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34)
마녀의 등불(3)
“아니, 넌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어두운 게 무서워?”
“나이를 먹어도 무서워할 수 있지!”
한은영은 한태경의 말에 발끈해서 외쳤다.
“그리고 나 안 무섭거든!”
“아, 예, 예. 그렇고 말고요. 마님께서 무섭지 않으시다면 무섭지 않은 것이지요.”
한태경은 빈정거리며 대꾸했다.
상관없는 사람들마저 짜증 나게 하는 목소리와는 달리 한태경은 선글라스를 반짝 빛냈다. 덕분에 주변을 희미하게 분간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한태경의 어깨에서 다리를 달랑거리고 있는 미니미도 조금 안심한 눈치이고. 손을 잡거나 서로의 옷을 잡고 더듬거리며 가는 게 불편했을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신경 쓰이는 점이 하나 있는데.
이십 년 뒤의 한태경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지금처럼 죽어라 선글라스를 사수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맨얼굴보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모습이 더 익숙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 선글라스가 저 선글라스던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그냥 검은색 선글라스였다. 지금 한태경이 쓰고 있는 건 분홍색이 섞여 있고.
하긴. 한태경 성격에 얼굴에 쓰고 다니는 종류의 아이템을 이십 년 동안 멀쩡히 썼을 것 같진 않다. 분명 중간에 부숴 먹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차라리 잘되었다. 아직 정확한 성능은 모르겠지만 저 선글라스가 평범한 아이템은 아닌 것 같으니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
지금도 봐라. 최소한 이 어둠 속에서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지 않은가.
“다선 헌터들은 몇 명 못 찾은 겁니까?”
“두 명 남았습니다.”
이승연을 데리고 있던 지유건이 냉큼 대답했다.
부엌에 있는 모습을 더 많이 봐서 그렇지, 지유건도 이미선이 데리고 다닐 만큼 경험이 많은 헌터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시야가 어두워지는 순간 이승연을 붙잡았다고 했다.
역시 유능한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 내가 뭘 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해 주지 않는가.
“홍 선생님은… 정원에서 서한성과 순순진과 같이 있었다고 했으니.”
아직 한태경이 찾지 못한 사람 중 그 세 사람은 걱정이 덜했다.
내가 걱정되는 건….
“유혜은과 유지은이 어디 있었는지 아는 사람 있습니까? 강태우 학생은요?”
대답이 없었다.
다선의 헌터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내 눈치를 살폈고, 아이들은 걱정 어린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한태경 덕분에 빛이 생긴 건 좋은데, 이건 불편하군. 아까 질문했어야 했다. 최소한 얼굴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서로가 불안에 물들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그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아니, 걔네 오늘 보긴 했지?”
“아침 먹을 때 봤어요.”
“정원에 나갔던 걸 봤는데.”
“아냐. 다시 들어왔어. 정원에는 한성이랑 순진이밖에 없었다니까?”
아이들끼리 인상을 쓰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한태경에게 눈짓했다. 다음 들숨인가 날숨인가를 쫓아가라는 뜻이었다.
“네? 뭐라고요, 선배님?”
저 멍청이가….
“네?”
“뭐라고 하셨어요, 선생님?”
아이들이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보았다. 그게 꼭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 같았다. 나는 벌린 입에 친절하게 먹이를 넣어 줄 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누구라고? 셋 중 하나라도 봤다면 말해.”
“어….”
서로를 붙잡고 쭉 늘어져 있는 사람 중, 제일 끄트머리에 서 있는 오현욱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아무도 붙잡고 있지 않은 손이었다.
“아마 저인 것 같습니다.”
어둠이 펜션을 덮쳤을 무렵, 오현욱은 혼자 방에서 쉬고 있었다. 서한성과 순순진이 훈련하고 있는 걸 보고 자기도 합류할 생각으로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중이었다고 했다.
참 다행이지 않은가. 옷을 다 갈아입은 후에야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와서.
