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04)
청춘 이벤트(4)
이승연과의 통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승연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새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 몇 조각이 떠다니고 있고, 그 아래에는 하늘만큼이나 새파란 바다가 있다.
얘가 이걸 왜 나한테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가만히 보고 있으니 사진이 한 장 더 도착했다.
첫 번째 사진에 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이승연이 V를 그리며 웃고 있는 사진이다.
…어디 있는지 보고하라고 했던 그거 때문인가?
마침 사진이 한 장 더 왔다.
이번에는 실내다. 강태우가 햄버거를 먹고 있다. 학교에서 보던 교복이나 체육복이 아니라 레터링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유독 어려 보였다. 실제로도 어리긴 한데, 뭐랄까. 아무래도 강태우는 내게 3호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하지만 입을 크게 벌리고 햄버거를 먹고 있는 저 남자애를 누가 불법 연구소의 피해자라고 여기겠는가.
이번엔 메시지가 도착했다.
[밥 잘 먹이고 있어요]그 밑에는 유난히 눈이 초롱초롱한 햄스터 한 마리가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아 순순진 이모티콘 왜 이런 거밖에 없어]그렇게 말해도 이승연은 그 햄스터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춤추는 햄스터와 해바라기 씨를 먹는 햄스터 이모티콘을 연달아 보냈다.
…얘가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지.
그래도 마지막에는 똑바로 얘기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 *
점심 무렵. 이승연은 새로운 사진을 보내 왔다.
이번엔 배경이 실내다. 벽에 걸린 낡은 메뉴판이 보였다. 음식점이다. 정확히는 횟집.
이승연은 한 상 가득 차려진 회 사진과, 마찬가지로 자기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내 왔다. 세 번째 사진은 역시 강태우다. 어색한 얼굴로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다. 아침에는 사진 찍는 줄 몰랐던 모양이지.
메시지도 있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식탁을 보았다. 들어간 재료가 모조리 박살 나 있는 볶음밥이 보였다. 미니미가 늦게 일어나서 이제야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있다.
“…….”
이승연은 또다시 햄스터 이모티콘을 보내 왔다. 순순진 핑계를 댔지만 그냥 자기가 쓰고 싶었던 거 아냐?
눈을 반짝이며 오두방정 떠는 햄스터를 보니 얄밉기 그지없다.
“…형?”
“음.”
“뭐 보는 거야?”
“어? 아, 그냥.”
“…….”
미니미는 부루퉁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눈을 그렇게 떠 봤자 무섭지도 않다.
“어서 밥 마저 먹어.”
“…….”
눈에 들어간 힘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슬슬 이미선에게 말해 줘야지. 홍석영이라면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웃고 말 것 같은데 이미선은 아니다. 내가 말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후환이 두려워진다.
게다가 애들이 안전한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는데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아이들 모르게 멀리서 감시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형.”
“…음?”
“형도 먹어.”
“…그래.”
미니미를 데려온 뒤로 나는 거의 수업에서 빠졌다. 육체적인 피로는 없다고 봐야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다르다. 차라리 수업을 하고 싶다. 하루 종일 미니미와 같이 있는 것도 못 할 짓이다.
하지만 얘한테 뭘 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얘도 곧 마력을 보기 시작할 텐데… 미리 훈련이나 시킬까?
하지만 연구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안정한 애를 데리고 뭐 대단한 거 하기도 그렇고. 지금은 TV나 보게 하고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 온종일 TV를 보는 것도 사회화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이록아.”
“응?”
“여기 있기 심심하지?”
넓은 정원이 있다고는 해야 이래서야 연구소 생활과 무슨 차이가 있나.
“가서 형들이랑 누나랑 인사해 볼래? 다들 너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조금 풀렸던 미니미의 얼굴이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뭐라고 대답할진 뻔했다.
“싫어.”
그럼 그렇지.
“하지만 형은 계속 이록이 옆에 못 있어 주는데?”
“왜?!”
