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02)
청춘 이벤트(2)
“알렉스 호프가 지금 어디 있는지 찾아!”
이미선은 휴대폰을 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불쌍한 다선의 헌터들은 어깨를 움츠리며 이미선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떨어 댔다.
“애 하나가 코앞에서 사라졌는데 아무도 눈치를 못 채? 뭐 하고 있었어? 너희 지금 월급 공으로 받아먹는 줄 알아?!”
이승연의 방은 아이들이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제일 안쪽에 있다. 다연 패밀리의 별장으로 쓰이는 곳이니만큼 이승연도 이곳에 올 때마다 지내는 방이 있었다. 얹혀 지내는 처지에서는 당연히 집주인의 개인 공간을 침범하고 싶지 않았으니 홍석영도 그쪽으로는 거의 가지 않았다. 갈 일이 없다는 게 더 맞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홍석영도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홍석영은 물론, 못해도 A급은 되는 헌터들이 수두룩한데 누가 간 크게 들어와서 애를 납치해 갈까. 김채민이 보안 마법도 꽤 손본 거로 아는데.
정말 몰래 들어와서 열여덟 살 남자애를 아무 기척도 없이 데려가는 게 가능할까.
“알렉스 호프는 오늘 오후 3시경 뉴질랜드에 있는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한국 시각으로는 오전 11시 정도 됩니다.”
던전에 들어가는 척 나왔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다. 이미선도 그걸 알고서 더 알렉스 호프를 얘기하지 않았다.
알렉스 호프든 아니든 사랑하는 조카가 집 안에서 증발했으니 이미선이 제정신이 아닌 것도 이해한다. 나는 천천히 이승연의 방을 살폈다. 몸싸움의 흔적 없이 깔끔하다. 흐트러진 곳이라고 해 봤자 이불 정도다.
내가 목숨을 구해 줬기 때문인지 이승연은 티가 나게 나를 잘 따랐다. 나도 말 잘 듣는 애를 못살게 굴 만큼 나쁜 놈은 아니다. 나름 열심히 가르쳤다. 귀찮아서 설명을 대충 하려다가도 이승연 수준에 맞춰서 눈높이 강의를 해 주는 수고도 하지 않았던가. 사실 그때만 해도 실력이 다 고만고만해서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홍석영에게 이승연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기합으로 대충 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홍석영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 봐야 한다.
“…….”
침대 옆을 보았다. 작은 협탁이 있다. 협탁 위에는 나이트 스탠드와 시계, 멀티탭이 있다. 멀티탭이라. 3구 멀티탭에는 나이트 스탠드 전원만 꽂혀 있다.
겨우 스탠드 전원 하나 꽂아 두겠다고 멀티탭을 꺼내? 글쎄.
이승연이 나를 잘 따랐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학생과 교사 수준에서의 일이다. 더 친해지려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열여덟 살짜리 애한테 콩고물이나 얻어먹겠다고 친한 척하기에는…. 처음 명동에서 그 난리 쳤던 목적이 그게 아니었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홍석영과 김채민, 이미선이 있는 이상 어린애를 이용할 필요는 없다. 미성년자인 이상 이승연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분명했고, 괜히 홍석영이나 이미선에게 찍혀 트러블만 생길 위험도 컸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승연과도 일정 거리감을 유지했다. 이승연뿐만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과도 마찬가지다. 수업할 때야 장난치고 농담을 해도 딱 거기까지. 개인 소지품을 알아볼 만큼 친해질 생각은 없었다.
따라서 내가 이승연의 방을 백날 살펴봐도 뭐가 이승연의 물건인지, 아니면 있을지도 모르는 납치범의 물건인지 알 수 없다. 애초에 여길 몰래 들어올 만한 납치범이라면 그런 허접스러운 증거 따위는 남기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승연의 방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물건 중 없는 게 있었다.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얻기 위해 방을 돌아다녔다. 이승연에게 조금이라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뇌 조각이 있다면….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책상 아래쪽에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옆에 볼펜이 굴러다니고 있다. 아마 볼펜으로 눌러 놨지만 떨어졌던 모양이지.