나와 같이 있던 한은영도 패닉에 빠졌고, 지유건과 함께 있던 이승연도 꽤나 당황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과 달리 오현욱은 던전을 경험해 본 아이였다.
이 어둠 속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지만, 누군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오현욱을 발견한 한태경은 재미가 없다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겁먹지 않은 것이 더 중요했다. 친구의 마법에 괜한 트라우마를 입어서는 될 일도 안 되지 않겠는가.
“그래?”
그래도 잔뜩 긴장한 얼굴이 한태경의 빛나는 선글라스를 보고 경계를 풀었다가, 내 목소리를 듣자 어깨에서 힘을 완전히 푸는 걸 보니 기분이… 기분이 이상했다.
내 옷을 구멍이 뚫릴 만큼 강하게 붙잡은 한은영만큼이나 이상했다.
내가 정말 이 아이들에게 선생님이구나 싶어서.
…딱히 그렇게 신뢰를 얻을 만큼 선생처럼 굴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지은이는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를 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제가 알기로 숙제가….”
“숙제? 명상밖에 없을 텐데.”
미래의 유지은이 가지게 될 불같은 성질머리를 지금부터 다스리려면 명상밖에 없다.
지금의 작은 유지은이 그 유지은이 될 거라곤 생각 안 하지만, 아직도 한 번씩 자길 제자로 받아 달라고 지껄이는 성질을 보면 꼭 필요한 수업이다. 그리고 아주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명상은 강태우에게 더 도움이 되는데, 유지은에게 다른 커리큘럼을 짜 주기 귀찮아서 그냥 같이 시켰다.
“그럼 강태우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누구야? 이승연?”
“왜 제가 태우를 마지막으로 봤다고 생각하세요?”
“아냐?”
“맞아요.”
이승연은 평소처럼 농담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같이 뭐 먹자고 했는데 배가 안 고프다고 싫댔거든요.”
이승연은 꽤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도대체 진짜 왜 이렇게 친해진 건데? 친해졌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강태우를 생각하면 좋은 일이긴 한데, 여전히 떨떠름하다. 붙임성 좋은 이승연이 아니면 강태우가 친해질 만한 시범고 학생이 떠오르지 않기는 하지만.
“명상하러 갈 거냐고 물었는데, 걔가 명상을 하도 많이 해서요. 근데 그건 아니라고 했고….”
“그래서 어디 갔다고?”
“어… 헬스장에 가던 것 같았는데.”
재벌가 별장답게 이 펜션에는 헬스장도 있다. 다선 회장이 여기서 운동을 할 것 같진 않지만. 그 나이에는 헬스보다는 차라리 수영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또 이상하게 이곳에 수영장은 없다.
“선배님. 애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봤자 여기서는 다 섞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물어도 도움은 안 되는데요.”
한태경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D급 헌터였으면서 무얼 아냐고 말하는 듯한 표정과 그래서 그거라도 알면 해결할 수 있냐는 듯한 표정 사이에 있는 미묘한 얼굴로 말했다.
“차라리 이렇게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그냥 빨리 나가는 게 어떻습니까? 아직 못 찾은 애들이 걱정된다면 그게 훨씬 나을 텐데요.”
빛나는 선글라스가 한태경 얼굴에 붙어 있어서 본의 아니게 표정이 너무 쉽게 읽혔다.
한태경이 뭘 말하는지는 안다.
일부러 안 떨어지게 서로 붙잡은 채로 걷고 있는데 당연히 알지.
내가 이 일을 빨리 해결해야만 하는 입장이라면 한태경처럼 생각하고 진작 나갔을 것이다.
그냥, 내가 걱정하는 건.
“그럼 박서현 학생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이 상황을 무사히 해결할 수 있는 김채민이 있는데 내가 무리할 필요는 없지.
나는 이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마력이 폭주한 박서현의 선생님이기도 하다. 무시했다가 나중에 홍석영에게 한 소리 들으면 어쩌려고.
