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06)
청춘의 관조자(1)
[한태경 – S급] [주 무기 – 없음] [이능관리청 던전공략부 제1팀 팀장] [헌터 아카데미 2대 교장] [공략 던전(총 503건)▼] [징계 기록▼] [*재판 기록은 별첨 참조]* * *
치이익….
잘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른다. 미리 썰어 둔 대파를 그 안에 넣고 잘 볶아 준다. 파를 충분히 볶았으면 팬 구석에 모아 준 다음, 준비해 둔 달걀물을 붓는다.
치이익.
달걀물은 금방 익기 시작한다. 완전히 익기 전 휘저어 주면 부드러운 스크램블 에그가 만들어진다. 파와 계란을 함께 볶아 주다가 간장으로 간을 한 다음, 밥을 넣는다. 다시 한번 골고루 볶아 준 다음 후추 조금과 참깨를 뿌려 마무리.
분명 한 장에 수십만 원은 쉽게 호가할 그릇에 볶음밥을 담았다. 그릇이 비싸서 그런가 그럴싸하게 보였다.
그러나 자기 앞에 놓인 볶음밥을 본 미니미의 표정은 어두웠다.
“또 볶음밥이야?”
반찬 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배가 불렀다, 아주.
나는 눈을 찌푸리려다가 마음을 고쳐 어색하게 웃었다. 얘한테는 이게 더 잘 통한다.
“형이 만들어 준 건데 안 먹게?”
“먹을… 먹을 거긴 한데….”
미니미의 기세가 한풀 꺾인다.
“…그치만, 볶음밥 지겹단 말야.”
미니미는 볼이 퉁퉁 부은 채로 말했다.
저런 말을 쉽게 내뱉을 애가 아닌데,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너무 했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볶음밥을 많이 했던가?
하지만 내가 미니미 밥을 해 준 건 오늘이 처음이다.
내 직업은 요리사가 아니다. 볶음밥 정도면 성의를 보인 거다. 굶길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지금 여기에 요리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안상의 문제로 외부 인력을 부를 수가 없다며 있던 사람들도 이미선이 전부 내보냈다.
청소는 애들보고 자기 방은 알아서 하라고 시켰고, 공용 구역은 다선 헌터들과 어른들이 대충 눈에 띄는 부분만 치우고 있다. 빨래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 이 학교의 교훈은 자기 일은 스스로 하자, 이거다. 드넓은 정원 관리는… 다 부수면 관리할 것도 없겠지.
아이들이 스스로 하기 힘든 부분… 예를 들면 요리.
이건 어쩔 수 없이 챙겨 주고 있다. 도시락으로 때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나마 펜션에 상주 중인 답 없는 어른 중 요리를 할 수 있다고 할 만한 건 지유건뿐이다. 덕분에 지유건이 독박, 아니, 수고를 하고 있다. 본인도 의욕적으로 나서긴 했다. 이승연이 가출하기 전까지는. 그 뒤는 많이 힘들어했지.
이승연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요리가 취미인 사람한테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의 매 끼니를 준비하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더군다나 온종일 몸을 쓰느라 엄청나게 먹어 치우는 십 대 청소년들이 일곱 명이나 되는데.
처음에는 나름 신경 쓴 티가 나던 식사가 단순해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승연의 가출 이후로는 거의 볶음밥만 나왔다. 김치볶음밥, 야채볶음밥, 카레볶음밥….
볶음밥이라면 요리라곤 한평생 해 본 적 없는 헌터라도 조수로 부릴 수 있다. 칼질 하나 제대로 못 하면 헌터라고 불릴 자격이 없지.
…뭐, 재료가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도 옛말이기는 하다.
보다 못한 내가 미니미 밥은 내가 주겠다고 나섰다. 어차피 아직 사람 만나기 싫은 미니미 때문에 나까지도 식사 시간이 엉망이 되었다. 지유건은 미안해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괜찮다고 하자 사양하지 않았다. 게다가 결국 도시락도 다시 등장하고 있었다.
