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19)
애제자(6)
홍석영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더 숨길 것도 없잖나?”
홍석영 또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유들거리며 말했다.
숨길 게 없다고?
왜 없겠어?
천천히, 홍석영의 발언으로 마비되었던 감각을 이성이 따라잡았다.
이성은 홍석영의 말을 곱씹고, 비웃었다.
내가 자신의 후계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외부에서 홍석영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건 오현욱이었다. 하지만 관리청 내부에서는 유지은이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나도 그 목소리 중 하나였다.
오현욱이야 외부 길드 사람이었으니 홍석영의 완벽한 후계자가 되기에는 어렵지. 반면 유지은은 관리청 출신에다가 시범고 시절에도 아버지가 꽤나 옆에 끼고서 가르쳤다. 최소한 시범고 출신 중에서는 유지은만큼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없다.
나?
난 시범고 출신이 아닌데.
…이건 농담이고.
아니, 사실 농담이 아니다. 내가 아버지한테 배울 수 있었던 건 시범고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뭣 때문이겠어. 아들이니까 배웠지.
그리고 시범고든 아들이든 떠나서 헌터 홍석영의 움직임을 닮았다는 이유로 후계자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홍석영의 위상은 그렇게 낮지 않다.
유지은이 오현욱 대신 후계자 취급을 받았던 이유?
아버지처럼 무서운 속도로 던전을 공략하고, 미공략 던전의 공략에 힘쓰며, 더해서 시간 날 때마다 사회봉사 활동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석상에서 아버지의 옆에는 항상 유지은이 있었다. 내가 아니다.
내가 괜히 유지은을 아버지의 애제자라고 불렀겠나. 다 이런 정황들이 모여서 그랬지.
후계자는 유지은이었다. 내가 헌터가 되지 않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징계로 라이센스가 정지된 한태경 대신 던전을 돌았을 때, 내게 시선이 몰리려던 걸 아버지가 막아 줬다. 내 헌터 등급은 일종의 대외비로 처리되었다.
유지은이 날 낙하산이라고 불렀던 것도 다 그래서였다. 앞으로 나설 생각은 없으면서 아버지에게 보호만 받는다고.
…아마 아버지의 애제자라고 할 수 있는 건 나였겠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제자. 하지만 그 이상의 역할은 없었다. 내가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재야. 아저씨가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해 줄게.’
나는 어깨에 힘을 풀었다. 이제야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지금 저 홍석영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시범고가 헌터 아카데미로 바뀌고, 관리청이 만들어졌을 무렵, 아버지는 자주 손이 부족하다고 한탄하곤 했다. 자기가 두 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미래에서 자신의 후계자로 추정되는 남자가 뚝 떨어졌다?
후계자라면 자신의 의중도 잘 알겠지? 심지어 미래에서 왔으면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는 최단 루트도 알겠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무엇을 하면 좋을지 다 알지 않을까?
내가 생각해도 훌륭한 노동력이다. 원래 후계자라는 게 다 그렇지. 큰 유지은도 아버지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대타 노릇을 했다.
난 그렇게 취급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었으니까. 원래 자식이란 존재는 부모에게 어리광을 피워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이렇게 굴어도 아버지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말하는데, 당시에는 아버지가 친아들에게 해 주고 싶었던 일을 내게서 대신 이루려고 한다는 자격지심에 시달렸었다. 나의 지독한 사춘기도 그게 원인이었다. 나도 참, 어렸다니까.
내게서 친아들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봤다고 아버지가 그랬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나는 순진하지 않았다. 헌터가 되지 않겠다고 한 것도, 하지만 아버지의 곁에서 일했던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결국 깨닫기는 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홍석영의 아들.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모든 것을 따라 하고 싶었던 아들.
애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니 알겠더라. 내가 말해 주는 걸 어떻게든 해 보려고 꼼지락거리는 게 얼마나 귀여운 건지.
젠장.
그런 건 말로 표현하란 말이야.
…아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충분히 표현했다. 내가 그걸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지.
‘아저씨는 내가 헌터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음? 헌터 하기 싫다며?’
‘네.’
‘그럼 하지 마. 일찍 죽기 좋은 직업이야.’
‘아저씨도 헌터잖아요.’
‘난 배운 게 없어서 이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는 거고. 희재, 넌 똑똑하니까 뭘 해도 잘할 거야.’
그것도 진심이었을 거다.
아버지가 정말 나를 자신의 뒤를 이을 헌터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기어이 날 설득했을 거다. 십 대 초반 어린애 하나 구슬려서 원하는 바를 못 얻어 냈을까.
나는 어쩐지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홍석영을 보았다.
후계자. 후계자라.
“제가 후계자가 아니면요?”
“음?”
“제가 후계자가 아니면 문제 있습니까?
“문제라기보다는….”
홍석영은 눈을 끔뻑였다.
“그렇게 내 움직임을 따라 하는데 아니라고?”
“도플갱어일 수도 있잖습니까.”
상대의 모습과 능력을 그대로 따라 하는 몬스터. 도플갱어.
내 말에 홍석영은 가만히 눈만 계속 깜빡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미래의 몬스터는 자기가 몬스터라고 밝히나 봐?”
“…….”
“아니면, 미래에는 몬스터의 수명도 해결되었나? 던전 밖에 나와서도 한 달 이상 살 수 있어? 그러면 미리 말해 주게. 골치가 많이 아파지니까.”
“…아뇨. 제가 온 미래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달밖에 못 삽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그렇게 밥 먹듯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아직도 이 행성의 포식자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다.
