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14)
애제자(1)
“자, 두 선생님 대련하는 거 봤지?”
홍석영은 아이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어땠어?”
“어떠냐고 해도….”
“뒤에는 하나도 못 봤는데요.”
“본 사람 없어?”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없는데요.”
“아직 한참 멀었군. 더 열심히 해야겠는데?”
“이거보다 더요?”
“너흰 자랑스러운 헌터 양성 시범 고등학교의 1기 학생들이잖니. 선생님도 체면이 있지. 안 그러냐.”
“그건 선생님 체면이죠!”
아이들 몇 명이 아우성쳤지만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였다.
홍석영은 그런 애들이 귀여운지 피식 웃다가 나와 한태경에게 손을 까딱거렸다. 한태경은 잽싸게 홍석영의 곁으로 다가갔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 다리에 딱 달라붙어 있는 미니미를 가리켰다.
아이들에게서 벗어난 미니미는 내 종아리를 걷어차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결국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지하게 되는 건 아는 얼굴이니까.
홍석영은 미니미를 보더니 알 만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을 돌렸다.
“한 선생님도 여기서 지내실 거다. 수업 담당은 아니지만 너흴 봐줄 실력은 충분히 되니까 연습하다가 궁금한 게 있거든 한 선생님한테 물어봐라. 알겠니?”
“네!”
“기운차고 좋네. 그럼 오늘 수업은….”
홍석영은 느릿하게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우 선생.”
한태경의 말 이후로 처음으로 홍석영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대단한 충격은 없었다. 평소처럼 장난기로 가득하지도 않았고, 능글맞은 웃음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처럼 따스하지도 않았으며 하다못해 처음 홍석영을 만났을 때처럼 의심스러워하지도 않았다.
홍석영의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아들, 우희재를 보고 있지도 않았으며,
방주의 내부 고발자 우희재를 보지도 않았다.
그저 길가의 나무를 보고 있는 듯한 감흥 없는 얼굴.
차라리 적대적인 시선이 낫다. 마치 내가 아버지에게 아무 가치가 없는 듯한 저런 얼굴보다는.
“우 선생?”
눈을 깜빡였다.
홍석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불렀다. 방금 보았던 무기질적인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내가 잘못 봤나? 그 정도로 내가 요즘 피곤했던가?
허리춤에서 느껴지는 무게의 원흉을 보았다. 피곤할 만도 하지.
숨을 고르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솔직히 이번만큼은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김 군에 대한 홍석영의 테스트도, 있을 리 없는 동생의 존재도 잘 넘겼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랬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머리는 냉정하게.’
사실 나한테 한 말은 아니었지.
그럼 어떠냐. 틀린 말도 아닌걸.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 당장 날 어떻게 할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수업을 맡기지도 않을 테니까.
“제가 수업할 차례이긴 한데….”
“그래?”
“네.”
“그럼 한 선생은 우 선생이 수업하는 거 잘 봐 두고.”
“넵.”
“그리고….”
홍석영의 시선이 옮겨진다. 나에게서, 더 아래에 있는 곳으로.
“우리 동생은 선생님이랑 같이 있을까? 형 일하는 거 방해하면 안 되지.”
“…….”
미니미가 화들짝 놀라며 내 뒤로 숨었다.
그렇지만 미니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성격이 아니다.
“여기서 형 하는 거 볼 거야.”
“우이록. 어른한테는 형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어.”
“…볼 거예요.”
“형이 일하는 거 궁금했어? 그래, 그러면 저기 파라솔 있으니까 저기서 보자. 지 헌터 어디 있나. 애 먹을 것 좀 가져다줘.”
홍석영은 헤실헤실 웃으며 미니미를 데려갔다. 미니미가 순순히 따라갔을 리는 없고, 내가 안아다가 의자에 앉혔다.
곧 김채민이 파라솔에 합류했다. 이미선도 끼어들었다.
홍석영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선배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뭘 잘 부탁해요?”
“많은 지도 편달?”
“무슨 지도 편달이요.”
“드라마 보면 신입 사원들은 다 이렇게 인사하더라고요.”
