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20)
애제자(7)
눈을 커다랗게 떴다.
소리는 요란했지만 아프진 않았다. 그래도 깜짝 놀라 홍석영을 보았다.
홍석영은 미묘한 얼굴로 손을 쥐었다 폈다.
“미안하네. 하지만 사과하진 않겠네.”
무슨 헛소리야. 이미 사과했잖아.
그러나 나는 홍석영의 헛소리를 지적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저씨가 잠깐 논리적으로 굴었다고 해서 논리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건 아니지.
“…아뇨. 저도 제가 멍청한 소리를 한 건 알고 있.”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홍석영은 복잡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거기서 내가 죽었다고 했지?”
내 입이 찢어져도 이 질문에 대답할 일은 없다. 한 번으로 족하다.
홍석영은 딱히 내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자신의 말을 곱씹었다.
“다 죽었다고.”
“…….”
“죄다 망했다라.”
홍석영은 큭큭거리며 웃었다. 드디어 이 아저씨가 돌아버렸나 싶었다. 그래. 오래 버텼지.
“그럼 몬스터들이 결국 성공한 모양이군.”
“…….”
“말해 줘서 고맙네.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네?”
홍석영은 양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두드렸다. 그동안 장난스럽게 내 어깨를 두드렸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힘든 프로젝트를 끝낸 뒤 고생을 치하하는 것처럼.
묵직한 손길이었다.
하지만 눈물 날 정도로 따스하기도 했다.
“그간 고생 많았어. 이제 나한테 맡기고 쉬어도 되네.”
“…….”
나는 가만히 홍석영을 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감동받을 타이밍인 것 같은데.
문제는 발화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뭐지?
나는 홍석영이 그런 말을 내뱉는 저의를 짐작하지 못해서 홍석영의 얼굴만 뚫어져라 보았다.
아버지는 사람이 좀 극단적이다. 시범고 애들을 두고 말하던 걸 떠올려 보아라. 결국 박서현과 오현욱이 어떻게 자랐는지 생각해 보라고. 좋게 말하면 아이들의 능력을 믿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방치한 거다.
나중에서야 아버지도 이미선과 이야기하면서 인정했다.
‘난 교사가 되면 안 됐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끝까지 그 길을 밀고 나갔던 건 아버지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그걸 알고 난 뒤에는 사람이 많이 유해졌다고… 이미선이 유지은에게 말하는 걸 훔쳐 들었다.
홍석영이 아버지처럼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 올까. 그 순간이 오게 되더라도 한참 뒤의 일이다.
지금의 홍석영은… 기준이 자기 자신이다. 죄다 자기만큼은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인간이다. 그걸 못 한다? 그럼 젓가락질 하나 똑바로 못하는 머저리 취급당하는 거다.
내가 이미선과 다른 시범고 졸업생들에게 들었던 홍석영은… 이런, 쉬어도 된다고 말할 사람이 아니다. 특히 부하 혹은 후계자에게는.
유지은을 봐라. 아버지는 유지은 보고는 쉬라는 말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체력 배분 잘하라는 말은 했어도.
“왜 그렇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는가?”
홍석영은 내 반응에 퍽 기분이 상한 티를 냈다.
“아니….”
나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헌터가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은….”
“나한테 맡겨라?”
“나한테 맡기라는 말이라고….”
“내가 그런 것까지 가르쳤어?”
홍석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얄미울 정도로 즐거워했다.
“…가르쳤다기보다는, 늘 하는 말이니까요.”
“크크큭. 그래, 그렇지.”
홍석영은 한참을 더 웃다가 말했다. 그렇게 웃은 것치고는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래도 이건 진심이야.”
“…….”
“내가 어쩌다가 자네를 제자 내지는 후계자로 들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 건.”
“아니. 말해 주지 않아도 돼. 스포일러는 재미가 없잖나.”
스포일러… 가 될 수가 없는데. 내가 그 과정을 싹둑 도려내 버렸거든.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홍석영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과거로 온 게 원한 게 아니었다고? 그럼 나도 자네에게 욕심낼 수 없어. 솔직히 말해서 지금 자네와 5분 동안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난 지난 10년보다 더 많은 단서를 얻었거든.”
