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38)
한창 친구가 좋을 나이(3)
조직을 관리하는 자라면 항상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여기서 조직은 단순한 친구 모임에서부터 학교 동아리, 각종 소모임, 기업 단체를 모두 포함하지만, 특히 소속된 사람이 적은 단체를 말한다.
사람의 수는 조직을 운영하는 데에 관계가 없다. 목적에 따라 소수의 정예로만 움직이는 곳도 있다. 굳이 따지자면 관리청의 공략팀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과거로 넘어오기 전, 관리청의 공략부서에는 1팀과 2팀만 있었다. 내가 막 관리청에 들어갔을 무렵에는 3팀까지 있었고, 아버지가 막 부서를 꾸렸을 무렵에는 다섯 개의 팀이 있었다.
그게 세 개로 준 것은 마력 측정기 덕분에 던전 운영이 안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4팀과 5팀은 남은 세 팀에 골고루 분산되었다.
그러나 3팀. 3팀에 대해서는 안 좋은 추억이 많았다….
멀쩡히 잘 운영되는 조직이 와해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무능하고 목소리만 큰 상사?
멍청하고 의욕만 넘치는 부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경험상,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조직을 와해시키는 것은 조직 내부의 인간관계다. 특히 남녀가 관계된 종류의.
3팀은 공략팀 중 가장 인원이 적었다. 3팀의 역할이 공략보다는 신입 훈련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10명이 전부였던 3팀의 팀장과 부팀장은 연인 사이였다. 그래, 연인. 서로 죽고 못 살 것처럼 보였던 연인은 같은 팀 내에서만 세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각자 말이다. 각자.
팀장과 부팀장을 포함해 관련된 이만 다섯 명이라는 기적의 산수를 보여 준 이 치정극은 당사자 전원의 퇴사로 막을 내렸다. 팀원의 절반이 날아가자 남은 이들도 어영부영 지내다가 하나둘 퇴사해 버렸다.
내가 관리청에 들어간 지 정확히 반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3팀 팀장과 부팀장의 바람이 들통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벌어진 일이기도 했고.
그 뒤로 신입 훈련은 유지은에게로 넘어갔다. 유지은은 그 연놈들을 다시 보게 된다면 목을 벨 거라고 이를 갈아 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팀장과 부팀장은 유럽으로 넘어갔다고 들었다.
뭐, 꼭 이 꼴사나운 관리청의 치부가 아니더라도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같은 과에서는 사귀는 게 아니라는 선배들의 눈물 어린 조언을 들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나마 대학이라면 휴학하거나 졸업하면 피할 수라도 있지.
멸망할 세계를 막기 위해서는 시범고 학생들 사이에 어색함이라고는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가 왜 얘넬 가르치고 있는데!
…요즘 그 목적이 조금 퇴색되고 있는 느낌이긴 하지만, 최소한 처음 홍석영에게 끌려왔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슬슬 자네한테도 익숙해졌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서로 귓속말을 하며 키득거리고 있는 박서현과 최진우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자 홍석영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홍석영에게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네?”
“자네 선생님한테는.”
홍석영은 히죽 웃었다. 김채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와 홍석영을 번갈아 보았다.
“생각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 들은 적 없나?”
“…….”
“없어?”
자존심 상했다.
나는 눈을 찌푸리다가 겨우 대답했다.
“…있습니다.”
“한 번?”
“……여러 번요.”
“그렇지?”
홍석영은 즐겁게 웃었다.
“내가 느낌이 딱 왔는데, 자네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고.”
‘희재야. 아저씨가 보기에 넌 너무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대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을 대비할 순 없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건 아무 쓸모 없단다.’
“그냥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해. 그게 제일이야. 머리도 안 아프고.”
‘그러니까 즐거운 일만 생각해 보렴. 생각보다 세상은 좋게 좋게 흘러가는 법이거든.’
좋은… 즐거운 일이라.
잘 풀리면?
다시 박서현과 최진우를 보았다. 머리를 맞대고 키득거리다가 눈이 마주치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제일 걱정하고 있었던 박서현의 정신은 안정되어 보였다. 홀로 고민하고, 속으로 삭이는 것보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가 있는 게 낫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부디 우정에서 끝나라.
사랑으로 바뀔 거라면, 결혼할 각오로 해라. 대마법사라는 미래의 전력을 겨우 그런 문제로 잃을 수는 없으니까.
