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30)
어둠 속(2)
오후 2시.
어둠이 찾아오기에는 한참 이른 시간이다.
어둠은 땅거미 지듯 천천히 왔으나 문득 정신을 차리면 이미 온몸이 잠긴 뒤였다.
발목을 뒤덮는 어둠을 보는 순간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움직였다. 눈앞에 있는 한은영의 손목을 잡아챘다. 혹시라도 어둠에 잠겨 떨어지게 되면 큰일이다.
“서, 선생님?”
“쉿.”
감각을 곤두세웠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 마력 또한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마력뿐만이 아니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눈을 감은 것처럼 보이는 게 없다. 오로지 어둠. 어둠만이 있다.
습격? 습격인가? 누가 간 크게도 홍석영이 여기에 있는 동안 습격한단 말인가?
반대로 생각하면 홍석영이 있어서 방심했을지도 모른다. 홍석영조차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고 당했지 않은가…. 아니면, 습격이 아니라거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어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어둠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더라? 외부? 아니다.
내부.
집 안에서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발밑. 그림자.
그래. 그림자.
이 건물에는 그림자를 사용하는 마법사가 하나 있지 않은가. 마녀 박서현의 그림자 마법이 어땠더라. 그 박서현의 마법은 이보다 조금 더 기분 나쁘고, 질척하고, 끊임없이 아래로 끌어내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를 감싸고 있는 그림자는 그렇게까지 음습하지 않다. 물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더욱 가볍고, 조심스럽고, 느리게 일렁이고 있다.
그래도 그 물결의 중심이 되는 마력은 내가 아는 것이다. 낯선 침입자의 것이 아니라.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이 그림자가 무얼 의미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박서현이 마침내 자신의 마법을 깨우쳤다. 약동하는 그림자는 박서현의 마력 그 자체이다. 그림자의 대마법사, 박서현의!
제어에 실패한 마력은 현실에서 구현되었다. 당연히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고, 위험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베테랑 헌터들이 많다. 홍석영에, 다선의 헌터도 다수 있다. 심지어 대마법사 김채민도 있지 않은가. 내가 나서지 않아도 금방 진정될 거다.
오히려 나나 홍석영 같은 헌터보다는 같은 마법사인 김채민이 해결하는 편이 박서현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껏 보아 온 김채민이라면 어린 마법사의 폭주를 외면할 성격이 아니다.
“……!”
마침 예민해진 감각 끄트머리에 희미하게 익숙한 마력 파동이 걸린다. 이건 홍석영의 것이다.
평소라면 잘 갈무리하고 있을 마력을 전투적으로 내뱉고 있다. 사나운 기운은 푹푹 꺼지는 그림자 속에서도 화려하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이건 일부러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다. 거친 파동이긴 하지만 적대적이지는 않다. 지금 이 상황이 누군가의 습격이 아니라 박서현의 마력이 원인이라는 증거였다.
“선생님….”
내가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동안, 한은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듣자 아차 싶었다.
곧바로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있는 건 경험이 많은 헌터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애들한테 똑같은 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괜찮아.”
나는 부드럽게 한은영을 달랬다.
“선생님!!”
한은영은 반쯤 울며 나에게 매달려 왔다.
목소리가 들리고 내 팔을 꽉 붙잡는 손길도 느껴졌지만, 한은영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박서현의 마법이 이랬던가? 박서현의 마법에 당해 봤어야 알지. 박서현은 어지간해선 사람에게는 자신의 마법을 쓰지 않았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다. 소리는 들리지만 패닉에 빠지기 직전처럼 보이는 한은영이 나를 놓치면 제대로 소리나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팔을 놓았다가 다시 찾을 수 없다면?
나를 구명줄처럼 붙잡고 있는 한은영을 잠시 둔 채 발을 휘적거렸다. 원래 여기에 테이블이 있었거든.
“……음.”
지금은 없지만.
완전히 공간이 분리된 건가.
“선생니임…. 저, 정말 괜찮은 건가요? 이, 이게, 뭐예요?!”
김채민이나 기다려 볼까.
