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eturn My New Brother RAW novel - Chapter (140)
새 가문과 약혼자를 맞이하겠습니다 (140)화(140/140)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겠다는 듯, 단델리온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녀는 왼손으로 신관의 멱살을 붙잡았다.
“다, 다시 한번 말해. 뭐라고?”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신관은 여전히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성녀 지위의 박탈에 관한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어머마마께서 그렇게 놔두셨을 리가-”
“황후 폐하께서도 암묵적으로 승인하셨습니다. 조정의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아 한발 물러서야 했기에.”
“거짓말하지 마. 나 없이 대체 뭘 하겠다고-”
“황녀 전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죠.”
신관이 그녀의 말을 자르고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하였다.
“2황자님의 황태자 임명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단델리온은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도 자신의 우선순위가 자신의 오라비에게 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1황자가 황태자가 되었을 때 황녀 전하를 그대로 놔둘 리 없지 않습니까. 반대로 2황자님이 임명되신다면 황녀 전하는 자동적으로 성녀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되실 테니까요.”
에르델베른 황후는 황실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온 사람이었고, 그녀에게는 피붙이도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녀는 일단 여동생 쪽인 단델리온을 버리기로 하였다.
“다만 바로 박탈되는 것은 아니고, 심사 기간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 기간 동안 황녀님께서 잘하시면 박탈은 없던 일이 되겠죠.”
이미 단델리온에게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분노가 가득한 황금색 눈을 부릅뜬 채, 이를 까드득 갈 뿐이었다.
신관은 그런 그녀를 향해 황후의 명을 전달했다.
“다만 그동안 허튼짓을 하면 안 되니, 황녀 전하를 구금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성치 않은 몸을 그러쥐는 신관들의 손길에 단델리온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뭐? 잠깐, 이게 무슨 짓이야!!”
하지만 열 명이나 되는 신관들에게 단델리온은 힘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녀의 명령을 듣는 이도 없었다.
지금까지 그 신관들이 단델리온의 명령을 들었던 건, 그들이 그녀가 아닌 에르델베른 황후의 명에 따라 그녀를 섬긴 것이었기에.
“이거 놔! 이 무엄하고도 하등한 것들이……! 나는 이 제국의 황녀이자 성녀-”
발버둥 치는 성녀의 앞에서 신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야 황녀 전하의 경솔함이 심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도 없겠죠.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었던 신관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여차하면 대체재를 찾기도 쉬울 테니까요.”
그 소름 끼치는 미소에 단델리온은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신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명하였다.
“끌고 가.”
“자, 잠깐만!!”
단델리온의 팔을 붙잡은 신관들이 들것에 그녀를 실었다.
“이거 놔!! 놓으라고!!”
그녀를 실은 들것은 신전의 깊은 지하로 향했다.
* * *
임명식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카르네 황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축하 인사로 시작되는 그의 편지에는 여러 가지 소식이 담겨 있었다.
우선은 단델리온은 그날의 일로 심각한 중상을 입었고, 데세아르는 일주일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더욱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것.
특히 데세아르는 한쪽 눈이 실명되고 왼쪽 반신을 평생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는 앞으로 황제가 되어 오랫동안 제국을 통치해야 하는 황태자의 후보로 더 이상 거론될 수 없었다.
몸이 성치 않은 황제는 황권의 안정성을 해치는 요인이었기에.
[그래서인지 부상 상태를 알 수 없도록 꼭꼭 숨어 있다가, 며칠 전에는 대역을 세워 멀쩡하게 나은 것처럼 꾸몄더군요. 대역인 게 들켜서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었지만.]대역을 세울 정도라면 건강 상태가 무척이나 안 좋은 게 확실했기에, 조정에서는 결국엔 데세아르의 황태자 후보 자격을 취소하자는 논의가 나왔다고 했다.
