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25)
작은 나(1)
“…외 경기도 던전 총 3개! 저, 한태경이 깔끔하게 처리하고 왔습니다!!”
“아, 네…. 알겠으니까 목소리 좀 줄여 줄래요.”
“처리하고 왔습니다!!!!”
“왜 소리가 더 커지는… 아니, 됐고, 뭐. 어려운 건 없었습니까?”
“던전 따위에 고전해서 헌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세상에 미공략 던전은 왜 존재하겠는가.
뭐라고 한마디 할까 싶다가도 말을 오래 섞을수록 내가 피곤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차피 한태경이 이번에 들어갔던 던전은 B등급뿐이었으니까 거기에 고전하면 한태경에 대한 평가를 대폭 변경해야만 한다.
나는 한태경의 말을 흘려들으며 공략 보고서를 마저 읽었다. 한태경이 작성한 건 아니고, 당연히 한태경을 보조했던 다선의 헌터들의 작품이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의욕 넘치던 헌터들은 눈빛이 죽은 채로 돌아왔다. 멀리서 한태경 목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며 몸을 숨기는 게…. 그래도 한태경은 던전 공략할 때는 장난치지 않긴 하지만, 아무래도 B급 던전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떨어졌던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내가 손을 쓸 순 없으니 됐고.
“그럼 이제 뭘 하면 됩니까, 선배님?”
“네? 가서 쉬세요.”
“저라는 인재를 팍팍 써먹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지, 듣자 하니 이번에 애들이 동아리를 만들었다던데 제가 가서 도와주….”
“아뇨.”
나는 다급히 한태경을 말렸다.
“애들 스스로 하게 놔둬요. 자기들끼리 해 봐야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
“캬…. 그렇죠. 맞는 말입니다, 선배님. 그래야지 저처럼 진정한 헌터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아닌 것 같지만….
한태경을 상대하는 것도 귀찮아져서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는 건 애들이 도와 달라고 할 때 하면 충분합니다…. 혹시 쉬는 게 싫거든.”
마침 뒤로 지나가는 지유건이 보였다. 지유건은 한태경을 보더니 흠칫 몸을 떨곤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
…이러면 안 되는데 괜히 괴롭히고 싶다. 나는 지유건을 보며 싱긋 웃었다.
“쉬는 게 싫거든, 지 헌터나 도와주는 건 어떻습니까?”
“지 헌터?”
“네. 다선의 지유건 헌터요.”
지금 시간이면… 점심 준비할 때로군. 나는 나를 향해 필사적으로 팔을 휘적거리고 있는 지유건을 무시했다.
그러고 보니 식사 문제도 어떻게 해결하기는 해야 하는데. 언제까지고 도시락과 대충 만드는 볶음밥으로 끼니를 때울 수는 없잖은가.
그나마 이미선이 따로 요리사를 고용해 영양가를 계산한 도시락을 수급해 주기는 하지만…. 시범고 건물을 지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으려나.
“한 선생님. 혹시 요리 좋아하십니까?”
“요리요?”
한태경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선글라스가 반짝 빛난다.
“제가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끓이죠!”
“라면은 됐고…. 이 기회에 한번 도전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요리를요?”
“배워 둬서 나쁠 건 없잖습니까.”
지유건이 슬그머니 도망가려고 발을 빼는 게 보였다.
“한 선생님이라면 요리도 금방 잘할 것 같아서요.”
“제 재능에 한계란 없죠.”
“…어쨌든 지 헌터가 요즘 식사 준비를 도맡아 하는 게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한 선생님이 도와준다면 저도 마음이 놓일 것 같군요.”
“흠….”
한태경은 팔짱을 끼고 고민에 잠겼다.
설마 내가 자길 떠넘기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한 번쯤 요리를 배워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요? 잘됐군요.”
“어릴 때 은영이한테 라면을 끓여 준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어머니가 저보고 부엌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아하….”
