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18)
애제자(5)
처음 위화감을 느낀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정확하다면 프랑스 남부의 던전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툴루즈 근방의 작은 마을에 나타난 A급 던전.
갓 A급이 된 아시아의 젊은 헌터가 아무 협약 없이 외국의 던전에 들어갈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이십 대의 홍석영이 그 던전 공략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공략대를 꾸렸던 길드 마스터의 호의 덕분이었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던전만큼이나 몬스터의 종류는 다양하다. 어느 순간부터 인류는 던전 안에서 발견되는 몬스터에게 익숙한 이름을 붙였다. 미노타우로스나 드래곤 따위의 신화와 전설 속 괴물의 이름부터, 매머드나 스밀로돈처럼 오래전 멸종된 동물의 이름까지.
홍석영이 들어간 던전도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나이가 많았던 길드의 헌터들은 어수룩한 젊은 헌터에게 자기네 나라의 던전에 대해 설명하길 좋아했다. 이 근방에서는 유독 요정 타입의 몬스터가 자주 나타난다든지, 던전도 숲이 많아 여차하면 싹 불 질러 버리면 좋다든지.
‘여기 던전도 요정이야. 녹색 피부를 가진 작고 귀찮은 놈들 말고,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예쁜 애들 있잖아. 보면 정말 사람 같다니까.’
거기에 더해서 확신하진 못하지만, 동족끼리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지 않는가.
그쯤 되면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 홍, S급 이상의 던전에 들어가 본 적 있나?’
A급 던전의 통행세를 감당할 수 있게 된 지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S급부터는 다른 세상이라고 보면 되네.’
원래 던전은 다 그런 게 아니냐고 물었다.
길드 마스터는 멀뚱히 질문하는 젊은 헌터를 향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야. 뭐, S급도 S급 나름이지만. 자네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는… 글쎄. 차라리 지금 등급에 안주하는 것도 좋을지도 몰라.’
‘마스터. 자라나는 새싹한테 괜한 소리 하지 마세요.’
‘한창 좋을 때잖습니까. A급.’
‘시끄러, 이놈들아.’
낄낄거리는 길드원들을 밀치며 길드 마스터는 신중한 얼굴로 말을 골랐다.
‘홍. 절대 잊으면 안 돼. 아무리 예쁘고 무해하게 보여도 결국 몬스터는 몬스터야.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길드 마스터는 게이트를 통과하며 말했다. 몸을 뒤흔드는 마력의 충돌이 지나가고, 마스터의 말이 이어졌다.
‘여긴 A급치고는 드물게 요정이 나오거든. 자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그래도 A급 던전은 A급인 이유가 있어.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기껏해야 한 마리 있다고 했던가. 물론 몬스터인 이상 방심하는 건 안 좋지만 말야!’
이후로는 요정에 대한 주의 사항이 계속되었다. 요정 타입의 몬스터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극히 드물다. 홍석영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인간과 아주 흡사한 생김새. 성별이 불분명한 중성적이고 아름다운 외모. 새가 지저귀는 듯한 목소리. 잠자리 날개처럼 반짝이는 날개.
그리고 잔혹하고 교활한 성정.
아름다운 얼굴이 화사하게 웃는다. 누구라도 보면 홀릴 것 같은 웃음이다. 그러나 지능이 높은 몬스터는 공략하러 온 헌터들을 역으로 사냥하기도 한다.
단순히 본능에 근거하여 던전 침입자를 물리치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헌터들의 수준을 가늠하여 사냥 방법을 달리한다. 자신들보다 수준이 약하다면 벌레를 짓눌러 죽이는 것처럼 가지고 논다. 정면 돌파로 없앨 수 없을 만한 수준이라면 함정을 판다. 공략대를 분산시키거나 약한 자부터 처리한다거나….
‘유럽 미공략 던전 중 요정 던전이 많은 게 괜한 이유가 아니야.’
그렇지만 젊은 홍석영에게는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를 얕잡아 볼 생각은 당연히 없지만, 인간형 몬스터라니.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존재에 대해서는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열심히 들었다. 베테랑 헌터들의 진심 어린 충고였다. 귀담아듣지 않으면 이쪽만 손해다.
그러나 던전 핵을 향해 전진할수록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홍석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길드 마스터에게 물었다.
