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3)
마녀 박서현(2)
룬은 마법사의 전유물이었다.
오직 마법사만이 룬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마법사들도 오랫동안 룬을 등한시해 왔다. 룬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마법으로도 할 수 있었고, 오히려 마법으로 하는 편이 더 간단했기 때문이다.
룬은 마력을 손가락에 집중시켜서 마력이 통할 수 있는 길을 그린 다음… 난 마법사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어쨌든 룬은 드는 품에 비해서 결과가 신통찮았다. 게다가 지워지기는 또 어찌나 잘 지워지는지.
하지만 마력 가림막 룬이 등장하면서 룬이 재조명됐다. 그간의 단점을 모두 상회시킬 만큼 대단한 파장이 있었다. 그 단점을 감수하고도 사용할 이유가 생겼다.
그러다가 마력펜이 만들어졌다. 마법사가 아닌 이들도 룬을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자연히 룬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현대 던전 공략은 룬의 재조명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헌터 아카데미 1학년 필수 과목 룬 개론 첫 번째 수업에서 듣게 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는 창고 겸 교실에 앉아 있는 두 마법사를 보았다.
허리를 바로 세우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최진우와, 연필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박서현.
솔직히 박서현 쪽은 수업은커녕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선을 돌려 교실 뒤쪽을 보았다.
“왜 말을 하다 말아? 난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눈이 마주치자 홍석영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웃었다.
“저희도 조용히 있을게요!”
그 옆으로는 남은 학생들이 앉아 있다. 시간도 많지. 쓰지도 못할 룬 수업을 들으러 오고.
그 얼굴 중에서 내가 이십 년 뒤까지 알고 있는 건 역시 오현욱뿐이다. 사실 오현욱도 낯설다. 살에 파묻힌 돼지가 아니라 삐쩍 마른 남학생이라니. 세월이란….
오현욱과 박서현, 이승연 정도를 제외하면 너무 옛날이라 마력 시계에서도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관리청이 만들어지기 전의 일이기도 하니까 검색하면서도 큰 기대를 안 하긴 했다.
저 중 한 명이라도 더 오현욱이나 박서현급의 재능을 가진 애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본래 이 수업을 듣기로 되어 있던 두 마법사를 보았다.
일단은 마법사들부터 확인해 볼까.
“너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부터 파악해 보자.”
“수준이요?”
“긴장할 건 없어. 룬 그릴 줄은 알지?”
최진우는 눈을 깜박거리다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동에서 저희가 룬 그렸는데요.”
까드득.
동시에 박서현에게서 뭔가 심상찮은 소리가 들렸다.
“흐….”
박서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를 들썩이던 박서현은 조금 뒤 고개를 들었다. 입에서 부러진 연필이 툭 떨어졌다.
“…….”
“…….”
마법사라도 민간인보다 훨씬 튼튼한 걸 알지만 그래도 물어봤다.
“그, 문제라도?”
“…….”
“박서현? 맞지?”
박서현은 한참 뒤에 대답했다.
“…………괜찮아요.”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더라면 놓쳤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나만 박서현의 상태를 심상치 않게 생각하는 건가 싶어 주위를 살폈다.
연필 씹는 소리에 최진우가 옆을 슬쩍 봤지만 그뿐이었다.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홍석영이야 원래 그런 성격이니 그렇다 쳐도, 나머지는 이상하게 여겨야 하지 않나? 같은 기수 애가 하루아침에 저런 몰골이 되었는데?
사실 이게 보통이고 내가 이상한 건가?
이래서 헌터 라이센스 딸 때 정신 감정을 해야 한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신적인 문제도 무시할 게 못 된다니까.
헌터 아카데미에서도 매년 이런 분위기를 버티지 못한 자퇴생들이 나오곤 했다. 어떤 의미로는 그걸 견디지도 못하는 애들이 던전 공략을 버틸 수 있겠냐 싶어지는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모르겠다.
나는 생각을 포기하고 칠판에 룬을 그렸다. 명동에서 사용했던 마력 가림막 룬이다.
“그동안 많이 그려 봤지?”
“네?”
“명동에서 탈출하고 설마 한 번도 안 그려봤어?”
이 룬을?
최진우는 내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려 봤어요.”
