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eturn My New Brother RAW novel - Chapter (95)
새 가문과 약혼자를 맞이하겠습니다 (95)화(95/140)
가루를 삼키자 목과 입안에서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독이 천천히 퍼지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아이린!!”
에드먼드가 절박하게 내 이름을 외치며 나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늘 침착했던 그의 새파란 눈동자도, 굳게 다물려 있던 그의 입술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빨리, 빨리 뱉어. 지금이라도 토해내면-”
“미안해, 에드먼드.”
독이 완전히 퍼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전에 에드먼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해야 했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
“아이린,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에드먼드가 애써 감정을 누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왜…….”
왜.
왜 하필 네가.
왜 네가 이런 일을-
감정이 격해진 에드먼드의 생각이 물밀 듯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미안해.”
두 손으로 에드먼드의 양 뺨을 감쌌다. 그리고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전했다.
그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에드먼드 너, 아니면 레이나, 혹은 어머님의 몸속에 이미 이 독이 있을지도 몰라.”
이 독이 새로 등장한 독이 맞다면 독의 효과는 붉은 그물 무늬 증후군을 유발했던 기존의 독보다 훨씬 금방 나타날 것이다.
게다가 이미 중독되어 위험한 사람이 있다.
한시라도 독을 해독할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그 사람도 죽는다.
“그러니까…… 지금은 나를 믿어줄래?”
나는 일렁이는 푸른 눈동자를 향해 진심을 전했다.
“반드시 잘 이겨내고 돌아올 테니까, 응?”
나의 단단한 각오도 함께.
늘 새로운 독을 견뎌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몇 번이고 해온 일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에 치명적이라는 그 베노마인의 독도 몇 번이나 견뎌오지 않았는가.
나를 바라보는 새파란 눈동자가 천천히 일렁였다.
입술을 깨물고서 애써 북받치는 감정을 삼키던 그는 눈을 감고서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너, 돌아오면 이번에는 가만히 안 둘 거야.”
물기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저 너털웃음을 지었다.
“응, 화내도 돼.”
“너 진짜…….”
“에드먼드.”
치유 능력을 발동시키자 붉은 가루에 내 피가 듣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상처가 말끔히 사라졌다.
상처가 사라진 걸 확인한 나는 팔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각종 약과 내 피를 담아서 가지고 다니는 주머니를 에드먼드에게 건네었다.
“폭주할 가능성이 있으니 내 피는 너에게 건넬게.”
내 능력은 피가 없으면 다른 이에게는 해를 끼칠 수 없다.
상처도 피도 없는 이상 설사 폭주한다 하더라도 그 피해를 받는 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하지만 내게는 정화 능력이 있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고통이 조금 많이 느껴지겠지만.
“그리고 너는 눈이 좋아서 멀리서도 잘 보이니까, 안전한 곳으로 피해서 나를 지켜봐 줘.”
“……아이린. 그건 너를 혼자 두고 가라는 소리잖아.”
에드먼드가 표정을 굳히고서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절대 그렇게 못 해. 안 그래도 독을 견디느라 힘들 너를 혼자 이 산에 버려두고 갈 수는 없어.”
“에드먼드, 나도 내가 혹여 폭주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몰라. 같이 있을 때 네가 다칠까 봐 무서워.”
나는 에드먼드에게 솔직하게 내 걱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버리고 가는 게 아니야. 지켜보다가 다시 돌아올 거잖아.”
“…….”
“내가 이 독을 정화하고, 의식을 찾으면, 이 로브를 쥐고 흔들 테니 그때 찾아오면 돼.”
말없이 나를 지켜보던 에드먼드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는 자신이 두르고 있던 망토와 겉옷을 벗어 내게 전부 둘러주었다.
“그렇게 다 벗어주지 않아도 되는데…….”
“춥잖아. 이거라도 하게 해줘.”
작은 고집을 부리는 그의 모습에 옅은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옷을 내게 꼼꼼히 둘러준 에드먼드가 드디어 물러섰을 때,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이제 사람들을 데리고 대피해 줘.”
그런 나를 바라보는 에드먼드의 눈에 슬픔과 괴로움의 빛이 스쳤다. 그리고 나를 막지 못한 후회의 감정도 언뜻 느껴졌다.
‘미안.’
하지만 다시 깨어났을 때 다시 미안하다고 사과할 테니, 그리고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어도 전부 들을 테니. 그러니 지금은 가야만 했다.
