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42)
세계미공략던전 포럼(4)
재능 넘치고, 천재라는 소리를 무수히 듣더라도 기본 바탕은 몸 튼튼한 멍청이들이다. 기대감을 접고 현실을 마주했다. 이 고집 센 멍청이들이 희망이다.
…이래도 괜찮은가? 정말로?
자기들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줄 아는 골 빈 놈들. 헌터의 평균 수명이 짧은 건 분명히 이 때문이다.
한심함을 숨기지 못하고 회장 안의 헌터들을 둘러보다가 진행자의 말에 집중했다. 시작은 미공략 던전 현황 브리핑이었는데 어느새 제발 신고 없이 던전에 들어가지 말라는 성토로 바뀌어 있었다.
그 위로 내 모습이 겹쳤다. 난 저기서 읍소하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협회를 거쳐 전해지는 강렬한 항의를 해결해야 하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괜히 몰래 들어갔다가 공략해 버려도 문제고, 공략에 실패해도 문제다. 실패해서 죽은 놈들이야 그렇다 쳐도, 공략에 성공해서 잔뜩 기고만장해진 놈들 대가리 깨는 일은 꽤 손이 많이 가는….
“우 선생.”
고개를 들었다. 홍석영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등을 기댔다. 협회가 부실한 의자를 가져다 놨을 리가 없는데 의자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 중에.”
이번에는 홍석영이 소리를 차단했다. 뭘 물어보고 싶어서 그러나.
“나중에도 공략이 안 된 던전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나?”
“저 중에서요?”
“그래.”
“그렇게 많진 않은데….”
공략법은 나왔지만 자원 문제로 일부러 놔둔 던전도 있었다. 하지만 홍석영이 그런 걸 묻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모든 공략에 실패한 던전.
2021년을 기준으로도 이십 년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여전히 공략에 실패했다. 지금이야 객기 어린 헌터들이나 그 안의 지식이 탐난 마법사들이 몰래 들어가곤 했지만, 그것마저도 삼십 년이 넘어갈 무렵엔 사라졌다.
수도원의 가장 높은 층에 게이트가 나타난 이래로, 무려 사십 년이란 세월 동안 공략되지 않은 악명 높은 던전.
다르게 생각하면 그 시간 동안 던전이 무너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던전이 터졌다가는 어떤 재앙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아니지. 일어났나? 그날 모든 던전이 다 터졌다면 그것도 터졌을 테니까.
나는 마침 화면에 떠 있는 던전을 가리켰다.
“제일 유명한 건 저거죠.”
몽생미셸의 도서관.
“저거? 도서관? 나도 공략 못 했나?”
“들어가 본 적 있습니까?”
지금 시점에서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홍석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지만 악명은 듣긴 했지.”
“그래요? 저도 들어간 적은 없는데 선생님한테 들었던 건 있습니다.”
아저씨가 나에게 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몽생미셸의 던전은 그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긴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요.”
* * *
포럼의 첫날은 진행자의 절절한 외침으로 막을 내렸다.
알렉스 호프와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싶었지만, 놈은 호주의 다른 헌터들에게 붙들려 끌려갔다. 그래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끝까지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어 댔다.
호프를 끌고 가던 크리스 윌슨은 나와 홍석영을 보더니 허리를 숙여 가며 인사했다.
“아주 예의 바른 친구군.”
“…정말 예의 바른 친구라면 저희 앞에서 그렇게 소리치면 안 됐죠.”
“서양인이잖은가.”
“그다지 관계는 없어 보이지만…. 호프의 모친이 대만인이라고 했잖습니까. 그 영향일 수도 있죠.”
윌슨이 호프에게 모친을 들먹거리며 잔소리했던 걸 생각하면 아는 사이인 것은 확실해 보였으니까. 이미선이 조사한 바로는 그쪽은 수상한 점이 없었다. 골치가 아파져 온다.
