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28)
작은 나(4)
“진짜?”
“진짜.”
“진짜 영화관에 가?”
미니미는 기쁨과 의심이 한데 뒤엉킨 얼굴로 되물었다.
기쁜 거야 이해가 되는데, 의심은 모르겠다.
미니미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다가 툭 내뱉었다.
“봤지.”
“…….”
“봤잖아.”
그 문제였나.
뭐야. 그 버킷 리스트 숨기고 있던 거였어?
그런 거면 더 잘 숨겨 놨어야지. 태블릿 PC에서 숨기는 거야 한계가 있겠지만 그렇다면 하다못해 태블릿 비밀번호라도 바꿔야지.
저 태블릿 PC는 홍석영 것이다. 정작 홍석영은 쓰지 않고 굴러다니는 걸 내가 주워 미니미에게 주었다. 적당히 교육 방송을 보여 줄 생각이었는데, 미니미의 반응이 시원찮아서 다시 버려졌다.
그걸 또 한태경이 냅다 주워다 그 빌어먹을 고양이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한태경이 그딴 짓거리를 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미니미가 쓰게 놔두지 않았을 텐데….
“본 거 맞잖아!!”
미니미는 빽 고함을 지르더니 내 다리를 걷어찼다.
난 안 그랬는데 얜 왜 자꾸 손부터 나가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딱히 잘못될 부분은 없었지 않나? 역시 한태경 때문인가? 이래서 서양 애니메이션이란!
“안 봤는데.”
“거짓말.”
“안 봤어.”
“뭘 안 봤는데?”
“…….”
예리한데….
“뭔진 모르겠지만 네가 숨기고 있는 거잖아. 형이 이록이 허락도 없이 몰래 보겠어?”
미니미는 눈을 찡그렸다.
내 말을 믿을지 말지 고민하는 눈치다.
더 의심하기 전에 정신을 빼놓자.
“여기 있는 거 심심하지? 보육원에 있을 때 뭐 하고 지냈어?”
아직도 얠 학교에 안 보내고 어떻게 주위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한다는 핑계를 댔다지만, 이미선이 조사하기로는 그만한 의료 기록은 없었다. 정말 아픈 것보다는 낫나 싶기도 하지만.
미니미가 보육원에서 사용했던 이름, 박정민은 실제로 출생 신고가 되어 있는 아이였다. 부친은 모르고, 모친은 아이만 낳고 사라졌다. 몸이 불편한 조모가 아이를 키웠다. 출생 신고도 없이.
정말 박정민이라는 아이가 있었는지, 아니면 방주에서 조작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대단한 우연으로 하필이면 내 모친의 이름을 가진 아이의 신원을 빌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이름을 이름표 삼아 일부러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사라진 아이가 또 하나 있는 것보단 차라리 후자가 났다. 미니미가 거기에 동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미니미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거기 있는 책 읽거나 그랬어.”
“그래? 영화 보러 간 적은 없어?”
“…….”
미니미는 슬쩍 눈을 들어 나를 봤다. 쭉 내민 입술이 오리 주둥이 같다. 내 눈에는 부실하게 느껴지는 이곳에서의 음식도 보육원에서보다는 훨씬 나았는지 뽀얗게 살이 오른 볼이 보였다. …운동시켜야 하나?
“어….”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 미니미가 잔뜩 뜸을 들였다.
반쯤 말아 쥔 손이 움찔거린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만난다. 손가락 끝을 문지르다가 손을 다시 펼친다.
어릴 적, 내가 초조할 때 하던 버릇이다.
이걸 내 눈으로 보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어릴 때 나는 내가 잘 숨긴다고 숨겼는데, 어떻게 형이 내 거짓말을 알아차리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뭐, 나이 차 많이 나는 형이 어린애 거짓말 하나 모를 정도면 나가 죽어야지. 어찌 되었든 방주의 청소부였는데.
