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524)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524화(524/576)
제524화
구수영 회장은 마지막까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내게 당부했다.
“비서 통해서 진성이 프로필을 보내마. 내가 너에게 이런 부탁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회장님. 저는 정말 회장님 은혜에 무엇으로든 보답하고 싶습니다.”
“고맙구나. 네가 한번 그 녀석을 만나보고, 아니다 싶으면 솔직하게 말해주거라. 회사에 생계가 걸린 사람들이 수천 명인데, 자격도 안 되는 녀석을 자리에 올리면 안 되는 거 아니겠니.”
“제가 데리고 있으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회장님은 걱정 마시고, 건강 돌보세요.”
“그래, 성국아.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하구나.”
구수영 회장은 내 손을 꼭 잡고, 차에 올랐다.
* * *
나와 데니얼은 구수영 회장이 마련해준 차에 올랐다.
오랜만에 구예정과 구예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대표님, 삼전 호텔 중식당이라니. 조금 흥분이 됩니다.”
데니얼은 조금 들뜬 얼굴이었다.
“거기가 그렇게 짜장면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미국에도 그런 소문이 났습니까?”
“교민 사회는 더 좁잖아요. 한국에서 뭐가 유명하다고 하면 오히려 더 빨리 소문이 난답니다. 삼전 호텔 짜장면은 안 그래도 소문만 많이 들었는데, 이 기회에 대표님 덕분에 먹어보네요.”
“전 삼전 호텔 짜장면 평생 공짜로 먹을 수 있어요.”
“정말요?”
“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태국을 도와주고 얻은 짜장면 평생권이 있었다.
그동안 전태국이랑 참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다.
저번 생의 동생으로, 이번 생에서는 업보 같은 존재였다.
그런 녀석을 이번 생에서 겨우 사람 구실 하게 만들어 놨다.
여러 번 크고 작은 사고를 쳤지만, 내 덕분에 캐릭터도 만들고 주제 파악도 했다.
그리고 이제 곧 삼전의 부회장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전태국은 사람이 다 된 거였다.
차창 밖으로 삼전 호텔이 보였다.
데니얼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저기가 삼전 호텔 맞죠?”
“네. 오랜만이네요.”
* * *
“언니, 나 지금 심장 멈추는 줄.”
구예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성국아, 안 본 사이 언제 이렇게 남자가 된 거야?”
“누나 결혼식 때 봤잖아요.”
구예정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정말 멋있어졌어. 우리야 자주 네 기사랑 사진 보는데, 실제로 보니까 더 멋있잖아.”
“제가 사진 빨이 좀 안 받죠?”
“잘난 척도 여전하네.”
구예리가 장난스레 말했다.
“잘난 애가 잘난 척하니까, 하나도 안 이상하단 게 문제지.”
“그니까.”
나는 얼른 두 사람을 말렸다.
“누나들 그만하고요. 여긴 제 비서 데니얼 강이에요.”
겨우 진정한 누나들에게 나는 데니얼을 소개했다.
“아이고, 요만하던 애가 이제 개인 비서까지 데리고 다니고.”
“언니, 성국이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잖아요. 참, 이제 우리보다 부자네.”
“누나들, 데니얼이 미국에서부터 삼전 호텔의 짜장면을 먹는 게 소원이었다고 해요. 저희 짜장면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 나눠요.”
나는 누나들을 겨우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누나들이 미리 주문한 코스 요리가 천천히 나왔다.
“성국아, 네가 산 돈지오 데낄라 미국에서 마셔봤는데, 맛이 엄청 깔끔하더라.”
“특별 에디션도 곧 출시할 거예요. 그때, 선물로 보내드릴게요.”
“무슨 소리야. 사 먹어야지.”
“대표님 이름 딴 특별 에디션 출시 예정이에요.”
데니얼이 얼른 보탰다.
구예정과 예리가 빙긋 웃었다.
“성국이는 뭐랄까, 진짜 자신감이 남다르다니까.”
“누나들 그게 아니라. 제 성을 딴 거예요. 이라고요. 그냥 일종의 패밀리 술 느낌으로요. 원래 돈지오가 패밀리 사업이었는데, 제가 인수한 거라서요.”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애써 설명했지만, 구예정과 예리는 이미 내 말 따위는 믿지도 않는 것 같았다.
“참, 오늘 우리 만난 거.”
[드디어 본론이 나오는 건가.]구수영 회장에게 언질을 듣긴 했지만, 괜히 긴장이 됐다.
