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33)
마녀의 등불(2)
가끔 어린 마법사들은 자기 세계에 매몰되곤 한다.
명상을 하다가, 자신의 마력을 탐구하다가, 외부의 자극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내면으로 침잠하게 되는 현상.
가벼운 트랜스 상태라면 큰 소리나 작은 충격으로도 균형이 깨져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박서현은 영역에 대해 배우고 있던 중이었다. 마법사의 절대적인 개인 공간 말이다. 거기에 열여덟 살 마법사의 속성은 그림자. 빛에 의한 양면이 뚜렷한 속성이다. 수업 중 우희재가 한 말에 힌트를 얻어 외부와의 공간을 구분하는 법에 대해 연구 중이던 박서현은….
김채민의 눈에는 일종의 아공간으로 보이는 영역을 만들어 냈다.
다른 때라면 김채민은 잔뜩 흥분해서 박서현의 발견을 축하해 줬을 것이다. 자신의 마력의 특성에 대해 아는 것은 마법사로서의 크나큰 진전이며 또한 고유 마법을 발견하는 일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 거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말해 주며 박서현이 마법을 응용할 수 있도록 도와줬을 것이다.
기묘한 우연과 순간이 맞물려 그림자 아공간에 펜션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근데요.”
김채민의 손가락에 난 상처를 보며 기겁한 최진우는 구급상자를 가져오며 입을 열었다.
최진우는 박서현의 발밑이 그림자에 잠겼을 때를 생각했다. 그림자는 물에 젖은 수채화 물감처럼 삽시간에 번졌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정원까지 그림자가 덮쳤을 것이다. 그러니 정원에 있던 사람들도 사라졌지.
이제 최진우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처음 시범고에 입학했을 때라면 그냥 멍청한 얼굴로 마법사는 이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하고 감탄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최진우는 스승을 모시고 있는 어엿한 마법사다. 눈을 감고 집중하면 마력 속에 녹아 있는 반짝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마법 사용에 익숙해졌다.
그러니 안다.
순식간에 넓은 펜션을 뒤덮은 그림자가, 평범한 마법사가 단순한 실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노련한 헌터들이 대응조차 하지 못할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영역으로 빠트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처음으로 최진우는 스승이자 친구를 향해 질투를 느꼈다.
흘러넘치는 마력. 정반대의 속성 마법을 수준급으로 구사하던 실력. 그렇다면 본연의 속성 마법은 어떨까?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하지만 최진우는 그 감정을 억지로 갈무리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마법사로 커 온 친구를 질투하는 것만큼 생산성 없는 일도 없어 보인다고!
“저랑 선생님은 왜 저 안에 안 들어갔어요? 아니, 저희 처음에 들어가긴 했죠? 그랬던 것 같은데?”
최진우는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을 머릿속에서 치워 버렸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박서현을 무사히 깨우고 휘말린 사람들을 꺼내는 일이다.
최진우의 질문에 김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긴 했는데, 우린 마법사잖니.”
“네?”
“고양이도 자기 영역에 인간이 오가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잖니. 뭐, 신경 쓰는 고양이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음… 전 고양이는 키워 본 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치고요.”
“나도 키워 본 적은 없어. 하지만 고양이든 늑대든, 다른 종이 오가는 것은 신경을 덜 쓰지만 자신과 같은 종이 자기 영역에 침범한다면 털을 세우고 으르렁거리지 않니?”
최진우는 예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를 생각했다. 늑대끼리의 영역 다툼에 대한 내용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무리의 늑대 한 마리가 자기 무리의 영역에 들어오자 거칠게 쫓아내 버린 내용이 있긴 했다.
“그쵸.”
“마법사들도 마찬가지란다. 비각성자는 무해한 토끼 정도고, 각성자나 헌터는 커다란 가젤 같은 거지. 초식 동물이지만 잘못 들이박으면 다칠 수도 있는?”
절대 동등한 육식 동물은 아니다. 마법사란 그런 생물이니까.
최진우도 김채민의 말에서 그 사실을 눈치챘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마법사는 늑대야. 내 영역을 빼앗을 수 있는 간악한 놈들인 거지.”
“…전 제자인데도요?”
