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548)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548화(548/576)
제548화
간만에 집이 조용했다.
전태국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지희는 미진이네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정말…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적막함이냐….]아직 일요일이 몇 시간 남아 있었다.
나는 전태국이 남겨두고 간 와인을 한 병 꺼냈다. 그리고 고요한 수영장을 바라보고 앉았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와인을 천천히 음미했다.
“하아… 역시 세상은 혼자 사는 거야. 이렇게 좋다니….”
내일 회사를 나가기 전까지는 이제 나는 완벽한 혼자였다!
오랜만에 어릴 적 즐겨 추던 어깨춤이 저절로 나왔다.
띵동!
하지만 나의 바람은 채 1분도 되지 않아서 요란한 초인종 소리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인터폰에는 구진성과 이건주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온 것을 어떻게 안 거지?
나는 얼른 문을 열었다.
곧 구진성과 이건주가 양손 가득 음식과 과일을 들고 들어왔다.
“구진성 씨, 뭐 하시는 거예요?”
“대표님, 태국이가 떠나면서 저한테 신신당부했습니다. 대표님 혼자 계시면 식사도 제대로 안 챙겨 드시고, 외로워하신다고요.”
“제가요?”
물론 식사는 잘 안 챙겨 먹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삼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단 한 순간도 외로울 틈이 없었다.
“태국이가 대표님이 사람 싫어하는 것처럼 까칠하게 굴지만, 사실은 사람 엄청 좋아하신다고요. 혼자 있는 틈은 웬만하면 주지 말라고 당부하더라고요.”
[그건 내가 아니라 전태국이지!]이건주는 어느새 앞치마를 메고는 우리 주방에서 자연스레 요리를 시작했다.
“대표님, 오늘 소고기가 좋아서 스테이크 준비하겠습니다.”
“이건주 씨, 언제 요리도 했나요?”
“미국 와서 도련님 보좌하다 보니 요리가 자연스럽게 늘었습니다. 요즘은 너튜브에 요리하는 법이 자세하게 올라와서 배우기 쉽더라고요.”
이건주는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했고, 구진성은 어느새 와인 잔을 가져와서 내밀었다.
“대표님, 저도 한잔 주세요. 술은 원래 혼자 마시는 거 아니잖아요.”
“하아….”
구진성은 나의 표정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태국이가 그러더라고요. 대표님이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어도 절대 물러서면 안 된다고요. 대표님은 원래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이라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는 수밖에 없다고요.”
[전태국, 정말 별걸 다 전수해주고 갔군.]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밥이나 먹죠.”
“네, 대표님!”
* * *
이건주의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너튜브 보고 배운 실력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거기다 곁들인 김치볶음밥은 스테이크의 느끼함을 잠재웠다.
나는 놀란 눈으로 이건주를 쳐다봤다.
“이건주 씨, 요리에 재능이 있는데요.”
“과찬이세요, 대표님. 그냥 너튜브 레시피 흉내 내는 정도입니다.”
“흉내 내다 보면 어느새 경지에 이르기도 하잖아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구진성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그 말 좋은데요. 흉내 내다 보면 어느새 경지에 이른다는 말이요.”
[구진성, 갑자기 무슨 소리야?]“사실 미국에 오고도 생각이 많았습니다.”
구진성은 진지한 얼굴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대표님은 항상 바쁘시고. ‘페이스 노트’에서 일하긴 하지만 뵐 시간도 적고. 아, 이건 제가 아직 너무 소극적이라서 그런 거라 대표님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구진성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말을 이었다.
“솔직히 ‘페이스 노트’를 다니는 것은 제가 하던 일이랑도 연관이 있어서 좋았지만, 이게 맞는 건가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 제가 뭘 잘못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구진성 씨, 그렇게 비장할 필요는 없어요. 사람마다 스타일도 속도도 다르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큰아버지 건강이 언제까지 좋으실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가 이렇게 느긋하게 있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구진성은 결연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대표님, 결심했습니다! 이건주 씨가 너튜브 보고 훌륭한 요리의 레시피를 흉내 내듯이 저도 대표님을 흉내 내 보기로 하겠습니다.”
“구진성 씨, 살살해요. 그러다 탈나요.”
[나 따라오려면 평범한 사람들은 힘들어.]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발뒤꿈치라도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 식사 다 하셨나요?”
“네.”
“이제 뭘 하실 작정이신가요?”
“오늘은 피곤해서 쉴 생각입니다.”
“그럼, 저도 쉬….”
구진성을 말을 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는 쉬면 안 될 것 같네요.”
