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523)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523화(523/576)
제523화
오랜만에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였다.
내 옆좌석에는 전태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데니얼도 함께였다.
“형, 이경수 씨는 미국에 더 있다 가는 거예요?”
“응. 뉴욕에 가서 좀 더 세상을 둘러보고 오겠대.”
e삼전을 같이 운영하다가 미국으로 같이 온 이경수는 뉴욕으로 옮겨갔다.
이경수는 전태국이 삼전의 부회장으로 취임하고, 인사이동 이후에 삼전에 합류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성국아, 근데… 내가 알아보니까 구수영 회장님 건강이 그렇게 나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도 이미 아는 일이었다.
구수영 회장이 진짜 건강이 나빴다면, 비서가 연락해오지 않았을 것이다.
구수영 회장의 두 딸이 연락했을 것이다. 나와는 아직도 ‘페이스 노트’로 종종 안부를 묻고 있는 사이였다.
구수영 회장의 비서가 연락이 왔다는 것은, 구수영 회장이 아직은 건재하단 의미였다.
다른 의미로 구수영 회장이 나를 필요하단 의미이기도 했다.
어쨌든 삼전처럼 장남이 존재한다면, 말은 많겠지만 후계 구도를 짜기는 쉽다.
하지만 지금 효진 그룹은 그렇지 못했다.
구수영 회장의 아들은 죽었고, 두 딸은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구수영 회장은 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이었고, 사실 효진 그룹 자체가 아들이 아닌 딸들의 경영 참여 자체를 반가워하지 않는 측면도 있었다.
그건 효진 그룹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효진 그룹은 구수영 회장을 중심으로 여러 형제가 각 계열사의 대표를 역임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자연스레 견제가 됐다.
구수영 회장은 나를 효진 그룹의 후계자로 어린 시절부터 눈여겨봤지만, 내가 효진 그룹이나 이끌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진정한 후원자로 남으셨다.
거기다 나에게 주식을 양도해서 주주로서 목소리를 내게 해주셨다.
구수영 회장은 그렇게 차곡차곡 전문 경영인 체제로 후계 구도를 짜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입을 꾹 닫았다.
이런 이야기를 경쟁사인 삼전의 부회장 전태국에게 할 수 없었다.
“형, 저 좀 잘게요. 일론 결혼시키고, 바로 날아가는 통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요.”
“그래, 그건 나도 그래. 샴페인 좀 더 마시고 자야겠어.”
우리는 일주일 만에 치러진 일론의 결혼식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공항에 도착하자 나에게 전화를 건 구수영 회장의 비서가 나와 있었다.
물론 전태국의 삼전 측 비서들도 나와 있었다.
“성국아, 우리는 여기서부터 헤어져야겠네. 참, 너 어디서 잘 거야?”
“부모님 댁에 가려고요. 오랜만에요.”
“난 삼전 호텔에 있을 거니까, 언제든지 들려.”
“짜장면은 한번 먹으러 가죠.”
“그래….”
그리고 나와 전태국은 오랜만에 각기 다른 행선지로 향했다.
* * *
“현재 구수영 회장님은 일성 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저번 달에 하신 건강검진 결과에서 추가 검진이 필요해서요.”
“건강이 안 좋다는 의미는, 위급하단 의미는 아니죠?”
“네….”
구수영 회장의 비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데니얼이 숨을 죽이고 있더니, 조용히 물었다.
“대표님, 구수영 회장님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제가 찾아본 바로는 대표님이 미국 유학을 오게 된 계기가 효진 그룹의 후원 덕분이던데요.”
“저에게는…”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구수영 회장은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저번 생에서부터 구수영 회장의 인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삼전가와 달리 가족적인 분위기의 구수영 회장은 결혼 생활도 원만했고, 가족들과도 화기애애했다.
저번 생에서 어릴 적에는 효진 일가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저에게는 할아버지 같으신 분이세요. 아버지는 자식에게 때로 엄격하시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언제나 손주 편이시잖아요. 하나라도 더 해주지 못해서 늘 미안해하시고요. 제게 구수영 회장님은 그런 분이세요.”
