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13)
귀염둥이 후배(3)
“한태경 씨!”
나는 서둘러 한태경에게 달려갔다.
다연에서는 정원에 인조 바위 따윈 두지 않는다. 물론 바위에 부딪혔다고 한태경 정도 되는 헌터가 부상을 입진 않겠지만… 모르잖는가. 지금의 한태경은 내가 아는 한태경보다 훨씬 약하다. 잘못 부딪혔으면 어디 한 군데 정도 나갔을지도 모른다. 제발 머리만 멀쩡해라. 지금보다 더 정신이 나가면 감당하기 힘들다고.
…아니지. 오히려 백팔십도 돌면 정상으로 돌아올지도.
“한태경 씨. 괜찮습니까?”
삐죽 튀어나와 있는 다리가 움찔거린다.
곧 작은 신음과 함께 한태경이 번쩍 튀어나왔다.
“와.”
조금 비뚤어지긴 했지만 코끝에 여전히 선글라스가 걸려 있다. 한태경은 먼지가 잔뜩 묻은 선글라스를 바로 하며… 안 보일 텐데? 어쨌든, 선글라스를 바로 했다. 언뜻 동그랗게 뜬 눈이 보이다 말았다.
“미쳤다.”
그 한마디와 함께 한태경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와, 마지막에는 나도 놓쳤는데. 선배님, 그거 어떻게 했어요?”
그리고 넉살 좋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짧은 사이 나를 부르는 호칭도 선배가 되었다.
…좋은 건가? 모르겠다. 내 경험상 한태경에게 좋은 의미로 찍혀도 인생이 고달팠고, 나쁜 의미로 찍혀도 인생이 고달팠다.
최고는 한태경과 엮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 형이 최고란 말야!!”
미니미가 옆에서 빽 고함을 내지른다.
쟨… 쟨 뭐지? 왜 여기서 끼어들어? 그냥 평소처럼 방에서 얌전히 있으면 좋잖아.
한태경의 시선이 미니미에게로 돌아간다.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입에 걸린 미소가 능글맞게 변한다.
“네가 선배님 동생이니?”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소름이 돋는다.
“선배님과 꼭 닮았네!”
한태경과는 아는 사이가 되지 않는 게 제일 좋다.
그러잖아도 만만찮은 미니미의 성장 과정에 이보다 더 큰 시련을 줄 순 없다.
“안녕, 이록아. 선생님 보러 왔어?”
그나마 미니미를 알고 있는 강태우가 미니미에게 말을 걸었다. 미니미는 파드득 놀라며 멀어졌지만 이미 다른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뒤였다.
“뭐야, 강태우! 너 선생님 동생이랑 아는 사이야?”
이승연이 강태우를 향해 울부짖었다. 강태우가 태연하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응. 얘가 막 왔을 때 봤거든.”
“치사하게. 이름이 뭐라고? 이록이? 우이록이야? 꼬마야, 몇 살이야?”
“꼬마 아니거든!”
“원래 아니라고 하는 애는 꼬마 맞더라. 몇 살이라고? 너 우 쌤이랑 진짜 닮았다.”
“으…!”
미니미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자길 꺼내 달라는 필사적인 눈빛.
그걸 무시했더니 눈을 휘둥그레 뜬다.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벌어진 입술이 배신감에 숨을 헐떡였다. 애가 어디서 뭘 보고 배웠는진 모르겠지만 너무 극적이다.
이래서 어릴 때부터 TV만 보게 하면 안 된다니까. 안 좋은 버릇만 들어서는.
미니미는 계속 내게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죄다 모른 척했다.
애들이 짓궂게 굴 성격도 아니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만한 상황이 아니니 이렇게라도 사람과 어울리는 게 좋다. 안 그래도 미니미의 칩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조만간 억지로라도 끌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애들이 몰리니 한태경도 미니미에게서 관심을 껐다. 이게 중요하지. 한태경에게 저런 배려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지만… 아니, 없을 텐데. 무슨 속셈이지? 왜 순순히 물러나는 거지?
“아, 이건 예상도 못 했는데요.”
한태경은 부서진 목검을 바닥에 대충 던져 버리며 홍석영에게 느긋하게 걸어갔다. 나도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홍석영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손도 못 써 보고 당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구요, 선배님.”
“이젠 교장 선생님이라니까.”
“아. 그렇지. 아니, 그래도 손을 못 써 보진 않았고요.”
“어허. 패자 주제에 말이 많다.”
한태경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렇지 않아요, 선배님?”
