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575)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575화(575/576)
제575화
공항에서 집으로 향하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저번 생, 이번 생까지 통틀어 제일 혼란의 시간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분명 배수진과 이야기를 나고 있었는데, 왜 김미소 비서가 떠오른 거지?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데니얼은 집 앞에 차를 세웠다.
“대표님, 두통 있으세요? 약 사다 드릴까요?”
“괜찮아요. 집에 비상약 있을 거예요. 데니얼은 집에 가서 쉬세요.”
“네, 대표님.”
나는 차에서 내려서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 아무도 없는 집은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나는 소파에 널브러져서 핸드폰을 보고 또 봤다. 김미소는 내 메시지를 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내일 어떻게 김미소 얼굴을 보지… 아니야, 최대한 태연하게 굴자. 다른 말을 쓴 것도 아니잖아.]마음속은 지옥이었다.
어쨌든 빨리 김미소 얼굴을 보고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았다.
* * *
새벽 6시.
어느 때보다 빠른 출근이었다.
데니얼에게는 주말 동안 일을 쉬어서 먼저 출근한다고 말하고 무작정 회사로 향했다.
내가 보안을 통과하고 회사로 들어가자 야근을 한 게 분명한 애덤과 샘이 반갑게 반겼다.
“성국, 수진이랑 열애설 났더라고요! 어떻게 된 거예요?”
K-POP 걸 그룹 매니아, 것도 미쓰에잇 덕후였던 애덤이 물었다.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자리에 데니얼도 있었고, 이건 애덤만 알고 있어요. 배수진은 헤어진 남자친구한테 미련이 많아요. 그 이야기 듣느라 술도 마시고 한 거예요.”
“숙소도 같았다면서요?”
[벌써 그것까지 기사에 난 건가….]“그것도 진짜 우연이에요.”
“아무튼 축하해요. 성국, 이번에는 국민 첫사랑 수진이라뇨!”
“진짜 아니에요, 애덤!”
나는 극구 부인했지만, 애덤과 샘은 실실 웃으며 탕비실로 사라졌다.
[김미소 비서도 오해하고 있으면 어쩌지….]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 * *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이 손에 안 잡히는 날이었다.
내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괜히 새벽부터 출근해서인지, 이제 겨우 8시였다.
김미소는 보통 8시 반이 넘으면 출근했다.
[30분만 참으면 돼.]30분 후면 김미소가 출근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문자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은 얼굴과 표정으로 해명을 할 것이다.
[김미소 씨, 뉴욕에서 술을 마셨는데… 갑자기 마케팅팀에 뭔가 할 말이 있었어요. 그런데 술을 너무 마시다 보니, 뒷말을 못 쓰고 그냥 잠들었지 뭐예요. 허허허.]이 정도면 의심은 사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뛰는 심장을 쓸어내렸다.
째각. 째각. 째각.
시간은 정말 더럽게 안 흘렀다.
* * *
8시 30분이 지나자마자 나는 마케팅팀 부근을 어슬렁거렸다.
출근하는 마크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언제 나온 거야?”
“좀 일찍 나왔어.”
“근데… 정말 너, 뉴욕에서 한국 배우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아니라고! 진짜 우연의 일치라고!”
나는 극구 부인했다. 그러자 마크가 더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넌 기회만 되면 열애설이 터지잖아.”
“진짜 아닌데… 다들 물어봐서 예민했어. 미안.”
“그래, 예민할 만도 하지. 그래도 부럽다. 근데, 성국아. 그 여자 배우 배… 뭐더라?”
“배수진.”
“맞아, 배수진. 찾아봤더니… 김미소 씨 닮았던데?”
“어?”
“배수진, 김미소 씨랑 닮았다고. 미미도 둘이 닮았대. 안 그래?”
[아, 그래서 배수진을 보면서 계속 김미소 생각이 났구나….]나는 뒤늦게 배수진과 김미소가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정할 순 없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던데.”
“성국아, 커피 마실래?”
“어. 한 잔 부탁해.”
마크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탕비실로 들어가 버렸다.
지금 이곳에서 심각한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모두들 내 스캔들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진짜 아무것도 없기도 했지만, 웬만한 여자 연예인들은 나랑 스치기만 해도 스캔들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마케팅팀 앞을 계속해서 오갔다.