길드 마스터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새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이 숲에 작은 동물이 있지는 않아 보이는데.’
‘새… 젠장! 요정이다! 다들 전투 준비!!’
잔뜩 우거진 수풀 사이로 아름다운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밤하늘을 닮은 반짝이는 남색 머리카락이 이질적이다.
요정은 요사스럽게 웃었다.
마법사의 공격이 명중했지만, 요정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수풀에서 나왔다. 입술이 움직이자 새소리가 다시 들렸다. 찌르르거리는 소리가 몇 번 멈추었다가 이어지고, 요정이 말을 했다.
‘찾았다.’
인간의 언어였다.
‘몬스터가 사람 말을 한다고?!’
‘찾았다. 홍석영.’
요정은 길드 마스터의 뒤에 서 있는 홍석영을 가리켰다.
‘어리구나, 어려. 아주 좋아.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겠지. 마침내 증오스러운 너를 죽일 수 있다. 마침내!’
사냥이 시작되었다. 도망치는 짐승 역할은 헌터들이 맡았다.
길드 마스터가 제일 먼저 죽었다.
‘젠장, 이게 무슨 A급이야!’
그다음으로 마법사가 죽었다.
‘게이트로 가!’
요정은 하나였다. 잡아 보려고 달려들었던 전투원들이 모두 죽었다.
‘게이트는? 우리 이렇게까지 깊이 들어오지 않았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당부를 하던 남자의 피를 뒤집어쓴 채 홍석영은 다른 길드원들과 함께 게이트를 향해 달렸다.
저 멀리서 게이트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남은 생존자의 수는 처음의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뒤에서 들려오던 새소리가 멈췄다. 홍석영은 본능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신이 있던 자리가 깊게 파였다. 공격에 휘말린 길드원 하나가 또 죽었다.
‘피했다고? 그래도 네놈은 네놈이라는 거구나. 하지만 네놈의 행운도 여기까지다. 내가 네놈 하나를 죽이겠다고 여기로 돌아왔는데…!’
함께 들어온 길드원들은 요정의 공격에 모두 죽었다. 홍석영은 복부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피를 보았다. 손으로 막아 보아도 역부족이었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요정은 활짝 웃었다.
기쁨에 겨워 파르르 떨리는 날개가 보였다. 그걸 보자 어릴 적 멋모르고 잡아서 뜯어 버렸던 잠자리가 떠올랐다.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하는 생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별 볼 일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며 죽고 싶지 않았다.
‘뭐, 뭐야!’
그래서 홍석영은 요정의 날개를 잡아 뜯었다.
‘왜! 왜!!’
요정은 여전히 인간의 말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렇게 돌아와서도 너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던 건가!’
요정은 절규했다.
‘증오스러운 자!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널 죽이기 위해 계속 돌아올 테니까…!’
창이 요정의 목을 꿰뚫었다.
홍석영은 던전 핵을 부수고 죽은 길드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던전을 나왔다.
이 일 덕분에 홍석영은 유명해졌다. 한국으로 귀국한 홍석영을 두고 국내 헌터의 희망이라든지 하는 말이 있었지만 홍석영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몬스터는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홍석영이 수십 년 동안 풀게 될 수수께끼의 시작이었다.
* * *
“그 뒤로 말이야….”
홍석영은 느릿하게 말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더라고. 나를 기다렸다는 놈들이.”
홍석영은 손가락을 접으며 던전 이름을 하나씩 말했다.
툴루즈의 던전. 괴팅겐의 던전. 트렌델부르크. 블라우제. 케팔로니아… 유럽에 집중되어 있긴 하지만 다른 대륙에도 없지는 않았다. 중국과 뉴질랜드, 아메리카에서도 하나씩.
전 세계 곳곳의 열 개 남짓한 던전들.
“주로 요정이었지. 인간형이라서 그런지 꼭 자기네 입으로 떠들어 대서.”
홍석영은 접은 손가락을 펼치고 손을 털었다.
“더 있을 수도 있어. 대충이라도 사람 말을 흉내 낼 줄 아는 놈들만 체크한 거라.”
아라크네 같은 놈들이 으르렁거리면 이쪽은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잖나.
홍석영이 태평하게 덧붙이는 말에 애초에 아라크네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이 없다고 지적할 정신은 없었다.