“혈육은 아니잖니. 물론 혈육이어도 물고 뜯는 게 일상이지만!”
김채민은 깔깔 웃는 얼굴과는 달리 살벌한 말을 입에 담았다. 반쯤 질린 표정으로 있는 최진우를 보더니 설명을 조금 더 덧붙이긴 했다.
“그래도 서현이는 네가 제자니까 같이 있던 나까지 온전하게 밖으로 토해 낸 거야.”
김채민은 밴드를 붙인 손가락을 흔들었다. 밴드 바깥으로 긁힌 상처가 비죽 튀어나왔다.
“나만 있었으면 엄청 물어뜯었을걸?”
“아….”
“넌 손가락 넣어도 나처럼 이렇게 되지는 않을 거야.”
최진우는 김채민의 손가락과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고 바닥을 뱅글뱅글 맴돌고 있는 그림자 덩어리를 보았다.
“전 괜찮다고요?”
그리고 김채민이 말릴 새도 없이 그림자 안에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진우야!”
김채민은 기겁하며 최진우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최진우는 반항하지 않고 김채민이 잡아당기는 대로 팔을 뒤로 뺐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손이다.
“선생님이 전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넣으면….”
“괜찮네요.”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난 안 이랬는데.”
김채민은 뭐라고 형용하지 못할 표정이 되었다. 최진우는 김채민이 작게 중얼거리는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말을 돌렸다.
“선생님도 이거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응. 서현이가 자각이 있는 상태라면 모르겠는데, 애초에 그랬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손을 집어넣었는데도 괜찮다면 들어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들어가려고?”
“바깥에서 서현이를 부를 수 없으면 안에서 불러야죠.”
“이 안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그렇다고 계속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다른 선생님들도 안에 계시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안에 계시니까…!”
김채민은 말을 멈췄다.
홍석영이든 우희재든, 다선의 헌터들도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다. 박서현이 그림자 속성인 걸 아니 단숨에 마력의 폭주 현상이라는 것을 파악할 것이다. 안에서는 정확한 상황을 알기 힘드니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자연히 대마법사 김채민이 해결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기다리고 있겠지. 그게 정석인 해결 방법이고, 박서현에게 무리가 가지 않으니까.
김채민도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박서현을 깨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했듯이 박서현에게 가는 쇼크를 완전히 방지할 순 없었다.
“아니. 그렇다고 네가 들어가서는 안 돼.”
그래도 이제야 마법사 태를 내기 시작하는 아이의 등을 떠밀 수는 없다. 설사 저 안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들어갔는데 서현이가 너를 적으로 인식하면 더 곤란해져.”
“…그럼 어떡해요?”
“네가 들어가지 말고….”
김채민은 눈을 살짝 찡그렸다.
그림자는 결국 빛이 있어야 만들어지고, 빛이 있어야 사라진다.
“네 마법을 넣어 보자.”
* * *
고유 마법을 제외하고 유능한 마법사를 판가름하는 척도는 캐스팅의 속도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시간에 공략의 성공 여부가 갈리기도 하는 던전 내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마법이 필요했다. 우희재가 괜히 명동에서 어린 마법사들에게 실드의 시전 속도를 물어본 게 아니다.
빠른 마법 시전과 자신만의 고유한 속성 마법.
이 두 개가 모두 받쳐 주어야만 유능한 마법사로 인정받는다.
물론 아직 최진우는 유능한 마법사도 아니고, 제대로 독립한 한 명의 마법사라고도 할 수 없다.
기껏해야 미래가 기대되는 재능 있는 마법사 수련생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알겠니? 서현이가 말해 준 거 잘 기억하고, 제일 중요한 건 네 마력에 담겨 있는…”
“제 마법이요. 귀에 딱지 앉겠다고요!”
“이런 대규모 마법을 해 보는 건 처음이잖니. 마력 탈진은 항상 조심해야 해. 중간에 어지럽거나 하면 멈춰.”
김채민은 영 걱정 어린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이 방법이 잘 통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게 안 되면 강제적인 수단을 써야 하니까.
최진우는 눈을 감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했다. 차단된 시야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아야 하는데, 누군가 반딧불이를 풀어놓은 것처럼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빛이 눈이 멀 정도로 밝아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둠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저 빛이 지금 자신의 수준이겠지.
