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21)
새싹들(1)
[…결과에 따라 등급이 재조정됨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헌터 라이센스에 조정된 등급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국제이능협회 한국지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2021년 9월 30일까지 등록해 주셔야 합니다.]A급 헌터가 되었다.
요 이틀간 나에게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홍석영은 오늘 아침 등기로 도착한 등급 재심사 결과지를 보고 쭈뼛쭈뼛 다가왔다.
“크흠. 어쩐 일로 일 처리가 빠르지? 보통 일주일은 더 걸릴 텐데.”
나는 결과지를 뒤집었다. 인터넷 사이트 주소나 등록 방법이 있다. 더 볼 만한 건 없었다.
“보증인이 보증인이잖습니까. 누구 이름이 걸려 있는데 일 처리를 늦게 하겠냐고요.”
다 큰 사내 둘이서 술도 마시지 않은 채 얼싸안고 감정을 토로하는 건 두 번은 못 할 짓이었다. 정신이 들고 나서는 민망함밖에 남지 않는다. 솔직히 나도 다 크고 난 뒤로는 아버지와 껴안거나 하는 낯부끄러운 짓은 한 적이 없다.
그래도 나는 속 알맹이야 어쨌든 아버지니까 거부감이 덜했지, 갑자기 팔자에도 없던 다 큰 제자가 생기고 달래야 했던 홍석영의 입장은 어땠을까.
“커허험.”
보다시피 홍석영은 나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애꿎은 목만 혹사해 댔다.
오죽하면 김채민은 나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홍석영이 내 돈 떼어먹었냐고.
뭐, 저 사람이 그런 약한 소리를 한 게 인생에 몇 번이나 될까. 색다른 경험이었겠구나 싶어서 되레 나는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워낙 민망해하니 내 부끄러움은 가신다고 해야 할까.
저러는 꼴이 웃기기도 했고.
홍석영은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아, 어쨌든 축하하고. 이거나 받게.”
김채민의 의심대로 돈을 떼어먹진 않았지만, 홍석영은 새로운 근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꼼꼼히 읽었다.
여전히 나는 길드 미미 소속이다. 바뀐 건 월급 말고는 딱히 없다. 굳이 추가하자면 기본 숙식 제공이 글자로 명시되었을 뿐이다.
나는 볼펜을 들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사람들은 그 월급 받고 어떻게 생활합니까?”
“그런 말 잘못하면 재수 없다고 욕먹어.”
“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이게 헌터 평균이라면서요.”
“정확히는 D급 헌터.”
“헌터 생활 하려면 나가는 비용이 많잖습니까. 하다못해 힐러한테 손가락 좀 붙여 달라고 했다가는 파산하겠는데요.”
“그거야 자네가 받던 게 딱 기본급이었으니까 그렇지.”
홍석영은 목을 쭉 내밀어 내가 사인하는 걸 지켜보았다.
“보통은 던전을 공략하거나 던전에서 튀어나온 몬스터 잡으러 돌아다니잖나? 자기 하는 거에 따라 성과급이 나오니 기본급이야 당연히 최저 임금으로 책정되지.”
그런 거였어? 내가 길드 생활을 해 봤어야 알지.
…그러고 보니 매년 길드에서 몬스터 부산물이나 공략 수수료 비율이 어쩌고 하면서 말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게 이쪽 얘기였나. 거긴 내 담당이 아니라서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관리청에서는 공략한 던전마다 추가 수당이 나오다 보니… 이거랑 별 차이도 없나?
나는 계약서를 죽 읽어 내리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던전이야 그렇다 치고, 애들 가르치는 건 따로 안 쳐줍니까?”
“그래서 숙식은 따로 챙겨 주는 걸로 적어 놨잖나.”
“…….”
“다른 귀찮은 일들을 내가 처리해 주고 있는데. 그 대가라고 생각하게.”
나야말로 홍석영이 해야 할 귀찮은 일을 대신 처리해 주고 있지 않은가.
“신원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자네 동생 일도 있고. 혹시 누가 내 주위를 캐고 다닐까 봐 이런저런 알리바이도….”
이렇게 나오시겠다?
“아, 혹시 걱정할까 봐 얘기해 주는 건데 자네가 명동에서 나한테 붙잡혔던 거 기억하지?”
“…네.”
