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517)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517화(517/576)
제517화
마리아 카브레라는 호텔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한국어는 거의 못 했지만, 영어는 조금 할 수 있었다. 호텔 매니저와 스페인어를 듣기는 잘하는 데니얼의 도움으로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무척 놀랐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이 우리 호텔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서 돈까지 기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요. 사실 제가 이 호텔을 사면서 좀 무리를 해서 리모델링을 할 비용까지는 없었거든요.”
마리아 카브레라는 자신의 역사를 조금 들려줬다.
1905년 멕시코로 이민 온 한국인이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가베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했다고 한다.
마리아 카브레라의 어머니는 이곳에 이민 온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였다.
그 시절의 역사는 내가 다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성국… 사실 나는 당신의 기사를 종종 보긴 했답니다. 멕시코에서 살고, 멕시코인으로 살지만… 어머니의 말씀처럼 항상 저의 반쪽은 한국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대한민국 출신의 당신이 미국에서 거대한 기업을 이끌고 있단 이야기에 가슴 한쪽이 뿌듯해지곤 했답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얼마 전에 삼전의 후계자가 오면서 멕시코가 또 한 번 들썩였죠. 처음엔 그 사람이 우리 호텔에 머문다기에, 기부하는 사람이 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서당 개는 아직 그럴 스케일이 아니야.]나는 가만히 마리아 카브레라의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호텔 매니저가 당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더군요.”
이때, 주방에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음식들에서 익숙한 향이 풍겼다.
설마 한식인가?
내 반응을 눈치챘는지, 마리아 카브레라가 빙긋 웃었다.
“어머니가 종종 만들어주던 한식이 있었어요. 전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미국에서 사업하느라 한식 먹기 힘드실 텐데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에서 한국에 있는 여느 어머니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타지에서 일하다 온 자식들에게 따뜻한 밥 한술 먹이고픈 어머니의 마음.
곧 도착한 한국 음식들은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었다.
김치찌개와 파전. 그리고 수육이었다.
“대표님께서 자주 가시는 근처 한식당을 급히 섭외했습니다.”
호텔 매니저가 조용히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에서야 언제든지,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한식이지만 외국에서는 정말 그리운 것들이었다.
입맛을 다시는 나를 보면서 마리아 카브레라는 손짓을 했다.
“어서 먹어요. 우리 먹으면서 이야기하죠.”
“네, 대표님.”
“대표님이라니 어색하네요. 그냥 마리아라고 부르세요. 여긴 다 그렇게 불러요.”
“그럴게요, 마리아.”
나는 대답을 하고는 돈지오 양조장에서 챙겨온 데낄라를 한 병 내밀었다.
마리아 카브레라는 돈지오 데낄라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이건 반주 삼으면 되겠네요. 반주… 그 말을 우리 어머니가 종종 하셨어요. 아주 아기 때였지만 할아버지가 밥을 먹으면서 술을 드시던 게 기억이 나요.”
마리아 카브레라는 과거 생각을 하며 고요하게 미소 지었다.
* * *
밥을 먹는 동안 마리아 카브레라는 한국의 어머니들처럼 나를 챙겨주기 바빴다.
“이것도 좀 먹어봐요.”
“마리아도 좀 드세요.”
“나는 늙어서, 이제 많이 못 먹어요. 대신 데낄라는 한잔하지요.”
나는 얼른 마리아 카브레라 앞에 놓인 잔에 데낄라를 따랐다.
마리아 카브레라도 손수 내 잔을 채워줬다.
“가끔 호텔에 한국 손님들이 오면 같이 밥을 먹을 때가 있었어요. 여기까지 오는 한국 사람들은 잘은 없지만요.”
“대표님, 이 호텔을 인수하신 이유가 혹시 도산 안창호 선생님 때문인가요?”
“그렇죠.”
마리아 카브레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돈을 보낸 이야기를 어머니는 항상 하셨어요. 하루 종일 땡볕 아래 아가베 농장에서 일하고, 거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시면서도 언제나 돈을 모아서 독립된 조국에 돌아가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어머니가 그러셨거든요.”
마리아 카브레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데낄라를 마셨다.