“물론이죠. 구진성 씨는 집에 돌아가서 내일 ‘페이스 노트’ 마케팅 회의를 준비하세요. 제가 직접 참석합니다. 그리고 저희 회의 전통상 신입 직원에게 집중적으로 질문할 테니, 만반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대표님!”
그러더니 구진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주도 따라 일어났다.
“그리고 구진성 씨.”
“네, 대표님!”
구진성은 마치 이병처럼 군기가 팍 들어있었다.
“저한테 배워야 할 것은 일도 일이지만, 자세도 있습니다.”
의아한 얼굴로 구진성이 나를 쳐다봤다.
“바로 자신감이요. 구진성 씨는 뚝심은 이미 있으니, 자신감만 좀 더 가지도록 하세요. 내일 회의 때 기대하겠습니다.”
“네, 대표님!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겠습니다!”
그길로 구진성과 이건주는 자신들의 집으로 건너갔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여유롭게 스테이크를 즐겼다. 와인도 마저 쭉 들이켰다. 그러다 우연히 부엌을 쳐다봤다.
스테이크를 구운 프라이팬과 재료 준비 과정에서 쓴 각종 도구들이 어지럽게 나와 있었다.
[설거지는 너튜브로 안 배운 모양이군.]나는 한숨을 쉬고 팔목을 걷어 올렸다.
[전태국은 한국에 잘 갔나.]괜히 전태국이 떠올랐다. 전태국은 정말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다.
[구진성은 회의 준비 잘 하고 있으려나.]혼자 남으니 설거지를 하는 내내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설거지를 다 마칠 때쯤 핸드폰이 울렸다.
이 밤에 누구지?
발신 번호에 전재형 회장의 이름이 떴다.
나는 잠시 고민 끝에 전화를 받았다.
– 전 대표?
전재형 회장의 목소리는 듣기에도 좋지 않았다.
“네, 회장님,”
– 태국이가 한국으로 오고 있단 보고는 들었네.
“회장님, 몸은 괜찮으세요?”
– 그럭저럭. 하지만 앞으로는 내가 아닌 태국이가 전면에 나서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네.
“건강을 돌보시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저번 생에서도 전재형 회장은 건강 때문에 노후에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다. 집안 내력도 있었고, 젊은 시절에 스스로를 너무 혹사하기도 했다.
– 자네가 그동안 태국이에게 많은 조언을 해준 것으로 알고 있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태국이를 삼전의 얼굴로 등장시켜야 할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게 궁금해서 전화했네. 자네가 나보다 태국이 곁에서 오랫동안 보지 않았나.
“회장님, 태국이 형은 생각보다 삼전을 잘 이끌어나갈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태국이 형에게 삼전을 맡기셔도 될 것 같습니다.”
– 흠.
전재형 회장은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
– 그래. 언제까지고 내가 삼전을 쥐고 있을 수는 없지. 전 대표, 자네가 항상 나에게 큰 조언을 주니, 그냥 이건 인생을 조금 먼저 산 기업가로 자네에게 해주는 말이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 나도 내가 이렇게 순식간에 건강을 잃고 삼전을 아들에게 물려줄지 몰랐네. 자네도 항상 지금일 수 없다는 것만 가끔 돌이켜보게. 난 그걸 너무 안 했어. 그래서 적도 많고, 후회도 많네.
“회장님, 명심하겠습니다.”
전재형 회장은 전화를 끊었다.
지금 전재형 회장이 나에게 한 말은 저번 생에서 내가 부회장의 자리에 올랐을 때 한 말이었다.
30대 중반에 부회장에 오르고, 카리스마를 겸비한 나는 삼전의 후계자로서 삼전 그룹 안에서 독불장군처럼 행동했다.
그때, 전재형 회장이 나를 불러 했던 말이다.
– 세월은 분명히 흐른다. 지금은 네 편이어도, 언젠가는 남의 편이 되는 게 세월이다. 그러니 가끔 뒤를 돌아봐라. 적도, 후회도 남기지 않게.
나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겼다.
* * *
[대한민국을 뒤흔든 2015년의 사건, 사고!]– 대통령과 채순심 게이트 발각.
– 채순심 딸의 명성대학교 부정입학.
– 구선태의 양심 고백.
“나는 VIP의 비선실세였다!”
– 삼전 그룹 부회장 전태국. 채순심 게이트 전면 부정!
– <세븐즈> 멕시코 콘서트에서 확인한 인기! 전 세계에 <세븐즈>의 바람이 불다!