“흐으으으음. 뭐, 그렇기는 하죠.”
“한 선생님도 이제 시범고 교사이지 않습니까. 헌터처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전 헌터인데요?”
한태경은 멀뚱히 대답했다. 모르긴 몰라도 선글라스 너머에 있는 눈도 동그랗게 뜨고 있을 것 같다. 사이에 있는 한은영만 아니었다면 한 대 걷어찼을 텐데.
“이제 선생님이시죠.”
“에이. 전 수업도 안 하는데. 그걸 어떻게 선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창 던전을 공략하다 왔다고요.”
한태경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선배님을 말하는 거죠. 애들 생각하는 게 아주 절절 하신데요?”
“…….”
“애들 아끼는 선생님 있으면 학부모 입장에서야 마음이 놓이죠! 자부심을 가지세요! 선배님은 멋진 선생님이십니다!!”
“누가 학부모야?”
“당연히 나지! 사랑하는 동생아, 나는 엄마와 아버지에게서 너에 대한 전권을 일임받았단다.”
“뭐?!”
“그러게 누가 엄마 전화 받지 말래?”
남매가 투덕거린다. 한은영이 일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가?
한태경이 나한테 자부심을 가지라고 해 봤자 한태경이 하는 소리다. 그걸 곧이곧대로 칭찬이라고 받아들일 순 없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왜 아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지 떠올렸다.
혹시라도 혼자 떨어진 아이가 있을까 봐 그랬다.
아무도 없는데 공황에라도 빠져서 위험해질까 봐.
아니, 그렇잖아. 던전 공략도 못 해 본 애들인데. 강낭콩 대가리들이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낭떠러지를 향해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으면 막고 싶어지지 않냐고!
내가 강낭콩한테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차라리 강낭콩은 때가 되면 수확이라도 할 수 있지, 얘넨 내가 아무리 미래를 대비한다고 해도 언제 수확할 수 있을지 장담도 못 하는데…!
……그런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 애착의 증거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몇 개월 동안 내리 옆에 붙어서 가르치고 있는데 정이 안 들면 그게 인간인가.
“크흠. 어쨌든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갑시다. 헌터들이야 괜찮겠지만 아이들을 혼자 두기엔 걱정이 돼서요.”
한태경은 다시 미묘한 표정이 되어서 나를 보았다. 한태경의 얼굴이 나에게 보이는 만큼 한태경도 내 얼굴을 볼 수 있다. 아니, 저 선글라스 덕분에 빛이 없어도 볼 수 있었겠지.
“전부 헌터 라이센스를 땄다면서요. 그럼 헌터라는 건데, 자고로 헌터라면 이런 시련쯤은 기합으로 이겨 내야죠.”
“걔넨 미성년자입니다.”
“헌터에 미성년자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다 해야죠.”
“여긴 학교니까요.”
미성년자 헌터에 대한 보호법도 없는 세상이다.
갈수록 아버지가 왜 관리청을 만들었는지도 이해가 됐다. 헌터라도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대화는 도돌이표가 되었다. 한태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잠시 떠드느라 멈췄던 걸음이 이동한다.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유혜은과 유지은. 강태우.
적어도 아이들끼리 붙어 있다면 한결 마음이 놓일 텐데. 그것조차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히려 같은 공간에 있었는데 떨어졌다면 더 당황스러워할 것 같고.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어둠 안의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한태경의 인도만 있으면 찾을 수 있다. 그때까지 김채민이 박서현을 진정시키고 우릴 밖으로 꺼내는 게 제일 좋지만…
시간이 더 길어지면 박서현에게 다소 무리가 가더라도 나가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박서현의 성장이 아쉽기는 해도.
“어?”
“왜요? 왜 그러십니까?”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아이들을 발견했습니까?”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괜히 사람 심장에 무리가 가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한태경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한태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한태경의 뒤에 바싹 붙었다.
“어? 어어?”
“뭡니까?”
한태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지금 뭔가 보였다 사라졌는데. 뭐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