“형도 일해야지.”
“…싫어.”
“형 일하지 마?”
“응.”
얘가 누구 굶겨 죽일 일 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록이도 곧 학교 다닐 텐데 형 옆에만 있으려고 하면 어떡해.”
“학교?”
“그래. 학교.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어차피 여름 방학 시즌이기도 했다. 방주가 아니었더라도 미니미가 바로 학교에 다니기는 힘들었을 거다.
시범고는 방학 없이 굴러가고 있어서 여름 방학이라는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 유지은도 지금 방학이었다. 이 시대 초등학교 방학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지은보다는 길겠지.
학교라는 말에 드디어 미니미가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했다.
“9월….”
아니지. 기간을 확정하면 안 된다. 만약 저 때 갈 수 없다고 하면 지랄할 게 뻔하다. 내가 제일 잘 안다.
“빠르면 올해 안에 갈 수 있어.”
“올해? 9월이라며?”
그걸 그새 들었어? 귀도 좋아라.
이렇게 보면 각성 전조 증상이 없던 게 아니다. 시력이나 청각이 좋아진다든지 하는 거. 연구소에서는 좋아져 봤자 환경이 제한되어 있으니 티가 안 났지만 바깥에서는 아무래도 쉽게 알아차릴 수밖에 없지.
“9월에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미니미의 눈초리가 점점 올라간다.
얜 누굴 닮아서… 닮은 사람이 없지, 참. 자꾸 잊어버린다니까.
처음에 학교에 대해서 내게 말해 준 게 누구였더라.
형은 내가 괜히 바깥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까 봐 그 얘기는 거의 해 주지 않았다. 운전 중에 잠깐 구경시키는 게 전부였지.
그래도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형 말고 연구소의 다른 아이들에게서 바깥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나처럼 연구소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강태우처럼 바깥에서 지내다가 부모에 의해서 실험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 애들은 바깥 생활을 겪고 들어왔다. 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이다. 그 나이대 아이들이 그렇듯, 학교는 삶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내가 학교에서 배웠는데.’
‘우리 선생님이 그랬는데.’
무심코 나오는 말들이 부러웠다.
강태우도 그렇게 말하는 아이 중 하나였다. 잘나가는 제약 회사 연구원이었다는 엄마를 따라 외국에서도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강태우는 미국에서의 생활도 자주 이야기해 주었다. 미국 초등학교는 이랬니, 거기서는 무슨 장난감이 있었다는 둥.
내가 소장에게 요구했던 것들도 강태우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게 많았다. 장난감이나 책, 영화 같은 거.
그 시절엔 그게 좀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나도 어렸으니까.
음. 미니미가 더 짜증 내기 전에 달래 주자.
“학교 다니려면 준비할 게 많거든.”
“…소장이 날 찾고 있어서 그래?”
홍석영이 연구소를 부수고 아이들을 구출한 게 아니라서 연구소장도 아직 체포되지 않았다.
미니미는 숟가락으로 빈 그릇을 긁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설사 그게 사실이라도 진짜 형이라면 다른 핑계를 대서 동생을 북돋아 줄 것이다.
“그것보다는….”
마침 좋은 핑곗거리가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미니미에게 할 일을 줄 수 있다.
“공부해야지.”
“공부?”
저 봐. 눈이 번쩍 뜨이지.
나는 멍청하지 않았다. 연구소에서도 나름 아이들과 단체 생활을 해 봤다.
하지만 연구소는 연구소였고, 학교는 학교였다.
구출된 뒤 병원에서 보육원으로 옮겨지고 나서 나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제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게 어떤 점이었을 것 같나?
40분. 초등학교 수업 시간.
당시 나는 그 시간 내내 책상에 앉아 있는 게 불가능했다.
그야 그렇잖아. 연구소에서는 그렇게 강제로 앉아 있게 하지 않았다고. 시간이 되면 간식이 나오고, 낮잠 시간도 있고, 아니어도 언제든 잘 수 있었고. 늘 장난감이 넘쳤다.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생활이었다.
