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32)
마녀의 등불(1)
한 시간 전.
“정말 마법 이론 연구회 안 만들래?”
“아깐 토론회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게 그거 아닐까?”
김채민은 방긋방긋 웃었다. 김채민을 아는 다른 마법사들이라면 불길하다며 피할 미소였지만, 어린 마법사 두 명은 눈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따라 웃었다.
마치 엄마 오리를 따라가는 새끼 오리 같은 모습이다. 김채민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
“선생님이 잘해 줄게. 선생님이 이래 봬도, 많이 유명하거든.”
대마법사가 유명하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다.
“선생님 본가에 가면 마법책도 엄청 많거든. 선생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은 건데, 속성 마법도 속성 마법이지만 그 외에도….”
“그림자도 있어요?”
“…그으건 없지만, 빛 속성은 있는데.”
“그건 저도 있어요. 할아버지가 남겨 주신 거요.”
아무리 본가의 컬렉션이 훌륭하다고 해도 빛 속성 대마법사가 남긴 연구 자료를 뛰어넘는 빛 속성 마법책은 없다.
“다양하게 읽어 보면 좋지!”
“그래요?”
“다른 마법사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놓치고 있는 걸 볼 수도 있고, 음, 던전 공략할 때 참고도 할 수 있고.”
“던전 공략할 때도요?”
“던전 내부의 환경을 잘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숙련된 마법사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지.”
박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채민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최진우가 옆에서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정신 차리고 홀리지 말라는 의미에서 박서현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그럼 선생님이 연구회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저희 동아리 마법 고문 선생님이 되어 주시는 건 어때요?”
“아! 어어, 마, 맞아요. 그럼 되겠다.”
“동아리에 마법사만 두 명이잖아요. 저희 둘이서 하긴 좀 불안했는데. 이 기회에 선생님도 소속을 만들어 보시는 건…?”
어색하게 눈을 굴리는 박서현과는 달리 최진우의 말은 유려하게 이어진다.
이번엔 김채민이 가만히 최진우의 말을 들었다.
‘어머. 이거 지금 나 스카우트하고 있는 건가?’
몇 안 되는 대마법사를 포섭하려는 대가가 방과 후 활동이라니.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자신을 뭐로 아냐며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채민은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다. 무려 대마법사다.
그래서 김채민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 우 선생님만으로는 만족 못 했어?”
“우 선생님도 해 주시는데 선생님도 해 주실 수 있죠!”
반박하기 힘든 논리였다.
“너희들이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가르쳐 줄 거라는 건 알고 있지?”
박서현과 최진우는 서로를 잠깐 바라보았다가 김채민을 보았다.
“그거랑 이건 다르죠. 문서화를 해서 공식으로 만들어 놔야 나중에 문제가 없다고 했어요.”
“누가 그래? 승연이가?”
“네.”
“딱 이 헌터가 할 법한 말이네. 누가 조카 아니랄까 봐.”
김채민은 웃음기를 지우지 못하고서 입을 열었다.
“그럼 그렇게 공식화하면 나도 뭔가 이득이 있어야 하지 않겠니?”
“…사랑하는 제자들과의 즐거운 마법 토론?”
“너희 내 제자 하려고?”
“어차피 지금도 다 가르쳐 주고 계시잖아요.”
분명 처음에는 간단한 기초 이론과 마력 운용 정도만 가르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더 이상 기초라고 하기에는 힘든 수업이 되었다. 김채민도 그걸 알고 있었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잘 따라오니 신이 나서 그만…!
뭣보다 마냥 밝기만 한 아이들 사이에 있다 보니 재미가 붙었던 탓도 있다.
차마 반박할 말도, 마음도 없었던 김채민은 말을 돌렸다.
“그런데, 그럼 너희 우 선생님과는 뭘 할 생각이니? 고문을 맡아 주시기는 했는데, 우 선생님은 딱히 동아리에 손댈 생각이 없으시던데.”
“원래 다 그렇게 시작해요. 가랑비에 옷 젖는 법이라고요.”
“그렇게 말한다면…. 혹시나 해서 묻는데, 우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 길드 소속인 건 알고 있지?”
“네?”
