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07)
청춘의 관조자(2)
쏴아아…
쏴아아…
파도 소리가 조용하다. 해안선이 멀어지고 있다.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다.
미니미는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뒤통수가 무슨 대단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바닷물이 밀려난 바다. 젖은 모래.
미니미에게는 낯설기만 한 풍경일 거다.
그런 감성적인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되겠지. 다양한 경험은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 지금이라도 많이 봐 두면 안 보는 것보다는 좋겠지.
“킁.”
미니미는 코를 훌쩍였다.
얘가 울진 않을 텐데.
의아한 마음에 눈썹을 들어 올리며 미니미를 살폈다. 뭐라도 말을 거는 게 좋으려나.
하지만 내 고민이 무색하게도 미니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더워.”
“…….”
그렇겠지.
이제 8월이고, 지극히 당연하게도 여름이다.
이미선의 펜션은 코트를 껴입어도 될 정도로 냉방이 잘 되고 있다. 냉방이 안 되더라도 각성자들이 열사병으로 픽픽 쓰러지진 않겠지만 기왕 시원하게 있을 수 있으면 시원한 게 좋잖은가. 헌터라도 땀은 흘린다고.
앞으로 각성을 할 예정이기는 하지만 미니미는 아직 각성하지 않았다. 햇빛을 가릴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갯벌이다. 덥지 않다면 그게 이상하다.
나는 난처하게 웃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들어갈래?”
“…….”
고민한다.
더워서 들어가고는 싶지만 바다가 신기하기도 한 저 얼굴.
시간상으로는 내가 아버지에게 구출되기 전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나 자신이라서 그런가? 읽기가 너무 쉽다.
아버지 눈에도 내가 저렇게 보였을까. 얼마나 같잖았을까. 아버지가 가끔 날 보며 피식거리며 웃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나는 미니미의 등을 툭 떠밀었다.
“응?”
“들어가기 싫으면 바다에 들어가 봐.”
“…바다에?”
“음. 바다가 너무 먼가?”
바닷가에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그새 바다는 더 멀어져 있다. 자연의 신비란.
“그래도 갯벌 밟으면 시원할걸.”
“으응….”
나는 망설이는 미니미 앞에 앉았다. 이미선이 사 둔 미니미의 신발. 샌들 벨크로를 떼서 신발을 벗기니 미니미는 얌전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순순히 따라 주었다.
“자. 가 봐.”
난생처음 밟아 보는 모래사장, 갯벌이다. 처음에는 뒤뚱뒤뚱 걷다가 적응하고 나니 속도가 빨라진다.
…저러다 넘어질 텐데.
“악!”
봐라. 넘어진댔지.
하얀 옷이 엉망이 되었다. 기분이야 더럽겠지만 갯벌이라 아프지도 않을 거다. 더운데 잘됐지, 뭐. 시원하겠네.
“아, 형!”
“응?”
“동생이 넘어졌는데 보고만 있을 거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록이 혼자서도 잘 일어날 수 있잖아?”
“진짜!”
“못 일어나겠어? 그럼 형이 도와주고.”
“…일어날 수 있어!”
미니미는 얼굴을 번쩍 들었다. 옷뿐만이 아니라 얼굴과 머리도 진흙이 묻어 엉망이다.
나는 히죽히죽 웃었다. 미니미는 그런 내가 얄미웠는지 버릇대로 입술을 쭉 내밀려다가 진흙을 먹고 캑캑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못 참고 웃음을 터뜨렸다.
“자. 일어나.”
미니미에게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미니미는 내 손을 잡았지만 성질머리 더러운 녀석답게 손에 체중을 실었다.
열 살 꼬맹이 체중에 넘어지면 내 자존심이 상한다.
형이라면 일부러 넘어졌을까?
그럴 리가.
내 형이다. 마냥 동생을 보듬어 주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소중한 동생이라도 자기 하기 싫은 일은 안 했다. 그땐 형이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것 같았는데, 머리가 굵어진 뒤에 생각하니 아니었다. 날 살살 달래서 정신을 분산시킨 다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우씨 집안은 다 그렇다. 성 말고는 물려준 거 없는 친부조차도 평소에는 친모에게 양보하다가 본격적으로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친모도 못 이겼다.
결국 같은 유전자가 흐른다, 이거지.