“성국아, 커피.”
탕비실에서 나온 마크가 커피를 건넸다.
“고마워.”
이때,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내 고개는 반사적으로 문 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구진성과 이건주였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셨죠?”
“대표님, 배수진이랑 열애설 나셨던데요.”
구진성과 이건주가 동시에 인사와 열애설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열애설은 절대 아닙니다. 데니얼도 함께 있었고, 배수진은 전 남친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을 했다.
이건주가 배시시 웃었다.
“그래도 부럽습니다. 배수진이랑 술도 마시시고요. 제 첫사랑입니다!”
“근데… 건주 씨, 김미소 씨랑 배수진 씨 닮지 않았어요?”
“도련님, 저도 그 생각 했는데요! 닮았죠?”
“그런 것 같아요.”
모두 김미소와 배수진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했다.
보통 김미소가 출근할 시간인데, 아직도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김미소 씨 출근은 물어봐도 이상하지 않겠지?]“구진성 씨, 김미소 씨는 출근 안 하나요?”
“아, 아까 연락이 왔는데요. 갑자기 감기 기운이 있어서 오늘은 휴가를 내야 할 것 같다고. 회사에 말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감기라고?
그럼, 오늘 회사를 안 온다는 말이었다.
문자에 대한 오해를 풀려면 하루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데…
[김미소, 많이 아픈가?]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사무실로 무작정 올라갔다.
* * *
“성국이 드디어 사무실로 올라갔어요, 마크.”
애덤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는 마크를 불렀다.
“성국이 녀석. 김미소 씨 보려고 새벽부터 나와서 저러고 있는 거 우리가 알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겠죠, 애덤?”
“당연하죠. 대표님이 다른 건 다 알아도, 자기 마음을 제일 모르잖아요.”
“그리고 한번 꽂히면 다른 건 전혀 안 보이시고요.”
샘도 거들었다.
막 탕비실에 구진성과 이건주도 들어왔다.
“대표님이 마케팅팀 앞을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김미소 씨 때문이죠?”
“건주 씨도 아는 거예요?”
“저번에 연말 캠핑할 때, 두 사람이 새벽에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거 봤거든요. 제가 화장실 가느라 부스럭거렸는데도, 두 사람 저를 쳐다보지도 않더라고요.”
구진성도 흐뭇하게 웃었다.
“아마, 대표님은 지금 우리가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겠죠.”
“내가 성국이를 고등학교 때부터 지켜본 바에 의하면. 성국이는 100프로 모릅니다. 왜냐하면 성국이는 뭔가에 꽂히면 주변은 안 보거든요. 경주마처럼요. 아마, 지금 머릿속은 온통 김미소 씨가 스캔들 기사를 보고 혹시 오해하면 어쩌나 그 걱정뿐일 거예요.”
“근데, 오늘 김미소 씨가 감기로 휴가 냈는데. 대표님, 어쩌죠?”
구진성이 나름 성국의 걱정을 해줬다.
이때, 마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전, 성국이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김미소 씨를 만나러 간다에 10달러를 걸겠습니다.”
“대표님이 그렇게 무모하실까요. 그래도 이성적인 분인데요. 전 안 간다에 10달러요.”
구진성도 동의하자 갑자기 모두들 성국이 김미소를 만나러 간다, 안 간다 내기에 10달러씩을 걸었다.
이때, 데니얼이 탕비실로 들어왔다.
“다들 무슨 내기 하는 거예요?”
“데니얼, 성국이랑 배수진 씨랑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나요?”
“네. 오히려 대표님은 일찍 방으로 갔고, 저랑 배수진 씨랑 오래 수다 떨었어요. 배수진 씨가 전 남친을 잊지 못해서 고민이 많더라고요. 그건 그거고, 다들 무슨 내기 하는 중이었어요?”
“성국이가 김미소를 오늘 중으로 보러 간다, 안 간다… 내기 중이었어요.”
“그걸 왜 해요?”
데니얼은 알 수 없단 얼굴로 사람들을 훑었다.
“쯧쯧쯧. 비서가 성국이만큼 눈치가 없군요.”
