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90)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90화(490/576)
제490화
지희는 게스트룸을 열어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지희야, 마음에 안 들어?”
전태국이 뒤에서 따라붙었다.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어. 1학기 동안 있는 건데, 네 취향으로 바꿀 생각은 없어.”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생각보다 모던한 게 내 취향이라서….”
지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전태국은 웃음을 참더니 소곤거렸다.
“성국아, 너희 집안에서 지희가 널 제일 닮은 것 같아.”
[말 안 해줘도 알고 있다고, 전태국.]나는 팔짱을 낀 채 말을 돌렸다.
“형, 이번 아카데미에 삼전을 대표해서 갈 거죠?”
“응. 안 그래도 선희 누나도 온다고 해서, 또 만나서 신나게 파티하고 놀아야지. 선희 누나가 너네 호텔 걱정은 하지 말래. 누나네 회사 측에서 다 잡을 거라고. 솔직히 누나가 데니스 샤젤이랑 너를 자기네 회사에서 대접하는 것만으로도 홍보된다고 나보고 너 딴 데 가지 못하게 잡아두라고 했어.”
“전 대표님한테, 지희도 간다고 알려주세요.”
전태국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전성국, 넌 이럴 때 보면 우리 삼전가를 참 잘 이용해. 선희 누나가 지희 이뻐하니까, 지희 챙기게 하려는 거지?”
“형, 형도 저 잘 이용하잖아요. 예를 들면 대학 졸업이라든가…. 사진 유출이라든가…. 그 외에 말하려고 하면 너무 많은데요.”
“알았다. 알았어. 정말 이 이야기 안 들으려면 얼른 나도 한국 가야지. 암튼 선희 누나한테는 말해둘게.”
“고마워요, 형.”
전태국과 나의 거래를 또 이렇게 간단히 해결됐다.
하지만 자기 혼자 잘난 맛으로 세상 사는 막냇동생이 우리 집에 와있다니….
앞으로의 6개월이 깜깜했다.
* * *
우리는 저녁 시간까지 서로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서재에서 주중에 보지 못한 업무를 처리했고, 지희 역시 짐을 푸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이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이제 거의 저녁때가 다가왔다.
– 성국아, 저녁 뭐 먹을 거야?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니라 전태국이었다.
나는 메시지를 씹고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이제 본사의 설계도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설계도를 훑어보면서 보강할 부분이나 빠진 게 없는지 찬찬히 훑어봤다.
근데 뭐가 좀 아쉬웠다.
설계도들은 한결같이 다 멋졌지만, 콘셉트가 빠진 것 같았다.
나는 마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마크는 전화를 받았고, 전화기 너머로는 올리비아와 로즈가 종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성국, 주말에 어쩐 일이야? 참, 지희는 잘 도착했지?
“응. 잘 도착했어. 마크, 설계도면을 훑어보고 있는데….”
– 성국, 오늘은 토요일이야. 제발 일도 좀 쉬면서 해.
“오늘 미루면 내일 일이 더 많아지는데, 주말이라도 일하는 게 낫지.”
이때, 올리비아가 종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삼촌,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올리비아가 초대해주면 언제든 갈게.”
– 와아! 아빠, 삼촌 초대해!!!
올리비아가 마크에게 떼쓰는 소리가 들리더니, 리미미가 올리비아를 혼내는 소리도 연이어 들렸다.
– 성국, 미안.
“애 있는 집들이 다 그렇지, 뭐.”
– 참, 우리 설계도 이야기하고 있었던가?
“응. 근데… 우리 설계도가 좀 부족한 것 같아.”
– 뭐가? 나랑 미미도 봤는데, 멋지던데….
“멋지긴 한데… 우리만의 개성이 없다고 할까.”
– 흠… 그렇긴 하네.
“실리콘밸리 어디를 돌아다녀도 그냥 볼 수 있는 건물 느낌?”
– 흠….
마크의 고민하는 소리가 연신 들렸다.
그리고 뒤에서 올리비아와 로즈가 다시 마크를 들들 볶는 소리도.
아무래도 오늘 통화는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았다.
“마크, 설계도면 보면서 든 생각을 정리해서 보낼게. 월요일에 만나서 이 문제 다시 논의하자.”
– 미안, 성국. 참, 지희랑 다음 주에 우리 집 와서 저녁 먹어. 미미가 맛있는 거 해준대.
“고마워, 마크.”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설계도면을 훑었다.
