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45)
2일차(3)
♪~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멜로디에 소년, 내지는 소녀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복도에 우뚝 서서 허공을 노려보던 이는 곧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주머니 속을 뒤졌다.
소년은 한참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전화는 끈질기게 울리다가 멈췄다. 그러나 금세 다시 울렸다.
한숨과 함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너 또 내 벨 소리 바꿨어?”
-샨샨!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까지 들렸다.
알렉스 ‘샨샨’ 호프는 수화기에서 귀를 떼며 통화 음량을 줄였다.
“귀 아파! 조용히 말해!”
-어린애처럼 굴지 마, 샨샨.
“내 나이면 어린애 맞거든?”
-보통 22살은 어린애라고 하지 않아.
“내가 알 바야? 난 항상 마마의 리틀 보이라고.”
-리틀 보이? 리틀 걸이 아니라?
“엄마가 딸을 가지고 싶어 해서 내가 거기에 맞춰 주는 거지, 나는 엄연히 남성체로 태어났다고….”
-그래, 그래. 귀여운 마마보이 씨.
여자는 가볍게 웃은 다음 말했다.
-이야기는 어땠어? 잘 끝났어?
“내 기준에서는 잘 끝났는데.”
-네 기준?
“내가 잘 끝났다고 해도, 나중에 네가 화냈던 게 한두 번이야?”
-…너도 배우긴 하는구나? 다행이야.
“지금 내가 기분 나빠야 하는 타이밍이지?”
-정말 배우긴 하는구나!
알렉스 호프는 인상을 찌푸렸다. 못마땅한 기색으로 바닥을 몇 번 걷어차던 알렉스는 말을 길게 늘이며 노래하듯 말했다.
“어, 쨌, 든! 감정사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경고했어. 그거 확인하려고 전화한 거잖아?”
-다른 건?
“다른 거?”
-내가 말하라고 했던 거 있잖아. 기억하지?
알렉스는 눈을 깜빡거렸다. 배배 꼬기에는 짧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상대가 자신을 보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침묵이 길어졌다.
-…됐어. 내가 너한테 뭘 바라니.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다음번에 얘기할 때는 나한테 전화해.
“너한테?”
-그래. 나한테 전화해. 그럼 내가 얘기할게.
“나 혼자서도 잘하거든!”
-그래서 내가 뭘 얘기하라고 했다고?
“…….”
알렉스는 입을 비죽거렸다. 여자는 깔깔 웃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맡기라고. 알겠어, 샨샨?
“네, 엄마.”
-세상에. 난 너 같은 아들 둔 적 없어! 두고 싶지도 않고! 이쥔은 대체 널 어떻게 키웠지?
“그야 엄마니까.”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알렉스 호프는 코웃음을 쳤다.
“다들 그러잖아.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고.”
-세상을 구할 만큼. 그렇지?
“그래.”
알렉스는 고개를 움찔거리며 복도 저편을 보았다. 한참을 벽 너머를 노려보던 알렉스는 코를 킁킁거렸다.
“감정사가 도착했어. 다 끝나면 연락할게, 산드라.”
-알았어. 조심하고. 나한테 전화하는 거 잊지 마.
“알았다니까!”
알렉스 호프는 통화를 종료했다.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로, 발끝으로 바닥을 통통 두어 번 두드리자.
“…….”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파란 머리?”
파란 머리 마법사가 나쁜 놈이라는 호프의 경고.
그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는 둘째 치고, 왜 우리에게 그런 경고를 했는지부터가 의심스러웠다.
“그런 미친놈이 보기에도 상종하기 싫은 나쁜 놈이라는 소리인가?”
“글쎄요….”
“아니면 자신에게 방해되는 놈을 우리보고 처리시키려는 건가?”
“…….”
“후자라면 그 파란 머리를 보호해야 할 것 같은데.”
“전자라면요?”
“음….”
홍석영은 팔짱을 끼며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마법사를 건드리는 건 귀찮지만.”
그렇지만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방법이야 만들면 되지.”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참… 믿음직스럽다. 여러 의미로.
또 어떤 기상천외한 미친 짓을 저지를까 하는.
이미선이 줬던 명단에는 마법사들도 있었다. 마법사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자신의 참석을 알려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십 년 뒤에는 아카데미 출신 마법사들도 많았고, 중앙 학회에서 독립한 이들도 많았다 보니 예의 바른 마법사들이 꽤 있었단 말이지.
명단에 있는 마법사 중에는 파란 머리가 없다. 참석을 알리지 않았던 마법사 중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최근 심경의 변화로 머리를 염색한 마법사가 있을 수도 있고….
이 시대 해외 마법사들은 국내 마법사들보다도 더 알지 못한다.
“짐작 가는 이는 없습니까?”
홍석영에게 물었다.
“난 마법사랑 그렇게 친하지 않아서 잘 몰라. 자네는?”
“없습니다.”
최소한 어떻게 생겼는지 봐야 알 수 있는데.
아니. 그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나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음?”
어리둥절해하는 홍석영에게 손을 저은 다음 길지 않은 전화번호부를 뒤져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마법사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애들은 아직 마법사라고 하긴 부족하지?
신호음은 길지 않았다.
-우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지금 한창 포럼 하고 있을 때 아니에요?
“점심시간이라서요.”
-아하.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요.
“김 선생님.”
-네?
“포럼에 참석할 만한 마법사 중 파란 머리를 가진 사람 아십니까?”
-파란… 머리요?
김채민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파란 머리…. 알고 있는 마법사 중에 한 명 있기는 한데, 그 사람은 포럼에 참석을 안 할 텐데요.
“누굽니까?”