그 말에 운전하던 구수영 회장의 비서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회장님도 종종 그런 말씀 하셨습니다. 전 대표님은 늦게 본 아들 같기도. 아들이 낳은 손주 같기도 하다고요. 늘 봐도 대견하고, 뿌듯해서 뭐든 해주고 싶은데. 너무 잘나서 자기가 해줄 게 없다고요.”
“무척 훈훈한 사이시네요.”
데니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생에서 구수영 회장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 * *
VIP 병실의 문이 열렸다.
응접실을 지나 개인 병실로 들어서자, 창밖을 보고 있던 구수영 회장이 뒤를 돌아봤다.
“성국아…. 안 그래도 여기서 네가 언제 오나 창밖만 보고 있었다.”
“회장님, 몸은 좀 어떠세요?”
“내 나이도 이제 칠순이 훌쩍 넘었는데, 안 아픈 게 이상한 거지.”
구수영 회장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밥은 먹었니?”
“아시잖아요. 비행기에서 연신 먹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오랜만에 왔는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구수영 회장이 움직이자 비서가 곧 구수영 회장을 보필했다.
“회장님, 예약한 곳으로 갈까요?”
나는 놀라서 구수영 회장을 말렸다.
“회장님, 지금 움직이시면 곤란한 거 아닌가요?”
“검진 다 끝났고. 성국아, 너도 알잖니. 이거 어느 정도 쇼인 거.”
역시 예상대로 구수영 회장은 후계 문제 때문에 골치를 앓는 것 같았다.
“예정이랑 예리도 다 한국 들어와 있어. 그 녀석들이 너랑 저녁 먹겠다고 삼전 호텔 잡아놨다고 하더라.”
“오랜만에 누나들도 보겠네요.”
“둘이 지금 너 여자 소개해주겠다고 난리이니, 조심하고… 아니지, 한번 만나는 봐라. 둘이 너를 진짜 친동생처럼 아끼잖니.”
“제가 바빠서요….”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알지… 암튼 삼전 호텔은 저녁에 갈 거니, 나랑은 소고기나 먹자꾸나.”
“네, 회장님.”
* * *
구수영 회장이 데리고 간 곳은 병원 근처의 한우 전문점이었다.
우리는 미리 예약한 조용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데니얼도 구수영 회장의 비서도 들어오지 않았다.
곧 준비한 음식이 나오고, 구수영 회장은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입 마셨다.
“이 집 보리차가 참 구수해.”
“회장님, 소고기는 괜찮으세요?”
“검진하는 내내 이거 먹고 싶어 얼마나 힘들었던지.”
구수영 회장은 빙긋 웃더니 잘 익은 소고기를 내 접시에 먼저 덜어줬다.
“성국아, 어서 먹어라. 나도 전 세계 어디 안 다녀본 곳 없고, 안 먹어본 고기 없지만. 한우만 한 게 또 없지 않니?”
“잘 먹겠습니다.”
구수영 회장은 내가 먹는 것을 흐뭇하게 보더니, 자신도 그제야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동안 나는 진짜 손자처럼 구수영 회장에게 미국에서의 일을 종알거렸다.
“멕시코에 있는 돈지오 데낄라 회사를 인수했어요. 원래는 인수할 목적까지는 아니었는데, 직접 그 회사를 보니 인수해도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 기사 나도 봤단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계셨던 호텔도 리모델링한다며?”
“네. 호텔 주인분이 멕시코 이민자 후손이세요.”
“참, 멋져. 너는 정말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잘 자라줬어.”
구수영 회장은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아직 부족해요, 회장님.”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칠 때쯤 구수영 회장이 보리차를 마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국아, 너도 예상하고 온 거겠지만… 지금 우리 효진 그룹이 후계 문제로 골치가 아프구나.”
나는 가만히 구수영 회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일선에서 물러서면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굳히려고 했는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효진 그룹이 나 혼자만의 회사가 아니라서….”
역시 내가 예상한 문제가 터진 모양이었다.
