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
나침반
2022년.
“여기 아이들이 있습니다!”
원래 어린 시절 경험이 평생 가는 법이다.
항상 정적이었던 연구실에 처음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복도 끝에서부터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와 고함이 울린다.
챙그랑!
가로막고 있던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났다.
“얘들아, 괜찮니?”
조각난 유리창을 헤치며 그 사람이 나타났다.
“이제 괜찮아. 나와도 된단다.”
남자를 따라 다른 헌터들이 연구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헌터들의 눈초리가 연구원들에게 떨어질 때마다 연구원들은 찍소리도 못 내고 발발 떨었다.
남자는 제일 앞에 있던 나를 안아 올렸다. 창문 근처에는 연구소장이 꼴사나운 자세로 엎어져 있다. 남자는 연구소장의 손을 꾹 밟으며 지나갔다.
아이들을 노려보고, 여차하면 손을 드는 시늉까지 했던 소장이 신음 하나 내지 못하고 남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게, 나에겐 어떤 계시처럼 다가왔다.
세상 잘난 맛에 살던 소장이 빌빌거리는 꼴을 보아라!
“아저씨.”
“음?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니? 조금만 참으면.”
“아뇨, 그게 아니라…. 아저씨 헌터 맞죠?”
“음.”
“아저씨처럼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어, 헌터가 되고 싶니?”
남자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럼 각성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때마침 옆을 지나가던 다른 헌터가 남자의 말을 들었다.
“어이! 애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상한 소리라니! 크흠. 각성도 각성이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된단다. 지금은 집에 가는 것부터 생각하자.”
남자는 거칠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자는 그대로 나를 안은 채 밖으로 나갔다. 연구소 밖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구급차 몇 대가 서 있었고, 나처럼 헌터들에게 들려서 구조된 아이들이 연구소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얘야. 이름이 뭐니?”
나를 구급대원에게 넘기기 전, 남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12호요.”
“뭐?”
열한 살의 나는 이렇게 대답하면 저 남자가 화낼 거라고 생각했고, 그건 틀리지 않았다.
나를 구급차 안에 앉힌 남자는 때마침 수갑을 차고 바깥으로 나오고 있는 연구원들을 보았다.
“홍 헌터님!”
그리고 누가 말리기도 전에 연구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솔직히 제대로 보지 못했다. 눈을 감았다 뜨니 남자는 연구소장을 걷어차고 있었다.
“으악!”
“이 새끼들이!”
“사, 살려 주세요!”
그래.
힘. 힘이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절대적인 힘!
“홍 헌터님!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때, 카랑카랑 울리는 목소리가 남자의 뒤통수를 때렸다.
소장을 걷어차고 주먹을 휘두르던 남자가 어깨를 움츠렸다. 남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고, 감사관님.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기는요, 홍 헌터님! 지난번에도 이러지 않으셨나요?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새까만 양복을 입은 여자가 눈을 부릅떴다. 남자의 어깨가 더욱 작아졌다.
“얼른 놓지 못하세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음….”
남자는 머쓱한 얼굴로 손을 놓았다. 바닥에 덜어진 소장은 코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피를 닦지도 못하고 뒤로 기어갔다.
여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움을 주신 건 감사한데, 이러면 저희도 곤란하다니까요. 제발 주의 좀 해 주세요!”
“그게, 큼. 내가 주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주의할 생각이 없는 거겠죠!”
“크흠.”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여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게 아까 남자의 눈치를 보던 소장의 모습과 겹쳤다.
놀랍지 않은가.
연구소장이 남자의 눈치를 보던 건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이란 자기 목숨이 중요한 법 아닌가. 손끝으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숨 쉬는 것마저 조심하게 되는 법이다. 실험실 안에서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저 여자는 헌터도 아닌 것 같았다. 자기보다도 한참 작은 여자가 도대체 뭐길래 저 남자가 저렇게 절절매고 있는 건가.
“저 사람은 누구예요?”
나는 내 체온을 재던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응? 누구?”
“저기, 양복 입은 아줌마요.”
“감사관님? 이번 진압 작전을 관리하러….”
구급대원은 잠깐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헌터들이 잘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오신 분이야. 혹시 놓친 게 있는지 확인하고….”
“연구소장 같은 사람이에요?”
“연구소장? 글쎄, 비슷하지 않을까…. 어디 아픈 데는 없니?”
“없어요.”
나는 얌전히 대답했다.
“저흰 이제 어디로 가요?”
“어, 아마….”
“의사 선생님이 아픈 곳이 없는지 살펴볼 거란다.”
남자에게 잔소리를 퍼붓던 양복쟁이 여자가 내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여자의 뒤로는 잔뜩 기가 죽은 남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싱긋 웃었다.
“그럼 엄마랑 아빠도 볼 수 있을 거야.”
내게 도움 되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급차 안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그 말에 환호했다. 나는 그 환호성을 무시하고 여자에게 물었다.
“아줌마가 저 아저씨 대장이에요?”
그러니까 어쩔 줄 몰라 하며 잔소리를 듣고 있던 거 아닌가.
여자는 가만히 웃었다.
“대장은 아니지만 이 아저씨가 잘못한 게 있으면 혼내는 사람이야.”
“그게 대장 아니에요? 연구소장은 맨날 다른 연구원들 혼내던데. 우리도 싫어하고.”
“…아줌마가 그 나쁜 아저씨는 꼭 혼내 줄게.”
“아줌마 약해 보이는데…. 헌터도 아니잖아요?”
“응. 아줌마는 헌터가 아니야. 그래서 힘도 약하단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냐. 꼭 이 아저씨처럼 때리지 않아도 나쁜 사람을 혼내는 방법은 많으니까.”
“어떻게요?”
“글쎄…. 감옥에 보내서 평생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든지?”
“우리처럼요?”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칠었던 헌터의 손과는 달리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여자에게 재차 물었다.
“그럼 아줌마 같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응?”
“연구소장을 혼내 주려면 아줌마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음. 공부를 잘해야 하지 않을까.”
“공부요?”
“아줌마처럼 되려면 나라에서 여는 시험에 합격해야 하거든. 합격한 다음에도 열심히 일해서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해.”
“나라에서 여는 시험….”
나중에서야 나는 여자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헌터가 휘두르는 압도적인 힘. 그런 헌터를 눈치 보지 않고 타박하며 부려 먹는, 보이지 않지만 뚜렷하게 존재하는 또 다른 힘.
내 인생의 방향성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