구예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구예정을 쳐다봤다.
막내인 구예리는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막내답게 장난기가 가득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언니, 언니가 말해.”
“넌 꼭 곤란한 건, 나를 시키더라.”
“곤란하긴 뭐가 곤란해. 성국이 여자 소개해주는 게. 어머, 말해버렸네.”
구예리가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다 들었지?”
“네, 누나. 그리고 이미 회장님께도 들었어요.”
“진짜 아빠는 비밀이 없단 말이야.”
구예리가 투덜거리자, 구예정이 얼른 말을 꺼냈다.
“성국아, 너 군대도 다녀오고, 엠마 왓튼 이후로는 큰 스캔들도 없는 것 같아서. 우리가 너 한국 들어온 김에 소개팅 하나 주선하려고.”
“감사하긴 한데요. 소개팅은 영 어색해서요.”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성국아, 30분 후에 소개팅 상대 도착할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랑 밥 먹고 바로 라운지 올라가서 와인 한잔해. 계산은 물론 내가 다 하는 거야.”
구예정과 예리는 이미 내가 빠져나갈 수도 없이 계획을 짠 모양이었다.
“예리가 너 이렇게 안 하면 보나 마나 도망갈 거라고 하더니. 이렇게 하길 잘했네.”
두 자매가 이렇게나 소개해주고픈 사람이 누군지 솔직히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누나들, 근데 누구기에 이렇게 소개해주고 싶어 하는 거예요?”
“성국아, 너도 궁금하구나.”
“누나들이 하도 그러니까요.”
구예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우리가 너를 정말 친동생 이상으로 생각하잖아.”
그건 맞는 말이었다.
필립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나는 누나들과 뉴욕에서 같이 보냈다. 그 시절, 누나들은 정말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주고 걱정해줬다.
구예정이 말을 이었다.
“이 친구 알고 지낸 지는 몇 년 됐는데, 정말 괜찮아. 집안도 좋고, 교육도 잘 받았고. 물론 미인이고. 그리고 제일 괜찮은 건, 성격이야. 너무 튀지도, 너무 묻히지도 않고. 어디서나 분위기도 잘 맞추고, 그런 친구야. 네가 외국 생활 오래 해서 외로울 텐데, 이런 친구가 곁에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어떤 사람이지?
구예정의 말을 들으니, 더 궁금해졌다.
“언니, 뜸은 그만 들이고 어서 말해줘요.”
“혹, 이름만 들어도 아는 사람인가요?”
“성국이는 아마 한국 TV 잘 안 보니까, 모를 것 같은데. KGB 방송국 아나운서야. 몇 년 전 미스코리아 진이기도 하고. 한마디로, 대한민국에서는 1등 신붓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예정의 말대로 대한민국 사람들이 말하는 1등 신붓감이었다. 미모와 교양을 겸비한 아나운서.
데니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곤 조용히 속삭였다.
“대표님, 저는 1층 카페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편하게 만나세요.”
“데니얼, 그러지 마요. 대기하고 있는 것도 불편하고….”
어색해하는 나를 본 구예정이 얼른 말을 이었다.
“성국아, 그냥 편하게 만나봐. 내가 그 친구한테도, 사실은 너라고 말 안 했어. 그냥 우리 자매가 아끼는 동생이 한 명 있는데. 만나봤으면 좋겠다고만 했지. 혹시라도 너란 사실 알면, 선입견 가질까 봐.”
“선입견이요?”
내가 잘나서, 다들 날 어려워하긴 했다
“전성국이라고 하면 천재지만 인간미는 좀 떨어지고, 거기다 세계적인 여배우랑 사귀기도 해서 바람둥이인 줄 오해하거든. 거기다 절친이 여자 문제 복잡한 일론 머스트잖아.”
“누나, 그건 오해예요.”
“우리야 네가 이렇게 짜장면 좋아하는 평범함 20대 남자애인 거 아는데, 사람들은 네가 그 나이에 이룬 거 보고 다들 좀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건 사실이지.”
[내가 잘난 건 어쩔 수 없지.]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성국아, 만나보는 거지?”
“네, 만나볼게요. 저도 평범한 20대 남자잖아요.”
[내가 얼마나 평범한 20대 남자인지, 오늘 꼭 증명해 보이겠어!]나는 짜장면을 후루룩 먹었다.