이럴 때마다 형이 내게 했던 것처럼 미니미의 이마에 손가락을 말아서 튕겼다. 아프게는 말고, 손가락으로 슬쩍 이마를 미는 정도로만.
“뭘 그리 숨기려고 해.”
“…그치만.”
“형은 이록이한테 화 안 내.”
“내잖아.”
“그건 네가 다른 아이들한테 심술부리니까 그런 거고….”
미니미는 코를 씰룩거렸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가끔 TV는 봤어.”
“보육원에서?”
“응.”
“그래? 어떤 거 봤어.”
“…재미없었는데. 대부분 거기서 봤던 것들이고.”
공간이 한정적인 연구소에서는 보통 영화 같은 걸 틀어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다행히 나는 뭔가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이 그 속에 있었으니까.
나와 미니미의 상황이 다른 걸 자꾸 잊어버린다.
내가 있었을 때의 보육원엔 방주의 영향력이 없었다. 학교도 정상적으로 갔고, 놀이동산이나 영화관 나들이 같은 것도 자주 나갔다. 아버지가 찾아오면서부터는 아버지와 함께했고.
하지만 얘는 그 작은 보육원에서 거의 나가지도 못했을 거다. 그런 애를 여기서 얌전히 지내라고 하다니. 나 같아도 싫다.
시범고 전원도 아니고, 애 하나 정도는 나 하나만 있어도 지킬 텐데. 조금씩이라도 밖을 보여 줬어야 했는데. 내 불찰이다.
“그러면 이록이가 안 본 거 보러 가야겠네.”
나는 우이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스친다.
방학 시즌이라 그런지 어린아이들이 볼 법한 애니메이션도 몇 개 극장에 걸려 있었다.
홍석영에게는 미리 말을 해 뒀고.
하나 더 필요한 게 있다면….
“아, 마침 찾고 있었습니다.”
“우 선생님…?”
미니미를 데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차마 미니미를 데리고 들어가진 못하고, 손만 흔들어서 부엌에 있는 이를 불러냈다.
지유건은 내 목을 조르고 싶어 하는 얼굴로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음. 그리운 표정이다. 신입이 저런 표정을 짓게 되면 신입 딱지를 떼 줬는데. 대체로 삼 개월 정도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걸 한태경은 이틀 만에 해냈다.
“얼굴이 많이 좋아졌군요.”
“이게요?”
“죽어 가고 있진 않잖습니까.”
“…….”
지유건 손에 칼이 있었다면 날 찔렀을지도 모르겠다.
“하하하핫!”
부엌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태경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뭘 어떻게 했는진 모르겠지만 밀가루가 안개처럼 피어났다. 마력으로 슬쩍 밀어 냈다.
“한 선생님에게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저기, 우 선생님이 절 제물로 바친 게 아니셨습니까?”
“과거에 연연하지 마세요.”
“…….”
“어쨌든, 도움이 필요하신지?”
지유건은 날 믿어도 될지 긴가민가해 보였다.
“어? 어어? 이게 왜 이러지?”
그러나 부엌에서 한태경의 불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 헌터님! 지유건 헌터님! 쉐프!”
한태경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지유건의 고민은 끝났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잘됐군요. 그럼 옷 갈아입고, 차 키 들고나오세요.”
“네?”
나는 미니미를 가리켰다.
“영화 보러 갈 건데 택시 부르기에는 상황이… 아시죠?”
“…….”
지유건은 다시 내 목을 조르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 * *
“어땠어?”
“…….”
우이록은 새침한 얼굴로 남은 음료수를 마셨다. 빨대를 따라 쪼로록 음료수가 올라가더니 얼음끼리 부딪치면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마음에 안 들었니?”
“………아니.”
쥐꼬리만 한 목소리가 미니미의 입에서 새어 나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흥분해서 몸을 들썩이던 주제에 아닌 척하기는.
아무리 큰 TV라고 해도 영화관 스크린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상영관에 들어갔을 때부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미니미는 스크린이 켜지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영화 시작 전 틀어 주는 CF를 넋이 나간 것처럼 보았더랬다.
