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1)
헌터 양성 시범 고등학교(2)
이틀 뒤.
“그 검 좋더라.”
홍석영은 운전석에 앉은 채 말을 걸어왔다.
“주인도 가리고. 덕분에 여럿 병원 갔어.”
나는 뒷좌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유지은의 검을 흘깃 보았다.
“그렇습니까?”
“그만큼 주인 가리는 검은 잘 없지.”
유지은의 검은 주인의 성질머리만큼이나 더러운 성질머리로 유명했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잡으면 불에 태워 버린다.
나도 원래는 못 썼다. 유지은의 마력과 내 마력은 상성이 안 좋다. 당연히 검도 나를 싫어했다.
“자네 검인가?”
“아뇨.”
“그럼?”
“아는 사람 겁니다.”
지금 내가 저 검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유지은이 죽기 직전 직접 소유권을 넘겨준 덕분이다.
“훔쳤어?”
“그럼 저도 불에 탔을 텐데요.”
“하긴.”
홍석영은 더 묻지 않았다. 어차피 나도 대답해 줄 마음이 없었다. 그게 뭐 좋은 이야기라고.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명동 던전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지 거리는 어수선했다.
내 덕분에 피해를 줄이긴 했어도 사상자가 없을 순 없다. 지금 시점에는 각성자 인권뿐만이 아니라 모든 게 부족하다. 일반인들의 피해는 제대로 집계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그럴 거다.
“그래서….”
계속되는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홍석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애들한테 뭘 가르칠지 생각해 둔 게 있나?”
“룬 가르치라면서요.”
“그랬지.”
“그럼 룬을 가르쳐야죠, 뭐.”
“아니, 어떤 룬을… 흐흠.”
홍석영은 뒷좌석에 있는 검을 가리켰다.
“안 돌려줘서 삐진 건 아니지?”
“돌려줘 봤자 마력제어구 때문에 못 쓰는데요.”
“삐졌네.”
“아닙니다.”
“삐졌구만.”
“아니라니까요.”
홍석영은 킬킬 웃었다.
“능력은 못 끌어다 써도 날붙이는 날붙이잖아. 우리 학교에서는 날붙이 금지야. 수업 때도 날이 뭉툭한 걸 쓰게 되어 있어.”
헌터 아카데미도 그랬었지.
하지만 그건….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고요?”
“아니. 나도 학교에서는 날이 없는 걸 써.”
내가 의외라는 눈으로 바라보자 홍석영은 되레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애들 가르칠 때는 그걸로 충분해.”
“뭐…. 그렇겠죠.”
“어차피 자네는 룬을 가르치니까 무기도 필요 없을 거고.”
“그냥 제자들한테 수상한 놈을 무기까지 쥐여 주며 붙여주기 싫다고 하세요.”
“꼭 그런 건 아니고.”
하지만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진짜 귀찮은 사람이라니까….
물론 나 같아도 나 같은 애를 데리고 일한다면 무기는 일절 쥐여 주진 않을 테지만.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짧게 짧게 말을 주고받는 동안 자동차는 도로를 따라 멈추지 않고 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빽빽했던 빌딩 숲이 사라지고 건물 높이가 조금씩 낮아지더니, 그나마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도로도 마찬가지다. 곧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 대신 울퉁불퉁한 흙길이 나왔다.
…시범고 가는 길이 이랬던가?
헌터 아카데미는 시범고 위치에서 바뀌지 않았다. 위치 자체가 서울에서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런… 시골길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하면 발달했지.
흠.
자꾸 기준을 2041년으로 두게 된다. 여긴 2021년이다. 시범고가 막 세워졌을 때니 주위에 아무것도 없을 만하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아무것도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이 길이 맞습니까?”
불안한 마음에 혹시나 물어봤다.
“맞아.”
홍석영은 냉큼 대답했다. 너무 대답이 빨라 오히려 불안하다.
시범고라고 속이고 다른 데 가는 건 아니겠지?
“이 부근은 던전이 많아서 개발이 제한되어 있어. 그래서 이 모양이야.”
“아.”
그랬었지.
마력 측정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던전 인근은 기피 지역이었다.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깜짝 상자 옆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헌터들을 육성하기에는 딱 알맞다. 실습도 편하고. 시범고 설립에 회의적이던 사람들도 위치를 듣고는 그냥 넘어갔더랬다. 던전 옆에 헌터가 상주하겠다는데 말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십 년 뒤에는 이 근방의 던전은 모두 닫혔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다 왔어.”
