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511)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511화(511/576)
제511화
엔리케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만면에 비소를 지었다.
만찬은 내내 화기애애했다.
엔리케는 발톱을 숨긴 채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전 대표님은 인기가 상당할 것 같은데요, 어디서든요. 혹시 한국에서 대통령 출마하라는 말은 안 하나요?”
“정치는 제 관심 밖이라서요.”
“아마 앞으로 끊임없이 정치에 대한 제안이 들어올 겁니다. 저 역시 그랬거든요.”
엔리케 니토는 잘생긴 외모로 대통령 후보 전부터 멕시코 사람들의 사랑을 받긴 했다.
곧이어 멕시코의 전통음식과 돈지오의 데낄라가 연이어 나왔다.
전태국은 멕시코에 와서 데낄라의 맛에 푹 빠진 것 같았다.
“데낄라가 참 매력적인 술이네요.”
“삼전의 후계자까지 인정해주시니,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네요. 그리고 ‘페이스 노트’의 대표님이 돈지오를 인수하고 싶어하시기까지 하니까요.”
나도 돈지오 데낄라를 쭉 들이켰다.
그동안 데낄라는 내 관심 밖의 술이었다.
하지만 돈지오 데낄라는 마실수록 더 큰 매력이 있었다.
잭 더치만 아니라면 돈지오를 인수해서 계속 가지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이때, 엔리케가 만면의 미소를 지으면 나를 쳐다봤다. 마치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전 대표님, 우리 비즈니스 이야기 좀 간단히 마무리 지을까요?”
[엔리케, 우리의 이야기는 아까 끝난 게 아닌가?]나는 조용히 엔리케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데낄라 때문에 내가 정치인들을 쉽게 본 모양이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집요하게 사람을 쥐고 흔들었다.
저번 생에서도 익히 경험한 일이었다.
“은행 거래 정지까지 한다면 돈지오는 움직일 데가 없을 거고. 그때 제가 조용히 매수를 추진하면 될 것 같은데… 다른 이슈라도 있을까요?”
“제가 만약에 돈지오의 이번 매각 건을, 전 대표님과 똑같은 조건으로 다른 곳에도 흘리면요?”
엔리케의 그 말에 만찬 자리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역시 정치인은 믿으면 안 돼….]하지만 인생 2회차인 나였다.
나는 태연하게 데낄라를 원샷했고, 전태국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느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엔리케는 내 말을 기다리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엔리케, 그러다 얼굴에 쥐 나겠어….]이런 자리에서는 결국, 누가 더 태연하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엔리케는 분명 원하는 게 있어 보였다.
“대통령님, 혹시 원하시는 게 따로 있을까요?”
엔리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찬도 끝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배도 채웠으니, 저희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데낄라나 한 잔씩 더 하죠.”
나와 전태국은 서로 잠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엔리케의 제안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 * *
“돈지오에서 만든 최고급 데낄라 라인입니다. 사실 돈지오 대표는 대통령 선거 때 저를 엄청나게 지지해줬거든요.”
[역시… 정치자금을 원하는 건가?]나는 엔리케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통역이 있었지만, 정치적인 이슈이고 민감한 문제라 엔리케는 어떻게든 영어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려고 했다.
전태국도 이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멕시코에 있는 삼전 공장도 정치적 이슈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나는 잠시 데낄라를 입에만 대고 생각에 빠졌다.
사실 저번 생을 살다 왔다고 해도, 멕시코의 대통령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대통령이 바뀔지 안 바뀔지 여부도 알 수 없었다.
엔리케는 빙긋 웃으면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나와 전태국을 번갈아 봤다.
“두 분 다 너무 경색되신 것 같네요. 사실 제가 원하는 게….”
이때였다.
누군가 나와 전태국 그리고 엔리케와 통역사들만 모인 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엔리케는 예상했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들어와요.”
곧 문이 열리면서 십 대의 두 소녀가 등장했다.
그 순간 나는 빙긋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내 팬들이 있군….]나는 살짝 머리를 쓸어올렸고, 전태국도 눈치를 챘는지 빙긋 웃으면서 내 옆구리를 찔렀다.