아버지가 물었을 때 냉큼 성을 갈아 치운다고 할걸. 성이라도 바꿨으면 그 저주받은 피를 조금이나마 중화시킬 수 있었지 않았을까.
뭐, 근데 그래도 성을 바꿨을 것 같진 않다.
나는 무라도 뽑는 것처럼 미니미의 손을 잡고 쑥 들어 올렸다.
“어?”
“자. 이제 일어났지?”
미니미가 달랑달랑 흔들린다. 손을 놓으면서 다시 넘어뜨릴까 고민이 되었지만 거기까진 아무리 형이라도 너무 나간 것 같아서 얌전히 내려놓았다.
미니미는 맨발에 닿는 진흙 감촉에 잠깐 어깨를 움츠렸다. 갯벌 군데군데 고여 있는 바닷물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미니미는 몸을 숙여 바닷물에 손을 찰랑거렸다.
평화롭다. 마치 미니미를 데려왔던 그날 같다.
형에 대한 생각은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언젠가 형이 찾아올 거라 믿었다. 그냥 뭔가 일이 꼬여서, 사정이 생겨서, 연구소에서 방해해서. 그래서 날 찾지 못한 거다. 아니었으면 진작 날 데리러 왔겠지.
나중에는 내가 찾아가겠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짜증 나는 연구소장을, 연구원을 박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었다. 그 힘을 다룰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좀 더 사회에 대해서 배운 다음에는, 그런 위치에 있으면 사람 하나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형을 찾고 싶었다.
하다못해 얼굴이라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답답함이 가셨을 텐데.
“이록아.”
“응?”
옷이 더러워진 김에 포기했는지 미니미는 아예 털썩 주저앉아 손으로 진흙을 만지며 놀았다. 촉감 놀이라도 하는 건가.
“형 얼굴 기억하고 있었어?”
“…….”
미니미의 손이 멈춘다.
“기억했어?”
미니미는 천천히, 다시 손을 움직였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다면 저렇게 대답을 피하진 않았을 거다.
“이록이가 형 얼굴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이록이 다섯 살 때였나? 여섯 살 때? 엄청 옛날이네.”
“…그래도!”
“그래도?”
“형 얼굴 보면 바로 알 수 있어!”
미니미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형인데, 내가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못 알아봤다, 이 녀석.
사실을 알려 줄 필요는 없고, 알려 줄 생각도 없다.
뭐, 쟤 입장에서는 내가 자기 자신이라고 꿈에도 생각 못 할 거고.
형이라고는 해도, 솔직히 유전자상으로는 쌍둥이 수준으로 같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은 있다. 형은 인공 자궁에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반 정도는 성공작이잖은가. 형의 동기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다 죽었는데.
그런 형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몇 번의 실패를 더 거듭한 뒤에 태어난 게 나다. 유전자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모르겠다. 형이라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렇게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미니미가 나에게 폴싹 안겼던 걸 보면 어련히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쟤가 못 알아볼 정도로 생김새가 닮았다는 말이니까.
“그래. 이록이가 형을 못 알아볼 리가 없지.”
나도 마찬가지다.
이십 년의 기다림이 다시 제로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우이록의 기다림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부러운 녀석.
아니, 부럽지 않다. 대신 난 아버지가 있었지 않은가. 그거면 충분하지.
그래도 홍석영이 방주를 턴다고 했으니 청소부 명단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형 사진 한 장만 찾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형.”
“응?”
철썩.
“……음?”
나는 내 옷을 바라보았다. 까만 덩어리가 있다. 진흙이 뚝, 뚝 떨어진다.
“방심하면 안 돼.”
“…이게.”
우이록은 진흙 덩어리를 들고 씩 웃었다. 진흙이 잔뜩 묻은 얼굴로 그렇게 웃어 봤자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미니미가 그나마 깨끗한 팔뚝으로 코를 훔치자 거기만 진흙이 번져 더 우스꽝스러운 몰골이 되었다.
얘가 지금 현역 헌터에게 시비를 건 걸까?
아버지는 다른 놈들과 싸울 때 딱 하나만 주의하랬다.
‘놈이 칠 때까지 기다려.’
미니미가 먼저 쳤으니 난 정당방위다.
나는 진흙을 손에 그러모아 미니미에게 던졌다.