“연습 많이 했겠네.”
아마 허락도 없이 멋대로 썼다고 생각할까 봐 저러는 거겠지. 상관없는데.
“너희 쓰라고 알려 준 거야. 막 써도 돼.”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얼른 그려 봐. 얼마나 잘 그리는지 좀 보게.”
* * *
홍석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그 부분 또 잘못 그렸어.”
“원래 룬은 이 정도 오차가 있어도 발동은 문제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발동이야 되겠지.”
우희재는 최진우가 그린 룬을 들어 자신의 이마에 붙였다. 그러다가 아차, 하는 얼굴이 되어 종이를 떼어 내 최진우의 이마에 붙였다.
“발동해 봐.”
발목에 마력 제어구를 달고 있으니 지금 우희재는 룬을 발동할 수 없다.
그런 속사정을 알고 있는 건 홍석영뿐이었다. 최진우는 아무 의심 없이 순순히 룬을 발동했다. 어린 마법사가 폴폴 흩날리고 있던 마력이 사라졌다.
이미 몇 번이고 봤던 풍경이다.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볼 때마다 매번 놀라고 있었다. 마력을 숨길 수 있는 룬이라니?
공략 불가 판정을 얻은 던전 중에서, 이 룬을 사용해서 공략할 수 있는 것이 몇 개일까?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열댓 개다. 해외 던전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반대하는 목소리를 묵살하고 무리해서라도 녀석을 시범고로 데려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마력 가림막 룬 말고도 알고 있는 룬이 있다면 도움이 될 테니까.
“네가 던전 공략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볼까.”
우희재는 느긋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는 자세가 꽤 능숙하다. 누굴 가르쳐 본 경험이라도 있나.
“이 룬이 어떤 상황에서 쓰일 것 같아?”
홍석영은 턱을 매만졌다.
* * *
“이 룬이 어떤 상황에서 쓰일 것 같아?”
“어…. 몬스터를 피해 도망칠 때요?”
명동에서 그렇게 썼으니 대답도 그렇게 나오겠지.
“그리고?”
“그리고요? 음… 몰래… 습격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에 들어가 본 적 있어?”
“네? 그, 아뇨…. 전 작년에 각성했거든요. 헌터 라이센스도 올해 땄어요.”
“그래?”
최진우 실드 캐스팅 속도가 얼마였더라? 4.2초?
각성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마법사라고 생각하면 괜찮다 못해 훌륭하다.
최진우의 대답도 오답이 아니다. 마력 가림막 룬은 보통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게 맞다.
하지만 던전 중에서는 성질머리가 유난히 더러운 게 있다. 구시대적인 함정이 가득하거나 특정 조건을 맞춰야만 길이 열리는 특수 기믹들.
무작정 위험도가 높은 던전보다는 이런 던전들이 헌터들을 더 많이 잡아먹곤 했다.
아직 던전 공략 경험이 없다면… 조만간 이 근처에 있는 던전에 들어가려나.
홍석영을 흘깃 보았다. 던전 공략에 대한 이론이라면 내가 낫지. 어디까지 가르쳐 줘도 되냐가 문제이긴 한데….
“이번에는 달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지. 선두에 있었을 때도 문제는 없었지?”
“네…. 몬스터가 별로 없더라고요.”
내가 박박 긁어 갔는데 당연히 없어야지.
“하지만 실제로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게 가능할까?”
“어….”
“왜 그동안 룬이 안 쓰였을까?”
“…마법이 더 편하니까요?”
“왜 마법이 더 편할까?”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최진우에게는 어려운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박서현을 보았다.
“…….”
아그작.
반으로 부러진 연필이 다시 박서현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물어봐야 하나? 대답해 줄까?
용기를 가졌다. 홍석영은 저 몰골을 스타일의 변화로 일축하지 않았던가. 그게 진짜일 수도 있지. 저 나이대 여자애들은 다 그렇지 않던가.
“그… 박서현?”
“……………네?”
“그동안 왜 룬이 안 쓰였을까?”
“…….”
박서현은 입을 우물거렸다. 잠깐 기다렸다.
퉤.
툭.
연필 조각이 입에서 떨어졌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연필을…. 저게 스타일이겠냐고. 머리가 돌아 버린 거지.
