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12)
귀염둥이 후배(2)
딱히 놀라운 말은 아니지만, 나는 싸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몬스터를 잡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안 잡으면 사람이 죽잖냐. 잡아야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사람과 사람 간의 싸움이다. 낮게는 술 마시고 붙는 시비부터, 건전하게는 운동선수나 헌터끼리의 스파링까지.
술 마시고 싸우는 거야 당연히 잘못된 거지만 겨루기하는 운동에서 대련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단순한 문제다.
왜 그런 일에 내 시간을 써야 하는가?
나의 노동력은 비싸다.
그 비싼 노동력을 겨우 싸움에 써야 하는가? 해서 나에게 남는 게 뭔데?
물론 그에 상응하는 돈을 주면 모른다. 시범고에서 크게 불평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굴렸던 것도 대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애들을 괴로워하는 게 재밌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 영향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 때문도 아니다. 그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내가 왜 시범고에서 일하게 되었는가. 갑작스럽게 과거로 끌려와서는 홍석영에게 발각되었다. 약간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된 신원과 숙식을 얻을 수 있다. 방주에 대한 정보는 덤이다. 솔직히 월급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말했듯이 숙식은 홍석영이 따로 챙겨 줬던 데다가 어차피 돈을 쓸 일도 없다.
어쨌든, 나는 싸움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대가 없는 노동이 싫다. 눈앞에 있는 스물여덟의 한태경이 관리청 신입 헌터였으면 유지은에게 요즘 신입 교육은 어떻게 하냐며 잔소리를 퍼부었을 거다. 그리고 짜증 내는 유지은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겠지.
“으흐흐.”
한태경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목검을 들었다. 나는 어쩔까 고민하다가 김채민이 내미는 목검을 잡았다.
비록 업무 시간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생각도 드는 거다.
어쩌면 이게 기회가 아닐까?
한태경을 이대로 찍어 누르면 이 새끼가 좀 얌전해지지 않을까?
저 정신 나간 머리가 괜찮아질 거라고는 생각 안 하지만, 적어도 내 말을 듣는 시늉은 하지 않을까?
아버지도 한태경을 얌전하게 만들기에는 실패했지만, 한태경이 아버지의 말은 대충 들었지 않은가. 딱 그 정도 수준이면 된다.
“아, 내가 원래 검이 전공이 아니라… 하지만 원래 잘하는 쪽이 깔아 주는 거잖습니까. 바둑도 그러잖아요. 검은 돌이 유리하니까 못하는 사람이 검은 돌.”
아주 틀린 설명은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맞는 설명이라고 하기에는 표현이 좀.
“앞으로 절 흑의 사나이, 한태경이라고 불러 주시죠!”
“…….”
“바보야. 그건 네가 못한다는 뜻이잖아.”
한은영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어. 그런가?”
한태경은 여동생의 부끄러움 따윈 고려도 하지 않는 얼굴로 정정했다.
“그럼 백의 사나이, 한태경!”
한은영은 얼굴을 들지 못한 채로 어깨를 들썩였다.
…우는 거 아니지?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음. 이 학교는 자퇴하겠다는 말만 하면 울게 되는 저주라도 있는 모양이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고개를 든 한은영의 얼굴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 메마르다 못해 눈빛으로 오빠를 살해라도 할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크게 걱정할 건 없어 보인다.
한은영에게서 시선을 돌리면 어쩐지 기대 어린 얼굴로 몸을 들썩이고 있는 홍석영이 보인다. 저 아저씨는 싸움이라면 없어서 못 낄 정도로 좋아하니 이해한다. 한태경의 도전을 내가 받아 주자마자 애들을 다 불러 모은 걸 봐라.
“얘들아. 이런 대련은 어디서 쉽게 못 보는 거니 눈 크게 뜨고 잘 봐 둬라. 이게 다 너희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누가 볼 수 있게는 해 준대?
이십 년 뒤의 한태경이라면 내 실력으론 무리다.
하지만 지금의 한태경이라면.
“검이 전공이 아니라고요.”
“그쪽은 검 쓴다면서요.”
“뭐….”
“이 정도 페널티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쪽이 일방적이면 뭐, 그게 되겠어요?”
일단 저 얄미운 선글라스부터 날려 볼까.
“맞는 말입니다.”
나는 한태경에게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도 검은 주 무기가 아니라서요.”