시범고 건물 올릴 때는 꼭 식당을 잊지 말자고 하자. 헌터도 밥을 못 먹으면 죽는다. 헌터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미니미 밥을 차렸다.
물론 메뉴는 볶음밥이다.
나도 요리사가 아니라고. 요리가 취미였던 적은 더더욱 없었고.
뭘 기대해?
“알았어. 저녁에는 더 맛있는 거 먹자.”
그래도 그걸 열 살짜리 애한테 이해시킬 재주는 없었고, 쟤 성격상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았다.
이래서 애들은 혼도 내면서 키워야 한다. 다 받아 주니까 저 모양이 된 거 아냐.
“…형이 만든 게 맛없다는 건 아니구. 진짜야, 형! 맛있어!”
그래도 형이랍시고 눈치 보는 시늉이라도 해 줘서 눈물 날 정도로 고맙다.
쟤가 눈치가 없어서 눈치를 안 보는 게 아니라니까. 다 아는데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지.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웃고만 있자 미니미는 필사적으로 파닥거렸다. 저게 나 자신이라고는 해도 웃긴 건 웃긴 거다.
…아버지가 고치랬는데. 괜히 죄 없는 애를 괴롭히지 말자.
아니, 근데 쟤가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나?!
“형, 형.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거 만들 수 있게 된 거야?”
“어쩌다 보니.”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형은 내게 요리를 해 준 적은 없다. 가끔 바깥에서 일하고 과자 같은 걸 가져다주기는 했어도. 난 그 과자를 좋아했었다. 안에 장난감이 든 초콜릿.
나중에 그거라도 구해서 미니미한테 줘야겠다. 그런 추억들을 내밀면 쟤도 내가 지 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지.
이름이라는 너무 확고한 증거가 있어서 의심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쟤가 머리가 덜 커서 그런가 의외로 한번 꽂히면 그것만 보는 성향이 있어서.
“다른 것도 할 수 있어?”
미니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글쎄… 라면 정도라면.”
“라면?”
“…나중에 끓여 줄게.”
나는 아직 남아있는 볶음밥을 가리켰다.
“마저 먹어.”
내 볶음밥은 아무에게나 만들어 주지 않는다. 미니미한테 이걸 만들어 준 건 나로서는 굉장한 양보다.
이 볶음밥을 먹은 건… 아버지나 유지은 정도려나.
아버지는 날 입양하고 초반 몇 년간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면 던전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시기엔 막 만들어진 관리청 때문에라도 던전에 들어갈 만한 상황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눈 돌아가게 바쁜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할 수 있는 한 내 곁에 있어 주려고 했었다. 오현욱이나 유지은, 자길 삼촌이라고 부르라며 강요하는 짜증 나는 남자를 보내면서까지 날 혼자 있게 하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에야 집에 겨우 들어와서 자는 날 한 번 보고, 해가 뜬 뒤에 등교하는 날 배웅하고 출근했다. 그렇게 바쁘면서도 담임의 호출을 거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말에는 꼭 함께 외출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서관에도 가고, 놀이동산에도 가고, 햄버거를 먹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넘어도 계속 이어지자 나도 모르는 척하길 포기했다.
내가 만들었던 계란볶음밥은 일종의 제스처였다. 보육원에서 나를 데려와 줘서 고맙다는.
아버지가 그걸 알아들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몰랐으면 하는 일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던 사람이니 알았겠지.
처음 만든 볶음밥은 엉망이었다. 파는 타고, 계란은 설익고, 밥은 간이 안 돼서 싱거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었다.
그 뒤로 나는 종종 계란볶음밥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고 부모님을 불러오라고 했던 날. 아버지의 친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싸웠던 날.
내가 잘못했거나, 잘못하지 않았어도 어쩐지 아버지한테 사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그런 귀중한 볶음밥이다.
볶음밥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미니미는 내가 감상에 젖든 말든 배를 채우는 데에 열중했다.
나는 미니미의 정수리를 내려 보다가 말했다.