“계열사 대표들이 다 내 동생들이고, 내가 가장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녀석들도 뭉치면 무섭거든….”
구수영 회장이 말끝을 흐렸다.
“동생분들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반대하시는 거죠?”
“그렇구나….”
구수영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열사 대표야 전문경영인이 할 수도 있지만, 그룹 총괄은 안 된다는 거지. 재벌이라고 사람들이 욕하긴 하지만, 돈 많은 재벌들이 왜 기업 운영에 직접 참여하겠니? 바로 내 회사. 그 마인드 때문이라는 거지.
전문경영인들이야 계약 기간 동안의 실적에만 열을 올릴 뿐 그룹 전체의 여러 가지 문제에는 둔감한 점도 있고. 내 회사라는 마인드가 없으니, 그저 실적… 실적….”
전문경영인 고용 이후 효진 그룹이 뚜렷한 성과를 못 내고 있기도 한 상황이라 형제들의 불만은 더 큰 모양이었다.
“회장님, 그럼… 효진의 전통대로 장자 승계를 하실 계획이신가요?”
효진 그룹은 장자 승계였다.
마치 왕위를 장자에게 물려주듯이.
이런 규칙에 모든 형제들이 복종해서 그동안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구수영 회장에게 아들이 없다는 거였다.
“둘째 동생 아들을 입적시켜서 장자 승계를 잇자는 말이지. 사실은 나 역시 그렇게 효진 그룹을 물려받았고.”
구수영 회장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효진 그룹의 전 회장이자, 큰아버지가 아들이 없어서 둘째의 아들이던 구수영 회장이 큰집의 양자가 된 케이스였다.
“회장님, 이미 그쪽으로 마음을 굳히신 거죠?”
“사실은… 그러네.”
구수영 회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한 전문 경영인 체제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어쩔 수 없이 형제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성국아, 이제 나도 팔순을 바라보는구나. 어쩌면 이 일을 정리하는 게, 내 인생의 마지막 과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너에게 부탁이 하나 있구나.”
드디어 본론이 나올 것 같았다.
“뭐든 말씀하세요. 회장님에게 입은 은혜가 너무 많습니다.”
“은혜는 무슨. 네가 잘난 아이라 내가 널 후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구수영 회장은 은은한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
“둘째 녀석의 아들이 아직 삼십대 초반이야. 한국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대학은 미국에서 나왔는데.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어. 사회 경험도 뭐도 다 부족하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네가 그 아이를 좀 만들어줄 수 있겠니?”
구수영 회장은 머쓱한 듯 보리차를 연신 마셨다.
“삼전 후계자인 태국이도 네가 사람 만들었다는 거 다 안다. 다들 말은 안 해도, 전재형 회장이 태국이를 그렇게 너한테 붙여놓는 이유도 다 알지. 그리고 실제로 태국이도 너 덕분에 제법 괜찮아졌고.”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서당 개, 사람 만든 건 나지.]“우리 진성이도 사람 한번 만들어주지 않으렴? 아마… 태국이보다 사람 만들기는 더 수월할 게야.”
“회장님, 그 말씀은 저희 회사에 두고 경영 수업을 좀 시켜달란 말씀이시지요?”
“허허. 그래, 그거지.”
구수영 회장의 부탁을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구수영 회장은 일부러 나를 병원으로 불렀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노쇠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무리 이익에 따라서 움직이는 나지만, 구수영 회장에게만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 것이다.
“회장님, 제가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요. 그런 뒤에 결정하겠습니다.”
전태국은 이미 내가 너무 잘 아는 캐릭터였다.
저번 생의 동생이었으니.
하지만 구진성은 생소했다.
“그래, 내가 자리 한번 마련하마. 이 녀석도 오늘 미국에서 오고 있으니, 내일 어떻겠니?”
“좋습니다, 회장님.”
“내가 이런 부탁을 다 하고…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회장님에게 입은 은혜가 많은데, 이번 기회에 갚고 싶습니다.”
나는 따뜻한 보리차를 마셨다.
[전태국 서당 개 가고, 이제 또 다른 서당 개가 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