몬스터의 수명.
한국이야 땅덩어리가 좁으니 던전이 터지면 헌터들이 수습을 바로 해 버리지만 미국이나 아프리카, 하다못해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산이 많은 일본에서조차 몬스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몬스터가 민가를 습격하지 않는 이상 놔둔다. 한 달만 버티면 알아서 죽으니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인류의 절반 정도는 몬스터의 먹이가 되었을 거다.
“보아하니 명동에서 그랬던 게 과거로 막 와서인 것 같은데. 그럼… 사 개월쯤 됐나? 몬스터는 그렇게 못 살아.”
“…….”
왜… 논리적이지?
짜증 난다, 진짜.
몬스터라고 믿는 것보다야 당연히 인간이라고, 그것도 본인의 후계자라고 믿는 게 좋긴 하다. 좋긴 한데, 왠지 저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속에서 울컥하는 게 있었다.
“제가 몬스터고, 이 인간의 육체를 훔쳤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랬어?”
“…….”
젠장!
“인간의 몸을 뒤집어쓰는 몬스터가 있긴 한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모른다.
“그런 악독한 놈이 과거로 오자마자 하는 짓이 민간인과 헌터 지망생 오십여 명 구하기다? 몬스터든 인간이든 상관없어. 어느 쪽이든 감사할 뿐이지.”
“…….”
그런가.
결국 그때 아이들을 구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다. 애초에 구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서 행동한 결과가 아버지의 믿음이라면 충분하지.
물론 눈앞의 남자가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미니미가 홍석영을 아버지로 둔 나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저 사내도 우희재를 아들로 둔 남자가 될 수 없을 거다.
그래서 나는 홍석영의 아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당신의 아들이 되어, 당신의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으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입씨름하는 게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네.”
“음?”
“뭐… 후계자 비스름한 거긴 했습니다. 대놓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요.”
“그래?”
“솔직히 저도 하기는 싫었지만….”
“내가 시켰어?”
“시켰다기보다는 일거리를 안겨 주셨죠.”
“딱 내가 할 짓이군!”
홍석영은 남의 속도 모르고 호방하게 웃었다.
* * *
홍석영의 후계자 타령에 말려들어 엉뚱한 얘기만 해 버렸는데.
사실 정말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미래에서 온 몬스터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아버지는 그런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 얘기는 내가 자네에게 안 했나?”
“안 했습니다.”
“그래? 미래에는 내가 어떻게 해결했을 수도 있겠군. 자네가 어느 연도에서 넘어왔다고?”
“…2041년입니다.”
“이십 년 뒤라. 나도 놈들한테서는 단편적인 말밖에 듣지 못해서 자세히는 모르네. 대부분 날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죽이려고 하더라고.”
홍석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미래에서 온 암살자 따위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듯.
“요정 말고는 없었습니까?”
“있었지. 제일 많았던 게 요정이었고, 말고는… 드래곤이 한 마리 있었고. 고스트 타입도 있었고….”
꽤 다양한 몬스터들이 홍석영의 입으로 거론된다. 기껏해야 열 개 남짓한 던전에서 만났다더니. 그것치고는 종류가 많았다.
나는 마력 시계를 흘깃 보았다. 해외 헌터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던전에 관해서는 다르다. 공략한 던전에 대한 정보는 좋은 참조 자료로서 공개된다. 홍석영이 젊을 때 공략한 던전이라 자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봐서 손해 볼 건 없다.
아니. 생각해 보면 마력 시계를 숨길 필요도 없는데.
내가 양아들이라는 사실은 알리고 싶지 않지만 그 외의 정보를 숨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 쪽에서도 더 털어놓는 편이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기 쉽다.
예를 들면… 지네가 나오는 방이동 던전처럼.
“그래도 한동안은 보지 못했어. 놈들이 전략을 바꾼 건지….”
홍석영은 히죽히죽 웃었다.
“자네가 과거로 온 덕분에 놈들이 과거로 오는 방법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고.”
“…….”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나는 홍석영의 말을 정정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신빙성 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지 않은가.
굳이 과거로 넘어올 필요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죽이고 싶어 했던 아버지를 죽이는 데에 성공했고, 인류는 멸망했다고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정체 모를 시계가 나보고 뭐라고 했었지?
최후의 생존자?
가능성이 확인된 자격이라고 했으니까 그 시점에서 생존자는 더 있었겠지. 하지만 그게 그거다.
“제가 과거로 오기 직전에 말입니다.”
“음?”
“죄다 망했습니다.”
“…음?”
“당연하지 않습니까. 미래가 평탄하면 과거로 넘어왔겠습니까? 엉망이니까 과거로 넘어왔죠. 아니, 사실 말하면 전 넘어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날이 떠오른다.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맴돈다. 나를 내려 주었던 말간 얼굴의 조종사. 거리를 나뒹굴던 새까맣게 탄 시체들. 그 사이에서 조용히 숨을 내뱉고 있던…
유지은.
“다 죽었다고요. 선생님도, 유지은도.”
눈을 감았다.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어서도 죽기 싫더라고요. 서울을 불태운 놈이 절 봤는데, 저 하나로는 놈을 잡을 방법이 없더라고요.”
“…….”
“도망칠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에 걸어 봤습니다. 그게 절 과거로 날려 보내는 거였더라면 안 했어요.”
나는 과거로 온 다음 처음으로 솔직하게 심정을 드러냈다.
“차라리 거기서 죽는 게 마음이 편했을 겁니다.”
짝.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게.”
그리고 홍석영에게 뺨을 맞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