내가 원한 건 남들이 보기에 멋지기만 한 건물이 아니다. ‘페이스 노트’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그런 건물이었다.
띵동! 띵동! 띵동!
요란하게 초인종이 울렸다.
안 봐도 누구인지 알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거실로 나가니, 지희가 이미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전태국과 이경수가 두 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지희야, 니네 오빠 저녁 뭐 먹을 건지 관심도 없지?”
“아마도요.”
“그래서 내가 여기 이경수 씨랑 장 봐서 왔어. 민국이 왔을 때도 바비큐 엄청 많이 해 먹었어. 한국에서 오느라 고생했는데, 고기 먹고 오늘은 푹 쉬는 거야.”
전태국은 신이 나서 장 봐온 고기를 꺼내놨다.
이경수는 능숙하게 우리 집 바비큐 기계에 불을 피웠다.
나는 팔짱을 선 채 그들을 내려다봤고, 지희도 어느새 내 곁에 와있었다.
“큰오빠, 난 저녁 간단하게 먹었으면 했어.”
“나도 마찬가지야.”
“근데 저 두 사람은 맨날 이렇게 와서 바비큐 구워?”
“맨날 우리 집에서 굽진 않고, 우리 집에서 안 굽는 날은 자기네들 집에서 굽긴 해. 결론적으로는 매일이라고 볼 수 있지.”
팔짱을 낀 채 나란히 선 나와 지희를 보면서 전태국이 손을 흔들었다.
“조금만 기다려. 고기 금방 구울게.”
그 말에 나와 지희는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큰오빠, 앞으로 전태국 오빠가 우리 집 오는 것 좀 막아줬으면 좋겠어. 교환학생이지만, 사시 공부도 병행할 거거든.”
“그건 나도 바라는 바야. 네 핑계 좀 댈게.”
“대신 조건이 있어.”
[이럴 때 보면 정말 나를 닮았단 말이지.]나는 지희를 쳐다봤다.
“조건이 뭔데?”
“운전면허 따고 싶은데, 캘리포니아 주법에 따르면 성인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더라고. 오빠, 해줄 거지?”
“흠… 그 정도는 해주지.”
지희가 손을 내밀었다.
“거래 성립?”
나는 지희의 손을 꼭 잡았다.
“거래 성립!”
* * *
월요일 아침, 마크가 부스스한 얼굴로 커다란 텀블러를 들고 들어왔다.
“성국아, 아침 6시부터 회의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나, 월요병 있단 말이야.”
“다음 주에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해야 해서 일을 좀 해놓고 가야 해서 미안. 설계도면 말이야. 주말 내내 고민해봤거든.”
“나도 고민을 하긴 했는데… 솔직히 뭐가 부족한지 잘 모르겠어.”
“너무 평범해. 이 건물이 실리콘밸리에 있든 LA에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이지. ‘페이스 노트’의 본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하는 거잖아.”
마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주면 좋지. 그렇다고 아플처럼 우주선 모양으로 지을 순 없잖아.”
“마크, 우리의 정체성이 뭘까?”
“성국… 스무고개 하는 거야?”
나는 진지한 얼굴로 마크를 쳐다봤다.
“스무고개 아니야. 너와 내가 고등학교에서 만나서 만든 ‘페이스 노트’라는 SNS! 그리고 우리는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잖아.”
“흠… 우리가 학교에서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거대한 회사가 되어버린….”
그 순간, 나와 마크의 눈이 딱 마주쳤다.
“성국, 설마?”
“캠퍼스!”
“나도 그 생각했어. 회사가 아니라 학교 캠퍼스!”
마크의 눈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마크. 우리 ‘페이스 노트’ 회사의 본사 건물의 콘셉트는 캠퍼스로 하는 거야. 우리가 마치 필립 아카데미 기숙에서 ‘페이스 노트’를 만들고, 하버드 교정을 거닐면서 ‘페이스 노트’를 성장시켰듯이.”
“회사지만, 마치 대학 캠퍼스 같은 느낌으로 만들자는 거지?”
“맞아!”
마크는 흥분한 얼굴로 사무실을 걷기 시작했다.
“거대한 부지 위에 대학 캠퍼스처럼 회사 건물이 여러 군데 세워지고, 각자의 파트도 나뉘어 있고. 각자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가서 일을 하고 회의를 하는 구조. 쉬고 싶을 때는 캠퍼스의 정원을 걸어도 좋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셔도 되고.”
