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16)
애제자(3)
“그건 왜 물어봅니까?”
홍석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왠지 자네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지금 뭐 하는 거지? 이 아저씨 도대체 뭘 떠보려는 거야?
머리라도 열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다.
계속 모른 척 내 반응을 즐기고 있다면 아까 생각했던 것처럼 기 싸움 하고 있다고 여겼을 거다.
반대로 날 윽박지르며 정체를 묻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수상하기는 하니까.
하지만 이건?
이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아직도 날 떠볼 게 남아 있나? 아니, 남아 있을 수야 있지. 하지만 왜 하필 이런 걸 묻는 거지?
홍석영은 내게서 뭘 알아내고 싶은 거야?
뭘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모르나?”
“모릅니다.”
새로운 정보를 내어 주고 싶지 않다. 나는 딱 잘라 대답했다.
“정말?”
“모른다니까요.”
“몰라?”
“몰라요.”
“음. 모른다고.”
홍석영의 눈이 가늘어진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홍석영은 곧 이상할 정도로 산뜻하게 웃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가?
“그럼 자네 나한테 창 한번 배워 볼 텐가?”
이건 또 뭐라는 건데?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한태경이 반쯤 경기를 일으키며 외쳤다.
“아니, 교장님! 도제 안 들이신다면서요?”
“그냥 제안하는 거지.”
“저는요?”
“자넨 나 없어도 잘하잖아.”
“저 선배야말로 교장님 없이 더 잘할 텐데요!”
“글쎄….”
한태경은 손가락을 세워 나를 가리켰다. 저놈의 손가락. 정말 한 번 정도는 분질러 놔야 삿대질을 안 하려나.
오빠의 등장 이후로 다소 무너져서 그렇지, 여전히 깍듯하게 예의 바르고 새침한 한은영을 떠올렸다. 방금 전에도 비록 자퇴에는 실패했지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건 잊지 않았지 않나.
어떻게 저런 오빠 밑에 그런 여동생이 태어났을까.
분명 같은 집에서, 같은 가정 교육을 받았을 텐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긴 그렇긴 한데, 한태경을 키워 보고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게 아닐까. 둘째만큼은 제대로 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십 년 뒤의 한태경은 가족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 없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아니, 선배님도 한마디 해 보십쇼!”
“제가 뭘?”
“이래서 가진 사람은!”
“네가 할 말이냐.”
홍석영은 손가락을 튕겨 한태경의 이마를 쳤다.
딱!
사람 손가락과 이마가 부딪쳤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미니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보고 있길래 대충 손을 까딱였다. 미니미는 홍석영과 한태경을 번갈아 보다가 마시던 우유를 다시 마셨다.
“아우으…. 제 연약한 머리에 너무 큰 시련인데요.”
“그 정도는 극복해야지.”
“두개골은 어떻게 단련이 안 되더라고요.”
“노력이 부족한 거야.”
이마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한태경을 옆으로 치워 버린 홍석영은 나를 보았다.
“어쨌든.”
나는 인상을 썼다.
“안 배울 겁니다.”
홍석영은 말을 멈추고 내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얘기 하고 있었지, 참.”
짜증 나.
이 사람 어떻게 찔러 버릴 순 없나.
한태경이 귀찮은 성격이라고 그렇게 경고하더니, 정작 귀찮은 건 본인이다.
“나중에 생각 바뀌면 얼마든지 이야기하고.”
홍석영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 자네에게는 필요 없겠지만 말야.”
“…….”
“어쨌든, 내가 저번에 자네한테 헌터 등급 올리라고 했었지?”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홍석영을 살피며 대답했다.
“…네.”
“이번 주 안에 올려놓게.”
“…이번 주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나에 대해 수상쩍음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날 계속 써먹겠다는 말인데.
왤까?
정말 저 능글맞게 웃고 있는 머리통을 열어 보고 싶다.
