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534)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534화(534/576)
제534화
나는 스위트룸의 문을 닫았다.
내가 할 일은 다 끝났다.
이번 정부가 스스로 망할 것이라는 말의 의미는 전재형 회장이라면 어렴풋이 짐작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비선실세들의 국정 농단이 지금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권세가 이번 정부의 임기까지라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그들 때문에 임기를 다 하지 못한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다.
열흘 붉은 꽃도 없고, 십 년 가는 권세도 없단 말이다.
제아무리 지금 당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라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저번 생에서 이맘때쯤 나도 엄청 고생을 했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더니, 여러 사람이 올라탔다.
곧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본어였다.
저번 생에서 일본에서 대학원을 나와서 이 정도는 여과 없이 들을 수 있었다.
“배우인가 봐. 완전 잘생겼어.”
“아니야, 아이돌인 것 같아. 대한민국의 아이돌은 다 저렇게 기생오라비처럼 생겼잖아.”
“나, 영화에서 본 것 같아. <늑대들의 유혹>에서 우산 든 남자 아니야?”
“아이돌이래두. <세븐즈> 멤버 중 한 명 아닌가? 민국이라고… 내 최애란 말이지.”
내가 민국이랑 닮았단 말에는 절대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더 잘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소곤거리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일본어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다 들립니다. 저도 일본어를 하거든요. 참고로 전 대한민국의 배우도 아이돌도 아닙니다. 그리고 <세븐즈>의 민국이가 저를 닮은 겁니다.”
마지막 문장을 하지 말아야 할 말이었다.
그 말에 나를 보던 일본 사람들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어로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맨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대표님.”
누구지?
뒤돌아본 곳에는 구진성이 있었다.
구진성은 효진가의 호출을 받고 아까 자리를 떴었다.
“구진성 씨, 아까 가지 않았어요?”
“가다가 돌아왔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전재형 회장님이 대표님을 보자고 한다는 건, 대표님의 의견을 들어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의미 같아서요. 그리고 저도 이번 일에 대해서 전재형 회장님에게 해준 대표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구진성은 평소와 달리 강단 있게 말했다. 그리고 제법 눈치도 있었다.
“구수영 회장님의 지시인가요?”
나는 살짝 떠봤다.
어쩌면 구수영 회장이 상황을 듣고, 구진성에게 시킨 일일지도 몰랐다.
“아닙니다, 대표님. 회장님에게 가는 길에 해외 순방 이야기를 듣고, 대표님에게 의견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달려왔습니다.”
나는 잠시 차분하게 구진성을 바라봤다.
살짝 눈치 없는 타입으로 원리원칙주의자.
그런 구진성이?
이것도 전태국의 인수인계 덕분인가?
여러 가지 의문은 구진성과 이야기를 해야 해결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전재형 회장에게 해준 조언을 효진 그룹에도 해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효진 그룹과 구수영 회장에게는 늘 마음의 빚이 존재했다.
“구진성 씨, 근처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하죠.”
“밖에 이건주 씨가 차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편한 데로 이동하시죠, 대표님.”
구진성은 며칠 사이 눈치도 생기고, 예의도 갖췄다.
구 서당 개의 교육이 어느 정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 * *
우리가 향한 곳은 구수영 회장님과 차를 마신 적이 있던 남산이 보이는 조용한 찻집이었다.
아마 구진성도 구수영 회장님과 이 찻집을 자주 이용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차를 시키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밖으로 보이는 남산이 검은 어둠을 삼킨 듯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마치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 같았다.
“구진성 씨, 독재 시절 남산에 안기부가 있었던 거 아세요?”
“네, 책에서 봤습니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나오기도 하고요.”
“그 시절의 독재자 밑에서 재벌들은 참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회장님도 그 말씀 종종 하십니다.”
나는 저번 생의 할아버지였던 전주신 회장에게 수없이 들었다. 그리고 전주신 회장은 늘 이렇게 말했다.
– 정치하는 놈들이랑은 친구 맺는 게 아니다. 겉으로는 웃어도, 우리처럼 경제하는 놈들은 그놈들을 부모 죽인 원수로 여겨야 하는 게야. 칼날을 숨기고 있다가, 그놈들이 힘을 잃으면 그때 꺼내서 잘라버려야 하는 거야. 다시는 일어나지도 못하게. 알았나, 성국아?
오랜만에 전주신 회장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삼전의 후계자인 나에게 할아버지는 자신의 경험담과 그로 인해 얻은 교훈을 참 많이 알려주셨다. 그게 저번 생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구진성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나에게 물었다.
“구수영 회장님은 가지 않으셨지만, 효진의 실무단이 이번 대통령 해외 순방에 같이했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돌아오자마자 전재형 회장님도 구수영 회장님도 다들 자신들의 후계자를 왜 찾으신 걸까요?”
“흠… 아마 해외 순방에서 무언가를 감지하셨겠죠.”
“비선실세에 대한 내용인가요?”
구진성이 조심스레 묻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은 저도 후계 수업을 받는 만큼 어느 정도 효진의 기밀 정보에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정부에서 효진에게 부탁하는 일이나 후원 같은 것이 뭔지 알고도 있고요. 물론 그들은 부탁이라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안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수영 회장님의 경영 철칙이 있어서, 효진 그룹에서는 최대한 방어를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정부의 요구에 효진 그룹 측은 요즘은 꽤 난감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기업하는 입장에서 정부의 요구를 안 들어줄 순 없을 겁니다. 그게 정당할 때도 있겠지만, 안 그런 경우는 더 많겠죠.”