“하하하! 저도 어릴 때니까요. 우리 체이시도 요리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그게 또 엄청 감동적이었거든요. 그게, 그 에피소드에서 체이시가 만든 요리가 애플파이인데, 왜 애플파이냐 하면….”
빌어먹을 고양이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런 만큼 어떻게 말을 돌려야 하는지도 잘 알았다.
“그래요? 재주가 많은 고양이군요. 그럼 한 선생님도 애플파이를 한번 만들어 보지 그래요.”
“애플파이!”
“체이시의 애플파이로요.”
“체이시의!”
한태경은 콧김을 훅훅 내뱉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더 격한데.
…애니메이션 저작권 협상 중이던 이십 년 뒤의 한태경과, 이제 막 돈을 모으기 시작하는 한태경의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기는 한가.
“제가 그동안 안일했던 것 같습니다. 체이시가 요리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 취미를 같이 즐겨 볼 생각을 안 하다니!”
요리하는 에피소드는 하나만 있던 거 아니었나?
“요리뿐만이 아니라 체이시가 했던 걸 하나하나 다 즐겨 봐야겠습니다. 선배님, 혹시 스카이다이빙 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없지만 그것도 하나하나 손수 찾아보는 게 다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나는 그저 편안하게 웃으며 한태경에게 맞장구쳤다.
“그럼 파이팅입니다.”
지유건이 소리 없이 죽어 가고 있지만 알 바인가. 나와 애들 옆에서 쟬 떼어 놓는 게 더 중요하지.
그리고 여기는 부엌도 여러 개다.
비록 하나가 운명한다고 해도 굶을 일은 없다. 이래서 부잣집 별장이란.
* * *
한태경의 존재감은 펜션 이곳저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첫째.
“선생님. 진짜 이번엔 어떻게 안 될까요?”
한은영이 한층 더 절박해져서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매번 돌려보내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한은영에게 손을 까딱였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한은영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아니. 자퇴를 허락해 줄 생각은 없다.
“오빠가 그렇게 싫어?”
내 질문에 한은영은 몸을 흠칫 떨었다.
“시, 싫다기보다는… 아니, 좋고 싫고를 따지면 싫은 쪽에 가깝긴 한데요.”
“같은 하늘 아래서 숨쉬기도 싫다?”
“그… 정도는 아니고요.”
한은영은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말했다.
“그냥 같은 공간에 있기 싫은 정도요.”
그게 그거 아닌가.
“오빠가 싫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특별한 이유요?”
한은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펼치기를 몇 번 반복했다.
“선생님은 그 꼴을 보고도 그게 궁금한가요?”
“…….”
“그걸 보고도?”
“…….”
여동생이 말하니까 무게가 다르다.
진짜 원래 시간에서는 한태경이 교사로 와서 한은영이 자퇴하고 사라진 건가? 마력시계를 뒤져도 그 뒤 행적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아예 헌터를 관뒀을 수도 있다. 여태껏 내가 본 한은영은 헌터가 적성에 맞는 아이는 아니었다. 사실 왜 헌터가 되겠다고 시범고에 들어왔는지 궁금할 만큼.
각성자들이 헌터가 되는 이유가 뭘까.
대개는 부와 명성을 외칠 것이다. 던전 내에서 채취되는 마력석은 가치가 높다. 동력원으로도 사용하고, 포션 제작에도 쓰인다. 특히 포션 같은 경우에는 헌터뿐만이 아니라 민간인들도 사용한다. 던전 브레이크가 자주 일어나는 이 시점에서 포션이 없었으면 사망자는 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그 외에 몬스터 부산물들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쓸 일이야 거의 없지만 산업 현장으로 가면 말이 다르다. 민간인들이 막연히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하다못해 패딩 충전재에 예티의 털 함량이 높을수록 더 가볍고 보온력이 좋아진다. 괜히 네팔에서 예티 농장을 만들었겠나.