40분 동안 앉아 있는 건 어떻게 한다고 쳐도,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문제였다. 읽고 쓰는 건 곧잘 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수학도 사칙 연산만 겨우 하는 수준이었고,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사회 규범도….
글쎄, 내가 바깥의 생활에 대해서 배울 곳은 영화나 아이들의 얘기뿐이었으니까.
보육원에서 나를 문제아로 여기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날 입양했을 무렵에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버지가 괜히 날 상담에 데리고 다녔겠어?
나는 미니미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응. 공부.”
“공부….”
“이록이는 학교에 다닌 적 없잖아? 하지만 이록이 나이라면 3학년이 될 테니까…. 1, 2학년 때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알아야지.”
“꼭 알아야 해?”
“아니면 이록이보다 어린 동생들이랑 같이 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저 시절의 나라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니미는 주먹을 꽉 쥐고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싫어!”
“그래. 그러니까 공부해야지.”
“…….”
공부라는 단어가 낯설어서 그런지 미니미의 얼굴은 영 풀릴 줄 몰랐다.
생각해 보면 처음 데려왔을 때 말곤 내내 저 얼굴이었지 않나. 귀염성 없는 녀석. 내 얼굴로 애살맞게 굴어 봤자 징그럽기만 할 테니 저게 낫겠다 싶기도 하고.
“교과서 좀 구해 와야겠네.”
그러잖아도 이승연의 일로 이미선에게 말할 게 있다. 나는 미니미 앞에 있는 빈 그릇을 정리했다. 미니미는 내가 입가심용으로 꺼내 준 요플레를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또 뭐가 심통 난 거야.
못 본 척하려다가 다정한 형은 그러지 않을 테니 어쩔 수 없이 미니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
묵묵부답이다. 그래도 저 작은 머리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록이라면 금방 따라올 거야.”
미니미는 작은 스푼으로 요플레를 휘휘 젓다가 입을 열었다.
“…금방 못 따라가면?”
“그럼 못 따라가는 거지.”
“…….”
“못 하면 뭐 어때.”
못 할 리가 없다. 이미 해낸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귀찮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너무 자신감을 심어 줘도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거다. 미니미야 편하겠지. 나에게 안 좋은 결과다. 자신감을 얻은 어린 나는 그게, 좀 그렇다.
아버지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만 해 두자.
“형이 도와줄 건데.”
“…진짜?”
“형이 안 도와줄 거라 생각했어?”
“……형아, 바쁘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이록이 도울 시간은 있지.”
얘가 진짜 내 동생이었으면 귀여워해 줄 수 있었을까.
손에 힘을 꾹 주었다. 미니미는 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했는지 머리카락을 흩트리는 내 손을 붙잡으며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부엌에 거울이 없어서 다행이다. 나도 내 얼굴을 못 보잖아.
* * *
[후식 먹으러 왔어요]이승연은 또 사진을 보내 왔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화려한 빙수 사진이었다. 잠시 기다리니 과일 빙수를 배경으로 이승연과 강태우가 나란히 찍은 사진이 도착했다.
[쌤도 빙수 먹으러 오세요]여전히 순순진의 햄스터 이모티콘이 꼼지락거리고 있다. …재미 들였구만, 이거.
나를 여행 다이어리 같은 걸로 쓰기로 결심한 모양이지만 괜찮다. 안 그래도 하루에 한 번 보고는 너무 적지 않았나 하던 참이었으니까. 이렇게 시시콜콜 일상을 보내 온다면 애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편하겠지.
똑똑.
“이 헌터님?”
나는 이미선과 다선의 헌터들이 있는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오늘 홍석영을 못 봤으니 홍석영도 여기 있으려나.
귀찮은 마음이 들어서 나는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기 전 본론부터 말했다.
“이승연과 연락이 됐습니다.”
우당탕탕!!!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효과 좋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