“…네?”
좀 전까지만 해도 아니꼬운 얼굴로 나보다 약한 놈의 말은 듣지 않겠다며 하던 놈이 맞나?
뭐, 생각해 보면 한태경이 자기가 내뱉은 말을 안 지키던 놈은 아니지만. 고소한다고 할 때는 착실하게 했고, 다른 것도… 비슷했지. 싫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도 기어이 받아 낸 합의금으로 밥을 사 줬으니까.
“저 잘 막지 않았습니까?”
“…….”
“보세요! 선배님도 그렇다잖아요!”
“네가 물으니까 그냥 고개만 끄덕여 준 거잖냐. 넌 아직 한참 부족해.”
“괜찮습니다. 이 한태경, 앞으로 세계 최강이 될 사람이니까요. 나중에 저한테 얻어맞고 울지나 마십쇼.”
포부만큼은 크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태경은 이십 년 뒤에도 아버지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선배, 아니, 교장 쌤이야 말로 진짜 치사하다고요.”
“음? 내가 왜?”
한태경은 흘러내리는 선글라스를 올리며 투덜거렸다.
“저번에는 누구 가르치는 일은 안 한댔잖아요.”
“그런데?”
“제대로 가르쳐 놓고서는.”
“쟤들? 가르치긴 했지. 아직은 팔다리 움직이는 법을 알려 주는 수준이긴 하지만.”
“아뇨, 그런 거 말고요.”
한태경은 나를 가리켰다. 아까 실수인 척 저 손가락을 꺾어 놨어야 했는데.
“무슨 교장 쌤을 배속한 것처럼 움직이던데.”
머리가 새하얘졌다.
“D급이라고 해서 속았잖습니까. 최소 S급이라고만 했으면 저도 그렇게 시비 안 걸었다고요.”
나는 차마 홍석영을 볼 수 없었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음.”
홍석영은 짧게 콧소리를 냈다.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눈치를 키워야지.”
“저 어디 가서 눈치 없다는 소리 들은 적 없는데요?”
“말했는데 자네가 못 들은 거겠지.”
“그런가?”
“최소한 은영이는 수백 번 말했을 텐데.”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한태경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아니, 어쨌든. 가르쳐 주는 거면 저도 가르쳐 주세요. 제가 몇 년이나 매달렸는데…. 왜 선배님만 홀라당 가르쳐 주고 전 안 가르쳐 주는데요?”
“자네 움직임은 나랑 안 맞아.”
“하….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는데.”
홍석영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나도 우 선생을 본격적으로 가르친 건 아니고. 그냥 몇 번 봐준 게 다네.”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건 나도, 홍석영도 잘 알고 있다.
입 안이 바짝 마른다.
홍석영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그거 가지고 여기까지 해낸 우 선생이 대단한 거야.”
* * *
검.
현대 헌터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기.
그도 그럴 게, 아무래도 던전이란 게 없던 시절부터 애용하던 무기였다.
역사가 깊은 무기는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지 오랫동안 연구되었다. 검뿐만이 아니라 창이나 활 같은 무기도 비슷하긴 했다. 하지만 검에는 그와 다른 장점이 하나 있었다.
각성자가 아니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한 무기라는 것.
헌터가 되고자 하는 각성자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집 근처 검도관에 등록하는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 다 했지.
물론 검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고는 해도 모든 헌터가 검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오현욱처럼 맨손 격투를 좋아하는 이도 있고, 아버지처럼 창을 쓰는 이들도 많았다. 그 외에도 각자 취향에 맞게 다양한 무기를 쓴다.
아버지는 항상 강조했다.
‘희재야. 아저씨가 늘 말했지만 사람은 기술을 익혀야 해.’
‘지금도 충분히 많이 익혔는데요.’
나는 손쉽게 해체한 자물쇠를 내보이며 말했다. 아버지는 잘했다는 듯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이어 말했다.
‘몬스터와 싸우다 보면 간혹 무기가 부서지는 경우도 있단다.’
‘아… 자물쇠는 끝난 거예요? 바로 거기로 넘어가요?’
‘아저씨가 창으로 싸우는 법은 가르쳐 줬잖니?’
‘그걸 가르쳐 줬다고 말할 수 있다면요….’
‘물론 배움에 끝은 없지. 희재가 아저씨처럼 창을 쓰려면 더 연습해야 해.’
‘차라리 자물쇠 더 따 보면 안 돼요?’
