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504)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504화(504/576)
제504화
메타버스.
이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마크는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넌 멈추지 않을 줄 알았어. 상장 전에 기업을 팔라고 하는 수많은 유혹에도 너는 꿈쩍도 하지 않았잖아. 내가 회사 그만두고 전업주부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너는 말렸고. 사실 많은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팔아버리고, 나머지 인생은 부자로 그냥 살기를 바라는데. 넌 그렇지 않았거든.”
“마크, 네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야. 알잖아?”
“암튼 추켜세우기는. 성국, 이런 말 하면 닭살 돋을지도 모르지만, 내 인생은 정말 널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 같아. 너를 만나기 전에 나는 그저 공부 좀 하는 너드였거든. 아, 맞다!”
마크는 손뼉을 딱 쳤다.
“마크, 왜 그래?”
“연설문에 추가할 내용이 생각났어. 너와의 추억 이야기가 좀 있는데, 이 내용도 추가되면 좋을 것 같아서. 생각났을 때, 어서 추가해야겠어. 성국, 어서 호텔로 가자!”
마크는 걸음을 재촉했다.
* * *
늦은 밤, 나는 홀로 호텔 방에서 연설문을 다시 확인했다.
아마 마크는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연설문을 쓰고 있었는지, 꿈에도 모를 것이다.
하버드 대학을 자퇴할 때, 나는 이미 내가 ‘페이스 노트’ 상장 이후에 명예 졸업장을 받을 것을 알았다.
저번 생에서 마크 주크버스가 그러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종종 밤마다 이 졸업식 연설문을 쓰고, 수없이 다듬곤 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하버드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아빠와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났다.
나는 그때의 감정을 짧게 썼다.
– 하버드에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았다고 한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는데, 그 순간 저는 아버지가 눈물을 참고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종종 너무 기쁘거나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질 때면 울곤 하거든요. 남자들도요!
물론 적당한 유머도 곁들였다.
“사연팔이는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부족하려나?”
나는 다시 연설문을 훑었다. 그리고 조용히 노트북을 덮었다.
드디어 모든 것이 다 준비된 것 같았다.
* * *
수요일 아침.
드디어 하버드 명예 졸업장 수여식이 열리는 동시에 연설하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미리 준비한 슈트를 입었다.
머리를 매만졌고, 넥타이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봤다.
[정말… 오늘도 잘생겼군.]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때, 호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성국, 나야. 문 좀 열어줘.”
마크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마자 사색이 된 마크가 뛰어 들어왔다.
“성국, 나 떨려서 죽을 것 같아. 새벽부터 잠도 못 잤어. 미미랑 애들 앞에서 연설문을 읽고 또 읽어봤는데, 계속 틀리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나는 마크의 어깨를 꽉 잡았다.
“마크, 너는 지금 내가 널 지켜봐 온 중에 제일 멋진 모습을 하고 있어.”
“그거야… 태국이가 슈트도 선물해줬고, 미미가 연설한다고 구두도 사주고. 올리비아랑 로즈가 넥타이도 골라주고….”
“봐, 너는 오늘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어. 근데 이렇게 끝까지 멍청하게 굴래?”
마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내가 아침까지 이럴 줄 몰랐어. 내가 너무 한심하고 비참한 기분이야.”
“마크, 네가 한심한 게 아니라 이런 일 앞에서는 누구나 그래.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 너무 떨리면 안정제나 위스키 한잔하던가?”
“하아… 위스키. 나에게는 위스키가 필요한 것 같아.”
마크는 호텔 미니바에서 위스키를 찾아서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마시려는 순간, 나는 얼른 마크를 제지했다.
“마크, 술에 취해서 연설하는 것보다는 조금 떠는 게 나아.”
“하아… 알았어.”
마크는 몇 번 크게 숨을 내뱉고는 내 어깨를 꽉 잡았다.
“성국아, 가보자.”
“그래!”
* * *
5월의 하버드 교정은 따뜻했다.
햇살은 적당했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다.
나와 마크가 명예 졸업장을 받고 연설할 단상은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마크가 넥타이를 매만졌다.
“마크, 진정 좀 됐어?”
“위스키 때문인지, 지금 이게 현실 같지 않고, 꼭 게임 속 같아. 지금 나는 내가 조종하는 아바타고.”
“마크, 그렇게 생각해. 네 아바타가 지금 연설하는 거라고.”
“그래….”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엄마, 아빠 그리고 민국이와 지희가 조르르 앉아 있었다. 다들 살짝 들뜬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앉은 전태국과 전미진까지….
저번 생의 동생들까지 함께 있다니.
나 역시 이 자리와 상황이 마치 게임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설마 이러다 꿈에서 깨는 건 아니겠지?]나는 옆에 앉은 마크에게 작게 속삭였다.
“마크, 나 좀 살짝 꼬집어줄래?”
“어?”
마크가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너도 떨리는 거지?”
“전혀.”
“그럼, 왜 꼬집어 달래?”
“한국에서는 어떤 상황이 실감이 나지 않을 때, 종종 그런 부탁을 하거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때 말이야.”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긴 해. 하버드 자퇴할 때, 나도 이런 자리에 서는 건 빌 게이트나 찰리 잡스 정도 되는 사람일 줄 알았지.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마크도 잠시 감상에 젖었다.
“마크, 감상은 잠시 후에 하고, 나 좀 꼬집어 봐.”
“그래, 아주 세게 꼬집을게!”
마크는 말대로 아주 세게 꼬집었다.
“어때, 성국?”
“현실 맞네. 아주 제대로 아프거든.”