“할아버지는 조국의 독립은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요. 그래도… 할아버지가 대한독립을 위한 멕시코 지부에서 일하실 때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멕시코에 온 것을 두고두고 말씀하셨어요.”
마리아 카브레라가 이 호텔을 인수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어머니가 열 몇 살 때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오셨는데. 어머니가 멕시코어와 한국어를 잘해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쫓아다니면서 통역도 해드렸다고 했어요.”
그러더니 마리아 카브레라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낡고 오래된 편지 같은 거였다.
“이게 뭔가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한국에 다시 돌아오면 꼭 자기를 찾아오라고 했다고, 여기에 주소를 적어주셨어요. 자기는 늘 바빠 집에 없더라도 이 서신 하나면 너를 꼭 도울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요.”
마키라 카브레라는 데낄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하지만 어머니도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지는 못하셨죠. 일제 강점기였고, 저희 아버지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셨거든요. 그래도 이 서신을 꼭 간직하셨어요. 혹시 제가 커서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날이 있으면 요긴하게 쓰일 거라고요. 하지만….”
마리아 카브레라는 말을 잠시 멈췄다.
자신도 멕시코를 떠나 대한민국으로는 가지 못한 미련이 보였다.
“먹고 살기 위해 조국을 떠나오긴 했지만, 죽을 때까지 조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꿈을 꾸며 살았네요. 저희 가족들은 모두 다요….”
마리아 카브레라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노인네가 주책없었어요. 미안해요. 밥 먹는데….”
“아닙니다. 제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이 호텔을 인수하기 위해서 애쓰신 것도 다 조국을 잊지 않기 위하신 거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생만 하시다 가셔서인지, 어머니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아가베 농장을 인수하셨어요. 제가 그 농장을 물려받았고요.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서 돈도 좀 불렸고요. 그래서 이 호텔이 매물로 나왔을 때, 한 번에 샀지요.”
김치찌개를 다 먹자 마리아 카브레라의 이야기도 끝이 났다.
“마리아, 이곳은 뜻깊은 역사가 있는 곳이니 제가 이 호텔의 리모델링 비용을 모두 대고 싶습니다. 돈지오 데낄라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 중인데, 숙박 프로그램이 생기면 이 호텔과 연계하고도 싶고요.”
“100만 달러도 충분해요. 나는 이 서신을 걸어두고, 안창호 선생님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만이라도 만들면 그걸로 족해요. 여기 오는 사람들은 모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기릴 것이고, 외국인들은 대한민국 사람이 멕시코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응원했다는 것을 알 테니까요.”
마리아 카브레라의 마음에는 잊힌 역사를 알리고 싶은 마음도 보였다.
이때, 호텔 레스토랑 입구에서 전태국이 들어왔다.
“어쩐지… 익숙한 한식 냄새가 나더니… 성국아, 너만 혼자 한식 먹는 거야?”
나는 조용히 마리아 카브레라에게 이야기했다.
“삼전의 후계자입니다. 근데, 좀 철이 없습니다.”
“저 나이 때는 다 철이 없죠.”
마리아 카브레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태국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마리아 카브레라입니다. 이 호텔의 주인이고요.”
“안녕하세요, 전태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레스토랑은 영업 안 하나요? 근처 한식당에 갔더니, 주방장이 이 호텔에 불려가서 영업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서 오세요. 데낄라에 곁들여서 한식을 좀 먹어 보세요.”
“제가 딱 원하는 거네요!”
전태국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리에 앉았다.
전태국이 자리에 앉는 순간, 나는 다른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이 호텔의 리모델링 비용은 100만 달러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내가 이 호텔의 리모델링 비용을 100%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를 기리는데, 미국의 ‘페이스 노트’와 멕시코의 ‘돈지오’ 그리고 대한민국 기업이 참여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마리아도 이런 명분이라면 후원을 거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허겁지겁 김치찌개를 먹는 전태국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서당 개,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삼전은 멕시코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동시에 잊혀가는 멕시코 독립운동의 역사도 되새기는 좋은 기업으로 남게 될 것이다. 멕시코 땅에서.