‘하지만 방금 말했다시피 싸우다가 무기가 부서지기도 한단다. 드물지만 잃어버리거나… 못 쓰게 되는 일도 있지.’
이땐 내가 헌터가 될지 말지 아직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을 때였다.
강해지는 방법을 알아 둬서 나쁠 건 없다. 나는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 어지간한 무기는 전부 다룰 줄 알아야 해.’
그날, 아버지는 내게 검을 쥐는 법을 가르쳤다.
나중에 되새겨 보면 아버지는 도대체 날 뭐로 키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런 거라면 보편적인 무기 정도만 익히게 하면 되지 않은가. 앞에서 말했던 검 같은 거.
하지만 아버지는 자기가 다룰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내게 가르쳤다.
아버지에게 처음 배운 건 창이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은 많다. 아니,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검, 맨손 격투, 활, 방패 쓰는 법, 돌팔매질, 투창 등등.
거기에 몬스터의 약점, 던전 공략법, 던전 브레이크 대응법을. 더해서 공략대를 구성하는 법, 던전 내부에서의 마음가짐도. 하다못해 걷는 방법, 숨을 내쉬는 법, 참는 법, 들이쉬는 법까지.
아버지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내게 가르쳤다.
내가 헌터가 되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굴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던전에 들어가지 않거나 다른 급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매일 새벽마다 함께 산에 올랐다.
내가 휴가를 내고 부산으로 내려가던 그날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희재야. 아버지는 널 그런 돈 쓸 줄 모르는 놈으로 키우지 않았단다. 혹시 용돈이 부족했니?’
‘무슨 헛소리입니까. 노망들었으면 은퇴하고 쉬세요.’
‘아니, 기껏 가는 게 부산이잖냐! 휴가도 길게 줬는데 해외라도 가 보고 그러는 게 좋잖니.’
‘많이 가 봤어요.’
‘출장으로? 그게 휴가야?’
‘볼 거 다 보고 왔는데 휴가든 출장이든 상관없잖아요. 전 본 데 또 보는 취미는 없어요.’
‘누가 키웠길래 이렇게 삭막한 놈이 되어 버렸니….’
‘당연히 아저씨가 키웠죠.’
‘그거야 그렇지!’
아버지는 호쾌하게 웃었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 나가서 고생할 바엔 우리나라가 좋지.’
‘저 외국어 잘하는데요.’
‘그럼. 누구 아들인데. 잘하고말고.’
아버지는 내게 검을 던졌다. 대련용으로 제작한 특징 없는 검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똑같은 검을 들었다.
‘가서 사람들 좀 만나고…. 그런데 희재야. 너 민간인이랑 이야기해 본 적 있니? 휴가 가서도 청에서 하는 것처럼 하면 안 된다?’
‘제가 뭘 했다고요.’
‘거, 뭐냐…. 그래. 마법 학회의 꼬장꼬장한 놈들 대하는 것처럼 웃어 줘라. 그렇다고 마법사들 대하는 것처럼 험하게 굴지는 말고.’
‘어쩌라는 거예요.’
‘승진해서 휴가받아서 놀러 왔다고 해. 시계도 자랑하고.’
‘그거 기밀인데요.’
‘어차피 다음 주면 뉴스 탈 텐데, 뭘. 어쨌든 그래서 며느리도 데려와 주면 좋고.’
‘또 헛소리하신다. 제가 은퇴하랬죠.’
‘우리 아들 결혼하는 건 봐야지. 만나는 사람은 없니?’
히죽거리는 얼굴은 변함없이 얄밉다.
이 이름으로 누군가를 만날 생각은 없지만 그 생각을 전하진 못했다. 보육원에서 아버지가 내게 이름을 물었을 때 사실대로 말했다면 달라졌을까 막연히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있었으면 제가 아저씨랑 이러고 있겠어요?!’
챙!
검이 부딪치며 쇳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그건 그렇지.’
아버지가 왼발을 내디딘다. 마찬가지로 나도 왼발을 내디뎠다. 검을 쥔 손은 오른손. 손잡이를 잡는 손의 모양, 검을 꺾는 각도,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타이밍.
모든 것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같다.
작은 유지은보다 훨씬 창백하고 어두운 큰 유지은이 나와 처음으로 대련했을 때 했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선생님! 얘 진짜 웃긴데요?’
왜 창을 쓸 때만 내가 아버지와 똑같다고 여겼을까.
‘움직이는 게 선생님이랑 똑같잖아요!’
‘그거야 내가 가르쳤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거 완전 선생님 미니미잖아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