홍석영은 차를 세웠다.
구불구불한 흙길이 나오고도 한참을 더 가고 난 뒤였다.
“…여기라고요?”
나는 주춤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그런 사정이 있는 만큼 시범고는 지원을 받지 못하고 본부장이 사비로 해결했다. 본부장이 가끔 그 시기를 봉사 활동이라고 말했던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헌터가 아무리 돈을 잘 버는 직종이라고 하더라고 학교란 것은 원래 밑 빠진 독이다.
나도 그건 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하. 너무 휑하지?”
홍석영이 옆에서 껄껄 웃었다.
이건 휑하다는 말로 끝낼 수 없다. 휑하다 못해 아무것도 없다.
주위에 갈대밭이 넓게 우겨져 있는 공터다. 어쩐지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분다.
공터는 넓다. 아무렇게나 자란 갈대를 베어 내서 넓힌 건지 근처에 잘린 갈대가 뭉쳐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컨테이너가 세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셋 다 창문이 달린 사무용 컨테이너다.
“건물은 내년부터 올라갈 거야.”
“이게… 진짜 학교라고요?”
“임시 건물이지.”
“여기서 가르치라고요?”
“원래 시작은 미약한 법이지.”
“…….”
이런 건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았다. 본부장도 말한 적 없다.
이… 컨테이너가 학교라고?
홍석영은 실실 웃었다.
“헌터 양성 시범 고등학교에 온 걸 환영하네, 우 선생.”
* * *
“자, 주목.”
컨테이너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은 모두 여덟. 그중 다섯은 본 적이 있다.
맨 앞에 앉아 있는 작달막한 남자애가 몸을 들썩였다. 이승연은 내 얼굴과 홍석영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다.
내 계책… 이 아니라, 내 호의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아니었으면 억울할 뻔했다.
“오늘부터 서현이와 진우를 담당하게 될 우희재 선생님이다. 본 친구들도 있을 건데, 선생님 너무 괴롭히지 말고. 알았지?”
홍석영은 태평하게 내 소개를 했다.
솔직히 너무 생략했다. 내가 그 고생을 하면서 애들을 구했는데 좀 더… 극적인 소개, 있잖나.
“쌤!”
다행히 나만 그렇게 여긴 게 아니었는지 이승연이 손을 번쩍 들었다.
동시에 뚱한 얼굴로 앉아 있는 오현욱도 손을 들었다.
“어. 현욱아.”
홍석영은 이승연을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오현욱을 불렀다.
“제가 봤을 때는 저 아저씨는 검을 썼는데요. 마법사가 아니라.”
“음. 그렇지. 우 선생은 마법사가 아니지.”
“그럼 왜 서현이랑 진우 담당이라는 거예요?”
“룬을 가르칠 거니까. 내가 어렵게 모셔 왔다고.”
그러자 이번엔 최진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승연은 여전히 손을 든 채였다.
“마력 가림막 룬이요? 아니면 새로운 룬이요?”
“새로운 거. 너희 둘한테는 충분히 도움이 되고도 남을 테니 졸지 말고 잘 들어 둬.”
“그거 엄청 대단한 거 아니에요? 우리한테 막 가르쳐 줘도 돼요?!”
“되니까 가르쳐 주기로 한 거 아니겠냐. 왜, 싫어?”
“아뇨!! 너무 좋아요!!!”
그러자 최진우 옆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학생이 끼어들었다.
“선생님. 그 수업 법사들만 들을 수 있어요?”
“그건 아니지만…. 서현이와 진우만 룬을 그릴 수 있으니까?”
마력펜이 언제 만들어지더라. 그냥 그것도 풀어 버릴까?
제대로 된 마력펜은 무리더라도 헌터들이 급할 때 써먹는 원시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풀 수 있다.
그 정도만 되어도 이 시대에는 충분할 텐데.
“듣고 싶은 사람은 들어도 돼. 어차피 우리 학교는 수업 시간은 자유롭잖아. 뭐라도 배워 두면 도움이 되겠지.”
이승연이 다시 손을 들었다. 이번엔 기다리지 않고 바로 끼어들었다.
“아저, 선생님. 그때 어디 다치진 않았어요?”
착한 녀석. 내 신변을 걱정하다니. 이십 년 뒤의 헌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승연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그렇게 가는 게 어디 있어요! 진짜 완전 걱정했다구요!!”
“맞아요. 진짜 걱정했어요.”
명동에서 이승연 옆에 있었던 유혜은도 걱정스럽게 끼어들었다.