목검을 휘둘렀다.
* * *
왼쪽에서 오른쪽.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 그 힘을 유지한 채 몸을 한 바퀴 돌려서 다시 공격. 목검이 부딪친다. 그대로 힘으로 밀어붙인 다음 무게 중심을 뒤로 옮긴다. 반 발자국 물러나면서 놈을 내 쪽으로 끌어당긴 다음, 공격을 흘려 버린다.
삐걱.
마력 사용은 금지되었다.
각성자용으로 만든 튼튼한 목검이라 하더라도 이런 움직임을 버티기란 어렵다.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불안한 소리가 난다.
“칫!”
한태경은 짧게 혀를 차며 방어에 급급하던 자세를 바꾸었다. 몸을 낮추고 내게 다리를 거는 시도를 하더니 그대로 뒤로 공중제비를 하며 물러났다.
…저 빌어먹을 선글라스는 코에 본드라도 붙여 놨나. 왜 저런 움직임을 하는데도 안 떨어지는 건데. 역시 첫 공격에 날려 버렸어야 했는데.
“왜요? 벌써 지쳤어요?”
나는 작게 웃으며 속삭였다.
“백의 사나이라면서요. 백기라도 흔들래요?”
물론 백기 따위 흔들 시간은 주지 않았다. 다시 한태경에게 바싹 붙은 다음 검 손잡이로 목덜미를 노렸다.
“내 사전에 하얀색은 없다!”
댁 차 색깔이 하얀색인데.
그래도 역시 아버지 다음으로 꼽히던 헌터 새싹은 다르다.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급급해하던 것도 잠시, 금방 익숙해져서는 내 공격을 막아 냈다.
한태경의 재능이 꽃피우는 건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다. 지금도 유망주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아직은 딱 그만한 수준에 걸맞은 실력이다. 유망주.
한태경이 다시 거리를 벌린다. 쫓아가지 않고 가만히 놔두었다. 한태경은 검을 쥐고 나를 노려보았다.
아마 노려봤을 거다. 선글라스에 가려서 눈을 볼 수 있어야지.
…아닌가? 선글라스 아래로 보이는 입이 불안하게 히죽거리며 웃고 있다. 노려보기는커녕 어쩐지….
“실력에 꽤 좋으신데요!”
“그쪽은 기대보다 별론데요.”
“으하하하!! 아니, 난 검이 전공이 아니라니까. 그건 거기도 똑같댔나? 그럼 왜 검 들고 다녀요? 원래는 뭘로 싸우는데요?”
홍석영한테 시선이 가려는 걸 겨우 참았다.
창이라고는 대답할 수 없다.
“그냥 이것저것요.”
“재밌네. 나도 이것저것 다 쓰거든요.”
“계속 얘기만 할 겁니까?”
“그건 아닌데.”
한태경은 잠깐 자세를 풀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여기서 더 진심으로 했다가는 애들이 다칠 것 같아서….”
그 정도의 생각은 있단 말인가?
그런 놈이 아카데미 교장 시절에는 학생과 싸웠다고?
인간은 퇴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렇게 알고 싶지 않았는데.
“그건.”
나는 한태경을 향해 움직였다.
지금의 내 전투 스타일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건 당연히 아버지다. 날 가르쳤으니까. 하지만 그다음을 꼽자면 한태경이다.
나는 내 업무가 아닌 일은 싫다. 대가 없는 노동이 싫다. 던전에 들어가는 건 내 업무도 아니고, 공략했다고 나에게 떨어지는 것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태경이 사고를 칠 때마다 대타로 들어가야만 했다. 나중에는 내가 하도 싫어하니 아버지가 빼 줬긴 하지만, 대부분은 내 담당이었다.
싫어하는 반찬과 좋아하는 반찬이 같이 있으면 좋아하는 것부터 먼저 먹는 사람이 있을 거다. 나는 싫어하는 반찬을 먼저 먹는 타입이었다. 미뤄 봤자 내가 해야 하는 일. 매도 일찍 맞고 끝내자는 마음가짐이었다.
어차피 들어가야만 하는 던전. 속전속결로 공략하고 나온다. 그게 당시 내 마음가짐이었다.
그럼 던전을 빠르게 공략하려면 뭘 해야 하느냐.
던전 핵을 빠르게 부숴야 한다.