“…….”
“원한다면 자네 동생과 같이 내 일에 전혀 관계되지 않게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네.”
이 아저씨는 한 번도 내 예상대로 행동한 적이 없다.
“…네?”
“음. 물론… 미래에 대한 일을 물을 순 있어. 하지만 그 이상 바라지 않아. 그동안 시범고에서 일하기 힘들었지? 자네가 내 후계자라면 다들 아는 얼굴이었을 거 아냐. 지은이… 지은이도 죽었다고 했으니.”
“…….”
“죽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걸 보는 건 힘들었을 테지.”
어깨에서 홍석영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대신 홍석영은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쉬어도 괜찮아. 나를 도와주지 않아도 되네.”
“…무슨 소립니까. 미래에서 온 몬스터들이 있다면서요.”
“음.”
“몬스터들의 목적이 선생님을 죽여서 자기네 뜻을 이루려는 거라면… 그걸 막는 데 제 도움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이십 년 뒤에 다 죽는다니까요?! 전 세계의 던전이 동시에 터져셔! 어떻게 제가 손쓸 방법도 없이!!!”
“그러니까 하는 말이네.”
홍석영은 나를 꽉 껴안은 채 가벼운 어조로 실실 웃었다.
“난 말이지. 이십여 년 전, 프랑스에서 그 요정 놈을 만난 이후로 나를 죽이려 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해 왔네. 미래에서 나를 죽이기 위해 왔다는 놈들 말이야.”
“…….”
“내가 놈들을 처리하는 게 쉬웠다고 얘기했었지? 그래. 나도 솔직하게 얘기해 보지. 그게 정말 쉬웠다고 생각하나?”
홍석영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내가 비각성자였다면 진작 비명을 질렀을 거다.
“미래에서, 오로지 날 죽이기 위해 온 놈들을 잡는 게 정말 쉬웠다고?”
“…….”
“미래의 나는 대단한 놈이 되었겠지. 그러니까 놈들이 눈이 뒤집혀서 덤벼들었던 게 아닌가. 그래서 난 죽을 수 없었어. 아득바득 살아남아서 몬스터의 위협이 되어야 하니까. 내가 죽으면 최후의 보루가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엇에 대한 보루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이 그렇게 말하더군.
홍석영은 가볍게 덧붙였다.
홍석영의 목소리는 농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밝고 경쾌했다. 하지만 나를 붙잡는 힘은 그렇지 않다.
이 아저씨. 나한테 얼굴을 숨기고 싶어서 날 끌어안았군.
내가 미니미에게 하던 짓과 똑같아서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것까지 아버지에게 배웠던가. 내 움직임을 못 알아봤다면 더 이상했을 거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할지. 뭐? 미래에서 온 몬스터가 날 죽이려 한다고? 이걸 누구한테 얘기하겠는가?”
“…이 헌터 있잖습니까.”
“이 헌터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할 텐데. 난 그런 몬스터를 살려서 이 헌터 앞에 데려다 놓을 자신이 없네. 이 헌터를 내가 공략하는 던전에 데리고 갈 수도 없고.”
“…….”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나도 모르니 나름 대비를 해 보겠다고 학교를 만들었어. 아직 걸음마는커녕 기어 다니는 수준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홍석영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았다.
“그게 맞는 건가 싶던 찰나에, 자네가 나타났지.”
“…처음부터 바로 알았습니까?”
“자네가 미래에서 온 거? 당연히 몰랐지. 애들 가르치면서 보였던 움직임이 나와 닮지 않았으면 못 알아챘을걸? 심지어 그때만 해도 자각하진 못했지. 내 본능은 알아차렸던 모양이지만.”
“…….”
“그래. 아마 자네가 아니었으면 명동에서 그 사람들도 다 죽었겠지. 아닌가?”
“…….”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면 맞는군.”
주먹을 꽉 쥐었다.