구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 구진성 씨는 개인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내 말에 구진성의 눈이 잠시 커졌다.
“구진성 씨가 효진 그룹의 후계자가 되는 순간부터 구진성 씨는 개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나의 양심에 따라서 정부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도 되지만, 효진 그룹의 후계자는 내가 아니라 기업의 이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효진 기업에서 일하는 수많은 직원들. 그리고 효진 계열사에서 일하는 수많은 직원들과 그에 딸린 가족들. 그걸 먼저 생각해야 한단 말입니다.”
전주신 회장이 늘 내게 강조하던 이야기였다.
“전 그렇게 ‘페이스 노트’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내가 아니라 우리.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요.”
“대표님… 그럼, 저도 이제 앞으로….”
“그러셔야죠. 아마 구수영 회장님께 가시면 해외 순방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실 겁니다. 이번 정부의 비선실세들은 효진 측에도 많은 지원을 바랄 것입니다. 그걸 기업인으로서 거절할 수는 없을 겁니다. 개인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어도, 기업인으로서는 해야 하는 거죠.”
구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문을 열었다.
“사실 구수영 회장님은 저를 기업인으로 신뢰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대표님 말씀처럼 전 아직 개인으로만 생각을 하거든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요.”
[고지식한 건 첫날부터 알아봤다고, 구진성!]나는 가만히 구진성의 다음 말을 들었다.
“기업인으로서 어떻게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그걸 대표님에게 배우란 거겠죠.”
“지금 구진성 씨는 그걸 태국이 형한테도 배우고 계시는 겁니다.”
“아하… 대표님이 왜 태국이한테 인수인계 받으라는 건지 알 것 같습니다.”
나를 보필하는 것을 배우라는 것도 있었지만, 전태국은 어릴 적부터 삼전의 후계자로 자란 사람이었다. 하지만 구진성은 달랐다.
강화도에서 나고 자란 철종이 궁에 들어와 적응하지 못한 이유는 어릴 적부터 왕으로 키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구진성은 철종과 다를 게 없었다.
자유롭게 다니던 세상을 뒤로 하고, 이제 왕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깊어지고 있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네요.”
이제 슬슬 효진 그룹에도 소스를 넘길 차례였다. 삼전과 공평하게!
“제가 괜히 딴소리를 해서….”
“이런 이야기 언젠가 했을 거예요. 앞으로도 종종 할 거고요. 그리고 전재형 회장님과 구수영 회장님이 동시에 후계자를 호출하신 건 같은 이유이신 것 같습니다.”
“그게 혹시 이 정부로부터 후계자들을 도피시키려는 건가요?”
“아무래도요. 그리고 전재형 회장님은 제게 물었습니다. 미국 정보기관이나 밖에서 현재 대한민국 정부를 어떻게 보느냐고요? 아마 구수영 회장님도, 구진성 씨도 이게 궁금하겠죠?”
“사실은… 맞습니다.”
구진성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전재형 회장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정부는 스스로 망할 거라고요. 이건 미국의 생각도, 어디의 생각도 아닌 제 생각입니다.”
“그 말씀은… 혹시, 이 정부가 중간에 끊기기라도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나라 망하는 거 아니냐는 전태국보다는 좀 더 나은 반응이었다.
“그건 가봐야 아는 거고요. 과거에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몇 명에 의해서 바뀌었다면, 이제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국민들이 바꿔 갈 겁니다. 전 그렇게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SNS가 세상을 바꾸는 세상이 도래했으니까.
* * *
구진성과 찻집을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이건주가 얼른 차에서 내려서 차 문을 열었다.
구진성이 이건주를 말렸다.
“이 정도는 내가 할게요.”
“괜찮습니다, 도련님.”
“그럼, 비서 일에 이건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알겠습니다, 도련님.”
구진성은 뒤를 돌아봤다.
“대표님, 댁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타시죠.”
“그럼, 저 좀 다시 삼전 호텔에 데려다주시겠어요?”
“이 시간에요?”
물론 늦은 시간이었다.
“혹시 데이트 하십니까, 대표님?”
“그게 아니라… 일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요?”
“그렇게 됐습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구진성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양철수에게서 메시지가 와있었다.
– 대표님의 제안 수락. 아니, 진짜 제가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연달아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 이건 현재 ‘페이스 노트’ 아시아 총괄로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다음 달,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페이스 노트’ 본사를 방문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기업인을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
[하아… 불똥이 해외에 있는 나까지 튀다니….]아주 예상 못 한 일은 아니었지만,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양철수와 아무래도 이 일을 마저 논의해야 할 것 같았다.
* * *
라운지에는 양철수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제가 답을 너무 늦게 드렸죠?”
“아닙니다. 주말까지라고 약속했는데, 딱 맞게 주셨죠. 근데 그다음 일은 언제 연락받으셨습니까?”
“그 일도 조금 전에 연락받았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고 들었습니다.”
“다음 달에 방문하신다고요?”
“네.”
“정확한 취지는요?”
“‘페이스 노트’ CEO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깊이 감동받으셨고, 그 자리에서 직접 자신도 ‘페이스 노트’를 개설하고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VIP께서요?”
“네.”
양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비선실세 국정 농단 사건은 하나의 태블릿에서 시작된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각종 기밀문서가 비선실세의 태블릿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이 이번에는 조금 더 빨라질 수 있겠는데? 내 덕분에?
“대표님, 어떻게 답할까요?”
“좋다고 하세요.”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