“체포 기록이나 전부 삭제했으니 그렇게 알아 두게. 이 헌터가 고생했어.”
“…….”
나는 홍석영을 보며 혀를 찼다.
“알겠습니다. 알았다고요. 애들 가르치는 거야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자네….”
“왜요?”
“그동안 용케도 얌전히 있었군?”
홍석영은 어쩐지 감탄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알 텐데.”
“모릅니다.”
“그럼 그렇다고 하고.”
“…….”
짜증 난다.
이렇게 조금씩 친해지면 한 번쯤은 찔러도 가만히 있어 주지 않을까? 한태경은 찔러도 괜찮다며. 본인을 찌르는 것도 괜찮아야지.
“앞으로 들어가는 던전은 다 챙겨 줄 테니 걱정 말고.”
“그건 당연하죠.”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물었다.
“저도 던전에 데리고 가시려고요?”
“자네 정도 되는 인력을 놀릴 순 없지 않나.”
“애들 가르쳐야죠. 그게 제 주 업무잖습니까.”
“그래도 자네가 들어가야 하는 던전이 있을 테니까.”
“뭐… 그렇죠.”
나는 더 반항하지 않았다. 던전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을 거부할 마음은 없다. 홍석영의 말대로 내가 들어가야만 하는 던전도 있으니까. 아니, 홍석영이 날 두고 가겠다고 해도 거절할 거다.
홍석영을 노리고 미래에서 돌아온다던 몬스터들. 그놈들을 잡아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내가 서울에서 본 몬스터들도….
역시 첫 타자는 방이동 던전이 좋겠다.
딱!
홍석영은 내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어이고, 벌써부터 그렇게 인상 쓰지 말고. 아직 이십 년이나 있지 않나. 하나씩 천천히 해치워 보자고.”
“…….”
“방주도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방주와 관계가 있다고 봅니까?”
“던전에 수상쩍은 짓거리를 해 놓는 놈들이 관계가 없다고? 없는 쪽이 더 이상해. 왜, 자네가 아는 미래에서는 다른가?”
“다르다기보다는….”
나는 내 시간 선에서 방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전했다.
“…선생님이 오래전에 끝장을 보신 줄 알았거든요.”
“그렇단 말이지….”
나는 홍석영의 눈치를 살피며 내 추측을 말했다.
“방주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고 저번에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아마… 한쪽만 잡고 한쪽은 놓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
“…서, 선생님?”
“내가….”
홍석영은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멍청한 짓을 했다고? 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저야 모르죠.”
“왜?!”
“아니, 선생님이 방주를 쫓기 시작했을 때는 제가 아직 요만한 어린애일 때라서 말입니다. 그 뒤로 정말 몰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계속 추적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도 아니라면 완전 박멸 했을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내 뒤를 이을 자라면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다 알았으면 제가 과거로 와서 얌전히 선생님 밑에서 교사 노릇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다 때려잡고 있었지.”
“…….”
“…….”
홍석영의 표정이 침착해졌다.
“하긴,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기란 힘든 법이지.”
뭐라는 거야.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아십니까?”
“자네, 나보다 강해?”
“…….”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긴 한데…. 반칙 아냐?
내가 인상을 잔뜩 쓰고 있자 홍석영은 뭐가 그리 웃긴지 옆에서 킬킬거리며 웃었다.
성격 나쁜 노친네 같으니라고.
그래도 홍석영은 한결 가벼워 보인다. 기분 탓인가. 아닌 것 같다. 그간 홍석영이 나를 얼마나 경계하고 있었는지는 경계를 풀고 나니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서로 주고받지 못한 정보는 더러 있지만 그건 차츰 해결하기로 했고.
어쩌면 자신의 짐을 덜어 갈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았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자, 어서 서명이나 마저 하게.”
“아직 다 못 읽었습니다.”
문제 되는 사항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홍석영과 이야기하는 게….
아.
홍석영이 용케 얌전히 있었다고 얘기한 게 이거였군.
나도 마음의 짐을 하나 덜어 버린 듯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미래에 대한 정보를 마음껏 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상대가 홍석영이기 때문일까. 그렇겠지. 어쨌든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믿을 수 있는 어른 아닌가. 형은, 예외로 두고.
“다 됐습니다.”
“음.”
