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39)
세계미공략던전 포럼(1)
“선생님이 포럼 가서 무시당하면 안 되잖아요.”
문제의 미공략던전 포럼을 나흘 남겨 둔 저녁.
이미선은 조용히 다가와서 말했다.
물론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되물었다.
“홍석영의 보증을 받았는데 누가 절 무시합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이미선은 울컥 짜증을 냈다.
포럼이 가까워질수록 이미선을 비롯한 다선의 헌터들은 화가 많아졌다.
나야 시범고 일밖에 모르지만 그쪽으로서는 할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포럼 주최가 국제이능협회니 비밀리에 움직이는 특수활동부라고 해도 나름 할 일이 많겠지. 그렇게 이해하고 내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 주고 있다.
“어쨌든 그래서요.”
“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세요.”
“…그걸 지금 묻습니까?”
이미선은 입을 삐죽거렸다.
“깜빡했어요.”
“…….”
그렇게 당당하게 나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러잖아도 내일쯤 홍석영을 닦달해 필요한 걸 챙길 생각이었는데 잘되었다. 이미선이 이렇게 물어본다면 내가 할 필요는 없겠군.
“일단.”
“일단? 많아요?”
“양복이요.”
“아. 양복. 네, 그건 준비해 뒀어요. 내일 아이들이 가져올 거예요. 홍 헌터님 것도 챙겨 둬서….”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이미선을 보았다.
“이 헌터님이 그런 것까지 챙겨 줍니까?”
사람을 돈으로 구분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재벌가의 막내딸이자 잘나가는 길드 마스터에 국제협회의 특수요원이 하는 일이라기엔… 좀. 그렇잖아.
이미선도 그걸 알았는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지금 같이 일하는 사이인데, 홍 헌터님이 평소 입는 대로 가시면 제가 더 곤란해져요! 홍 헌터님이야 괜찮으시겠지만!”
홍석영의 평소 차림을 떠올렸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대충 손 가는 대로 주워 입은 바지.
“다들 평소와 똑같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앞으로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니까요!”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이능관리청 계획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군. 확인했으면 되었다.
“어쨌든 준비를 해 두었으면 됐고요. 아공간 하나가 필요합니다.”
“아공간이요? 안 그래도 홍 헌터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당장 준비할 수 있는 건 크기가 작은데…. 괜찮죠?”
괜찮고 말고 간에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또 필요한 거 있어요?”
“썩 대단한 건 없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이미선이 자료를 정리할 때 같이 확인하긴 했지만, 역시 한 번 더 보는 게 좋겠지.
“포럼 참석자 확정 명단을 보고 싶은데요.”
이미선의 머리가 옆으로 갸우뚱 기울였다.
“저번에 보셨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요.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서요.”
“네, 뭐…. 그건 서재에 있으니까 바로 줄게요.”
“아. 그리고.”
“네?”
“혹시….”
내 말을 들은 이미선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 * *
세계미공략던전 포럼.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총 삼 일간 개최된다.
국제이능협회에 가입된 국가는 총 193개국.
193개나 되는 나라에서 모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강제 참가가 아니라 단순히 헌터들끼리 교류하는 일이다 보니 많을 때는 수백 명씩 모이지만, 적을 때는 오십 명도 겨우 채운다.
자격 요건은 S급 헌터. 단순히 S급이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고, 공략 던전 개수라든가 하는 조건이 몇 개 더 있다. 그 조건을 채우면 세계미공략던전공략지원협의회라는 기나긴 이름을 가진 조직에서 초청장을 보내온다. 거기에 가입하면 포럼 초대장을 받을 수 있다.
즉, 이 포럼은 일종의 명예직이다. 자신이 이곳에 참가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한 헌터라는 증거.
자격 요건이 저 모양이기 때문에 포럼에 참석하는 이들은 대부분 S급 헌터이거나 대마법사들이다. 하지만 참석자가 보증한다면 S급이 아니라도 갈 수 있다.