철썩.
“…….”
변명을 하자면 나도 진흙을 공격 수단으로 써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아버지라도 그런 건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록아?”
진흙이 쟤 얼굴로 가 버린 건 실수다.
“형 진짜 싫어!!”
“진짜 싫어?”
“…싫진 않은데 짜증 나!”
미니미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피할까 싶다가 이번엔 가만히 있어 줬다. 가끔 농담하고, 가끔 날 놀리고, 가끔 장난도 쳤지만, 형은 내 손을 거부한 적은 없다.
그것만큼은 형이 항상 져 주었다.
허리춤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일부러 버티지 않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털썩.
갯벌은 푹신하다. 미니미는 내 허리를 껴안은 채로 깔깔 웃었다. 내가 얠 보육원에서 납치한 뒤로 처음으로 소리 내어서 웃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갯벌 위에 누운 채로 미니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내 마음 같았다.
“…형.”
“응?”
“손 치워.”
“이제 다 컸다고 머리 쓰다듬는 것도 싫다는 거야? 형 상처받는다.”
“머리 쓰다듬는 척하면서 진흙 묻히고 있잖아!”
“…….”
나는 다른 손도 들어서 미니미의 머리를 헤집었다.
“악! 하지 마!”
“형한테 먼저 묻혔잖아.”
“형이 먼저 웃었잖아!”
“누가 넘어지래?”
머리와 얼굴에 진흙을 마구 발라 주다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펜션을 나올 때만 해도 새침하게 입술을 삐죽이던 아이는 없다. 진흙으로 뒤덮여서 씩씩거리는 진흙 덩어리만 있을 뿐. 그래도 눈가에는 진흙을 묻히지 않아서 날 노려보는 눈만 깨끗하게 보였다.
딱 그 나이의 평범한 아이처럼 보였다. 형의 장난에 짜증 내는 그런 애. 연구소에서 갇혀서 자란 아이가 아니라.
아버지가 없어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하지.
내가 아버지 아들인데 왜 못 하겠어.
* * *
갯벌에서 놀면서 많이 지쳤는지 미니미는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미니미의 손에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꺼낸 다음 담요를 덮어 주었다.
“재밌게 잘 놀았나?”
기다렸다는 듯 홍석영이 등장한다.
내가 고개를 까딱거리자 홍석영은 조용히 다가와 미니미를 살폈다.
“애가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많이 적응했나 보군.”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동생을 잘 챙겨 주는 형이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미니미를 보는 홍석영의 눈이 가라앉아 있다. 죽은 아들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승연이와 태우 학생은 아직 여수에 있나?”
“아뇨.”
나는 이승연이 보낸 메시지를 기억했다.
“점심 먹고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부산에 갈 거라고 하던데요.”
“거 정말 잘 놀고 있구먼.”
“애들이잖습니까.”
“그렇지, 뭐. 어른들이 지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애들이니까요.”
“그렇지, 뭐! 애들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한창 그럴 때니까.”
홍석영은 어쩐지 흐뭇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하려고 왔나?
하지만 날 흘깃 보는 게 할 말이 있는 눈치인데.
홍석영은 금방 입을 열었다.
“지금 그 둘을 보고 있는 녀석에 대해서 말을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네.”
“그… 한 헌터라고 했습니까?”
“그래. 내가 예전에 다른 길드에 있을 때 예뻐하던 녀석인데….”
“뭐, 제가 알아 둬야 하는 거라도?”
홍석영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별건 아닌데…. 그 녀석이 좀 많이 귀찮은 성격이거든.”
…그걸 좀, 이라고 하면 안 될 텐데.
“자넬 귀찮게 하더라도 찌르거나 하지 말게.”
“찌르… 안 찌릅니다.”
“아니.”
홍석영은 내 말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찔러도 되네. 근데 그러면 더 귀찮아질 거야. 그러니 귀찮게 굴어도 그냥 놔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조용해지거든.”
“…….”
“아, 그리고 은영이 오빠야. 그냥 알아 두라고.”
뭐?
누구 오빠?
“아이고, 은영이에게도 미리 말해 놔야겠군. 걔가 지 오빠를 별로 안 좋아해.”
홍석영은 후련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한은영을 찾아 홀라당 가 버렸다.
“…….”
그렇게 미니미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