“그나저나… 포럼이 정확히 며칠이라고 했습니까?”
미래의 정보로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확실한 게 낫다. 이건 우리 둘 다 동의한 내용이다. 무엇보다 나도 아무런 준비 없이 예기치 못하게 과거로 던져진 터라 도움이 되는 정보와 쓸모없는 정보를 골라낼 수가 없다.
마력 시계에 내용이 있으려나. 국내에서 열린 포럼이니 있을 확률이 높지만… 관리청 설립 이전의 기록은 온전한 게 많지 않아서 확신할 수가 없다.
아. 잠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홍석영을 흘겨보았다.
“…포럼에 절 데려가겠다고 재심사받게 한 거 아니었습니까? 이거 쉬게 해 주겠다고 한 건 역시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닌지.”
“어허. 그렇게 말하면 섭섭한데. 아직 날 모르는가?”
“제가 아는 건 더 나이 든 홍석영 선생님이라서 말입니다.”
“나도 젊은 나이는 아닌데?”
“아직 머리가 검잖습니까. 풍성하고.”
홍석영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머리카락을 더듬거렸다.
“그, 혹시 미래에 내 머리가 빠지는 건 아니지?”
“…….”
나는 홍석영의 정수리를 지긋이 노려보았다. 물론 미래에도 풍성했다.
“그건… 가 보면 압니다.”
“허?”
“스포일러 들으면 재미없잖습니까.”
“내 머리카락의 유무는 재밌지 않아!”
“헌터가 강해지는 데에는 머리카락은 필요 없지 않습니까.”
“난 필요해!”
나는 들리지 않는 척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절 부려 먹을 생각이 아주 만만하지 않습니까.”
홍석영은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의 머리를 연신 쓸어 넘기다가 대답했다.
“원래는, 더 나중에 물어볼 생각이었다니까. 하지만 알렉스 호프와 부딪칠 일이 생긴다면 미리 대비하는 게 낫잖나. 그리고 자네 얼굴이 알려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알렉스 호프는 이미 제 얼굴을 압니다만?”
“그렇다고 더 나댈 필요는 없잖나.”
“…뭐, 그렇죠.”
“그리고 포럼이 아니어도 등급은 올려놓으라고 했을 거네.”
홍석영은 슬그머니 머리카락에서 손을 뗐다.
“D급 헌터가 퇴직한다고 이것저것 챙겨 주면 말이 나올 게 분명하거든. 기자들이 날 많이 좋아해서.”
“…….”
“하지만 A급 헌터가 퇴직한다? S급 던전 공략할 때 자네 한 번 데리고 간 다음 부상 핑계를 대면… 바리바리 싸 줘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을 테니까.”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이걸 뭐라고 해.
“그 뒤로도 위로금 핑계로 생활 편의를 봐줄 수 있고.”
“…….”
아버지는 다 깊은 뜻이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홍석영은 히죽 웃었다.
“다 내 깊은 뜻이네. 감동받았나?”
“…아뇨.”
“감동받은 눈치인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과 공감성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중입니다. 젊은 시절의 선생님이 완전히 짐승이 아니라니. 정말 다행이지 뭡니까.”
“…….”
“…….”
“으하하하!!”
나는 홍석영을 따라 빙긋 웃었다.
“그간 내숭 떤다고 고생 많았네!”
여전히 방긋 웃었다.
“고생… 왜 그렇게 불길하게 웃는가?”
“…….”
결국 미니미가 자라서 된 게 나니까 그러지.
나의 지독한 사춘기를 겪을 일이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나라는 인간을 제자로 맞이한 게 두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홍석영도 알아야 한다.
원래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지.
홍석영이 헌터의 감각으로 불길함을 느꼈는지 입을 열려던 찰나.
타닥타닥.
작고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홍석영과 나는 빠르게 테이블 위를 훑었다. 애가 봐서는 안 될 만한 문서는 없었다.
“형!!!”
우이록이 나에게 달려왔다. 다급한 목소리. 눈을 살짝 찌푸리며 내 허리에 달라붙는 미니미를 안아 올리자 미니미가 홱 고개를 돌렸다.
“저리 가라고 말해 줘!”
“야, 꼬맹아! 여기에 선생님 끼우는 건 반칙이지!”
미니미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분개한 표정의 이승연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