한태경은 자기가 한 말의 무게도 모르고 방긋방긋 웃었다. 한태경의 선글라스에 내 얼굴이 반사되어 비쳤다. 눈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슬었다.
아버지도 아닌 홍석영에게 밀릴 순 없지. 아무렇지 않은 척. 실제로도 별거 아닐 수 있잖아.
“자, 그럼 오늘은….”
“선생님. 저 상담 가능할까요.”
한은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굳은 얼굴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이 갔다.
“자퇴 얘기는 안 된다.”
“…….”
“오늘은 새 선생님도 오셨으니 너희 실력이나 뽐내 볼까?”
“언제는 저희 실력은 어디 내놓기 부끄럽다면서요.”
“그러니까 여기서나 보자는 거지.”
“…….”
파라솔을 흘깃 보았다. 어른들을 낯설어하던 미니미도 그래도 여기 온 뒤로 계속 얼굴을 보았다고 그새 익숙해졌는지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감각을 높이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척 파라솔을 등졌다.
수업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수업이 끝나면 홍석영이 내게 묻겠지. 어떻게 된 거냐고.
그러면 나는….
나는.
그러나 홍석영은 수업이 끝나고, 해가 저물 때까지도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은영이 매일 아침 자퇴서를 품고 찾아올 때까지.
홍석영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유지은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절 제자로 받아 주시면 안 돼요?”
* * *
유지은은 모든 게 거친 인간이다.
외모가 거칠다거나 성격이 거칠다는 말이 아니다. 성격은 확실히 거친 편이긴 하지만 내가 하려는 말과는 관계가 없다.
유지은은 불로 만든 폭풍과도 같은 인간이었다.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재와 탄내. 유지은은 모든 것을 그렇게 불살랐다. 거침없이.
그러나 그 폭풍을 헤치면 중앙에는 음울한 눈빛의 조용한 여자가 있다. 자신이 태우고 있는 세상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무엇에 분노하는지도 모른 채 속으로만 삼키는 여자가.
‘안녕. 난 유지은이야.’
시범고의 검은색 교복은 마치 상복처럼 보였다.
비틀거리는 마른 몸과 창백한 안색에 속았다. 목검을 드는 순간 유지은은 돌변했다.
‘으아아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며 아버지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은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웠다.
검을 휘두른다기보다는 몽둥이로 후려친다에 가까운 거친 공격. 아버지는 그걸 창 대신 든 긴 막대로 가볍게 막아 냈다.
‘또, 또 그런다! 내가 뭐라고 했냐, 지은아.’
복잡한 움직임은 없다. 어린 내가 볼 수 있을 정도로 느리고 간단하게. 그러나 그 움직임에 유지은은 검을 놓쳤다.
‘…….’
‘네가 어떻게 싸우든 그게 잘 맞기만 하면 뭐든 아무런 문제 없다고 했었지.’
‘…네.’
‘비명을 지르든 말든 마음대로 해. 서현이 못 봤어? 잘하잖아.’
아버지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모르는 이름들이 하나씩 나왔다. 그 이름의 주인을 보는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현욱이는 어떻고? 걘 가끔 네발로 길 때도 있어. 그래도 아무 문제 없지.’
헌터란 참 이상한 동물이구나.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냉정을 잃으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머리만큼은 차가워야 한다고.’
아버지는 막대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다가 유지은을 가리켰다.
‘그렇지 않으면 개죽음이나 당할 거다.’
‘…….’
유지은은 눈을 부릅떴다. 저 누나는 저렇게 눈을 뜨면 눈 아프지 않을까. 하고 태연하게 생각했던 기억도 있다.
‘다른 곳은 뜨거워도 돼. 잃어도 돼. 잊어버려도 돼. 하지만 머리는 차갑게 하고 모든 것을 기억해라.’
‘…네.’
‘그럼 다시 가 볼까?’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지은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유지은은 나를 제외하고 아버지의 등산에 유일하게 동행할 수 있었던 이였다. 한두 번 오현욱도 온 적이 있었지만, 오현욱이 길드를 만든 이후로는 찾아오지 않았다.
‘선생님. 저 왔어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유지은은 아버지가 말한 것을 모두 실천하는 헌터가 되었다.