– ‘페이스 노트’와 너튜브, 인스타그림 그리고 띡똑의 대표이자 데낄라 브랜드 <돈지오>를 소유한 전성국 대표 세계 부자 3위 등극.
나는 마지막 뉴스를 보면서 미간을 구겼다.
“3위라고?”
옆에서 그걸 보고 선 마크가 웃었다.
“성국아, 3위면 대단한 거잖아. 난 9위야.”
마크와 나는 ‘페이스 노트’를 함께 운영했지만, 내가 다른 기업을 몇 개 더 운영하면서 재산은 더 많은 편이었다.
물론 나에게는 다른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트코인도 있었다.
비트코인의 시세는 내가 제임스 사카모토에게 받았던 때보다 훨씬 더 올라간 상태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비트코인은 아마 내년부터 미친 듯이 상승할 것이다.
“성국아, 오늘 밤에 우리 집에 올 거지? 구진성 씨랑 김미소 씨도 모두 올 거야.”
“가야지.”
오늘은 2015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마크의 집에서 모두 2015년을 보내고, 2016년을 같이 맞이하기로 했다.
마크가 기사를 보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나저나 태국이는 괜찮은 거 맞지?”
“걱정 마. 태국이 형은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니까.”
“청문회 요약된 거 보는데, 사람들이 엄청 공격적으로 몰아가더라. 솔직히 태국이가 뭘 알아.”
[그렇지, 서당 개가 뭘 알겠어. 아랫사람들이 다 알아서 한 일이지.]마크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맨날 공격받으면 나 같아도 괴로울 것 같은데, 태국이는 괜찮나 몰라. 저번에 메시지 보냈더니. 자긴 괜찮다고 하더라고.”
“마크, 태국이 형은 지금 이 일로 더 단단해질 거야. 대한민국에서 기업하려면 이 정도 시련은 겪어야 해.”
“참, 내일 아침으로 미미가 떡국 준비한다니까 잠옷 챙겨와. 올리비아랑 로즈가 삼촌이랑 베개 싸움할 거라고 벼르고 있어.”
“리미미 씨 이제 만삭인데, 요리는 하지 말라고 해.”
마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이건주 씨가 요리해줄 거야. 둘이 오늘 장 보러 같이 갔어.”
이건주 씨는 아무래도 한국 들어가면 아버지 회사에 적극 추천해야 할 것 같았다.
“알았어. 난 일을 마저 정리하고 저녁 전에 니네 집으로 갈게.”
“성국, 너무 무리하지 마. ‘놀지 않고 일만 하면 잭은 바보가 된다’라는 속담 알지?”
“마크, 어서 꺼져줄래?”
“알았어!”
마크는 문을 닫고 나갔다.
이제 ‘페이스 노트’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모두 연말이라 휴가를 떠나거나 일찍 퇴근을 했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전태국이었다.
“형, 청문회로 바쁠 텐데. 어쩐 일이에요?”
– 성국아,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갑자기 훅 들어오긴….]“형도요.”
– 성국아, 내년에는 아무래도 나한테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 나 잘 헤쳐나가게 멀지만 미국에서도 조언 많이 해줘.
“형, 립밤이나 잊지 말아요.”
– 안 그래도, 다음 주에 있는 청문회에는 가서 립밤 바를 거야. 화면에 잘 나오나 확인해줘.
“알았어요. 너무 대놓고 바르진 말고, 쑥스러워하며 발라요.
– 알았어!
그러곤 전태국이 내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 성국아.
“왜요, 형?”
– 내년에는 우리 좀 더 행복하자.
[구 서당 개, 왜 자꾸 감동 멘트인데?]“형, 그만 끊어요. 마크네 가 봐야 해요.”
– 그래, 감동 파괴가 역시 전성국다운 거지.
그리고 우리는 전화를 끊었다.
이제 정확히 7시간 후면 2016년 새해이다.
2016년 대한민국에는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촛불시위가 일어난다. 그로 인해서 실제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는 역사를 쓰기도 한다.
민국이의 <세븐즈>는 미국 빌보드 차트에 오를 것이고, 지희는 사법고시에 합격해야만 한다.
경주에서는 지진이 일어나서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세계적으로는 영국이 EU를 탈출하고, 도날드 트럼펫이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정말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는 해이다.
하지만 나는 걱정 없다.
아직까지는 미래를 알고 있고, 무엇보다 이제는 진정으로 힘이 되어줄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마크가 어서 오란 재촉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마 내년에도 이들과 함께라면 전태국의 덕담처럼 행복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