몇 번 자극하면 재밌었다고 꽥 소리를 지를 것이다.
하지만 기껏 애 기분 좋게 해 주겠다고 나왔는데, 짜증 내게 만들 필요는 없다.
“재밌었지?”
“…….”
“형은 재밌던데. 다음에 또 올까?”
“…형이 보고 싶으면.”
“이록이가 재미없으면 형 혼자서 보고 올게.”
“…….”
어깨가 움찔거린다. 참 알기 쉬워서 좋다.
“재미없었어?”
“…재밌었어.”
“정말?”
“응.”
처음에는 조심히 입을 열었지만 한번 물꼬를 트니 미니미는 금방 재잘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화면이 진짜 커! TV로 볼 때는 그렇게까지 안 컸는데. 불도 끄고 보니까 더 집중이 잘돼.”
“영화관에서는 괜찮지만, 태블릿으로 볼 때는 불 끄고 보면 안 돼.”
“안 돼?”
“눈 나빠질 수 있어.”
얘가 나라면 나빠질 것 같진 않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사람의 성장에는 환경이 꽤 중요하단 말이지.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너무 보여 주는 것도 안 좋다. 고양이는 이미 충분히 많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유건이 운전한 다선의 차 안에도 그 분홍색 고양이가 있었다. 지유건도 그게 왜 거기에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
기왕 나온 거 밖에서 밥이라도 먹고 들어갈까. 미니미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 있었는데. 20번인가 21번에.
해 주기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다. 평범한 환경이었다면 진작 다 해 봤을 것들이다.
“잠깐만, 이록아.”
미니미가 쓰고 있는 모자를 고쳐 씌웠다.
거의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형과 동생.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빠와 아들처럼 보이려나.
쟤가 나라는 복잡한 감정을 제외하고 보면 형이 왜 나를 그렇게 조심스럽게 대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게 아니어도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자기 허리에도 미치지 않는 어린애를 험하게 대하지 못하겠지만. 더군다나 친동생이라면.
“있잖아, 형.”
“응?”
미니미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 우리가 지금 있는 곳 있잖아.”
“응.”
“거기가 우리 집이야?”
집.
나는 의외의 말에 조금 놀랐다.
“형이 연구소는 집이 아니라고 했잖아.”
“응.”
“그럼 거기는? 집이야?”
“…….”
집.
집이라.
예상치 못한 말에 순간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마침 근처 관에서도 영화가 끝났는지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파에 휩쓸릴까 봐 미니미의 손을 잡았다. 미니미는 내 손을 꽉 잡아 왔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 거긴 집이 아냐.”
“그럼? 우리 거기에 살고 있는 거 아냐? 집은 그런 곳이라고 했잖아.”
형이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한 번도 집을 가져 보지 못한 건 형도 마찬가지였는데.
형이 나에게 집에 대해 설명했던 말들도 전부 추상적이었다. 가족이 있는 곳. 따뜻하고,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수 있고. 편하게 쉴 수 있고…
항상 돌아갈 곳.
형은 자신의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마 지금의 나보다 몇 살 더 어릴 거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평생을 연구소에서 살았다. 그럼 포기할 법도 했건만 마지막까지 거길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거긴.”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잠깐 지내는 곳이야.”
“그럼 집은 어디야?”
집.
짧은 단어가 이상할 정도로 묵직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나에게는 집이 없다. 시범고 근처에서 홍석영이 구해 줬던 숙소나 이미선의 펜션은 임시 거처에 불과하다.
집이 필요하겠구나.
아이를 키우려면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필수다.
나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미니미를 보았다. 손을 잡고 영화관 출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직은 없지만 형이 곧 구할 거야.”
형이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렇게 되어서야 이뤄 줄 수 있다니.
사람 사는 게 이토록 기묘한 일이다.
“진짜?”
미니미는 내 말에 눈을 반짝였다. 기대가 가득한 얼굴.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그래. 금방 우리 집이 생길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