십, 아니 수백 배의 효과가 있을 거예요.”
리드는 내 말에 빙긋 웃었다.
“물론 광고보다 영화 제작비가 더 많이 들겠지만요. 근데, 성국.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요?”
“차차기작을 감독님과 하기로 했다면서, 왜 차기작을 넷플릭스에 이렇게까지 미는 거죠?”
“그거야 빨리 차기작을 만들어야, 저랑 작업하시니까요.”
“익히 듣던 대로 추진력이 좋네요, 전 대표. 나도 한 추진력 하거든요. 이미 전선희 대표 통해서 감독님 차기작 검토하라고 본사에도 남겨놨어요. 그런데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드는데요….”
리드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무슨 불길한 생각이요?”
“제가 봉 감독님과의 차기작 계약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못 빠져나갈 것 같은 생각이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리드에게 한우를 더 건넸다.
“리드, 무슨 그런 말을요. 그냥 대한민국에 있는 동안 한우 많이 드시고 가세요. 돈 걱정은 마시고요.”
봉주노 감독이 테이블 아래도 슬쩍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봉주노 감독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감독님, 차차기작도 얼른 준비해주세요.”
“전 대표님, 알겠습니다.”
* * *
전태국의 얼굴을 못 본 지 나흘이 흘렀다.
이렇게 오래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은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전태국이 왜 나를 피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흠… e삼전 준비 중인가?]저번 생에서 내가 유일하게 실패했던 삼전의 사업 중 하나가 e삼전이었다.
하드 뱅크의 손정훈 대표처럼 유망 IT 회사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는 것이었는데, 저번 생에서 나는 IT 쪽은 영 관심이 없었다.
다행인 건 반도체 쪽으로 투자를 강화하고, 활로를 개척하면서 손해 이상을 만회하고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제 슬슬 전태국의 부회장 승계를 위한 밑 작업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이번 생에서 전태국은 나와 달리 e삼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대답은 하나였다.
[절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