단순한 안전 불감증일까? 자기 실력에 자신 있으니 모든 걸 다 막을 수 있다는?
아버지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인간인 이상 당연히 단점도 있고, 허점도 있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명동에서의 일이었다. 명동 던전을 관리하던 길드의 마스터는 아버지의 오랜 지인이었고, 그래서 아버지는 친구를 믿고 학생들을 맡겼다. 미노타우로스를 잡는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길드에서 학생들을 대피시켰을 거라 믿고 있었다.
내가 과거로 온 뒤로도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지. 김 군이 실종되고 실제로 있었던 내부 고발자의 정보를 잃었다고는 해도, 겨우 성과 무기가 같다고 대뜸 날 믿지 않나. 심지어 학교에 던져 놓기까지 했지.
…아니, 뭐. 그래도 나에 대해서는 나름 제재하긴 했다. 마력도 못 쓰게 했고, 그 시기에는 홍석영도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마력 하나 제대로 못 쓰는 아이들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홍석영이 옆에 있는 이상 불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그 뒤로는 다소, 어떻게 좋은 말로 포장해 주려고 해도… 너무 대책 없었지 않나. 강태우를 미끼로 쓰겠다는 것도 솔직히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잘못했다가는 다른 아이들도 휘말렸을 텐데.
아버지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우이록에게서 아버지의 존재를 뺏었던 것처럼 아버지에게서도 뭔가 빼앗아 버렸을까?
어린 제자를 허무하게 잃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우선하던 투박하지만 다정한 성격이 명동 이후로 형성된 거라면?
머리가 아팠다. 생각하지 말자. 이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면….”
나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등급은 저번에 말한 대로요?”
“음. 아니.”
홍석영은 단번에 부정했다.
B급이면 충분하다고 하더니?
“A급으로 맞춰 두게.”
“갑자기요? D급에서 A급으로 바로 올라가면 꽤 시끄러워질 텐데요.”
“그렇긴 한데….”
내 말에 수긍하면서도 홍석영은 물러서지 않았다.
“곧 포럼이 하나 열리거든.”
“포럼?”
“아, 벌써 그 시기가 됐습니까? 전 안 갈 겁니다.”
“그래서 우 선생한테 얘기하고 있지 않나.”
홍석영은 부활한 한태경을 옆으로 치워 버리곤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일 년에 한 번씩 전 세계 헌터들이 모여서 새로 발견된 몬스터나 미공략 던전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있거든.”
그건 나도 안다. 꽤 중요한 일이라서 아버지가 직접 챙기는 몇 안 되는 국제회의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그때보다 규모는 작긴 하겠지만 무시할 정도의 위상은 아니다.
어쨌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믿을 수 없는 정보보다야 포럼에서 나오는 공인된 정보를 믿는 게 훨씬 나으니까.
“이 헌터가 거기 명단을 확인했는데….”
그리고 포럼은 국제이능협회에서 주관한다. 협회 소속인 이미선이 참석자 명단을 확인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이다.
“우리가 잘 아는 호주의 유망주께서도 포함되어 있지 뭔가.”
“……그 녀석이요?”
“그래.”
홍석영은 씩 웃었다.
“호주? 유망주? 교장 쌤, 언제부터 해외 헌터까지 신경 썼어요? 누군데요? 저도 아는 사람일까요?”
홍석영은 한태경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포럼에서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로 등급 올려와.”
“그렇다면야. S급까지는 필요 없고요?”
“그건 혹시 모르니 남겨 놔. 사실 B급으로도 괜찮을 것 같지만… 그래도 A급이 적당할 것 같아서.”
홍석영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 남들이 물어보면 내 제자라고 하면 되겠지만.”
“…….”
어디까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다.
…머리를 열어서 무슨 생각 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진작 열어 봤을 텐데.
정말로.
* * *
“응. 응… 그러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물어볼게.”
“이런 건….”