“나는 그럼 가볼게.”
에드먼드는 입을 꾹 다물고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피의 흡수율을 조절하여 몸 안에서 천천히 퍼지고 있던 독을 전신에 순식간에 퍼뜨렸다.
독의 효과가 빨리 나타나야 해독할 수 있는 피도 빨리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아.’
그리고 뺨이 불에 덴 듯 뜨거워지는 느낌과 함께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 * *
눈을 떴을 때는 새까만 공간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어디인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과도 같은 곳에서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다행히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갑자기 무서우리만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넌 내 딸이 아니다.”
흠칫 놀라 정면을 바라보니, 그때의 경멸 어린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베노마인 공작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때처럼, 피 세례를 맞고도 죽지 않은 쥐가 찍찍대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능력이 없는 자에게 베노마인의 이름을 허락할 수 없다.”
내 새하얀 팔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투명하고도, 검은 얼룩 한 점 없는 피가.
더러운 오물, 혹은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그 탁한 보랏빛 눈동자는 그 피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한때 내가 그 무엇보다도 무서워했던 그 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클라우스 베노마인의 탁한 보라색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느새인가 나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칼로 망설임 없이 팔을 다시 그었다.
차가운 분노가 내 온몸을 감싸고 은빛 머리카락이 로벨리아의 꽃잎보다도 더 진한 보랏빛을 띠었다.
“나는 당신이 두렵지 않아.”
나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다.
내 눈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 한동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모습이어서 그랬던 걸까.
검은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오며 주변의 모든 걸 태워 갔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쥐의 숨통이 끊어지고 잔뜩 일그러진 표정의 클라우스 베노마인도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졌다.
‘뭐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시선을 아래로 내린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
방금까지만 해도 쥐를 넣어놓은 상자가 있던 자리에, 상자 대신에 침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얼굴이 유령처럼 새파랗게 질린 엄마가 누워 있었다.
검게 타들어 가는 피가, 쥐가 아닌 엄마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를 움켜쥐었다. 피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엄마!!”
내 핏방울이 떨어진 엄마의 얼굴이 점차 검게 물들어 갔다. 베노마인의 피에 중독되었다는 뜻이었다.
“안 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또다시 팔에 상처를 내었다.
그런데 팔에서 흘러나온 건, 정화의 힘을 가진 붉은 피가 아닌 검은 독뿐이었다.
아무리 상처를 내어도, 정화 기능을 가진 피가 나오지 않았다.
“안 돼, 왜-”
치유 능력으로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상처를 내어도 마찬가지였다.
급한 대로 점차 더욱 짙은 검은색으로 물드는 엄마의 손에 내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눈을 꼭 감고서 치유 능력을 발동시키려 했다.
‘제발, 제발 되어라.’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번만큼은 제발, 엄마를 치료해 달라고.
하지만 야속하게도 빛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고 입술을 물어뜯었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에드먼드?”
흑단처럼 검은 머리카락에 큰 키. 날렵한 콧날과 붓으로 그린 듯한 눈썹.
이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에드먼드였다.
“에드먼드……!”
하지만 나를 바라보며 늘 부드럽게 휘어졌던 새파란 눈은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눈을 꼭 감은 채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그의 온몸이 베노마인의 독으로 검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에드먼드, 안 돼. 정신 차려!”
몇 번이고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몇 번이고 상처를 내 보았지만 정화 능력은 사라진 채였다.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지만 치유는 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몸을 점차 깊게 잠식해 가는 검은 반점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안 돼…… 제발……!”
절박함과 절망감에 눈앞이 흐려지던 그 순간이었다.
-아이린.
누군가의 단단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똑똑히 울려 퍼졌다.
‘에드먼드……?’
-나는 절대로 너를 혼자 두지 않아.
그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정신을 잃기 전까지의 과정이 떠올랐다.
‘아, 그렇구나.’
이제 알아차렸다.
“이거, 환각이구나.”
독을 먹어서 환각이 보이는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가장 큰 공포를 건드리는 환각이다.
트리에트 상점가에서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며 폭주했던 그 능력자처럼, 독으로 인한 환각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진짜 에드먼드는, 내가 정말로 구해야 할 사람은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절망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래, 나는-”
그때와는 다르다.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력하지 않아.”
마음속의 가장 큰 공포를 극복한 순간, 손끝에서 작은 보라색의 빛이 파앗, 하고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