“이거, 이, 이거, 저희, 막, 이거, 서, 설마 던전 브레이크…!”
김채민이 박서현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해결하면 아무 문제 없다. 그림자인지 어둠인지 모를 이 공간이 사람을 공격하는 낌새도 없으니까.
하지만…. 테이블이 있어야 할 자리를 걷어찼다. 내부에서 공간이 뒤틀려 버렸다면 곤란한데. 인식하자마자 한은영을 붙잡은 게 다행이었다. 만약 떨어졌다면 한은영과 같은 공간에 있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한은영.”
“더, 던전, 브, 브, 브레이크면, 어, 어쩌죠? 어, 어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 뒤로 갈수록 어쩐지 물기가 묻어난다.
…우는 거 아니지?
이런 상황에서 냉정해지라고 말할 정도로 나도 엄하진 않다. 배우지 못했다면 당황할 수도 있지. 그러니 학생 아닌가.
그래도 우는 건 참아 줬으면 좋겠는데.
“흡….”
한은영이 코를 훌쩍였다.
내 앞에서 돌아가면서 한 명씩 울기로 약속이라도 했나.
기가 막혔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한은영.”
“브레, 브레이크면, 아, 아, 아니면, 더, 테, 테러 같은 거나.”
“한은영!”
한은영의 손을 꽉 쥐었다. 아플 정도로 세게 쥐자 한은영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네. 네, 네. 네?”
“선생님 목소리 들리지?”
“네? 네, 어, 네. 드, 들려요.”
“내 목소리를 따라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짧게 숨을 헐떡이던 한은영이 내가 말하는 속도에 맞추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나는 천천히 계속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한 번 더. 들이쉬고, 내쉬고.”
대여섯 번 정도 반복하자 한은영의 숨이 완전히 차분해졌다.
“진정했어?”
“킁….”
대답은 없었지만 몸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확신할 순 없지만 이건 아마 마력이 폭주한 거일 거다.”
“마력, 폭주요?”
밝았더라면 멀뚱히 눈을 깜빡이는 한은영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어두워져서 당황스러운 건 이해해. 하지만 선생님이 네가 다치게 놔둘 것 같니?”
“…아뇨.”
“그래. 그러니까 진정해.”
“……네.”
여전히 훌쩍이는 소리가 섞여 있긴 했지만, 다시 공황을 일으킬 것 같진 않았다.
“혹시 모르니 날 계속 붙잡고 있어.”
나는 만약을 대비해서 말했다.
“떨어지게 되거든 당황하지 말고 기다려. 나나 김 선생님이 해결할 때까지. 알았어?”
“네….”
“내가 뭐라고 했는지 말해 봐.”
“서, 선생님을 계속 붙잡고 있고, 떨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선생님이나 채민 쌤 기다리기….”
“그래. 잘했다.”
그리고, 뭐.
저 말은 한은영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학생 하나가 금붕어 똥처럼 달려 있고, 별다른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여기서 나가는 건 나도 힘들다.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힘이 든다, 이 말이다. 이게 고유 마법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마력의 폭주였음에도.
게다가 내가 억지로 비틀어 열면 박서현에게도 타격이 간다. 그러니 평화롭게 김채민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기는 하다마는.
홍석영이나 김채민을 비롯한 헌터들은 걱정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성인 헌터들이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이런 비상 상황에 대한 훈련을 하나도 받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미니미.
“…….”
내가 알고 있는, 먼 미래의 박서현을 떠올렸다.
박서현은 오현욱처럼 관리청과 자주 일하진 않았다.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탓도 있었다. 가끔 한국에 들어오면 골치 아픈 던전을 부탁하곤 했는데, 그것도 대체로 유지은 담당이었다. 아니면 오현욱이 슬그머니 따라간다든가.
그래도 박서현의 고유 마법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다.
‘히.’
짧은 웃음소리와 함께 박서현의 발밑에서 늪이 만들어졌다. 타르처럼 찐득하고, 뚝뚝 흘러내리는 그림자의 늪이다.