* * *
전재형 회장은 막 올라온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애쓰신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리기 위한 삼전의 후원.
양 비서가 흐뭇한 얼굴로 전재형 회장에게 설명했다.
“도련님이 미국에 계시면서 이번에 멕시코를 방문. 멕시코의 삼전 공장을 둘러보시고, 멕시코 대통령과 만찬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데낄라 지역으로 이동해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머무셨던 호텔에 머무신 모양입니다. 한인 후손이 인수해서 운영 중인 호텔인데,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고 독립운동이 멕시코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시고.”
“태국이가 그랬을 리는 없고.”
전재형 회장은 양 비서의 말을 잘랐다.
“전성국 대표님이 제안하신 모양입니다. 미국의 기업인 ‘페이스 노트’ 그리고 멕시코의 기업인 ‘돈지오’. 참고로 돈지오는 최근에 전성국 대표님이 인수한 멕시코의 데낄라 회사입니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기에 삼전까지.”
“네. 도련님이 생각하시기에도 의미 있는 일이고, 멕시코 정부와도 더 돈독해지는 일이라 후원을 부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재형 회장은 금액은 보지도 않고 사인을 하려다 문득 멈췄다.
좋은 일이었고, 명분도 있는 일이었다. 삼전의 공장이 있는 멕시코와의 관계도 중요했다.
“근데 양 비서….”
“네, 회장님.”
“전 대표가 돈이 없어서 우리를 끌어들인 건 아닌 것 같고… 자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아마 명분 아닐까, 싶습니다. 멕시코는 미국에 대해서 양가 감정을 가진 나라이지 않습니까. 미국 기업을 운영 중인 자신이 데낄라 회사까지 인수했는데, 자신의 조국인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역사를 기리기 위해 호텔 리모델링 비용까지 다 댄다면 멕시코 사람들에게 썩 좋은 이미지만은 아닐 것 같거든요.”
전재형 회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도 그랬다.
“결국, 태국이가 또 이용당하는 건가….”
“대표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양 비서가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저는 오히려 전 대표님이 도련님을 점점 더 삼전의 후계자로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전재형 회장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지만, 양 비서는 할 말을 다 했다.
“e삼전을 계기로 도련님이 내부적으로는 경영에 대한 평가를 좋게 받으셨지만, 외부적으로는 어쨌든 망한 사업입니다. 그 후에 미국에서의 행보는 오히려 경영과는 상관없이 대외적인 활동에 치중된 편이고요. 전태국 도련님의 이런 행보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 말은, 전 대표가 태국이의 이미지는 경영인이 아니라 삼전의 후계자로, 그리고 얼굴마담으로 굳혀서 오히려 경영 승계를 무리 없이 진행하게 해주고 있단 말인가?”
“네, 대표님. 오히려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서 적자를 내고 있는 다른 재벌 3세들의 비판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도련님은 경영은 전문인들에게, 자신은 그저 대외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식으로 나뉘면서 오히려 비판도 적은 편입니다.”
“흠….”
전재형은 회상은 멈춘 사인을 마저 했다.
“멕시코 쪽 지원 확실히 해주게.”
“네, 대표님.”
* * *
전태국이 아침부터 신이 나서 삼전의 후원을 알렸고, 나는 곧 디에고를 호텔로 불렀다.
“디에고, 금요일 파티에 참석할 명단 나왔나요?”
“대통령은 데낄라 회사 파티에 참석하는 게 명분이 좀 약해서 어렵겠지만, 대통령를 제외한 대부분은 참석 의사를 밝혔습니다.”
“혹시 파티를 멕시코시티가 아니라 여기서 열면 어떨까, 싶은데요.”
“네? 여기서요?”
“파티를 열 명분이 생겼거든요. 이곳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기지와 같은 곳이고, 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전 그리고 멕시코 회사인 돈지오. 거기다 미국 회사인 ‘페이스 노트’가 그 의미를 기리기 위해서 리모델링 비용을 전액 지원하기로 했거든요. 대통령께 다시 연락하세요.”
“네, 대표님.”
나는 팔짱을 끼고 오래된 호텔을 훑었다.
이 호텔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한 페이지였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호텔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