마크의 말에 탕비실에 있는 사람은 데니얼만 빼고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왜 대표님이 김미소 씨를 보러 가는데요? 설마, 대표님이 김미소 씨 좋아해요?”
“…….”
데니얼의 질문에 일단 모두들 침묵했다.
깊은 고민을 하던 데니얼은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조용히 속삭였다.
“저는 대표님이 김미소 씨를 좋아하지만, 안 보러 간다에 겁니다! 대표님은 이성이 있으신 분이거든요. 배수진을 앞에 두고도 자러 가신 분이라고요!”
데니얼의 호언장담으로 김미소를 보러 간다에 건 사람은 마크와 애덤뿐이었다.
하지만 마크는 왠지 자신만만했다.
“애덤, 우리 오늘 저녁은 이 돈으로 한국 치킨 사 먹어요.”
“오늘 배 터지겠는데요.”
그때였다.
성국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의 시선이 성국에게로 향했다.
마크는 최대한 침착하게 성국에게 물었다.
“성국, 어디 가?”
“어… 가볼 데가 있어서. 근데 다들 거기서 뭐 해?”
그러더니 문득 멈춰서서는 탕비실에 있는 사람들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훑었다.
데니얼이 얼른 나섰다.
“대표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어디 가시나요?”
“아… 그게….”
성국이 얼버무리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꾹 참았다.
“대표님, 잠시 기다리세요. 가방만 두고 오겠습니다.”
데니얼이 서두르자 성국이 얼른 데니얼을 말렸다.
“데니얼, 혼자 다녀올 데라서요. 근데… 이 근처에 한국식이든 중국식이든 죽 파는 데 있나요?”
“죽은 왜, 성국?”
마크는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아… 그냥… 내가 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서.”
“대표님, 저희 아버지 태권도장 근처에 맛있는 죽집 있습니다. 위치 메시지로 보낼게요.”
“고마워요, 데니얼.”
그 말을 남기로 성국은 쏜살같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탕비실에서는 마크와 애덤의 환호가 들렸다.
“야호! 다들 10달러 내세요!!!”
* * *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순간, 등 뒤에서 마크와 애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김미소 비서는 아팠고, 걱정이 됐다.
물론 배수진과의 관계도 설명해야 했다. 내가 밤에 보낸 문자도….
미친 듯이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나는 데니얼이 보내준 주소에 가서 전복죽과 소고기죽 그리고 한국식 반찬 여러 개를 챙겼다.
김미소는 동생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혼자 자취를 하고 있어서 옆에서 챙겨줄 사람도 없었다.
나를 알아본 죽집 사장님은 서비스로 호박죽까지 넣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김미소의 집으로 향했다.
김미소의 집은 회사에서 멀지 않은 콘도였다.
* * *
그 시각, 탕비실에서는 다른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설마 성국이가 죽만 주고 오는 건 아니겠죠?”
애덤이 꺼낸 이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흠… 애덤, 성국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은데.”
마크가 턱을 매만졌다.
“설마요…”
“미미가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요.”
이제 내기의 결과와 상관없이 모두 성국이 그냥 죽만 주고 돌아올까 봐 걱정이 됐다.
* * *
막상 김미소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나니, 도대체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하지?
마케팅팀 일 때문에 왔다고 하면… 이상한데….
그사이 문이 벌컥 열렸다.
김미소가 초췌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대표님… 어쩐 일이세요?”
“아프다면서요. 이거 죽이에요.”
내가 내민 죽은 김미소는 받아들더니, 잠시 망설였다.
“대표님, 감사해요. 근데 이것 때문에 오셨어요?”
“아, 그게… 사실은…”
나는 몇 번을 망설이다 진심을 꺼냈다.
“걱정이 돼서 왔어요. 아프다고 해서요.”
“…….”
김미소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쳐다봤다.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보낸 메시지요.”
“죄송해요. 확인했는데, 제가 그날부터 아파서 답을 못했어요. 다음 말도 없고 해서… 별거 아닌 거 같아서요.”
“그다음 말이요….”
나는 김미소의 눈을 쳐다봤다.
이젠 오랫동안 숨겨왔던 나의 마음을 보여야 할 때였다.
“대표님?”
“그다음 말이요… 보고 싶다, 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