“성국아, 네 팬들인 모양이야. 엔리케도 이런 건 빨리 말하지. 왜 사람 쫄게 이상한 이야기를 그렇게 늘어놓은 거야?”
“제 말이요.”
나는 얼른 재킷을 정리하고, 술잔 대신 오렌지 주스를 들고 엔리케의 두 딸을 향해서 미소를 지었다.
엔리케는 두 딸을 데리고 오더니, 나와 전태국에게 소개했다.
“제 딸들이에요. 이 아이는 첫째 마리아, 이쪽은 둘째 히메나예요.”
어릴 적 즐겨보던 멕시코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이 생각나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난 입을 꾹 다물었다.
왜냐면 지금 나는 91년생이니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엔리케의 딸들을 쳐다봤다.
“안녕, 난 전성국이라고 해.”
[물론 내 얘기는 많이 들었지? 난 ‘페이스 노트’의 공동 대표이자, 인스타그림과 너튜브의 대표. 거기다 요즘 뜨기 시작한 띡똑의 대표라고. 여러 가지 잡지에서 선정한 세계 최고의 섹시남에 여러 번 이름을 올렸는데, 너희들은 아직 10대니까, 이런 것까지는 알 것 없어.]굳이 이런 소개까지 할 필요도 없는 완벽한 한 문장의 자기소개였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두 소녀는 거의 비명을 지르면서 내게 달려왔다. 그리곤 외쳤다.
“<세븐즈> 민국! 형이시죠?”
“전 여동생 지희의 인스타그림 팔로우하고 있어요. 어쩜 그렇게 이쁘고, 똑똑하고, 옷도 잘 입는지. 제 워너비예요!”
[잠깐, 얘들아. 너희들이 깜빡 잊은 게 있나 본데. 내가 바로 전성국이래두? 작년에 피플지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섹시남. 안 봤니?]나는 잠자코 엔리케 딸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분명 쑥스러워서 민국이나 지희 이름을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첫째 딸, 마리아는 핸드폰을 내게 들이밀며 영어로 능숙하게 말했다.
“전 민국이 제 최애예요. 제 핸드폰 바탕화면도 민국이에요. 민국, 너무 멋있어요.”
엔리케는 평범한 아버지처럼 두 딸을 말렸다.
“성국, 우리 딸들이 정말 엄청난 <세븐즈>와 당신 여동생 팬이에요.”
[뭐지? 이 기운 빠지는 느낌은?]나는 최대한 속내를 누른 채 미소를 지었다.
“<세븐즈>가 멕시코에서까지 인기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저도 딸들 덕분에 알았는데, <세븐즈> 노래도 좋고 춤추는 모습에 다들 열광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쩜 여동생도 그렇게 대단해요? 전 대표님은 정말 세상을 다 얻은 사람 같아요. 아니지, 전 대표님의 부모님이 세상을 다 가지신 분들이신 거죠. 저도 부모 입장에서 전 대표님의 부모님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나는 엔리케의 말에 맥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희 부모님들은 저 같은 아들을 둬서인지, 그걸 잘 모르세요.”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네요. 저 같으면 24시간 내내 자랑하고 다녔을 거예요. 첫째 아들은 세계적인 기업가지, 둘째 아들은 세계적인 아이돌이고… 거기다 막내딸은 세계적인 인플루언서고요.”
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옆에서 전태국이 키득거리더니 엔리케에게 말을 건넸다.
“저도 전 대표님이 정말 그런 점에서 부럽다니까요. 본인도 유명하지만, 두 동생도 정말 자기 앞길을 잘 개척했거든요.”
[그 앞길, 내가 다 열어준 거거든!]나는 데낄라를 쭉 들이켜고는 정신을 차렸다.
엔리케가 두 딸을 데리고 오는 바람에 돈지오 인수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엔리케에게 물었다.
“엔리케, 아까 하던 말은 언제 계속할까요? 돈지오 인수에 대한 옵션을 이야기하려던 것 같았는데요.”
엔리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두 딸을 가리켰다.