던전 핵을 빠르게 부수려면?
방해하는 몬스터들을 빠르게 죽여야지.
‘실장님, 이번에도 공략 시간 최단 기록 달성한 거 아니세요?’
‘던전마다 구조가 다른데 최단 기록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렇지만 1팀 말로는 실장님이 완전 빠르게…!’
‘그런 거 궁금해할 시간에 보고서나 하나 더 쓰세요.’
그렇게, 내 창이 완성되었다.
비록 지금 내 손에 들린 건 조잡한 목검이지만.
“한태경 씨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
한태경은 목을 노리는 내 검을 막았다.
나는 잠깐 뒤로 물러갔다가 조금 더 속도를 높여 다시 한태경에게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옆구리를 노렸다.
“하! 무슨 소릴!”
이번에도 한태경은 내 공격을 막았다. 나는 무리하게 공격을 이어 가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한태경이 휘두르는 검이 허공을 갈랐다.
나는 속도를 높였다.
공격하고, 한태경이 막으면 물러났다가 속도를 높인 다음 다시 공격한다.
지금의 한태경이 과연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까.
머리를 노린 공격을 막아 내길래 이번엔 뒤로 물러나지 않고 맞닿은 검을 지지대 삼아 한태경을 뛰어넘어 뒤로 돌아갔다. 반응이 느리다. 검을 휘두르려다가 발을 들어 등을 걷어찼다.
“아. 실수.”
쾅!!
“너무 힘이 들어갔네요. 괜찮습니까? 백의 사나이?”
“완전 괜찮습니다!”
흩날리는 잔디 사이로 한태경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 저 손가락을 분질러 버리면 안 하려나.
“그래요? 그럼 계속 가 봅시다.”
한태경이 바싹 긴장한다. 한 시간 전만 해도 D급 헌터라며, 자기보다 약한 놈을 선배 취급하기 싫다던 건방진 새끼가 아니다.
홍석영의 말대로 등급을 올려놓기는 해야겠다.
눈에 보이는 등급이 전부가 아닌데 저런 놈들이 꼭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온다니까.
아까와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한태경이 내 공격을 놓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아마 이만한 속도라면 애들은 거의 보지도 못하고 있을 것 같은데.
머리.
가슴. 목.
팔. 명치. 다시, 목. 허리. 무릎. 등.
다시, 목. 머리.
“…너 보여?”
“안 보여.”
“현욱이, 너도?”
“…….”
“대답 안 하는 거 보면 안 보이는 거야. 야, 그래 봤자 다 티 나니까 걍 대답하라고.”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봐라. 너네 선생님이 이렇게 대단한…
…….
헌터라고 하면 왠지 자존심 상하는데. 홍석영한테 진 기분이 든다. 난 헌터가 될 생각 따윈 없었다고!
“저기요.”
티격태격하는 아이들의 목소리 사이로 앳된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아저씨.”
“응?”
“우리 형 엄청 잘 싸우는 거죠?”
우이록. 미니미.
내내 생활 구역에서 나오지도 않던 애가 왜 여기 있어?
미니미는 홍석영 옆에 쪼그려 앉은 채 나를 보고 있다. 내가 보이나? 아직 마력도 못 보는 게 뭐 볼 게 있다고 보는 척 앉아 있냐.
“그래. 엄청 잘 싸우는데? 어쩌면 아저씨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어.”
“그쵸? 우리 형이 제일 세다고요!”
홍석영은 미니미를 보며 싱긋 웃었다. 홍석영이 미니미에게 천천히 손을 뻗는 게 보였다.
미니미는 홍석영을 빤히 보았다. 주춤거리던 홍석영의 손은 미니미가 도망가지 않자 조심스럽게 미니미의 머리에 얹어졌다.
처음에는 머리카락 끝이 살짝 스칠 정도로 부드럽게. 그러다가 조금씩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힘이 실린다. 장난스럽게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는 손길에 짜증을 내면 한참을 껄껄 웃다가 손을 거둔다. 멀어지는 온기가 내심 아쉬워서 고개를 들면 마주치는 눈. 따스하게 떨어지는 온화한 눈동자.
아버지.
콰아아앙!!!!!
“어.”
파사삭.
목검이 조각났다.
나는 멀뚱히 목검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날아간 한태경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부서진 조경석 더미가 보였다. 그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다리 하나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