던전 부산물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헌터의 몸값도 올라갔다. 부를 위해 던전에 몸을 던지던 헌터들은, 던전 브레이크에서 사람들을 구하며 명예를 얻기도 했다. 혹은 그 반대가 되었다.
물론 단순한 물질적인 이유, 혹은 명성 말고도 헌터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많았다. 아카데미 신입생이나 관리청 신입 중에서 매년 한두 명은 이 분류에 속했다.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를 하려는 이들.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런 애들이 눈이 돌아갈 확률이 가장 크다. 그리고 보통 눈이 돌아가면 자기 혼자만 죽지 않는다.
한은영은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질문을 바꿔 보자. 시범고에는 왜 들어왔어?”
“네? 그게 왜 궁금하신데요?”
한은영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왜기는. 기껏 들어왔는데 오빠가 학교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그만두려고 하는 거잖아. 너 헌터가 되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없지?”
“…….”
“정말 원해서 들어왔다면 오빠가 있든 말든 상관 안 하겠지. 혹시 한 선생님이 억지로 널 입학시켰어?”
“…아뇨. 그건 아니고요. 오빠한테서 학교 이야기는 듣긴 했는데.”
한은영은 눈을 살짝 내리깔며 대답했다.
“그럼 학교도 한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부탁했다기보다는, 으음, 그냥, 어…. 들어가 볼까 하고 말했더니 그냥 입학시켜 줬다, 에 가깝지만….”
“…….”
“…기왕 들어왔으니 해 보자 싶어서.”
한태경도 한태경이지만, 얘도 얘다.
어떻게 생각하면 딱 나이대에 맞는 행동이기는 하다. 하고 싶은 건 딱히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까운 가족이 헌터라니까 나도 해 볼까 싶은.
내가 뭔가 사명감을 가지고 시범고 교사로 있었다면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아닌가? 뭐, 헌터가 되는 데에 대단한 결심 같은 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헌터가 될 수도 있는 거지.
원래 시간대에서는 시범고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을 테니 한은영 같은 애가 버티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한은영이 나약하다는 말이 아니라… 친구들이 죽고 겨우 살아 돌아온 애들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텐데. 거기서 버티는 게 대단한 거다.
그때에는 지금처럼 오빠를 피해서 도망간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심한 오빠를 보고 괴로워하는 동생 역할이 훨씬 어울린다. 한은영에게도 다행이고.
“네가 정말 한 선생님과 같이 있기 싫거나.”
나는 한은영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오빠가 그 모양이라서 그런지 한은영은 모범생이다. 훈련 때도 항상 첫 공격에서는 멈칫하다가도 첫발을 내딛기만 하면 곧잘 한다.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면 다음 날에는 그 부분을 신경 써서 움직인다. 과제를 내 줘도 열심히 해 오고, 정도 이상의 꾀를 부리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얌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집이 있기에 모범생이 된 거다. 내가 하는 말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따라오고 있는 거다.
“헌터가 되기 싫다면 나도 더 말리진 않으마. 내가 교장 선생님께 말해서 그만두고 일반고로 갈 수 있도록 해 주마.”
“…정말요?”
그러니 무작정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반발 심리로 더 엇나갈 수 있다.
“하지만 너도 진지하게 생각해.”
적당히 풀어놓고 선택권을 쥐여 준다. 보통 이런 애들은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처음으로 돌아오더라고.
“여태 너도 노력해 왔잖아. 아깝지 않니? 오빠 때문에 포기하기?”
“…….”
“그리고 이제 막 동아리를 만들었잖아.”
“…아.”
“네가 그만둔다고 하면 친구들이 많이 섭섭해할 거다.”
“…….”
한은영은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 입을 헤 벌렸다. 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자, 가 봐. 마음 정하면 알려 주고.”
시범고 학생들이 다 유순해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홍석영은 진짜 어디서 이런 애들만 주워 왔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