-셈 블룸이라고… 네덜란드 마법사인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란색으로 떡칠한 또라, 큼, 마법사거든요.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나는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딱히 던전을 공략하는 마법사도 아니니까 우 선생님은 모르실걸요. 홍 선생님은… 아시려나? 홍 선생님은 가끔 이상한 부분에서 많이 알고 계신다니까요.
“아니, 나도 모르는데.”
-깜짝이야. 홍 선생님도 계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왜 묻는 거예요?
“아뇨. 누가 파란 머리 마법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들어서요. 누군지 궁금해서….”
-그래요?
김채민은 어리둥절해하며 계속 말했다.
-그런데 진짜 그 사람은 포럼에 안 나올 텐데요.
이상하게 확신하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포럼에 노아 미셀이 참석한다는 말을 못 들었으니까요.
익숙한 이름에 저도 모르게 아는 척을 할 뻔했다.
노아 미셀이야 지금도 유명한 대마법사니까 내가 알고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만….
낭트의 보석. 세기의 대천재. 룬 마스터.
미셀을 수식하는 단어는 많다. 그 빛나는 천재성은 그녀가 여섯 살의 나이로 대마법사가 되자마자 전 세계에 알려졌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룬을 무료로 공개하는 고운 마음씨까지.
너무 완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가까이 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지은은 마음 좀 곱게 쓰라며, 왜 그렇게 세상을 비뚤게 보냐고 잔소리했지만.
-셈 블룸은 노아 미셀의 제자를 자처해요. 노아 미셀이 블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셀 근처에서 안 떨어지려고 하거든요.
“범죄 아닙니까?”
지금 시점에서 노아 미셀은….
나보다 어리지? 김채민과 비슷할 텐데. 스물여섯이던가. 블룸의 나이가 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좋은 그림이 그려지진 않는다.
-뭐….
김채민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블룸이 어린애라서 그런 것도 있고요.
아. 어린애야?
-미셀이라면 얼마든지 블룸을 떨어뜨려 놓을 수 있으니까요.
그것도 그렇겠지만….
-실제로 미셀도 블룸을 공식 석상에 잘 데리고 다니거든요. 제자라는 이야기는 한 적 없지만 조수로 두긴 했을 거예요.
“그래서 블룸이 포럼에 참석할 리가 없다고 한 겁니까?”
-네. 미셀도 포럼에 참석한 적 없어요.
“…없다고요?”
눈을 찌푸렸다. 내가 알기로 노아 미셀은 포럼의 단골 참석자다. 매년 한 번도 빠짐없이 참가해서 던전 공략의 해답을 내놓곤 했다.
젊었을 때는 달랐나? 아직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진 않는 건가?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바뀔 수 있긴 하지. 나처럼.
-블룸이 포럼에 참석하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마법사들이 곧 도착할 테니 그때 보면 되긴 하지만… 김 선생님은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뭔가 발견하면 바로 알려 드릴게요.
김채민은 경쾌하게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평범한 마법사도 아니고, 대마법사가 아군이니 이런 점에서는 편하다. 마법사의 사회는 워낙에 폐쇄적이니 아무리 나라고 해도 정보를 얻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휴대폰을 안주머니에 다시 넣고 고개를 들었다. 홍석영은 기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입니까?”
“아니….”
“네?”
“이게 억측 같기는 한데, 너무 절묘한 우연이라 괜히 찝찝하거든.”
홍석영은 그답지 않게 입술을 마구 우그러뜨리며 망설였다.
“그러니까 자네가 듣고 한번 판단해 보게나.”
이상하게 뜸을 들이니 과연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졌다.
“이제껏 그걸 관련지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지금 방주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고 있는데 그 이름이 나오니까 좀, 기분이 그렇더라고.”
“무슨 말씀을 하는 겁니까?”
“노아 미셀.”
홍석영은 빠르게 이름을 내뱉었다.
“네.”
왜 그 이름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노아 미셀 말이야.”
“네.”
“…모르겠나?”
“뭘 말입니까?”
홍석영은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방주잖은가.”
“네?”
“노아와 방주.”
“…어.”
홍석영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제야 알아들었다. 홍석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주.
그리고 노아.
방주(Ark)라는 이름을 어디서 따왔는지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애초에 실험실 벽면에 가득 그려져 있던 배 그림을 보며 자라지 않았던가. 연구원들의 가슴에도 그 문양이 있었고, 부친이나 모친의 옷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다못해 형의 옷깃에도 그 문양이 있었다.
검은 별 무리와 녹슨 검을 돛대로 사용하는 뒤집힌 배.
그리고 방주는 노아가 야훼의 계시를 받아 건조한 배이다. 타락한 세상을 물로 멸하고, 노아와 그 가족이 세상을 재건한다.
방주는 종교 집단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들만이 우매한 세상을 깨우치고, 더 나은 길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건 종교와도 같은 믿음이고, 오만한 도전이었다.
종교가 아니다. 방주에서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부모 같지도 않던 그 인간들이 했던 말을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종교적인 이름이 붙었다.
왜?
신의 이름을 더럽히려고?
종교를 비웃기 위해?
아니면.
아니면….
방주는 보통 방주라고만 불리지 않는다. 그 앞에 방주를 건조한 사람의 이름이 붙어서 불린다.
노아의 방주,
라고.
“너무 뻔한 이름이니 억측이라면 좋겠군.”
그러나 아버지는 항상 말했다.
아니길 바라는 일은 꼭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그러니 항상 최악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내가 알고 있는 노아 미셀을 생각했다. 사람을 구하고 싶다고 하던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때론 격렬한 믿음이 어디까지 잘못될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내 부모만 보아도….
나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냈다.
노아 미셀이 방주와 관련이 있을지 없을지 알아보는 가장 간단한 수단이 근처에 있다.
나는 홍석영을 보며 말했다.
“셈 블룸을 털어 보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