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47)
미로(1)
쾅! 쿠웅!!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홍석영과 함께 데굴데굴 굴렀다.
요란한 소음과 함께 열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과거로 오기 직전, 서울에서 느꼈던 것 같은 뜨거움은 없었다.
젠장, 인식표를 목에 걸고 올 걸 그랬나?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그냥 왔지? 괜스레 목이 허전했다.
…지금이라도 꺼내?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 둔 아공간을 떠올리며 숨소리를 죽였다.
“…….”
연신 이어지던 폭발음이 멎었다. 귀가 먹먹하다.
그나마 초반에 같이 들리던 비명 소리도 지금은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자욱한 먼지 너머로 기척이 느껴지는 걸 보면 찰나의 순간 무사히 몸을 피한 이들의 수도 적진 않았다.
눈살을 찌푸렸다.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보았던 것. 셈 블룸의 로브. 룬.
폭발은 셈 블룸이 타고 있던 승용차에서 시작되었다. 이 정도면 조사고 나발이고 할 것도 없다. 애초에 당장 조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폭발은 멈춘 것 같으니, 주위를 살피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약삭빠른 마법사라면 진즉 몸을 뺐을 거다. 더군다나 무식하게 룬이 중첩된 로브를 입고 있었다면. 셈 블룸은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할 게 분명하다. 어디까지 도망쳤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쫓아가지 않을 수는 없다.
“일단.”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셈 블룸을 찾으러 갈까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투박한 손이 내 어깨를 눌렸다.
“……!”
시야가 바뀐다. 홍석영은 내 목덜미를 잡고 몸을 굴렸다.
이번에는 홍석영이 나를 감싸고 있다.
쿠쿠쿵!!!
다시 땅이 흔들린다.
지금껏 흔들렸던 것은 장난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폭탄이 아니라 지진이라도 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호텔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내진 설계가 제대로 되어 있을까? 서울에 있는 고급 호텔이었으니 여차할 때는 방공호로 쓸 수 있게끔 방어 마법에 많은 투자를 하기는 했겠지만….
상대가 노아 미셀이라고 가정한다면 또 모른다.
다행히 포럼 때문에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 투숙객은 없다. 마법사나 헌터들은 알아서 살아남겠지. 걱정되는 건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다.
충격이 계속 이어져서 그렇지 폭발 자체는 크지 않았다. 건물이 무너지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다. 어쩌면 승용차 주위에 서 있던 직원들도 무사할지 모르고.
…….
아니. 잠깐.
이상한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금 몇 분째 진동이 오고 있는 거지? 거의 5분이 넘지 않았나?
호텔이 무너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폭탄이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굉음을 내며 충격을 주지 못한다. 건물이 무너지는 게 아닌 이상. 하지만 호텔은 멀쩡하다.
바로 앞은 아니었지만 폭심지까지와는 지근거리라고 할 수 있었다. 육안으로 볼 수 있었고, 대화도 어렵지 않게 엿들을 수 있었다.
자동차 하나를 날려 버리고 끝날 폭탄이라면 이렇게 충격이 크지 않을 거다.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날려 버릴 작정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 이렇게 멀쩡하면 안 된다.
본능적으로 손바닥으로 바닥을 더듬거렸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뇌를 관통한다.
‘가장 쉬운 건 시각이겠지.’
아버지는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분석한다. 기본 중의 기본이지.’
그리고 눈을 가렸다.
‘하지만 시각에 의존해서만은 안 돼. 인간의 시각은 때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거든. 한계가 있어.’
‘그럼요?’
‘모든 감각을 다 써야지.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각성한 이상 감각 기관은 일반인 수준을 현저하게 벗어났어. 희재, 넌 특히 마력에 민감하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알아챌 수 있을 거야.’
‘음….’
썩 믿지 못하는 나를 두고 아버지는 가슴을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언젠가 던전에 들어가게 되면 이 아저씨의 말이 다 맞는 걸 알게 될걸!’
‘그거야 아저씨는 베테랑 헌터니까 맞겠죠….’
그래. 다 맞는 말이었다.
시각.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 때문에 쓸모없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마법이나 룬의 도움 없이 투시는 할 수 없다.
청각.
쿠르르…. 무언가 부서지고, 떨어지는 소리는 줄었지만, 아직 불안한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있다. 그 사이로 신경을 곤두세우면 긴장된 숨소리가 섞여 있다.
그런데… 아까 전보다 조금 줄지 않았나?
후각.
이건 당장 쓸모없다. 먼지 냄새만 잔뜩 들이켰다. 하다못해 탄내 정도는 날 줄 알았는데.
미각.
…이것도 쓸모없다.
마지막은 촉각.
손바닥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어쨌든 로비 안에 있기는 했으니까 바닥은 윤이 나는 대리석이어야만 했다. 먼지를 뒤집어쓰든, 폭발의 충격으로 금이 가거나 부서졌더라도 반질반질한 면이 존재하기는 해야 했다.
이렇게 바닥은커녕 자갈이 섞여 있는 흙이 있는 게 아니라.
‘자, 오감을 모두 사용했어?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던전 공략하기?’
‘뭐, 던전에 들어왔으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기억 속의 아버지는 낄낄거리며 즐겁게 웃었다.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홍석영과는 달리.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간 던전이라면 어떤 놈이 나오는지부터 파악해야지.’
“우 선생.”
아버, 홍석영은 잔뜩 굳은 얼굴로 낮게 속삭였다.
“눈치챘나?”
“……네.”
나 또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저희, 던전에 있습니다.”
* * *
던전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호기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떻게든 던전과 몬스터와 얽혀 있다.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현상이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되어 있지 않다면 답답한 것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그런 호기심을 해소하겠다고 관리청에 들어간 게 아니다.