우리가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는 사이에 하버드 총장의 짧은 연설이 끝났고, 명예 졸업장을 받게 되는 우리를 소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명예 졸업장을 수여 받으실 두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페이스 노트’의 공동 대표 마크 주크버스와 전성국입니다!”
나와 마크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는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났다.
그리고 둘이 나란히 단상으로 올라갔다.
“마크, 네가 먼저 올라가.”
내가 마크를 뒤에서 살짝 밀자, 마크가 빙긋 웃으면서 나를 앞세웠다.
“성국아, 네가 먼저인 게 맞아.”
“마크, 나이 많은 네가 먼저지.”
“무슨 소리야. 성적 좋은 네가 먼저지. 학교는 무조건 성적순이잖아.”
우리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본 사회자가 급히 정리했다.
“제가 나이순으로 호명했는데, 지금 막 온 자료를 보니 전성국 대표님 성적이 더 좋았네요. 먼저 단상에 오르시죠.”
이 말에 졸업식을 보던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하버드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 * *
연설은 마크가 먼저 시작했다.
술기운이 떨어지기 전에 연설을 해야 한다는 이유였고, 내 연설 뒤에 했다가는 철저히 묻힐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마크는 단상에 오르자마자 얼굴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리미미가 옆에서 혀를 찼다.
“사장님, 마크 어쩌죠. 애들이 저런 건 절대 닮지 말아야 할 건데요.”
“리미미 씨, 저게 마크의 매력이잖아요.”
“하긴요.”
어느새 리미미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마크의 연설이 시작됐다.
“흠… 흠… 제가 하버드 다닌 지가 오래라… 제가 이곳을 다녔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연설의 시작은 마크의 썰렁한 농담이었다.
관중들은 그래도 애써 웃음을 터트려줬다.
마크는 다시 목을 가다듬더니, 연설을 이었다.
“우선 제가 ‘페이스 노트’의 대표라는 사실을 아마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사실 ‘페이스 노트’하면 저랑 ‘페이스 노트’를 같이 만든 성국을 많이 떠올리시거든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제가 공동 대표라고 말하면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사기꾼인가 해서요. 이제 제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은 증명된 거겠죠?”
그 말에 관중들은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마크의 진심을 듣기 시작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컴퓨터 만지는 것을 좋아했고, 프로그래밍하는 게 취미였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게 생산적인 일로 연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페이스 노트’의 전신인 ‘페이스 페이퍼’를 만들게 된 것도 성국이가 간식을 사준다고 유혹해서였거든요. 아시다시피 기숙사에 살면 항상 배가 고파서요.”
마크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연설을 잘 이어갔다.
“제가 기숙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실 오늘 할 이야기가 바로 그 기숙사에서 만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에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성공할수록요. 하지만 여러분께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좋은 친구를 곁에 둔다는 건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요.”
마크의 말에 진심이 묻어났다.
가족들과 리미미 그리고 마크의 아이들이 나를 따뜻하게 쳐다봤다.
마크는 배시시 웃더니 연설을 이어나갔다.
“어쩌면 제 인생은 ‘성국’이라는 친구를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왔고, 심지어 저보다 일곱 살이나 어렸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친구가 제 인생을 바꿔놨거든요.”
안정을 찾은 마크의 연설은 계속됐고, 사이사이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마크의 연설 주제는 바로 인생의 친구였다.
좋은 친구를 알아보고, 곁에 둔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바뀔 수 있고, 가치 있다는 내용이었다.
훌륭한 연설은 아니었지만, 가슴 뭉클한 연설인 것은 분명했다.
“음… 음. 이제 제 연설도 끝맺을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여러분, 제가 여러분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곱슬머리에, 주근깨가 가득하고. 수줍음도 많이 타는 저 같은 학생을 발견하신다면 적극적으로 다가가세요. 그 친구가 저 같은 컴퓨터 천재일 지도 모르거든요.”
그리고 적당한 웃음까지 주면서 마크의 연설은 끝이 났다.
마크는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단상에 내려왔다.
그러고는 곧 사회자가 나를 호명했다.
“곱슬머리에, 주근깨 가득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컴퓨터 천재를 알아보신 친구를 이 자리에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단상에서 보니 가족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연설을 막 마친 마크가 한숨 돌리고는 올리비아와 함께 박수를 치는 모습도.
나는 빙긋 미소를 짓고는 연설을 시작했다.
“저의 수줍은 친구가 멋진 연설을 한 것 같은데요.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친구와 저를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게 만든 제 이야기를 좀 더 하려고 합니다.”
나는 호텔 방에서 쓴 대로 아빠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본론을 꺼내 들었다.
“사실 제가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가 가족을 떠나, 하버드에 진학하고, ‘페이스 노트’를 창업하게 된 제 인생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항상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종종 약해진 나와 타협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죠. 하지만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제가 대한민국의 작은 방에서 뒤집기를 막 시작할 무렵,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번 생에서는 세계적인 부자가 되겠다고요!”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여러분, 안 믿기시죠? 옹알이도 못 하는 아이가 세계적인 부자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게요? 하지만, 이게 제 최초의 기억이고, 저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여러분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모두가 불가능한 꿈이라고 해도, 내 마음속에 열정을 갖고 있다면 목적은 어느새 이뤄질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요. 혹시 실패하더라고 처음부터 포기한 삶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거란 것도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그 증거인 제가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동양인이라고, 어리다고, 목적 없이 살았다면 ‘페이스 노트’도 없을 것이고,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마지막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제는 저와 마크가 여러분들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세대가 되겠습니다!”
연설을 마치자마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
가족들은 모두 일어나서 감격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대로 달려가서 엄마와 아빠를 껴안았다.
엄마, 아빠는 그런 나를 안고는 대견하다는 듯이 등을 토닥였다.
“성국아, 졸업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