몰랐는지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 선생님이 고문 자리 맡아 줬다고 방심하지 말렴. 내가 아는 교장 선생님은 한번 문 먹잇감은 안 놓치거든. 너희가 졸업한 뒤에도 우 선생님에게 한자리 내어 줄 계획이라면 꽤나 고생할걸?”
“윽….”
낭패한 듯 얼굴을 찌푸리는 어린 마법사를 사랑스럽게 바라본 김채민은 박수를 짝, 짝 쳤다.
“자, 그건 그렇고 오늘은 너희가 마법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예절을 알려 줄게.”
“예절이요?”
“음… 서현이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최진우와 달리 박서현은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와 지냈다면 아무리 어려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역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영역 선포하는 법 알고 있어?”
“…대충?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긴 하셨는데, 너무 어릴 때라서 잘 기억이 안 나요.”
“어차피 진우에게 처음부터 가르쳐 줘야 하니까 괜찮아.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묻고.”
김채민은 어릴 적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들었던 가르침을 되새겼다. 처음으로 손안에서 장미를 피워 낸 날, 할아버지는 기뻐하며 손수 손녀의 영역을 가꾸어 주었다. 할아버지의 손길이 듬뿍 묻어 있는 영역은 아늑하고 평온했으며, 언제나 그녀를 보호하는 따스한 보호막이었다.
이 아이들이 자신의 영역을 가지게 된다면 활짝 핀 장미꽃을 선물해 줄까. 서현이에게는 예쁜 핑크빛 장미를, 진우에게는 선명한 오렌지색 장미를 피워서 주면 잘 어울릴 것이다. 마력으로 피운 꽃이니 여차할 때 요긴하게 쓸 수도 있을 테고.
‘…잠깐. 나 진짜 얘넬 거의 제자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냐?’
영역을 가르치는 건 보통 어린 마법사의 스승이 하는 역할이다. 첫 영역을 꾸밀 선물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선물은 스승의 마력이 담긴 것이 좋았다. 제자가 독립하여도 스승과의 인연은 끊기지 않고 영원하다는 의미였다.
‘아냐아냐아냐. 계약서 안 쓰면 제자가 아니지. 내 장미꽃인데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람?’
김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역은 지난번에 설명한 적이 있어. 기억해?”
“넵. 일종의 금고 같은 거라고 하셨잖아요. 나만 들어갈 수 있는.”
“물론 물리적으로 막을 수는 없어. 보안을 잔뜩 걸어 두면 들어가는 게 힘들긴 해도 힘으로 뭉개 버리지 못할 건 아니잖아?”
“그쵸.”
“마법사들이 비록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생물이기는 해도….”
“쌤. 저희도 마법사인데요. 그 평가는 좀.”
“내 영역이니 네 영역이니 어쩌고 하는 건 인간보단 동물 아니니?”
김채민은 딱 잘라 말했다.
남의 집, 아니, 집도 아닌 별장에 잠깐 머물고 있다고 기운이 없어지는 불쌍하고도 가성비가 떨어지는 존재다. 슬슬 이 펜션이 거북해지기 시작한 박서현은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한 짐승은 아니니까 집 주위로 울타리를 치는 거야. 여길 넘어오면 죽인다, 같은.”
최진우의 표정은 아직도 아리송하다. 그래도 괜찮다. 나중에는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 마법사란 결국 영역 동물이었고, 세상 누구보다도 독립적인 개체였으니까.
“그러니 영역 선포는 울타리 같은 거야. 경고인 거지. 여긴 내 영역이니까 넘보지 마라.”
“…고양이가 스프레이 하는 것 같은?”
“그래! 그러니까 마법사가 동물보다 하등 뛰어날 게 없어!”
김채민은 깔깔 웃었다.
“인간도 동물이잖아. 그렇지? 마법사가 아니어도 다를 것 같니? 자기 집에 몰래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싫잖아.”
“그렇, 죠.”
“내가 이렇게 말해서 그렇지 이상할 건 없다니까? 현관문에 잠금장치를 달고, 금고에는 보안장치를 달잖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이게 마법사들의 기본 예의범절이란 거야.”
“…….”
“당장 영역을 만들 필요는 없어. 그건 천천히 공들여서 만드는 거야. 어디가 안전한지, 나에게 잘 맞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야 내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지…. 지금 배워 두고 나중에 써먹으라는 거야. 정작 필요할 때 모르면 큰일이잖니?”