“‘페이스 노트’ 캠퍼스. 그게 내가 생각한 ‘페이스 노트’의 새로운 본사의 콘셉트야.”
“성국, 바로 연락해서 설계도면부터 바꾸자.”
마크는 커피를 쭉 들이켜면서 사무실을 나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성국, 그래도 월요일 아침 6시 회의는 앞으로 삼가줘. 학교에 월요일 아침 6시 수업은 없잖아!”
“알았어.”
나는 마크가 나간 뒤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 속도대로라면 올해 안에 새로운 ‘페이스 노트’ 본사의 캠퍼스의 실체가 드러날 것 같았다.
* * *
데니얼이 지희의 캐리어를 번쩍 들었다.
“지희 양, 이건 저 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지희가 손사래를 쳤다.
“제가 할게요. 큰오빠가 이런 거 들라고 뽑으신 거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여동생이라서 그러신지, 말하는 게 꼭 대표님 같으세요.”
나는 간단한 캐리어를 하나 들고 데니얼을 쳐다봤다.
“데니얼, 늦겠어요. 어서 출발하죠.”
“대표님, 대표님 따라서 아카데미 레드 카펫 밟을 생각에 어제 저 잠도 못 잤어요.”
“감상은 가면서 마저 듣죠.”
나와 지희 그리고 데니얼은 기다리고 있던 전태국의 차에 올라탔다.
미국에 와서 자연인으로 살던 이경수도 오랜만에 면도까지 하고 말끔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데니얼과 이경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처음 가는 거라 꽤 흥분해 있었고, 이미 저번 생에서도 여러 번 가본 나는 ‘페이스 노트’의 새 설계도면을 훑었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지희도 차 안에서 운전면허시험 공부를 했다.
“지희야, 운전면허 따게?”
전태국의 물음에 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학생도 면허 딸 수 있다고 해서 따두게요. 한국에서는 아직 나이가 안 돼서 못 따거든요.”
“지희야, 면허 따면 오빠가 차 한 대 사줄까?”
“하아… 태국이 오빠. 오빠가 재벌인 건 아는데요. 그렇게 돈 흥청망청 쓰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저한테는 더 돈 많은 큰오빠도 있거든요.”
물론 나는 사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지희가 설계도면만 보는 나를 뚫어져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 들으면서 모른 척하네요.”
“지희야, 네 말대로 돈이 많아도 흥청망청 쓰면 안 되지. 네가 면허 시험을 본다고 해도 필기시험 합격하고 6개월 후에나 실기시험 칠 수 있는데. 그땐 한국 돌아가야 하잖아. 그냥 시험을 보는 데 의의를 둬.”
“어쩜 큰오빠는 내 예상을 하나도 안 벗어나는지 모르겠어.”
나와 지희의 대립으로 차 안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데니얼이 말을 꺼냈다.
“지희 양, 스탠포드 교환학생이잖아요. 제가 선배인데, 개강하기 전에 학교 탐방 좀 시켜줄까요?”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학교 가는 길도 잘 모르거든요.”
“걱정 마요. 제가 학교 가는 길부터 시작해서 학교에 숨어있는 명소랑 맛집들 쫙 소개해줄게요.”
“고마워요, 데니얼.”
지희와 데니얼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자, 전태국이 부러운 듯 쳐다봤다.
“나도 공부 열심히 할걸. 그럼, 스탠포드 갔을 텐데.”
“형, 형은 열심히 했어도 스탠포드는 못 갔어요.”
“하아… 아카데미 파티나 가서 술이나 어서 마셔야겠다.”
전태국은 괜히 투덜거렸다.
“근데, 대표님. <채찍>이요. 아카데미에서도 상 받을까요?”
“확실한 건…. 남우조연상은 확실히 받을 거예요.”
“어떻게 확신하세요?”
“흠… 확신이라기보다는 꼭 그래야만 해요. J.J 시몬스랑 약속한 게 있거든요.”
나는 살짝 겸손하게 대답했다.
마블 영화와 <채찍>을 두고 고민하는 J.J 시몬스에게 나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지 못하면 출연료의 10배를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내가 J.J 시몬스와의 약속을 이야기하자 모두들 눈이 커졌다.
“대표님, 만약 못 받으면 진짜 출연료의 10배를 주는 거예요?”
“당연하죠.”
하지만 올해의 남우조연상은 J.J 시몬스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