“자네는 과거를 바꿨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자네가 아는 시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겠지.”
이런 일이 두 번 일어나기에는 나도 남아나지 않을 거다.
“그럼 나도 바꿀 수 있어.”
“…과거를요?”
“미래를.”
홍석영은 어떠한 폭풍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같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왔다던 그 미래, 내가 바꿀 거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
“…….”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홍석영이 이십 년을 더 버티지 못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홍석영도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자네는 나에게 희망이네. 최소한 내가 이십 년은 더 버틸 수 있고, 미래 또한 바꿀 수 있다는 증거.”
손에 힘을 풀었다.
아버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품고 던전에 들어갔을까.
미래에서 왔다는 몬스터에 시달리면서, 시범고를 세우고 관리청을 만들었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을까.
항상 자신만만하던 웃음과, 그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실력과 위업 뒤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처음으로 아버지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항상 완벽한 사람이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경쾌한 일부 이면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고뇌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게.
아버지는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안 했지.
아들한테 그런 우울한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유지은 대신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나섰다면 말해 줬을까? 유지은은 이걸 알고 있었을까?
홍석영은 날 뭘 믿고 이런 속내를 다 털어놓고 있을까?
하지만 답은 알고 있었다. 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미래에서 온 후계자라는 막연한 인연에 매달릴 만큼 힘들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죽는 게 마음 편했을 거라는 소리는 하지 말게.”
“…네. 죄송합니다.”
나는 어쩌면, 마냥 아버지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아들이 아니라 이렇게… 힘든 일을 허심탄회 털어놓을 수 있는 믿음직한 아들이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관리청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도왔던 거고.
내가 이렇게 유능하다. 아버지를 도울 수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우습다. 정작 영영 이룰 수 없는 일이 되어서야 내 마음을 알게 된다니.
“자네는 할 만큼 해 줬네. 그러니 나에게 맡기고 쉬어도 괜찮아.”
“…만약 실패하면요.”
“아니, 그런 우울한 소리는 왜 하나! 난 홍석영이야. 실패할 리 없네.”
“했다고요.”
“과거에 연연해서는 멋진 헌터가 될 수 없어.”
“엄밀히 따지면 미래죠.”
“음… 지은이나 키워 볼까? 자네가 나 다음으로 언급한 이름이잖나.”
유지은을 또 후계자 삼으려고?
나는 홍석영을 밀쳤다.
“안 쉴 겁니다.”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리면 안 돼.”
“안 쉴 거라고요. 제가 없으면 선생님은 아무것도 못 하는 반푼이잖습니까.”
“반푼이라니….”
아들이 되는 걸 포기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난 후계자라도 되어야 한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이걸 내가 미쳤다고 포기하겠냐.
“명동 사태가 완만히 해결되어서 시범고에 대한 반대는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관리청 설립이 영 지지부진한 모양인데…. 관련 법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선생님한테만 맡겨서는 될 일도 안 돼요. 먼저….”
“자, 잠깐. 이런 일은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해! 급하게 결정해서는 나중에 또 후회할 일이 생겨.”
“그건 이미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이 없긴 한데!”
홍석영은 허둥거리며 손을 휘저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꼴이 역시, 아버지와 같았다.
이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아버지다. 그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게라면 진정하라고 타박을 줬겠지만, 이 사람한테는 그럴 수 없다.
나는 홍석영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제가 돕게 해 주세요, 선생님.”
“…….”
홍석영은 뭔가 못마땅한 듯 입술을 실룩이다가 한숨을 내쉬며 내 손을 잡았다. 내가 고집을 피울 때 져 주며 하는 몸짓이었다.
“혹시라도 휴식이 필요하거든 말하게나.”
“월급 올려 주실 생각은?”
“등급 재심사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리게.”
“…등급마다 급여가 다릅니까?”
“당연하지. 나중에 업계 연봉이나 한번 검색해 보게. 난 딱 평균치를 준 거라고.”
“아하…?”
홍석영은 얼빠진 내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홍석영을 따라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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