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78)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78화(478/576)
제478화
일론 머스트는 아쉬운 듯 저택을 쳐다봤다.
“성국, 여기는 내가 정말, 정말 특별히 아끼는 곳이거든….”
일론 머스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크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이 집은 거실에서 바로 수영장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산 중턱에 자리 잡아서 탁 트인 풍경도 마음에 들었고, 방과 화장실은 각각 세 개였다.
이층집이 아닌 것도 매력적이었다.
단층으로 지어진 집의 내부는 큰 거실과 중간 거실 그리고 다이닝룸과 주방으로 이어져 훨씬 활동하기에 편해 보였다.
혼자 지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사이즈였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바로 인테리어였다.
“흠… 인테리어는 따로 손 좀 봐야겠네요.”
“성국, 내 취향이 마음에 안 들어?”
“네. 졸부 취향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일론 머스트의 집 내부는 한마디로 돈 많은 싱글 남자가 산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가죽 소파와 비싼 스피커. 한쪽 벽을 꽉 채운 위스키 컬렉션. 그리고 바닥에 깔린 정체불명의 동물 털까지….
일론은 피식 웃었다.
“종알거리던 꼬맹이가 이제 커서 나한테 졸부라고 하고… 내가 너무 오래 살았네.”
“일론, 일론이나 저나 전통적인 부자들이 보면 졸부 맞잖아요. 졸부의 부가 세습되는 저희 자식들부터는 졸부가 아닌 거고요.”
“성국, 정말 자네는 말로 못 당하겠어.”
일론 머스트는 손사래를 쳤다.
나서기 좋아하고 괴짜 같은 면이 일론이지만, 어릴 적 당한 왕따의 트라우마로 종종 말을 더듬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일론의 집을 사려는 이유가 있었다.
“일론, 요즘 조금 힘들죠?”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지금 일론이 딱 그런 상태였다.
일론이 벌인 테슬론과 스페이스Z 모두 투자를 받고 사이사이 성과도 내고 있었지만, 아직 상용화할 모델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테슬론을 일으켜 세울 모델A가 곧 상용화에 들어갈 것이지만, 미래를 아는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테슬론에 대해서 불신의 눈길을 보냈다.
일론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성국, 솔직히 이 집은 내가 가장 아끼는 집이야. 내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혼자 살아보겠다고 처음으로 산 집이 이 집이거든.”
일론은 말을 맺더니 자연스레 위스키를 꺼내 들었다.
“성국, 이제 어른이니 애들처럼 맥주만 홀짝이는 건 아니지?”
[저번 생에서는 나도 위스키 애호가였어, 일론.]“일론, 저도 한 잔 주세요.”
“내가 자네한테 오늘 제대로 된 위스키의 맛을 알려줄게.”
일론은 나에게도 익숙한 싱글 몰트 위스키 하나를 꺼냈다. 가격으로 치면 백만 원이 훌쩍 넘는 것이었다.
일론은 위스키의 뚜껑을 열려고 하다가 문득 나를 쳐다봤다.
“성국, 이 집 자네가 살 거지?”
“고민 중이에요. 아직 매물로 나온 다른 집을 보지 않아서요.”
원래 마음에 드는 물건일수록 튕겨야 한다.
마음에 드는 티를 내는 순간, 흥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국, 자네가 그냥 내 집 사줘. 내가 이 집 얼마나 아끼는지 자네도 보면 알 거야. 여긴 그냥 다 내 취향으로만 채워진 집이거든. 사귀던 여자들의 손길은 하나도 닿지 않은 곳이야. 이런 곳을 실리콘밸리의 돈 많고 단란한 가족을 이룬 사람들에게 팔기는 싫고. 중국의 돈 많은 부자들에게 팔기는 더 싫거든.”
이곳의 가격은 한화로 50억 정도 됐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로 미국의 집값은 아직 크게 회복되지 않았다. 실리콘밸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론 머스트가 막 따려던 위스키를 병째 내밀었다.
“성국, 이건 내 집을 사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야. 이 집에서 좋은 일 있으면 따라고.”
“일론… 전 아직 결정 못 했는데요.”
“내가 내놓은 가격보다 50만 달러 더 싸게 줄게.”
5억 정도 더 싸게 준다고?