종이를 주웠다.
동시에 바깥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높은 여자아이 목소리. 여기에 여자애들이 몇 명 있지만 저렇게 목소리를 높일 만한 아이는 한 명뿐이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홍석영은 억지로 표정을 풀고 방문을 열었다.
“지은아? 무슨 일이야?”
“아, 선생님!”
유지은이 언니와 함께 서 있었다.
“오늘 숙제를 하려고 하는데… 같이 해야 하는 건데 강태우, 걔가 안 보여서요. 혹시 어디 있는지 아세요?”
“강태우가 없다고?”
“아니면 그냥 언니랑 같이해도 돼요? 어차피 연습한 동작 동영상만 찍으면 되는 건데.”
“지금….”
“태우 학생은 선생님 심부름 때문에 잠시 불렀어.”
“아… 그래요?”
“언니한테 부탁해서 해도 돼.”
“네!”
“그럼 가서… 쉬진 말고 숙제하렴.”
“네….”
숙제라는 소리에 유지은은 기운 빠진 대답을 하며 언니와 함께 돌아갔다. 유혜은이 꾸벅 인사를 하는 동안 내 등은 이미선과 홍석영의 눈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
자매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두 사람을 보며 눈썹을 치켜떴다.
“두 분 다 눈에 힘 좀 푸세요. 눈알 빠지겠습니다.”
“자네 지금.”
“강태우가 이승연을 납치했다거나 그런 일은 아니고요.”
“네?!”
“아니라니까요.”
나는 방금 바닥에서 주웠던 종이를 내밀었다. 간결한 문구. 이미선이 곧바로 내 손에서 종이를 채 가 읽었다. 얼굴이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렸다.
“평범한 가출입니다.”
* * *
‘승연이 형이랑 바람 쐬고 올게요. 형이 암것도 적지 말랬는데 그래도 선생님이 걱정할 것 같아서 몰래 남겨요. 어디로 갈진 잘 모르겠어요. 형 혼자 보내면 더 안 될 것 같아서 같이 가요.’
“이승연 이 새끼가!!”
이미선은 입에서 불을 토했다. 이승연이 귀가하더라도 무사히 살아남기는 힘들어 보였다.
“뭐, 좋게 생각합시다, 이 헌터님. 최소한 알렉스 호프가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전혀 도움 안 되거든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홍석영도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앉아 있었다.
“원래 사내놈들은 크면서 한 번 정도는 집을 나가 봐야 하는 거야.”
당사자가 이야기하니 목소리에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한 힘이 담겨 있다. 물론 이미선은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했다. 당연하다.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애들이 습격당했던 게 얼마나 됐다고! 승연이도 승연이지만 강태우도 위험하다고요!!”
연구소 실험체들을 습격하고 다니는 게 알렉스 호프만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 이미선의 걱정이 옳았다.
그러나 홍석영은 여전히 이 상황이 재밌었는지 큭큭거리며 웃고만 있었다.
“승연이 그게 그렇게 안 생겨서 이상한 부분에서 결단력이 대단하단 말이지. 입학시켜 달라고 날 협박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협박요?”
“입학 안 시켜 주면 불법 던전 공략 청탁으로 다연과 엮어서 신고해 버릴 거라던데.”
“이승연 그게 집안 말아먹을 일 있나!”
이미선은 사랑하는 조카의 배신을 믿지 못하고 고함만 질러 댔다. 납치당한 줄 알았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이쪽이 이미선의 건강에 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곧 이미선은 소파에 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일요일까지 가만히 놔둔다고 했던 게 이렇게 가출하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반쯤은 어이없고, 반쯤은 화가 난 상태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미선 대신, 다선의 헌터들이 움직였다. 쟤네도 불쌍한 영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길드 일도 처리해야 하고, 협회 업무도 해야 하는데, 이제 길드 마스터이자 상관의 집안일도 해야 한다.
…관리청에서의 내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정확히 언제 여기서 나갔는지 모르겠는데….”
“그걸 모릅니까?”
“승연이가 여길 잘 알고 있거든요. 보안 카메라를 다 꺼 놨습니다.”