공격하기 전 기합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비명을 지르고, 바닥을 기는 것을 꺼리지 않으며, 여차하면 이빨로 몬스터를 찢어발길 수도 있다고 염두에 두면서도 항상 냉정하게 주위를 파악하고 냉정하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헌터.
아버지는 그런 유지은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간혹 인터뷰하겠다며 찾아오는 기자들을 물어뜯을 것처럼 노려보던 유지은도 아버지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그게 그 검이냐?’
‘네. 쥐지는 마세요. 1팀 팀장님도 쥐었다가 화상 입었어요.’
‘한태경, 그놈이?’
‘누가 훔쳐 갈 일은 없겠다고 좋아하던데요.’
‘한태경, 그놈이….’
유지은은 코웃음 치며 가방 안에서 검을 꺼냈다. 유지은이 검집에서 검을 꺼내자 불똥이 타닥타닥 튀었다.
‘어이쿠. 조심해라. 가을 산엔 불이 잘 붙어.’
‘선생님 사유지잖아요?’
‘사유지면, 불내도 괜찮고?’
‘그건 아닌데….’
‘지은아. 아무리 공략이 중요하다고 해도 한태경과 자주 만나면 안 된다. 사람 성격 망치는 지름길이야.’
‘…….’
시답잖은 말이 오간다. 이건 중요하지 않다. 이다음.
‘검이 더 날카로워졌네. 아주 좋아.’
이다음.
‘어. 내가 이 시간에 전화하지 말라고 했을…. 뭐? 그 새끼들이 돌았나, 진짜!!! 기다려. 바로 갈 테니까.’
여기.
이능관리청 본부장이라는 감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현역 헌터였다. 최강의 헌터는 그 자리에 올라서도 던전을 공략하고 다녀야 했다.
아버지는 미안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희재야.’
‘얼른 가요.’
‘…우리 희재. 언제 이렇게 어른스러워졌지?’
‘전 원래 어른스러웠거든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급한 일 아니에요? 빨리 가요. 난 지은이 누나랑 이따가 내려갈게요.’
‘아저씨가 미안해서 그렇지.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아저씨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알겠지?’
아저씨가 말을 질질 끌지 않는 걸 보면 정말 급한 일이었을 거다. 급하게 산 아래로 내려가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다가 유지은에게 몸을 틀었다.
그래도 오랫동안 봐서 아는 사이고, 아버지의 제자이기도 하니 축하 인사를 건넸다.
‘승진했다며?’
‘그게 승진이냐.’
‘아저씨는 승진이라고 하던데. 그럼 승진이지. 축하해.’
‘표정은 축하하는 얼굴이 아닌데?’
‘내 얼굴은 원래 이렇거든.’
처음 만났을 때의 우울한 여고생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제 유지은은 크게 웃음을 터뜨릴 줄도 알았으며, 아버지처럼 장난스럽게 내 머리를 흩트려 놓는 장난을 칠 줄도 알았다.
하지만 찾아보기가 힘들 뿐이지 그 우울한 여고생은 아직 남아 있었다. 가끔 아무 말 없이 빈 공간을 바라볼 때. 던전 브레이크로 인한 민간인 피해를 들었을 때. 공략대의 헌터가 죽었을 때.
창백한 안색의 소녀가 유지은을 대신하곤 했다.
지금처럼.
그래도 유지은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다. 아니, 밝다기보다는….
‘우희재. 너 헌터 안 한다며.’
‘응.’
‘왜?’
‘하기 싫으니까.’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화를 냈던 유지은이었다. 이것도 예상했어야 했는데. 차라리 아까 아버지를 따라 산을 내려갈걸.
‘라이센스는 딸 거라며.’
‘응.’
‘근데 헌터는 안 해?’
‘응.’
‘말했잖아. 하기 싫으니까 안 한다고.’
유지은은 내 말에 거칠게 콧김을 뿜어냈다. 아. 이거 곧 폭발하겠군.
‘선생님이 너한테 해 준 거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지!!’
“저 열심히 할게요! 꼭 제자로 받아 주세요.”
왜 작은 유지은의 말에 큰 유지은이 화냈던 기억이 떠오른 걸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