포럼에 참석한 호주의 헌터들은 전부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내가 사망 시기를 따로 기억하고 있을 만큼 중요한 이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브라운 가족이나 베넷은 죽은 뒤에도 그 영향력이 컸다. 무엇보다 제임스 브라운이나 애셔 브라운이라면 몰라도 딜런은 아는 사이기도 했으니까.
‘도대체 정체가 뭐야?! 헌터 아니라며? 그런데 왜 그렇게 강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경악하던 얼굴.
지금은… 열네 살이던가? 나는 둘째치고 미니미와도 만날 일이 없겠지.
나는 호주의 헌터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홍석영은 어느덧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헌터들을 보며 진저리쳤다.
“뭐야? 다들 언제 그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았다고?”
“평생 제자 같은 거 안 키운다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제자를 데려왔으니 그렇지. 홍, 오랜만에 한잔하겠는가?”
“그러고 보니 자네 뭘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래, 학교 만든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갑자기 귀국해 버렸잖아!”
홍석영을 달달 볶고 있는 헌터들도 하나같이 유명한 헌터들이다. 몇몇은 자국의 헌터계의 개혁을 이끌었다고도 전해지는 이들이었다. 아직 그 정도로 대단해지기 전이긴 하지만.
홍석영을 둘러싼 이들 중에는 한국 헌터도 있었다.
한국에서 포럼의 초대 조건을 만족시킨 사람이 홍석영만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의 헌터보다는 이쪽이 더 알아보기 쉽다. 다만 이쪽은 홍석영보다는 나에게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알렉스 호프만으로도 충분하다. 홍석영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후 회장 밖으로 나왔다. 알아서 오겠지, 뭐.
포럼은 서울 외곽에 있는 호텔에서 열렸다. 숙소도 해당 호텔에 배정되었다. 아마 지금 호텔에서는 다른 손님을 받진 않을 거다. 괜히 민간인들과 헌터를 붙여 놨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선이 손을 쓴 게 분명한 객실을 살펴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알렉스 호프의 속셈이 도대체 뭘까.
굳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 이유는?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난 방주의 일이 이렇게 흘러가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내부 고발자 흉내를 낸 것은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덕도 있긴 했지만, 길어 봤자 몇 년 안에 다 정리될 조직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웃기지 마라. 이런 조직을 겨우 몇 년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아직 방주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조차 못 하고 있는데?
“스승을 버리고 도망쳐?”
홍석영은 예상보다 빨리 돌아왔다.
“선생님 인맥 아닙니까. 스스로 관리하셔야죠.”
“스승의 인맥이 곧 제자의 인맥이지.”
홍석영은 냉장고를 열어 안을 확인했다. 맥주를 꺼내는 자세가 능숙하다. 홍석영은 내게도 맥주 한 캔을 던졌다.
“이걸 던져요?”
“내 제자라면 이겨 내야지.”
“개소리 말고요.”
잔뜩 흔들린 맥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홍석영은 낄낄 웃으며 내 앞에 앉았다.
“그래서.”
“네?”
“아까 공학자 하나 필요할 것 같다고 했지 않나.”
홍석영은 맥주를 들이켜며 말했다.
“아. 그렇죠.”
이미선이나 김채민이 룬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그저 마음 착한 천재 마법사 핑계를 대며 회피했다. 사연이 있는 흉내를 내면 더 물어보지 않으니 편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내가 방주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그 핑계는 더욱 효과가 좋았다.
“사실 제가 알려 드린 룬만 있어서는 안 되거든요. 항상 세트로 딸려 오는 게 있었습니다.”
“룬만으로도 효과가 대단했는데?”
“이거 보면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르겠는데요.”
홍석영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특히 김 선생님이요.”
“마법사들 엿 먹이는 일인가?”
“걔네가 위기감을 느끼고 발광하긴 했죠.”
나는 양복 재킷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알렉스 호프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미리 꺼내 둔 거였는데.
“만년필?”
“마력펜이라고 부르는 물건입니다.”