“이 헌터님이 너 공부할 책들 가져다주셨어. 나중에 감사하다고 인사해야 해. 알았지?”
감사는 사회화의 첫걸음이지.
나는 눈을 찌푸렸다. 홍석영이 방주를 어떻게 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시킬 일이 있다고 똑똑히 말했다. 미니미가 없을 때는 시범고 아이들에게서 해방되는 걸 즐겼겠지만….
최대한 미니미가 갑자기 사람을 물지 않을 정도로만 만들어 놓자. 아직 제대로 각성하진 않았으니 물려도 잇자국만 날 뿐 피를 보진 않을 거다.
별로 안심되지는 않는군.
띠링.
휴대폰이 울린다.
이 시간에 나에게 연락을 해 올 만한 건 보험 아니면 스팸 아니면 빚 독촉 전화다. 김채민이 받은 이후로는 걸려 오는 숫자가 현저히 줄긴 했지만 아직도 드문드문 온다.
뭐, 지금은 거기에 하나 더 추가가 되어 있긴 하다.
[오늘 점심!]이제 저 가증스러운 햄스터마저 귀여워 보인다…. 이게 바로 세뇌인가?
딱히 답장을 해 주지 않는데도 이승연은 꼬박꼬박 사진을 보내 왔다. 옛날 애들의 친화력이란.
점심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는 이승연과 강태우가 보인다. 처음에는 따로 사진을 찍다가, 같이 사진을 찍어도 어색하게 보였는데 이젠 어깨동무도 할 만큼 친해졌다.
잘된 일인가? 뭐, 강태우에게도 마음 붙일 인간이 하나 정도 있는 게 좋겠지. 집게와 가위를 손에 들고 수줍게 웃고 있는 사진 속 강태우를 보았다. 홍석영 명명, 청춘 여행이 강태우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자기가 감시당하고 있는 줄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저 남자는 도대체 뭐 하는 건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승연이 보내온 사진을 확대했다. 고깃집 구석에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 있는 남자가 보인다. 여름이라 다행인 줄 알아라. 선글라스 껴도 이상하게 볼 사람이 없으니까.
아니, 그래도 혼자서 저러고 고기를 굽고 있으면 한 번쯤 쳐다볼 만하지 않나? 애들이 돌아오거든 특별 수업이다. 헌터는 항상 주변을 경계할 줄 알아야지.
다시 남자를 보았다. 한태경. 지금 나이가… 나보다 한 살인가, 두 살 어릴 텐데. 그 짜증 나는 아저씨가 나보다 어리다니.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형.”
“응?”
“다 먹었는데.”
“더 줄까?”
“아니….”
미니미는 또 뭐가 불만인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쟨 학교에 보내야 한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손이 많이 간다. 시범고 애들 나이까지는 어떻게 해 보겠는데, 10살은 너무 어리다. 시범고야 관리청 견학하러 온 헌터 아카데미생과 똑같은 나이잖은가.
미니미 앞에 있는 빈 그릇을 치웠다.
생활이 너무 단조롭다. 아버지라면 얠 데리고 뭘 했을까. 내가 아버지에게 막 입양되었을 때 했던 것들….
“산책 갈까?”
“…산책? 정원 나가기 싫은데.”
“아니, 정원 말고.”
나는 미니미를 데리고 창가로 갔다. 정원 한구석에서는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다. 반대쪽에는 이미선과 김채민의 자동차가 주차된 공간이 나온다. 그 구석에 돌로 만든 계단이 있다. 바다로 이어지는 계단이다.
이미선이 그랬다. 저 해변까지 사유지라고.
정확히는 들어가는 입구가 펜션으로 막혀 있어서 사유지처럼 된 공간이라고 했다. 아이들도 저기에는 내려가지 않으니 미니미 햇볕 좀 쐬게 해 주라고 했었지.
“바다 보고 싶다고 했잖니.”
미니미의 눈이 반짝 빛난다.
“갈까?”
미니미는 대답도 하지 않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강아지 산책시키는 기분이 이런 건가 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