지금의 나처럼.
오랜만에 양복을 갖춰 입었다. 시간이 촉박했을 텐데도 이미선은 이미선인지 용케 질 좋은 정장을 구해 왔다. 빳빳하게 다림질된 바지와 셔츠. 익숙하게 넥타이를 맸다. 옷을 갈아입느라 잠시 벗어 두었던 마력 시계를 다시 손목에 찼다. 정장 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생김새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젠 나와 한 몸같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재킷을 걸쳤다. 안주머니에 원래 내가 들고 다니는 지갑과 이미선이 준 작은 파우치를 넣었다. 생김새가 다르니 헷갈릴 일은 없다.
아무 무늬 없는 어두운 색의 파우치 안에는 당연히 유지은의 검을 넣었다. 그리고 이미선에게 따로 부탁한 물건들도.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익숙한, 비서실장 우희재가 완성되어 있다.
머리를 깔끔하게 넘길까 하다가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게 왠지 자존심 상해서 말았다. 어차피 지금은 실장도 아니고, 그냥 홍석영의 길드원에 불과하지 않나.
“형!”
준비를 끝내고 나오자 미니미가 나한테 달려왔다. 아니, 달려오다 말고 멈췄다.
평소 하던 대로 안아 주려다가 나도 덩달아 멈추고 말았다.
“…왜 그래?”
“아니…. 형, 그런 옷도 있었어?”
“뭐? 아, 양복?”
나야 이쪽이 더 평상복에 가까웠지만 미니미에게는 아니었다. 아니, 트레이닝복 입고 다닐 땐 아무 말 안 하더니. 형도 연구소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니진 않았다고.
“형이 오늘 갈 곳이 있다고 했잖아.”
“…언제 온다고 했지?”
“빨리 끝나면 금요일.”
“늦게 끝나면?”
“글쎄….”
그건 내가 아니라 알렉스 호프가 어떤 놈인지에 달려 있다.
나는 미니미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최대한 빨리 올게.”
“흥.”
“형 없다고 만화만 보고 있지 말고.”
“…흥.”
얘 지금 대답 안 한 거 맞지.
“형이 나중에 확인할 거야.”
“많이 안 볼 거야!”
안 본다는 소리를 안 한 것도 맞지.
한태경, 이 자식….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이 펜션 주위에는 던전이 없나? 한태경을 보내 버리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무려 다연 회장님의 펜션인데 다 정리해 놨겠지.
“아, 빨리 가! 간다며!”
만화를 보지 말라는 소리에 미니미는 내 등을 떠밀기 시작했다.
한 달 전만 해도 내 껌딱지인 양 붙어 다니던 애가 이젠 빨리 가라며 잔소리하다니. 기뻐해야 할지 서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에 대한 의존도가 준 것은 좋은 일이긴 하다만.
…가기 전에 한태경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고 갈까? 차라리 김채민에게 부탁하는 게 나으려나?
“우 선생. 준비가 다 되었나?”
“네. 됐습니다.”
“오, 이록아. 형 배웅하러 왔어?”
홍석영은 미니미를 보자 다정하게 웃으며 무릎을 굽혔다. 미니미는 잠깐 움찔하긴 했지만 홍석영을 피하지 않았다.
홍석영도 이미선이 가져온 양복을 입고 있다. 짙은 회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
어쩐지 눈에 익은… 옷인데. 저 양복, 이미선이 준 거였구나.
혀를 한 번 쯧, 차고 미니미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 없는 동안 얌전히 있어.”
“…….”
미니미는 시선을 피했다.
홍석영이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내 얼굴을 자꾸 흘깃거리는 게, 과거의 자신에게 고생하는 내가 우스….
“…….”
우스울 만하지. 내가 홍석영의 입장이었어도 웃을 거다. 웃기만 하니 고마운 일이다. 난 참지 못하고 결국 말을 보탰을 텐데.