김채민은 최진우와, 다소 우울해 보이는 박서현과 눈을 한 번씩 맞춘 뒤 싱긋 웃었다.
“거기에 더해서 던전에 오래 들어가 있을 때 유용한 간이영역에 대해서도 가르쳐 줄게. 이건 누가 알려 달라고 해도 절대 가르쳐 주면 안 된다? 내가 너희라서 특별히 가르쳐 주는 거니까.”
그 간이영역 선포가 박서현의 마력으로 구현되었을 때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았더라면 김채민도 좀 더 신중하게 가르쳤을 것이다.
* * *
할아버지의 집은 항상 밝았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라면 집 안 어디서든 커다란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맛볼 수 있었다. 해가 지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마력석을 전원으로 쓰는 조명은 달과 별처럼 빛났다.
박서현의 손에도 작은 조명 하나가 쥐어졌다. 러시아의 장인이 할아버지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는 조명은 꽃과 종달새가 색유리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안쪽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색색이 빛나는 게 퍽 예뻐서, 자주 할아버지에게 불을 켜 달라고 조르곤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는 인자하게 웃으며 조명을 켜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스스로 할 때가 되었지 않느냐, 서현아.’
할아버지의 손끝이 색유리 장식을 건드린다. 파란 유리로 된 깃털을 가진 새는 할아버지의 마력이 닿자 맑은 종소리로 지저귀더니 날개를 파닥거렸다. 짧은 비행을 마친 새는 제자리로 돌아와 꽃을 입에 물려다가… 할아버지가 손을 떼자 그대로 멈추었다.
‘서현이는 이 할애비의 손녀지? 그럼 할 수 있을 거란다. 아주 쉬워.’
할아버지는 밥을 먹는 것처럼 쉽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그러니 자신에게도 쉬워야만 했다. 등을 흠뻑 적시는 식은땀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조명을 켜는 일은 쉬웠다.
자기 전 그 작은 조명을 켜는 게 일과가 되었다. 새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그게 익숙해졌을 무렵, 할아버지는 다른 조명을 가리켰다.
‘이번엔 저걸 한번 켜 보련?’
역시 쉬웠다.
조명은 차츰차츰 늘어났다. 어느새 해가 지면 조명을 켜는 일은 자신의 일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집은 여전히 밝았다. 밝고, 밝고, 밝고, 밝고밝고밝고밝아서.
할아버지의 장례식도 밝은 빛 속에서 치러졌다.
그 뒤로 할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곳은 할아버지의 영역이었다. 할아버지의 영역이자 할아버지가 없는 집.
자신에게도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없다면 의미가 없었다.
“영역은 너에게 편한 공간이어야 해. 너만의 공간이니까. 그러니까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에 상관없이 너희 내키는 대로 꾸며야 한단다.”
영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할아버지의 집이 떠오른다. 유일하게 보았던 다른 마법사의 영역이었고, 그녀가 자랐던 곳이다.
하지만 그곳은 박노경의 손녀, 박서현의 집은 될 수 있었지만 마법사 박서현의 공간을 될 수 없었다.
“간이영역도 마찬가지야. 영역처럼 본격적으로 꾸밀 수는 없으니, 적당히 공간만 분리한 다음에… 내 마력을 고정시켜야 해. 닻으로 쓸 만한 게 있으면 편하고, 없어도 자기 영역을 떠올리면서 하면 쉬울 거야. 너흰 아직 영역이 없지만… 내가 보기엔 조만간 만들어야 할 거야.”
자신이 영역을 만든다면.
눈을 감고 익숙한 집을 그린다. 벽에 난 창문은 모조리 막아 버리자. 천장에 있는 창문도 가리자.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밝은 빛은 자신의 적이다. 그림자를 지워 버리는 난봉꾼이다. 현관을 꾸미고 있는 꼬마전구도, 복도를 따뜻한 빛으로 채우고 있는 전등도, 거실과 방마다 있는 모든 전등을. 할아버지가 침대 머리맡에 놓아 준 색유리 조명도 모두 치워 버리자.
그림자. 그림자로 가득한 나의 영역.
침입자조차 가라앉는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릴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