덧붙여서 카르네 황자는 단델리온도 반드시 성력을 지닌 황족이 성녀가 되어야 한다는 규칙에 따라, 그녀가 성력을 회복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녀의 성녀로서의 지위를 박탈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임명식 이후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지위를 회복한다고 해도 이미 여론은 돌아선 거 같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유 없이 내 수호신이 분노할 리 없으며 성녀와 2황자가 잘못이 없다면 최고신이 그들을 보호해 주지 않을 리 없다는 게 사람들의 중론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는 석궁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한 새하얀 수호신과 달리 최고신이 잠잠했던 것을 근거로 들어, 성녀가 그의 가호를 애초에 받지 않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하였다.
[여러분 덕분에 그나마 그들의 실체가 조금이라도 드러난 것 같네요.]그렇게 평하는 카르네 황자에게 암호로 답장을 보내며,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제 수호신께서 데세아르와 단델리온에게 표식을 새겨놓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 표식이 새겨진 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대충 예상 알고 있다.
내 수호신이 전 베노마인 공작 부인의 사주를 받아 내 능력을 피어센에게 옮겼던 사내에게 어떤 벌을 내렸는지 눈앞에서 봤었기에.
‘그 사람도 그 정도였으니, 2황자와 성녀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프겠지.’
나는 카르네 황자에게, 그 표식을 조만간 활용할 일이 있을 테니 준비를 잘해 두라고 전했다.
특히 황태자 임명식과 관련해서.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자 에드먼드가 말을 걸어왔다.
“아이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별거 아냐. 이제야 일이 좀 정리되었다 싶어서.”
“아, 그렇지.”
내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빗던 그가 빗을 내려놓고 내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나누며 이야기했다.
“이제 진짜 수호자가 되었고, 꼴 보기 싫은 2황자와 성녀도 당분간은 잠잠할 테니.”
“응.”
“진작에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내 머리카락을 땋던 에드먼드가 투덜거렸다.
“그럼 너랑 여기 더 자주 올 수 있었을 텐데.”
고개를 들자 알록달록한 각종 목도리와 털모자, 그리고 꽃으로 장식된 묘비가 눈에 들어왔다.
외롭고 추워 보였던 묘비는 이제 꽤나 따뜻해 보였고, 그 주변도 묘지 관리인의 손길로 매우 깔끔하게 변해 있었다.
묘비의 앞에는 이전과 같이, 진한 보랏빛의 리시안셔스 꽃다발이 두 개 놓여 있었다.
“너희 어머님께도 더 자주 인사 드리고.”
“그러게.”
가슴에 달린 별 모양의 배지를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손가락 끝에 금빛 배지의 감촉이 느껴지자 절로 미소가 나왔다.
이전에는 늘 깎아지를 듯한 절벽 끝에서 혼자 위태롭게 싸우는 중에 엄마를 찾아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아껴주는 이와 함께, 엄마를 자랑스럽게 할 만한 소식을 가지고 그녀를 보러 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자, 다 됐다. 거울 봐 봐.”
내 머리 손질을 마친 에드먼드가 작은 손거울을 내밀었다.
곱게 땋은 은빛 머리카락에 활짝 핀 보랏빛 꽃을 꽂은 채 어색한 표정을 지은 내가 비쳤다.
“음, 에드먼드. 너무 고맙긴 한데…… 이건 나한테 너무 과하지 않을까……?”
길게 땋은 머리카락에 꽃이라니.
이런 건 동화책에서 나오는 공주님들이나 할 수 있는 머리 아닌가.
“왜. 예쁘기만 한데.”
아무렇지도 않게 낯부끄러운 말을 내뱉는 에드먼드 때문에 순간적으로 얼굴에 열이 올랐다.
“어머님 앞에서 예쁘게 보이면 좋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정화식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화려하고 눈에 띄는 머리를 한 경우가 잘 없었기에 영 익숙지 않았다.
“이런 머리는 어린애들이 하면 몰라도 내가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 않아? 조금 부끄러운데…….”
그러자 에드먼드가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에드먼드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늘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나는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왜 그래?”