…나도 내가 너무 나간 건 안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런 내 옆에서 홍석영은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재수 없게 웃었다.
* * *
김채민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난 뒤였다.
빛 한 점 없는 공간을 헤매고 있다 보니 시간 감각이 없었다. 우리가 나와서 아이들을 확인하고 대충 상황을 정리했을 때는 이미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김채민으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고, 박서현을 충격 없이 깨우기 위해 최진우를 지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만 이미선에게 연락하는 걸 잊었지 뭔가.
이미선도, 조카와 부하들과 연락이 안 돼서 당황한 건 알겠다마는 왜 홍석영과 나에게만 전화를 해 보고 만 건데? 김채민까지 떠올리라고.
던전에 들어간 게 아니면 홍석영과 연락이 끊길 일은 없으니, 전화가 안 되는 순간 이미선이 눈이 돌아가서 여기까지 급하게 온 건 알겠다.
하지만 역시 김채민에게 전화를 했으면 될 일 아니었을까?
결국 또다시 교직원 회의가 열렸다.
“교직원 회의면 이사장은 빠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이사장 무시해요?”
“어차피 제 월급은 홍 선생님 개인 통장에서 나오는데요.”
“시범고가 정식 교육 기관이 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 선생님?”
“설마 다선 길드 마스터가 불쌍한 선생 인생을 망치려고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소식을 아주 좋아할 기자가 있을 것 같은데. 원래 큰 사람이 되려면 뉴스에도 나오고 그래야지요.”
뭐, 이미선과 진짜 척질 일 있나.
나는 싱긋 웃었다.
“농담인 거 알죠?”
이미선은 기가 막힌 얼굴로 나를 보았다.
“홍 헌터님. 헌터님 길드원이 저 괴롭히고 있는데요.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음? 그럼 자네도 괴롭혀.”
“…….”
“…….”
이미선과 시선을 교환했다.
홍석영은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나는 농담을 그만두고 김채민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니까, 김 선생님. 박서현의 마법이 폭주했다는 말이죠? 영역 가르치다가 사고로?”
“서현이 속성이 영역과 시너지가 너무 좋아서 일어난 일이에요. 저도 알았더라면 조심했을 텐데…. 다음에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날 거예요.”
“그리고 최진우 학생은….”
“진우! 진우가 자기 마력을 깨우쳤지 뭐예요? 세상에, 진짜 생각도 못 했어요.”
최진우 이야기가 나오자 김채민의 얼굴이 환해졌다.
“솔직히 진우가 다른 부분에서는 아직도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거든요? 실드 같은 건 연습을 많이 했는지 곧잘 하긴 했는데, 그 외에는….”
“그렇죠.”
“서현이가 가르치는 빛 마법도 사실 그렇게 진전은 없었어요. 아무래도 다른 원소 계열의 마법보다는 와닿는 게 없어서 그런 것 같긴 했어요. 어머, 어머. 앞으로는 진우 데리고는 밤에 수업해 봐야겠다. 어두울 때 해야 빛이 잘 보이잖아요? 왜 그런 당연한 걸 생각을 못 했지?”
“김 선생님.”
김채민은 최진우의 수업 방향에 대해 한참 떠들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런 김채민의 모습을 보고 있자 어쩐지 측은지심이 들었다. 어쩌다 대마법사나 되는 이가 여기서 애들이나 가르치고 있나.
어쩌기는. 룬에 낚여서였지.
“아아, 네. 어쨌든 서현이가 저는 공격하는데, 진우는 그냥 밀어 내기만 했거든요. 그래서 진우가 들어가겠다고 하는 걸 말리고, 마법을 넣어 보자고 한 건데….”
“그 랜턴요.”
“네. 그거요.”
김채민은 어깨를 폈다.
“제가 서현이 할아버지의 고유 마법을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진우가 그걸 흉내 냈어요. 자기 식으로요.”
“고유 마법을 흉내 냈다고요?”
“박 선생님 마법이랑은 조금 다르긴 해. 박 선생님은 길을 안내했지,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불을 붙이진 않았거든.”
“그래도 결과는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을 거예요.”
“흉내 낸다고?”
김채민은 눈을 찡긋거렸다. 최진우가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다.
“랜턴으로 밝힌 곳의 지형을 파악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지도를 그린다는 느낌으로?”
나는 눈을 찌푸렸다. 지도보다는….
그거, 맵핵 아냐?