나는 책상에 있는 메모지를 가져왔다.
공을 잔뜩 들여야 하는 어려운 룬까지는 필요 없다. 지금은 이 펜이 무슨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만 보여 주면 되니까.
간단한 조명 룬을 그렸다. 마력펜의 대단하고도 편리한 점이다. 별다른 작업 없이 룬을 그리기만 하면 된다.
완성된 룬 위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쓸었다.
밝은 빛은 아니다. 이건 헌터들 사이에선 수면등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룬이니까. 실제로 이걸 수면등 대신으로 썼던 인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빛은 빛이고, 룬이 작동한 건 사실이다.
홍석영은 홀린 듯 룬을 바라보다가 내 마력펜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홍석영에게 마력펜을 건넸다.
홍석영은 메모지에 룬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간 내가 진행한 룬 수업을 지켜보았던 보람이 있는 건지 홍석영은 처음 보는 게 분명한 조명 룬도 완벽하게 그려 냈다.
그리고 똑같이 손바닥으로 룬을 쓸어 발동시켰다.
“…….”
홍석영은 마치 처음 불을 발견한 인간처럼 룬을 바라보았다.
몇 번 마력펜과 룬이 그려진 메모지를 만지작거리던 홍석영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공학자?”
“네.”
“미래에는 이게….”
“필수품이죠. 마력펜은 공산품이라 비싸지도 않거든요.”
“사용하는 데에 제한은 없고?”
“방금 제한이 있었습니까?”
홍석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이런 물건이 또 있나? 자네가 요절한 공학자가 필요하다고 할 만큼?”
문득 죽어 가는 유지은에게 쏟아부었던 포션이 아쉬워졌다. 하나라도 있었다면 요긴하게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포션 성분은 아무리 나라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유지은에게 포션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것저것 있긴 한데…. 당장 급한 건 이것과.”
나는 마력펜을 가리켰다.
“마력측정기라고.”
“마력측정기?”
“게이트의 마력 굴절 현상을 측정해 언제 터질지 경고해 주는 물건입니다. 시행착오가 없었던 건 아닌데, 이십 년 뒤에는 상용화가 완료되어서 최소한 한국의 던전은 발생하자마자 마력측정기를 박아 넣는 게 필수가 되었습니다.”
홍석영은 눈을 껌뻑였다. 마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처음 들은 것처럼.
홍석영은 내가 읽기 어려운 얼굴로 물었다.
“그런 게 있는데도 멸망했어?”
“그런 게 있는데도요.”
나는 홍석영의 말을 똑같이 따라 했다. 같은 말이었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달랐다.
홍석영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물었다.
홍석영에게 잠깐 미래의 멸망에 대해 처리할 시간을 준 다음, 나는 마력펜을 챙겼다.
“그런 고로, 방주에서 노예처럼 부려지던 요절한 공학자의 발명품이 세상의 빛을 볼 때가 되었다는 겁니다.”
마력펜은 다연의 연구실에서 튀어나왔다.
마력측정기를 만든 이는 프랑스의 대마법사처럼 한 명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사명감 따윈 없었다. 마력측정기 특허로 거둬들인 돈으로 잘 먹고 잘살았다.
마력측정기 말고도 가진 특허는 많았으니 내가 이걸 가져가도 잘 먹고 잘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거다. 한 번 정도는 인류의 생존에 이바지하는 편이 좋을 거다.
“…너무 편한 변명 아닌가? 아는 마법사도 죽었다고 했었잖나.”
“제가 죽였습니까? 이게 다 방주 때문 아닙니까. 그 나쁜 놈들이 죽인 거죠.”
내 말에 홍석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렇지! 다 그놈들이 나쁜 탓이지.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지금쯤이면 가라앉았겠다 싶어 홍석영이 던졌던 맥주캔을 땄다.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거품이 새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홍석영은 자신의 맥주를 들었다. 맥주캔이 부딪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