순진한 아이들이다. 얼마나 순진한지 홍석영마저도 아이들의 말을 예상하지 못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통 헌터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안부를 묻진 않으니까. 죽으면 네 탓이니 네 정산은 내 몫이요, 살면 내 덕분이니 네 보따리는 내 것이라는 세상이다.
던전 들어갔다가 파티원한테 배신당해서 죽은 애도… 1기 학생 중에 있었던 것 같은데. 워낙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마력 시계로 찾아봐야겠군.
“쌤한테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쌤은 말도 안 해 주고! 우리 고모도 잘 모르겠다고 하고….”
“아저씨가 잘못됐을까 봐 진짜….”
“진짜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쫑알쫑알 떠들어 대는 이승연과 유혜은은 쉽사리 진정할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잠깐 놔두니 최진우도 끼어들었다. 오현욱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말리진 않았고… 박서현은.
“…….”
쟤 왜 저래?
박서현은 그렇잖아도 하얀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는 구석에 앉아 있었다. 명동에서 봤을 때만 해도 결이 좋았던 긴 머리가 부스스하게 헝클어져 있다. 입술을 물어뜯었는지 갈라진 입술에는 피딱지가 있다.
저 모습은 명동에서 보았던 시범고 학생 박서현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음침한 여자, 마녀 박서현에 가까운 모습이다.
명동 이후로 기껏해야 열흘 정도밖에 안 됐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 *
‘어허. 법사들. 거기 잘못 그렸다.’
건물 바닥에 기절해있던 남자가 등 뒤에서 지적해 왔다.
박서현은 이를 꽉 깨물며 그리고 있던 룬을 지웠다. 옆에서 함께 룬을 그리던 최진우도 종이를 구겨 버렸다.
겨우 여섯 개다. 여섯 개만 제대로 그리면 된다.
친구를 무시하고 싶진 않지만, 자신은 그래도 할아버지에게 마법을 배웠지 않은가. 반면에 진우는 작년에야 각성해서 시범고에 들어오기 전까지 마법을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다. 그런 진우보다는 자신이 더 잘해야 한다.
이 룬이 정말 그 수상한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마력을 가려 준다면 대단한 파동을 일으키리라.
‘서현아. 내가 룬 그린 거 좀 봐줘.’
‘으응… 여기가 조금 잘못된 것 같은데.’
‘진짜?! 아, 그렇네. 그럼 이렇게 수정하면 될까?’
‘괜찮아 보이기는 한데…. 저 아저씨한테 물어봤어?’
‘너한테 먼저 물어보고.’
수줍게 웃는 모습을 보니 뭐라고 하기도 그랬다.
박서현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곤 그리고 있는 룬에 집중했다.
빈 종이에 룬이 가득하다. 복잡하진 않지만 여기에 친구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허투루 그릴 순 없었다. 몇 번이고 그리고, 수정하고, 그리길 반복하다가 마침내 친구들의 이마에 룬을 그리기 시작했다.
‘진우야. 괜찮아?’
박서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이마에 룬을 그려 주고 있는 진우를 보았다.
‘마력 움직이는 거 진짜 어렵다. 넌 쉽게 그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난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가르쳐 줬거든. 그럼 넌 현욱이까지만 그려. 승연이 룬은 내가 그릴게.’
‘어…. 힘들지 않아? 아냐, 내가 할게.’
‘너보다는 내가 마법사 경력이 더 길거든? 걱정 말고. 이따가 실드도 써야 하는데 출발도 하기 전에 지치면 안 돼.’
아까 자신이 그리는 룬을 보며 아저씨가 혀를 내둘렀다.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자신이. 내가 하는 게….
너무 자신했었다.
할아버지도 그랬는데.
자만이 모든 걸 망친다고.
박서현은 선두에 달리고 있었다. 민간인의 수가 많았으니 행렬은 길었다. 뒤쪽에 있었던 소란은 듣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건 시청에 도착하고 나서.
눈물범벅인 친구의 얼굴을 본 뒤.
‘룬이 발동 안 했다고?’
자만이 모든 걸 망친다.
승연이는 괜찮다며, 오히려 덕분에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다며 말했지만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오늘부터 서현이와 진우를 담당하게 될 우희재 선생님이다.”
그날 승연이를 구하고 소 떼에 휘말려 사라진 남자가 선생님을 따라 들어왔다.
‘거기 잘못 그렸다.’
지난 열흘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던 목소리가 재차 귓가에 울렸다.
박서현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다시 피가 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