홍석영의 정강이를 걷어차려다가 미니미가 보고 있어서 참았다.
“형이 가르쳐 준 번호 기억하지?”
“응.”
“김채민 선생님한테 말하면 전화 빌려주실 거야.”
김채민도 원래는 포럼에 가려고 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남기로 했다.
그 결정에 아쉬워하던 김채민은 없다. 요즈음 김채민은 박서현과 최진우 가르치는 데에 재미가 붙어서 오히려 포럼에 가자고 했으면 짜증 냈을 거다.
마법사란.
“형이 낮에는 일하느라 못 받을 수도 있는데, 그럼 형이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알았지?”
“응.”
“선생님 말 잘 듣고 있어. 다른 형이랑 누나 말도 잘 들어야 해.”
“…….”
“이록아.”
“…….”
“대답해야지?”
“…생각해 보고.”
이만하면 되었다.
미니미는 나와 홍석영이 현관을 나서자마자 홀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래서 애는 키워 봤자 소용이 없다.
“큭… 크큭….”
홍석영은 여전히 숨죽여 웃다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나를 보았다.
“입 다무세요.”
“큽…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네.”
“그러니까 조용히 하시라고요.”
“…….”
“…….”
“크크크큭…….”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 *
포럼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마지막으로 알렉스 호프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그새 이미선은 알렉스 호프에 대한 정보를 갱신했다. 어제 인천 공항으로 입국. 호텔 주위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을 찍었다.
알렉스 호프를 제외하고 호주에서 온 헌터는 세 명이 더 있다. 사진 속에는 호주의 헌터들도 전부 있었다.
강태우를 습격하던 때와는 달리 알렉스 호프는 편안하게 웃으며 함께 온 헌터들과 떠들고 있었다. 작은 체구는 헌터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예쁘장한 얼굴도.
저렇게 얌전히 웃고 있는 걸 보면 그놈과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동일 인물일까? 아니면?
직접 만나 보면 무언가 밝혀지겠지.
방주든, 방주가 아닌 무언가든.
“자네 시간에서는 알렉스 호프가 없었다고 했었나?”
포럼장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여태 조용히 있던 홍석영이 물었다.
차 안에는 나와 홍석영 둘밖에 없다. 이야기하려면 지금이 적기이기는 했다.
“네. 최소한 제가 아는 내에서는 없었습니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작게 활동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미지의 영역이란 소리군.”
“어차피 제가 여기로 온 이후로 그렇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홍석영은 운전대를 잡은 채 큰 소리로 웃었다.
“과거로 왔다고 인생이 편해지면 개나 소나 시간 여행을 하려고 난리였겠지.”
“억만금을 줘도 별로 하고 싶은 여행은 아닌데요.”
“자네야 당사자니까 할 수 있는 소리지. 보통 사람들은 바꾸고 싶은 과거가 한두 개쯤은 있기 마련이라고.”
“…선생님도요?”
“나? 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홍석영은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었다.
“미래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해도 그걸 써먹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냐는 다른 문제야.”
“당연하죠.”
“미래의 정보는 약간의 힌트라고 생각해야 해. 이쪽 길을 고르면 지름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같은 거.”
“…그거 힌트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 앞에 있는 갈림길이 수백, 수천 개라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
“하지만 힌트가 없다면?”
“한 번씩 다 둘러본다?”
“수천 개라니까. 그걸 어떻게 확인하나.”
홍석영은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냥 눈 딱 감고 하나 선택해서 걷는 거지. 그 길이 정답이라고 믿으면 정답이 되는 거야.”
“순 억지 아닙니까.”
“원래 목소리 큰 놈이 이겨.”
그게 그 의미는 아니라고 보지만….
이게 홍석영 나름대로 나를 위로하려고 하는 것임은 알겠다. 그래서 그냥 픽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자동차의 속도가 줄었다. 멀리서 포럼이 열리는 회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준비되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계미공략던전 포럼.
1일 차.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