그림자 늪은 먹이를 놓치지 않는다. 바닥이 없는 늪은 먹이를 질식시킨다. 한 점 빛도 없는 바닥에 도달하면….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어.’
부스스한 머리카락 사이로 기이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그렇게 중얼거린 박서현은 뭐가 그리 웃긴지 쇳소리를 내며 웃었다.
피아를 구별하지 않는 박서현의 마법은 어지간한 헌터들조차 박서현과 함께 일하는 걸 꺼리게 만들었다. 박서현도 다른 사람과 일하길 싫어했으니 크게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박서현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약점이 너무나 확실한 속성이다. 빛만 피한다면 박서현에게 상처 입힐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애초에 빛을 사용하는 몬스터는 거의 없기도 했고.
그래. 빛.
손을 움찔거렸다. 유지은의 검이 있었다면 적당히 화력을 조정해서 한은영을 내보내고 애들을 찾으러 갈 수 있을 텐데.
홍석영에게 아공간을 달라고 하면 주지 않을까? 유일한 길드원이잖아. 이 정도 복지는 해 줘야지.
“한은영?”
“네, 네?”
“다른 사람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
“다, 른 사람들이요?”
한은영은 멍한 목소리로 내 말을 반복했다.
아직 정신을 덜 차렸나.
이미선은 포럼 때문에 현재 펜션에 없었다. 순순진과 서한성이 정원에서 홍석영에 덤벼들던 걸 봤던 기억은 있다. 그새 그만둔 게 아니라면 최소한 그 둘은 홍석영이 데리고 있을 거다.
나머지는… 나머지는 모르겠다.
“어… 순진이랑 서한성은 정원에서 교장 쌤이랑 있었고요.”
그럼 됐다.
“이승연은… 배고프다고 했었는데. 누구랑 있는진 모르겠어요.”
“다른 애들은?”
“채민 쌤이 서현이랑 진우한테… 그, 마법 그거요.”
“김 선생님 아직도 포기 안 했어?”
“대마법사시잖아요. 그 둘한테는 좋은 기회니까….”
“어쨌든 김 선생님이 박서현과 최진우를 데리고 있어?”
“아마도…?”
한은영은 확신하지 못하는 듯 가느다랗게 말했다.
그래도 그 셋이 함께 있을 확률이 있다면 충분하다. 김채민이 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겠지.
“나머지는? 알아?”
“자, 잘 모르겠어요….”
미니미가 어딨더라. 점심을 먹인 뒤 그놈의 태블릿 PC를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영화관에 갔다 온 뒤로 어째서인지 그 고양이 애니메이션을 더 열심히 보고 있다. 왜지? 미니미한테 보여 준 영화는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가 잔뜩 나오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이었는데.
“…….”
미니미나 혼자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떠올리니 이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이들 중에서는 어른스러워 보였던 한은영도 당황했다. 심지어 내가 곁에 있는데도.
애들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리가 없고, 한은영처럼 공황에 빠지거나 하면 위험할 수 있다.
박서현의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애들이 위험에 처하도록 둘 수도 없다. 지금 당장 김채민이 해결한다면 모를까….
“음.”
어둠은 그대로다.
억지로라도 나가는 게 낫겠지. 홍석영의 마력 파동이 느껴지는 걸 보면 완전히 단절된 건 아니니 적당히 힘으로 찢어 버리면….
“아이고, 찾았다!”
그때 어둠을 가로지르는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 꼬마야. 선배님 찾았어. 팔에 힘 좀 풀어 봐. 응? 나 지금 숨 쉬기 힘들거든. 아니, 애가 왜 이렇게 힘이 세? 너 각성했니?”
“오빠?”
한은영이 목소리의 주인을 불렀다.
“어? 한은영, 뭐야. 너 울었어?”
“안 울었어!”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가볍고, 시끄러운 목소리. 한은영은 앞으로 튀어 나가려다가 내가 팔을 움직이지 않자 멈췄다. 나를 놓치지 말라는 말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서 감동이기는 한데.
“얼굴이 울었는데. 무서워서 울었냐?”
“안 울었다니까!”
“울었는데. 딱 보면 알지.”
지금 보인다고 한 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