정원 한구석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
아이들은 아직 용케 무사한 나무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심각한 얼굴로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 무어라 떠들어 댄다. 강태우마저 이승연한테 붙들려 어색한 얼굴로 그 사이에 끼어 있다.
“쟤들 뭐 합니까?”
나는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는 김채민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사실 이 파라솔도 원래는 없었는데, 어느 순간 생겼다. 컨테이너를 치웠다고 하더니 거기 있던 걸 다선 헌터들이 다시 가져온 건가 싶었다.
“귀엽지 않아요?”
김채민은 어딘지 모르게 몽롱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도 제정신이 아니군. 죄다 제정신이 아니다. 사실 마법사란 족속들은 다 그렇고, 대마법사라면 더 그렇지.
아침에 영역이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이미선의 펜션을 훑었다. 넓고, 좋다. 다연의 가족 별장이라. 이미선이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법사 입장에서는 다른 이의 영역에 와 있다고 느낄 수도 있겠군.
최소한 여기 있는 동안은 김채민에게 가까이 있지 말자. 나는 슬그머니 김채민에게서 멀어졌다.
“난 저 나이 때 뭐 했더라…. 저렇게 노는 거 보니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네….”
“그래서 쟤들이 뭐 한다고요?”
“우 선생님은 낭만이 없어요.”
김채민은 가볍게 눈을 흘겼다.
“저 꼴도 그다지 낭만으로 보이진 않습니다만.”
“애들끼리 으쌰으쌰 하고 있잖아요. 선생님이라면 응원해 줘야죠.”
“시범고가 정식 교육 기관이 아니라서 저희도 제대로 된 교사가 아닌 거 알죠?”
“…그거 말인데요.”
반쯤 넋이 나가 있던 김채민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여기가 진짜 고등학교가 된다면 말이에요.”
“네.”
“저희… 그거. 그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거?”
“원래 선생님 되려면 시험 쳐야 하잖아요.”
“…….”
“…….”
나는 하늘을 보았다.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어땠더라. 어차피 일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하나도 없으니 마찬가지로 일반 교사들이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일은 없다.
헌터나 마법사들, 아니어도 던전 관련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중에 교원 자격증을 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걸로 아는데.
“그건 홍 선생님과 이 헌터님이 해결해 주겠죠.”
“그, 그럼 임용 고시 준비 안 해도 돼요?”
“필요하다고 하면 하시려고요?”
“아뇨… 학교 수위로 취직할까 했죠.”
“…….”
역시 마법사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뭐라고 대꾸할 기력도 없어서 말았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니 김채민의 눈빛이 다시 흐려졌다.
“어머. 그런데 동생은요?”
“심심하면 나올 겁니다.”
“데려온 뒤로는 계속 옆구리에 끼고 다니더니.”
“계속 그래서는 어리광만 피울 테니까요.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그래선 안 되죠. 나중에 학교도 보낼 텐데.”
“맞아, 학교 다니고 싶어 한댔죠. 여긴 또래 친구들이 없어서 심심해서 어쩌나.”
갑작스럽게 또래 아이들이 있는 야생에 내던져지는 것보단 나이 차가 좀 있는 청소년 형, 누나들과 같이 적응기를 가지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싶지만.
“그러고 보니, 김 선생님.”
“네?”
“주말에 뭐 하십니까?”
“어머머.”
김채민은 입을 오므리며 나를 보았다.
“지금 데이트 신청하시는 건가요?”
“도청 가는 것도 데이트라고 생각하신다면요.”
“도청요?”
“등급 재심사 받아야 하거든요.”
“…….”
“…….”
내 말을 이해한 김채민은 이마를 찌푸렸다.
“면허부터 따실 생각은?”
“차도 없는데요.”
“여기 주차장에 굴러다니는 게 다선 차인데요! 한 대 빌려요!”
“남의 차를 어떻게 타고 다닙니까. 저 보험도 없습니다.”
“이 헌터가 다 내 주겠죠!”
그건… 부정하기가 어려운 말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김채민이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