‘뭐야? 너 더 영화 안 만들어? 어디 스탭으로 들어갔댔지 않냐?’
아버지는 유지은이나 자긴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확고하게 생각해 온 꿈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말을 끈질기게 듣고 있으니, 다른 것도 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방송부에 들어갔다. 카메라를 다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할 만했다. 재밌었다. 그래서 대학도 관련 과로 진학했다. 고되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재밌었다. 어린 시절의 꿈도 잠깐 잊히는 듯했다.
교수의 추천으로 방학 동안 모 영화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하게 되었다.
‘뭐? 6시까지 일하기로 되어 있지 않았냐고? 저기… 아직 대학생이지? 현장은 그렇게 시간 맞춰서 딱딱 돌아가는 게 아니에요. 군소리 말고 가서 정리나 마저 해.’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아온 나는 그런 부조리함을 견디지 못했다.
유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선생님이 애를 오냐오냐 키워서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 하며 짜증을 냈다.
남들 말에 휘둘리는 건 연구소 시절의 기억만으로 충분하다. 그래도 맡은 일에 책임은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빌어먹을 현장에서는 끝까지 일했다. 방학이 끝나자마자 복수 전공 신청을 했다. 아버지에게 헌터 라이센스가 있으면 관리청 들어갈 때 가산점이 없는지 물었다.
최고 권력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어딜 가든 타인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어차피 들어야 하는 명령이라면 차라리 아는 사람들 밑에서 일하는 게 훨씬 나았다. 아버지나, 유지은이나. 대접해 주긴 싫지만 한태경이라도.
기왕 들어간 관리청, 아버지나 유지은이 신경 쓰지 못하는 일을 내가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던전이나 몬스터에 대한 호기심, 호승심 따위는 한태경 대신 던전에 들어가게 되면서 빠르게 사라졌다.
그래도 한 번, 우연히 게이트가 발생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여전히 그게 어떻게, 어떤 이유로 만들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처음에는 잔잔하게 일렁일 뿐이다. 대기가, 마력이, 모든 것이 부드럽게 흔들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변한다.
블랙홀처럼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다가…
혹은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다가.
거대한 입구가 생긴다. 게이트 주위에는 불에 탄 것처럼 그을음이 남지만 그 외에는 멀쩡하다. 미국에서는 게이트를 중심으로 반경 5m가 영향권이라는 연구를 발표했었다.
‘게이트가 만들어질 때 5m 안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요즘이야 마력측정기도 있으니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아저씨가 어렸을 때만 해도 종종 있었거든.’
게이트가 생성되는 걸 본 날, 아버지와 얘기하다가 그런 이야기가 나왔었다.
‘아저씨는 겪어 본 적은 없지만, 경험자에 의하면 통행세에 상관없이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다더라고.’
‘통행세 없이요?’
‘운 나쁘면 비각성자들도 휘말릴 수 있어. 게다가 던전이 불안정하고 마력 농도가 높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다더군.’
이를 악물었다.
소리가 완전히 멎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소리와 진동이 완전히 멎고 나서도 한참을 조심히 살피다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먼지가 가라앉자 이곳이 던전 내부라는 사실이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던전 특유의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보인다.
“곤란한데.”
홍석영은 재킷을 벗어 내팽개쳤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아공간에서 무기를 꺼낸다. 홍석영의 키보다도 큰 창이다.
“…셈 블룸의 짓일까요?”
“던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들은 적은 없는데.”
“…….”
그런 게 가능한 인간이 있을 리가 없다. 노아 미셀이 아무리 천재라고 이건 가능한 영역을 벗어났다.
“빨리 공략하고 나갈까?”
“뭐가 나오는지 알고요.”
“뭐가 있든 아직까지 덤비지 않은 걸 보면 얌전한 놈인가 본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호텔 직원들도 휘말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 그렇겠군. 으음. 그럼 직원들을 찾는 걸 우선으로 해 볼까. 어차피 다들 흩어진 것 같은데.”
홍석영은 창끝으로 우릴 감싸고 있는 벽을 두드렸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이 있는 하늘 아래. 우뚝 솟은 벽이 시야를 제한하고 있다. 아까 잔뜩 피어올랐던 먼지는 이 벽 때문이리라. 당연하지만 소음도 그렇고.
벽을 차고 올라가 벽 너머를 확인했다. 사방이 다 똑같았다. 벽으로 둘러싸인 길.
미로였다.
“원래 게이트 통과하면 다 같이 있는 거 아닙니까? 막 생성된 던전은 다릅니까?”
“모르네. 나도 이런 식으로 던전에 들어오는 건 또 처음이라.”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막 생성된 게이트에 휩쓸린 적은 없다.
그러니 이건 원래 시간대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당연하지. 한국에서 이만한 사고가 있었다면 나도 알고 있었을 테니까.
…내가 노아 미셀의 조수라는 셈 블룸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것과 관련이 있을까?
미셀에게는 그녀를 따르는 문하생들은 많았다. 전부 미셀의 제자를 자처했지만 진정한 의미로서의 마법사 제자는 없었다. 조수라면 몇 명 있지만… 역시 셈 블룸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나도 아공간에서 무기를 꺼냈다. 유지은이 내게 주었던 검이다.
홍석영은 아무 경고 없이 창으로 벽을 휙 그었다. 간결한 동작이었지만 그걸 받아 내야 했던 벽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쿵!
벽이 무너졌다.
“소리를 듣고 찾아오라고 해. 헌터든, 마법사든, 민간인이든.”
“……몬스터는요? 그 정도 소음이라면 올 것 같은데.”
“그럼 오히려 좋지.”
홍석영은 피비린내 나는 얼굴로 살벌하게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