“…….”
작정했군.
그래. 집주인이 집을 나가는데 뭐라고 할 수 있나. 나는 계속해 보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얼추 두 시간 전쯤에 나갔습니다. 휴대폰으로 택시를 불렀더군요.”
두 시간 전이면 저녁 식사 후 곧바로 나갔다고 보면 된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휴대폰을 버렸습니다.”
“휴대폰을?”
“납치 방지로 위치 추적 기능이 들어가 있어서….”
으드득.
이미선에게서 무서운 소리가 난다. 듣지 못한 척했다.
“버스 터미널 인근의 ATM기에서 돈을 출금했습니다.”
현금까지 챙겼다.
여러 의미로 용의주도하다.
다선의 헌터는 헛기침을 하며 계속 설명했다.
“찾은 현금으로 터미널 근처에 있는 시장에서 옷을 사서 갈아입은 것 같습니다. 시장 안쪽엔 CCTV가 없는 골목이 많아서 확인이 안 됩니다. 시장 주변 CCTV를 돌려 봐도 아이들이 나온 모습이 안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신하기 위해서 물었다.
“놓쳤다?”
“…….”
“열여덟 살짜리 애들을? 하나는 열일곱인데. 놓쳤다?”
“…….”
“당신들 국제이능협회 특수활동부 아닙니까? 성인도 아니고, 미성년자가 가출했는데 그걸 놓쳐요?”
“저, 저희는 정보 분석이 전문이지, 직접 정보를 모으는 업무는 아니라서….”
“변명하지 말고요.”
나는 계속 생각했다.
“강태우 휴대폰은요?”
“방에 두고 갔습니다.”
이승연이 두고 가라고 시켰을 확률이 높다.
“이승연이 현금을 얼마나 찾았습니까?”
“어….”
“얼마요?”
헌터들은 쭈뼛거리다가 대답했다.
“이백만 원 찾았습니다.”
내 한 달 월급보다 많군. 이래서 부잣집 도련님이란.
이승연이 흥청망청 돈을 쓰겠다고 그만큼 찾았을 것 같진 않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더 많은 금액을 인출하거나 아예 카드를 썼을 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렇게까지 머리가 빈 녀석이 아니기도 했고.
결국 여차할 때를 대비한 금액이다.
“카드를 또 쓰는지 계속 체크하시고요….”
내가 이승연이라면 안 쓴다. 적어도 돌아오겠다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일단….”
강태우가 바람 쐬러 가겠다고 했지.
택시 같은 이동 수단은 목격자가 남는다. 내가 이승연이라면 사용하지 않는다.
“애들 놓친 그 시간부터 터미널에서 버스표 사는 사람들 다 확인해요. 십 대 남자에 두 명. 터미널 내부에는 CCTV가 있을 거 아닙니까. 얼굴 가린 남자애 두 명이라면 금방 찾을 겁니다.”
“아, 네!”
“잠깐만요.”
다시 생각해 보자.
현금 이백만 원을 찾고 시장에서 옷을 갈아입을 만큼 용의주도하게 가출 중인 십 대 소년.
멍청하게 그대로 터미널로 들어가서 표를 샀을 것 같진 않다. 나라면 주위에서 웃돈을 주고 심부름을 시켰을 거다. 표를 사 오라고.
이승연이 그 정도로 똑똑하지 않길 빌어 보자. 하지만 보통 이런 일은 생각한 대로 이뤄지더라.
“터미널 전산 확인할 수 있죠?”
“네?”
“사람 신원도 만들어 내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전산 확인해서 아까 말한 시간대 이후로 표 두 장을 동시에 구매한 것만 체크해 봐요. 시간이 늦었으니 노선이 그렇게 많지는 않….”
말을 하다가 주위가 너무 조용해서 멈췄다. 조카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마구 퍼부어 대던 이미선도, 낄낄거리던 홍석영도, 다선의 두 헌터도.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만 보고 있었다.
…너무 나댔나.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럼 수고하시고요, 저는 제 동생 좀 확인하러 가겠습니다.”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인정한다.
나는 도망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