* * *
구예정, 예리 누나들은 미국 가기 전에 한 번 더 보기로 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는 삼전 호텔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라운지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뒤에서 데니얼이 조용히 외쳤다.
“대표님, 파이팅입니다!”
“데니얼, 제발 그만 해요.”
그리곤 닫힌 버튼을 꾹 눌렀다.
오랜만에 하는 소개팅이라 괜히 긴장됐다.
* * *
어둑한 라운지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예정 누나가 소개팅 상대에게 내 전화번호를 준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전화를 받았다.
예정 누나의 얼굴에 먹칠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저 혹시요. 오늘 구예정 씨 소개로 나오시는 분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예정 누나의 말대로 진짜 내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 저 진짜, 죄송한데요. 제가 오늘 갑자기 방송이 잡혀서요. 원래 하던 동료가 맹장이 터져서 어쩔 수 없이 제가 대타를 뛰어야 하거든요.
여자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효진 그룹의 구예정이 소개해주는 일을 거짓말로 회피할 사람도 대한민국에는 없었다.
– 저 정말 죄송해요. 오늘 방송이 녹화가 좀 길기도 하고요. 오늘은 정말 힘들 거 같아서요. 미국에서 오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언제 돌아가세요? 제가 그 전에 정말 시간 낼게요.
“괜찮습니다. 오늘 방송 잘하시고, 다음에 다시 연락하죠.”
여자는 연신 사과를 했고, 나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았다.
“데니얼한테 한잔하자고 해야 하나….”
내가 망설이는 사이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성국아!”
바로 전태국이었다.
여기는 삼전 호텔이고, 전태국이 있는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혼자 라운지에 올라온 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성국아, 여긴 무슨 일이야?”
“예정, 예리 누나랑 밥 먹고….”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소개팅하기로 했다가 바람맞았다고 하면, 보나 마나 엄청나게 놀릴 게 뻔했다.
“데니얼이랑 한 잔 하고 들어가려고요.”
나는 얼른 데니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데니얼, 라운지로 바로 올라오세요. 내가 소개팅하기로 한 건 비밀입니다.
그러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전태국을 쳐다봤다.
“형은 여기서 뭐 해요?”
“뭐하긴. 자기 전에 한잔하고 있었지. 성국아, 잘됐다. 한국 들어와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는데, 나랑 한잔하고 가.”
곧 데니얼도 올라왔다.
데니얼은 조용히 속삭였다.
“대표님, 어떻게 된 거예요?”
“급히 방송이 잡혔대요.”
“아하. 다시 만나기로는 하셨어요?”
“아니요.”
난 고개를 저었다.
이 어색함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전태국이 와인을 한 병 가지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성국아, 한국 온 기념으로 이거 마시자.”
전태국이 가지고 온 것은 꽤 고가의 와인이었다.
“이러고 계시니 진짜 삼전 후계자 같으세요.”
“데니얼, 내가 미국에서나 존재감 없지. 대한민국에서는 아이돌 못지않다고.”
전태국은 빙긋 웃더니 와인을 능숙하게 땄다.
“참, 형. 구진성이라 알아요?”
“효진 작은집 첫째?”
“네.”
역시 재벌가는 서로서로 얼굴을 알았다.
“진성이 형 어릴 적에는 종종 봤는데.”
“어떤 사람이에요?
“재벌답지 않게 착실하고 성실하고. 근데, 좀 이상해.”
“뭐가요?”
“말 없는 마크 같다고 할까. 왜 그런 캐릭터 있잖아. 나서는 것도 싫어하고. 암튼, 나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엄청 부끄럼 많이 타는 타입이었어.”
그래도 다행히 전태국 같은 사고뭉치는 아닌 것 같았다.
이때, 라운지의 매니저가 나를 보더니 와인을 한 병 가지고 왔다.
“전성국 대표님 맞으시죠?”
“매니저, 웬 와인이야? 엄청 좋은 거네.”
전태국이 끼어들었다.
“구예정 님이 오늘 소개팅 때 드리라고 한 병 예약하고 가셨습니다. 아직 여자분 안 오신 것 같아서, 안주랑 미리 세팅해 드리려고요.”
그 순간, 나는 좌절했고 전태국은 곧 웃음을 터트릴 기세였다.
“성국아, 너 혹시. 소개팅 바람맞은 거야? 그렇지?”
[서당 개, 제발 조용히 좀 해줄래?]전태국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왠지 첫날부터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