지금은 홍석영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도 벅차다.
미래에서 온 몬스터라니?
“처음에야 당황했지, 나머지는 죽이는 데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 손 많이 가는 놈이야 있긴 했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입만 뻐끔거렸다. 홍석영은 내 얼굴을 보더니 픽 웃었다. 기분이 나빠졌다.
“매번 내가 방해된다느니, 종족의 원수라느니 지껄이는 놈들을 보다가 드디어 헌터가 과거로 돌아왔어. 인간이 왔다고! 내 기분이 어떨 것 같나?”
“…….”
“자, 말해 보게. 어떻게 과거로 돌아왔지? 미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지? 왜 여기로 오게 된 건가? 얼마나 먼 미래에서 왔지?!”
홍석영은 당장이라도 나에게 달려들 것처럼 흥분해서 물었다.
나는 멍하니 그런 홍석영을 보았다.
얼마나 먼 미래에서 왔냐고?
딱 이십 년이다.
내가 여기로 오게 된 이유?
나도 모른다. 내가 원해서 온 게 아니다.
미래에 있었던 일?
멸망.
어떻게 과거로 돌아왔냐고?
지네의 사체가 사라진 뒤 나타났던… 아이템으로.
그래. 그 아이템. 시계처럼 생긴 그 정체 모를 아이템.
내가 과거로 온 이후로는 막연히 사라지지 않았을까 했었다.
사람 하나를 통째로 과거로 날려 보내는 아이템이 일회용이 아니라면 더 곤란하지 않은가. 적어도 내가 정신을 차린 명동의 길드 사무실에는 그 아이템과 비슷하게 생긴 것은 없었다.
그래. 타임 패러독스니 어쩌구 하는 걸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시점에 그 아이템이 존재할 수도 있다. 평행 세계니 뭐니 하는 복잡한 이론은 다 집어치워라.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날 과거로 돌려보낸 아이템이 존재한다면, 다른 놈들이 손에 넣고 사용했을 수도 있지. 어쩌면 그 지네도 그런 놈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최소한 지금 시점의 방이동 던전에 있는 지네는 작고 귀여운 크기지 않은가. 서울을 오염시켰던 미친 크기가 아니라고.
“그리고…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아직도 남았다고?
“자네 정말로 내 제자 맞지?”
“…….”
홍석영은 턱을 긁적거렸다. 어쩐지 힘이 빠진다.
내가 미래에서 왔다고 확신하면서 여전히 그게 궁금해? 내 눈빛을 봤는지 홍석영은 헛기침을 했다.
“그렇게 보지 말고. 제자라고 확신했는데 아니면 쪽팔리잖나.”
“당신 제자가 몇인데 그런 소리를 합니까.”
“내가 제자를 몇 명이나 뒀는데?”
홍석영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되물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시범고 졸업생이 몇 명인데요.”
“아, 시범고? 그건 제자라기보다는 학생이지. 뭐, 그것도 제자라고 하면 제자이기는 한데. 내가 말하는 건….”
홍석영은 말을 하다 말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미래에서 온 건 맞지?”
“네.”
인제 와서 부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럴 거라면 홍석영이 미래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을 때 무슨 헛소리냐고 반응했어야 한다.
그리고… 나쁘지 않다. 정말로. 몬스터가 그 아이템을 썼다는 건 의외지만, 더 이상 내가 미래 지식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말 아닌가.
멸망을 막을 수 있다.
“역시. 그리고 내 제자고? 아니,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건….”
홍석영은 미간을 좁혔다. 몇 가지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 보는 듯하다가, 마침내 적절한 단어를 찾았는지 말을 이었다.
“내 후계자냐는 거지.”
“…후계자?”
“나도 애들한테는 몇 개 가르쳐 주긴 하지. 수업하면서. 어떻게 움직이면 더 좋을지 같은 거. 하지만 애들한테도 애들 스타일이 있어. 나는 그거까지 뜯어고치지는 않아.”
“…….”
“하지만 자네 움직임은 달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나와 똑같아. 한태경이도 그랬잖아? 내 움직임을 빠르게 돌려 놓은 것 같다고.”
“…그건.”
홍석영은 작게 미소를 띠며, 그러나 내가 봤던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우리 이제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