오래된 영화나 소설을 보면 그곳의 마법사들은 마법을 쓰기 위해 고풍스러운 단어가 잔뜩 들어간 긴 주문을 외우곤 했다. 옛날에는 실제로 그런 주문을 말하기도 했다고 김채민이 설명했다. 딱히 쓸모는 없지만 단순히 겉멋을 위해서라나 뭐라나.
그러다가 빠른 캐스팅이 미덕이 되면서 멋들어진 주문도 사라지게 되었고, 마법사들이 자신의 속성 마법을 연습할 때 심상의 구현화를 돕기 위해 사용하는 게 마지막 사용처가 되었다.
김채민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
빛. 어둠. 반딧불이. 빛. 빛. 빛.
“정말? 그게 전부야?”
“…….”
“네가 지금 하고자 하는 게 뭔데?”
서현이의… 영역을, 거기에 마법을.
“마법을? 마법을 어떻게 해?”
제 마법으로, 깨워서.
“깨워서?”
영역을….
“영역을?”
“밝혀요.”
빛.
박서현이 할아버지의 마법을 가르쳐 주며 뭐라고 설명했더라.
‘빛을 무서워하면 안 돼.’
‘원래 거기선 빛이 아니라 어둠이 들어가야 하는 거 아냐? 밤이라든지.’
‘음…. 왜, 밝은 빛을 보면 눈이 아프잖아. 해를 볼 때처럼.’
‘그렇지? 그걸 무서워하면 안 된다는 거야? 생리적인 현상인데도?’
‘마법사는 생리적인 현상을 모두 거슬러야만 하는 존재라구.’
박서현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매만지며 설명했다.
‘불 속성 마법사가 자기 불에 화상을 입으면 얼마나 우스워. 그런 거야.’
‘그런 거야?’
‘응.’
‘알 것도 같고….’
‘할아버지는 길을 잘 못 찾으셨어. 방향 감각이 썩 좋지 못하셨거든.’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눈이 슬며시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던전 안에서 마법으로 방향을 기억하려고 하셨대. 헨젤과 그레텔이 빵 조각으로 자기들이 온 길을 기억하려고 했잖아. 그것처럼.’
‘마법으로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동갑내기 스승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박서현은 차분히 설명을 이어 갔다.
‘그러다가 아직 가 보지 못한 길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셨대. 빛은 빠르잖아? 그러니까 빛을 먼저 보내면 훨씬 빨리 던전 구조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그래서 할아버지의 고유 마법이…?’
‘네가 네 마법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부터 찾는 것도 괜찮아. 하고 싶은 목표가 생기면 좋지. 할아버지의 마법을 그대로 쓰려고 하는 것보단 그게 더 나을지도? 채민 쌤도 채민 쌤 할아버지와 아버지 마법을 배웠지만 자기한테 맞게 고쳤다고 하셨잖아.’
‘흐으으음….’
‘천천히 해도 돼. 나도 이렇게 말해도 내 속성에 대해 감도 못 잡았는걸!’
멋쩍게 웃는 작은 목소리.
던전 안에서 길을 찾느니 마니 하는 이야기는 아직 자신에겐 이르다. 하지만 저긴 던전이 아니다. 내가 길을 찾을 필요도 없다. 그저 어둠을 밝히기만 하면 된다. 그 빛을 보고 박서현이 정신을 차리기를.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사히 나올 수 있기를.
아직은 희미한 빛이어도 괜찮다. 저 빛이 모이고 모이면 언젠가 태양처럼 밝은 빛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러자 깜빡거리는 빛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빛을 가두는 유리가 생긴다. 그 유리를 감싸는 구조물이 생긴다. 아직은 낡고, 삐걱거리고, 약한 충격에도 부서질 것처럼 생겼지만.
최진우는 활짝 웃으며 손을 뻗었다. 랜턴이 빛난다. 최진우는 가슴에서 피어나는 단어를 막지 않고 그대로 내뱉었다.
“너의, 드, 부이….”
기대와는 달리 맴도는 말은 목구멍에서 턱 걸려 완전한 문장이 되지 못했다. 발음도 새고 말았다. 아직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래도 지금은 충분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