“아직은 불안정하고, 진우가 이대로 마법을 완성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요. 많은 마법사들이 이 단계까지는 오지만 고유 마법으로 각성하는 건 극소수니까요.”
그 극소수의 마법사 중 한 명인 김채민이 말했다.
“서현이의 마법… 혹은 영역. 그것도 고유 마법의 기반일 거예요.”
이건 그 안에 있을 때 반쯤 예상했다.
마녀 박서현의 고유 마법.
[늪덩이에 가라앉는 등불] [시전자를 중심으로 늪을 만든다. 외견은 그림자처럼 보이나 그 위에 서 있는 이들을 그림자 안으로 끌어들인다.] [늪에 빠진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유일하게 늪에 들어갔던 독일의 마법사 다니엘 슈나이더는 관련된 질문을 모두 거부하였다.] [현재 확인된 변형은 다섯 가지이며, 박서현이 가장 자주 쓰는 형태는 늪과 반구이다.] [반경 10m가 목격된 마법 중 가장 큰 크기. 메모리얼의 오현욱의 발언에 따르면 그것이 박서현의 한계는 아닌 것으로 사료됨.]한국에서 몇 안 되는 대마법사 아닌가. 당연히 박서현의 고유 마법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자료가 추가되었다.
지금 박서현이 만들어 낸 공간은 조금만 힘을 주면 금방 찢겨 버릴 만큼 얇았지만, 마녀… 아니, 대마법사 박서현이 만들어 냈던 공간은 그런 얄팍한 그림자가 아니었을 거다.
빛 한 점 없고, 내 몸조차 볼 수 없는 암흑. 빠져나갈 방법 따윈 없는 궁극의 감옥.
“하지만 서현이가 가진 마법은 본인에게도 위험해요.”
김채민이 말하길, 최진우는 우리가 있던 그 마법 속에서 박서현을 찾았다고 했다. 애초에 박서현을 깨우기 위해 마법을 썼다고 했으니.
그러나 김채민은 다시금 환하게 웃었다.
“그러니 진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둘이 상성이 너무 좋다니까요?”
“…이건 안 맞는다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좋은 거죠!”
김채민은 단호하게 말했다.
“서현이는 자기 마법에 잠기기 쉬운데, 언제든 자길 깨워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잖아요.”
“뭐….”
“진우도 마찬가지고요. 마법을 각성했을 때와 비슷한 환경에서 여러 번 마법을 써 보는 게 감을 익히기에 좋거든요? 그런데 보통은 그런 환경은 인위적으로 만들기 어려운데….”
김채민의 말을 더 듣지 않아도 이해했다.
“박서현이 마법을 쓸 때마다 비슷한 환경이 조성되는군요?”
“그렇죠! 아, 서로를 돕는 사제라니! 너무 멋지지 않나요?”
황홀해하는 김채민을 잠깐 치워 두고.
즉, 정리하자면 박서현의 안전장치로 최진우를 쓰자는 거 아닌가.
마녀 박서현이 가끔씩 폭주할 때마다 돼지 오현욱이 마력 폭풍을 파헤쳐 진정시켰던 것처럼.
“…….”
오현욱보다는 최진우가 낫지. 새끼 돼지보단 못하기도 어렵긴 한데.
교직원 회의라고 해 봤자 사정 청취에 가까웠고, 굳이 잘잘못을 따질 일도 아니었다.
김채민이 이미선을 붙잡고 박서현과 최진우의 재능에 대해 떠들어 대는 걸 못 본 척하며 회의실을 나왔다.
“…….”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박서현과 최진우와 마주쳤다.
“그… 저기, 고마워.”
“어?”
“네 마법이 아니었다면 진짜 큰일 났을 거야.”
재빨리 몸을 숨겼다. 벽에 기대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나, 그, 어릴 때 말이야. 난 항상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었거든…. 할아버지는 맨날 아빠 사진만 바라보고 앉아 계셨는데, 내가 마법을 쓰면 되게 기쁜 듯 웃어 주셔서. 그래서. 할아버지가 기운을 내셨으면 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이건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들으려면 박서현이 직접 해 주어야 한다.
나는 더 듣지 않고 돌아 나왔다. 집이 넓은 건 이래서 좋다. 다른 길로도 갈 수 있거든.
결국 저 나이에는 뭐든 친구와 같이하려고 하지 않는가. 온종일 같이 있어야 하는 기숙 학교라면 더 하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버지의 말대로 잘 풀리겠지. 신경 써 봤자 머리만 아프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