그러나 에드먼드는 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커다란 몸을 앞으로 쑥 빼고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웃으며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입술을 보고 흠칫 놀란 그 순간,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곧 남편 될 사람 앞인데 뭐 어때.”
‘남편’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에드먼드의 숨결이 닿은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었다.
그럼에도 에드먼드는 그저 내게 푸른 눈을 고정한 채 능글맞게 웃을 뿐이었다.
“그렇잖아?”
“아니, 너…….”
나를 놀려먹을 수 있어 재밌어 죽겠다는 것이 얼굴에 다 드러난 에드먼드를 노려보던 내가 반박했다.
“곧까지는 아니야. 아직 몇 달 남았으니까.”
“아냐, 두 달 정도면 곧이지.”
하지만 에드먼드는 끄덕도 없었다.
“너랑 결혼하려고 열 달도 기다린 나한테는 두 달이면 곧 아니겠어?”
듣고 보니 할 말이 없기는 했다.
인내심을 갖고 나를 기다리면서, 약속을 계속 지켜 온 그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두 달, 아니, 더 오랜 시간도 기다릴 게 분명했으니까.
미소를 지으며 바람에 사락거리는 내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던 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우리 결혼하게 되면, 내가 매일 아침 네 머리카락 빗겨주고 만져주고 싶어.”
그렇게 말하며 웃는 에드먼드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훗날 나와 보내게 될 일상을 상상하며, 그렇게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좋지만…… 그럼 수호자에 가주 업무까지 하는 네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아이린, 그게 무슨 소리야.”
에드먼드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너인걸.”
또, 저런 얼굴로 저런 말을.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 아이린 너, 얼굴 빨개졌다. 이제 나랑 결혼할 마음이 좀 생겼어?”
“조용히 해…….”
그러자 에드먼드는 화 풀라며 나를 쿡쿡 찔렀다.
그런 그의 입꼬리는 아까보다도 더욱 올라가 있었다.
“우리, 결혼하게 되면 말이야.”
한바탕 웃은 에드먼드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플란디에에서 식을 올릴까?”
“응? 볼프강 공작령이 아니라?”
“어. 그럼 너희 어머님도 우리 결혼식을 볼 수 있을 거 아냐.”
에드먼드가 주변을 쭉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이 숲 근처에서 하면 될 거 같은데-”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
만약 플란디에에서 식을 올리게 된다면, 이제 정말로 평생 내 곁에서 함께할 사람이 있음을 확인한 엄마가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해서.
“나는 너무 좋아.”
에드먼드의 손을 덥석 잡은 내가 답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드먼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내게 머리를 툭 기댄 그가 잔잔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아이린.”
그 깊고도 따뜻한 울림.
나는 어느새 이 울림에 익숙해졌으면서도, 여전히 이 울림에 설레는 듯했다.
“나는 약속한 두 달이 지나고 내년 1월 19일 0시가 되자마자 너한테 청혼할 거야.”
커다란 손이 내 오른손을 감쌌다.
내 손을 자신의 입술 앞으로 가져다 댄 에드먼드는, 눈을 감고서 내 손등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불에 덴 듯 여전히 열기와 여운이 남아 있는 손등을 내려다보던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살포시 웃었다.
“그때까지 내가 조금 귀찮게 달라붙어도 도망가면 안 돼, 알았지?”
새끼손가락을 내민 에드먼드의 푸른 눈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를 너무나도 소중히 바라봐주는 그 눈이.
늘 나를 상냥히 바라봐주는 그 눈 덕분에, 나는 이제 약속이 두렵지 않았다.
“도망가지 않아.”
약속이란 건 깨지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거짓말만을 한다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에드먼드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약속대로 실리에라 대회와 골든 네임드 임명식, 그리고 수호자 임명식이 열릴 때까지 계속 내 곁을 지켜왔다.
나와의 약속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도 늘 내 곁을 지키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여전히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약속할게.”
그래서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약속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으니까.
영원히 깨지지 않는 약속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으니까.
1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