“전 대표님, 아버지로 살다 보니까 종종 돈보다 더 필요한 게 있더라고요. 혹시 <세븐즈> 콘서트를 멕시코에서도 개최할 수 있을까요? 모든 지원은 제가 팍팍 해드리겠습니다. 사실 마리아는 미국 콘서트도 다녀왔는데, 제가 영 불안해서요.”
“그리고요?”
“그때 제 둘째 딸 히메나의 워너비인 지희 양과의 짧은 미팅도 주선해 주세요. 사실 히메나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아이였는데, 지희 양을 워너비로 삼고 난 뒤에는 자기도 스탠포드 가겠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세븐즈>의 멕시코 콘서트와 더불어 지희와의 미팅이 엔리케가 내건 조건이었다.
“대통령님, 두 가지 확답만 받으면 제가 돈지오를 사는 데 어떤 어려움도 없겠지요?”
“물론이죠!”
엔리케는 호탕하게 대답했다.
* * *
방무혁의 흥분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 성국아, 멕시코 콘서트?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제안했다고?
“네, <세븐즈>의 인기가 멕시코에서 상당하더라고요. 이 기회에 중남미 콘서트를 기획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저씨.”
– 와, 대박…. 이 말밖에는 안 나오네.
“아저씨, 우선 확답을 줘야 할 것 같은데요… 올해 안에 개최 가능할까요?”
– 준비해볼게. 우선 긍정적으로 답하고, 이번 주 안으로 투어 계획 짜서 보낼게.
“철저하게 준비해주세요. 민국이 다이어트도 확실히 시키시고요.”
– 암튼 무서운 형이야. 알았어, 걱정하지 마.
<세븐즈>는 쉽게 해결됐다.
어차피 해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해외 투어도 계획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멕시코 대통령의 비호 아래 열리는 콘서트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까칠한 지희뿐이었다.
나는 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희는 늘 그렇듯 까칠하게 전화를 받았다.
– 큰오빠, 무슨 일이야?
“지희야. 민국이가 멕시코에서 아마 올해 말쯤 콘서트를 할 것 같거든.”
–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말 좀 끝까지 듣자, 전지희!]나는 화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게 나랑 상관이 있어서. 여기 대통령 딸이 너를 워너비로 삼고 있거든. 그래서 너를 꼭 만나고 싶다고 말해서… 콘서트 때 와서 민국이도 보고, 대통령 딸과 미팅도 하는 게 어떨까?”
– 큰오빠, 지금 그건 제안이 아니라 결정 아니야?
NO라고 말할 권리가 지희에게 없긴 했다.
나는 이 거래를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돈지오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래. 너의 대답은 딱 하나일 거야. Yes!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게 나의 집에 빌붙고 있는 네가 해야 할 밥값이라는 것만 알아둬.”
– 밥값이라….
지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몇 번의 한숨이 들리더니 지희는 입을 열었다.
– 큰오빠, 나나 민국이 오빠가 큰오빠의 말을 따르는 게 돈 때문은 아니야.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이지?
나는 잠자코 지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큰오빠는 우리 집안의 기둥이고, 사실 그만큼 열심히 살았잖아. 부모님도 항상 큰오빠의 고생에 대해서 이야기한단 말이야. 큰오빠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우리한테도 항상 너희들은 큰오빠가 고생해서 편하게 사는 거니까, 큰오빠의 말은 평생 들어야 한다고 하셔.
다행히 부모님은 내 고생을 알고 계셨다.
– 그니까, 오빠… 이제 밥값 하란 말 안 해도 된단 말이야. 나는 큰오빠가 우리에게 시키는 일이 절대 나쁜 일이 아니고, 어쨌든 큰오빠나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거를 아니까.
지희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동안 동생들이 나를 믿고 따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 큰오빠, 내가 가면 이번 일도 큰오빠한테 도움이 되는 거지?
“응.”
나는 짧게 대답했다.
– 알았어, 갈게. 큰오빠가 시키면 해야지, 뭐. 내가 큰오빠 동생으로 태어난 이상….
[고맙다, 지희야.]하지만 난 끝내 그 말을 못 한 채 전화를 끊었다.
원래 대한민국 장남은 그런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