“그… 그으.”
박서현은 배시시 웃었다.
“룬은… 잘 지워지니까요…….”
“그래. 룬은 잘 지워져.”
룬이 쓰이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박서현의 책상 위에서 부서진 연필 조각 하나를 주웠다.
마력을 쓸 필요도 없다. 손으로 벅벅 문지르거나 연필로 선 하나 그을 뿐인데도 쉽게 망가진다. 대기 중의 마력이 자주 꼬이는 던전에서는 당연히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룬을 정확히 그리는 게 중요한 거야.”
“정확하게 그린다고 해서 내구성이 높아지진 않을 텐데요….”
“당연하지.”
마력 가림막 룬을 개발한 프랑스의 친절한 대마법사는 이런 룬의 단점도 개선했다. 비바 라 프랑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마법사가 아냐. 원리를 물어 봤자 몰라.”
혹시 모르니 질문을 원천 봉쇄하고.
“정확하게 잘 그려진 룬 위에….”
나는 칠판에 그린 마력 가림막 룬 위로 룬을 덧그렸다.
룬 하나가 아니다. 못해도 다섯 개의 룬이 합쳐졌다. 지속, 보정, 방수, 증폭… 하나가 뭐더라. 아. 공명.
효과는 단순하다. 룬이 쉽게 지워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기하학적인 도형이 엮이고 엮여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무늬가 된다. 처음 그렸던 마력 가림막 룬은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걸 덧그리면 쉽게 지워지지 않아.”
최진우의 눈이 룬을 따라가며 방황하다 끝내 초점이 흐려진다.
“그릴 수 있겠어?”
“저… 저, 선생님……?”
박서현은 입 안에 물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왜?”
“저거… 왜, 왜, 안 가르쳐 주셨어요?”
“뭐?”
박서현은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나 싶어서 기다렸지만 박서현은 입술만 물어뜯기 시작했다.
한참 뒤에야 박서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며, 명동에서….”
어.
음.
설마.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자, 박서현은 갑자기 어깨를 흠칫 움츠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애초에 내가 룬을 잘못 그렸으니까……. 알아도… 소용, 없었겠구나……….”
“…….”
“방해해서 죄송해요…….”
박서현은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연필을 입에 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연필은 왜… 아니, 됐다.
“그, 저기, 박서현 학생?”
나는 박서현을 불렀다.
“……네?”
그러니까, 얘….
“…선생님?”
에이, 설마.
아니겠지.
“어, 어어…. 아니. 그래. 그래… 계속 설명할게.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룬을 정확하게 그려야 한다고요.”
“어, 그래, 진우 학생. 이것도 룬의 조합이라서 처음 그렸던 룬에 문제가 있을 경우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거든. 조금이라도 룬이 틀렸을 땐 효과가 전혀 없어. 그러니 항상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 거야.”
“룬의 조합이라고요? 어떻게요?”
“난 구분 못 해. 하지만 만든 사람이 그렇다고 했으니까 그냥 통째로 외워.”
나는 당황스러움을 숨기기 위해 연신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진짜인가? 진짜, 그런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설마 박서현이 지금 저 모양으로 앉아 있는 게 명동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야?
이십 년 뒤에는 명동 사태 때 죽은 동기들 때문에 그랬던 거야 이해할 수 있다. 예상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자기가 그렸던 이승연의 룬이 미작동해서?
“너무 복잡해 보이는데….”
“연습해야지.”
그러니까아…….
“……선생님!”
내 탓이란 말인가?
아니아니아니, 아무리 멘탈이 약하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충격을 받을 수야 있겠지만, 다 잘 됐잖아? 죽은 사람도 없고?
그럼 된 거 아냐?
박서현과 최진우는 내가 그린 룬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워낙 복잡한 룬이라 마력 가림막 룬처럼 몇 번 그려 본다고 되는 룬이 아니다.
하지만 박서현은 내게 종이를 내밀었다. 연필을 꾹꾹 눌러서 그린 룬.
처음 보는 룬을 따라 그린 것치고는 완성도가 높다.
“…안 틀렸죠? 제대로 그렸죠? 제대로 그린 거 맞죠? 이건 활성화되죠?”
박서현은 절실한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