흥정이 잘 없는 이 동네에서 이 정도 할인은 대환영이었다.
“일론, 그럼 제가 이 집을 안 살 수가 없잖아요.”
[안 그래도, 살 생각이었어. 일론.]나는 일론이 내민 위스키도 받아들었다.
그때, 위스키를 잡은 일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단, 조건이 있네. 성국.”
일론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조건이 뭔가요, 일론?”
“내가 원할 때 이 집에서 가끔 재워줘.”
“이 집에서 안 나가겠다는 건 아니죠?”
“나 이제 곧 텍사스로 옮겨갈 거야. 테슬론이나 스페이스Z 모두 그쪽으로 이전할 생각이거든. 그러면 여기 올 일이 얼마나 많겠어.”
“좋아요. 단, 미리 연락만 주세요.”
“그럼, 우리 거래는 성사된 건가?”
“물론이죠!”
그제야 일론은 위스키를 든 손에서 힘을 뺐다.
“축배는 다른 위스키로 들자고.”
일론은 다른 위스키를 잔에 부었다.
“자, 성국. 미국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고마워요, 일론. 집도요.”
우리는 위스키 잔을 부딪쳤다.
* * *
일론과 나는 수영장 앞에 널브러져서 위스키 한 병을 거의 비운 상태였다.
일론은 조금 술에 취했고, 나는 멀쩡했다.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낼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일론 머스트의 집을 산 것은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일론을 위해서인 것도 있었지만, 다른 거래를 제안하기 위한 일종의 당근이었다.
“일론, 요즘 테슬론은 어때요?”
“뭐… 맨날 힘들지. 오락가락하기도 하고…. 자네의 ‘페이스 노트’는 요즘 승승장구잖아. 너튜브랑 인스타그림도 그렇고… 참, 이번에 발표한 게 뭐더라?”
“띡똑이요.”
“그것만 좀 기대에 못 미치는 건가?”
“그렇죠, 뭐….”
[조만간 잘 될 거야, 띡똑도!]나는 괜히 씁쓸한 얼굴로 위스키를 마셨다.
“일론, 테슬론이 투자를 공격적으로 안 받는 것은 아는데요.”
일론 머스트는 약간 나와 비슷하게 회사 내 자신의 보유 지분을 최대한으로 항상 유지했다.
“성국, 나 어렵다고 도와주려는 거야?”
“도와주는 게 아니라… 투자하고 싶은 거죠. 전 언제나 일론을 응원하잖아요.”
“이미 스페이스Z는 지분도 보유하고 있잖아. 내가 테슬론 주식도 주기도 했고….”
우리의 오랜 인연 동안 나는 스페이스Z의 지분도 보유했고, 테슬론의 주식도 많이 샀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했다.
“일론. 이 집을 파는 것도, 세금 적은 텍사스로 본사 옮기는 것도, 결국은 다 돈 문제잖아요.”
“그렇긴 한데….”
“일론, 고민해봐요.”
이 부분은 강요는 할 수는 없었다.
“성국… 난 앞으로 자네랑 경쟁이라는 것을 좀 해보고 싶거든.”
일론이 술에 취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경쟁이요?”
“내 꿈이 뭔 줄 아나?”
“화성 이주요?”
“하하하. 그것도 하나지. 근데, 난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남자가 되고 싶거든. 어릴 때 누구나 이런 꿈 한 번씩은 꾸잖아. 하지만 다들 자라면서 그걸 잊고 사는데, 나는 꿈을 이루는 지구의 단 한 명이 되고 싶거든.”
[일론, 그렇게 될 거야.]나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곤 일론을 쳐다봤다.
“근데, 왜 그걸 저랑 경쟁하시는 거죠?”
“나는 내 꿈을 막을 유일한 사람이 자네 같거든. 그러니까 우리 서로 경쟁을 해보자고. 누가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나….”
일론은 내 투자를 거절했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일론이 원한 것은 자신의 회사에 투자하는 내가 아니라 자신과 세계 제일의 부자 자리를 놓고 다툴 나였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앞으로 내 인생의 목표가 될지도 몰랐다.
“일론, 알았어요. 내가 당신의 경쟁자가 되어줄게요. 우리 10년 후에 누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지 한번 보죠.”
“좋지! 경쟁자도 생겼으니, 내일부턴 진짜 일만 해야겠어.”
일론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인생의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 * *
일론 머스트에게 산 집은 한 달에 걸쳐서 인테리어를 고쳤다.
집은 전체적으로 모던해서, 가구를 바꾸고 전체적인 조명만 다시 시공했다.
김미소 비서가 환한 얼굴로 바뀐 집을 훑었다.
“대표님, 이 집을 처음 봤을 때랑은 완전히 다른데요.”
“처음에는 어땠는데요?”
“돈 많은 싱글 남자의 집 같았어요.”
역시 김미소 비서는 보는 눈이 있었다.
“지금은요?”
“돈 많은 센스 있는 싱글 남자의 집 같습니다, 대표님.”
“아부 같지만 듣기 좋네요.”
나는 저번 생의 취향을 되살려서 이름 있는 가구 디자이너의 가구들로 채웠고, 어릴 적에 홍콩 아트페어에서 데미안 허스키에서 받은 판화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그동안 돈만 버느라 취향 따위는 잊어버리고 산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공간이었다.
“참, 대표님. 이번 주말에 전태국 대표님께서 오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전태국이 오는데, 왜 김미소 비서에게 연락을 했지? 내가 아니라….
“형한테 아무 연락 못 받았는데요.”
김미소 비서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한테 연락하면 당연히 거절할 거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공식적인 일정으로 대표님께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아… 결국, 좌천당해 오는 건가….”
전태국의 e삼전은 결국,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설립 반년이 조금 지나서 해체되고 말았다.
물론 성과를 내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국내에서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e삼전이 삼전의 비자금 은닉 혐의를 받자 어쩔 수 없이 해체된 것이기도 했다.
“전태국 대표님은 지금 국내에서 이슈가 된 대통령 비선 실세 문제 때문에 잠시 해외로 자리를 옮기시려는 것 같습니다.”
국내 정치가 복잡해지면서 그동안 전재형 회장 대신 각종 행사에 얼굴을 내밀고 사사로운 일들을 처리한 전태국이 비선 실세 이슈에도 이름이 오르내린 것 같았다.
“그게 하필 또 여기고요?”
“아무래도 전태국 대표님께서 제일 편하게 생각하시는 곳이 미국이고, 그중에서도 오랜 시간 머물렀던 이곳이니까요. 저한테 집도 좀 알아봐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김 비서님, 김 비서님 이제 삼전 사람 아닙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김미소 비서는 이제는 정식으로 ‘페이스 노트’의 직원이 됐다.
“하지만, 삼전과의 인연을 아예 정리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어야 제가 삼전의 움직임도 계속 체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저도 ‘페이스 노트’ 정식 출근 전이라 제 집 보는 김에 같이 보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참, 김 비서님은 마음에 드는 집 구하셨어요?”
“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콘도에 저랑 동생이 지내기 좋은 투 베드룸이 나와서 오늘 오후에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잘됐네요.”
나는 김미소 비서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아무리 일이라고 해도 이번에 집 인테리어 하는 거, 많이 신경 쓰셨잖아요. 제 가구 보면서 가구도 많이 봤을 텐데, 마음에 드는 걸로 구입하세요.”
“그건 너무 다 비싼 것들이라서요. 저랑 동생은 이케라에 가서 사려고 합니다.”
김미소 비서는 손사래를 쳤다.
“보너스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가구를 집에 들이면, 타향살이에 좀 더 정이 붙을 거예요.”
“그럼, 우선 받긴 하겠지만… 가구는 적당한 선에서 사겠습니다.”
김미소 비서는 내가 내민 카드를 겨우 받았다.
* * *
띵동.
홀로 조용히 지내는 금요일 밤,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인터폰으로 문 앞에 선 익숙한 얼굴을 확인하고는 문을 열었다.
“성국아! 나도 미국 왔어!”
전태국이 미국에 왔다.
“형, 내일 도착 아니었어요?”
“한국에서 기자들이 하도 달라붙어서, 그냥 하루라도 빨리 벗어났어.”
전태국은 흡족한 얼굴로 내 집을 훑었고, 나는 이 평온한 일상에 균열이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성국아, 여기 게스트룸 있지? 나 집 구하는 동안 여기서 좀 지내자.”
정말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