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5)
신입생(1)
헌터 양성 시범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지 겨우 이틀째.
“그래. 잘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돼.”
봄기운이 묻어나는 따뜻한 햇살.
따뜻하다 못해 그새 여름이라도 왔는지 햇볕은 뜨겁기까지 하다.
이런 좋은 날씨에 창고… 아니, 교실에 박혀 있는 마법사들이 불쌍했는지 홍석영은 어디선가 파라솔 딸린 테이블을 구해 와 설치했다. 촌스러운 색상의 파라솔은 여러 의미로는 이 컨테이너 학교와 잘 어울렸다. 도저히 학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홍석영은 그럴싸한 이유도 덧붙였다.
‘던전에서는 온갖 일이 일어나니까 항상 평정을 유지할 줄 알아야 해.’
그럴싸하기는 개뿔. 개소리다.
어쨌든 이 파라솔 아래에서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룬을 그리고 있는 박서현과 최진우를 보며 훈수를 두고 있다.
“잘 그리네.”
정정.
칭찬을 해 주고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솔직히 칭찬 싫어하는 인간이 어디 있는가. 칭찬을 못 받아서 죽어 가는 사람은 봤어도 많이 받아서 죽는 사람은 못 봤다. 온갖 근엄한 척 다 하는 국회의원 나리들도 칭찬이 고파 별 미친 짓을 다 하던데.
그래서 나도 첫 번째 단계로 박서현을 칭찬해 주기로 했다.
보아하니 그때 실수했던 게 걸려서 저러는가 본데, 잘한다고 계속 말해 주면 기운을 차리겠지.
평화로운 햇빛. 온화한 날씨.
공터 주위의 갈대를 스치는 스산한 바람과….
콰앙!!!!
폭발음.
“방금 공격은 좋았다!”
“크윽!”
“하지만 마지막에 무게중심이 흐트러졌어! 끝까지 중심을 잃으면 안 되지! 다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현욱이 파라솔까지 데굴데굴 굴러왔다.
나는 오현욱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슬쩍 몸을 틀었다. 오현욱은 무사히 파라솔을 지나쳐 공터 끝까지 도달했다. 갈대 서너 개를 짓누른 다음에야 오현욱이 멈췄다.
오현욱은 벌떡 일어났다.
“씨발!”
그러고는 얼굴을 벅벅 문지르더니 다시 홍석영에게로 뛰어갔다. 동시에 이번에는 이승연이 굴러왔다.
“으아아!!!”
이승연도 괴성과 함께 벌떡 일어나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후….
이래서 몸 쓰는 것들은 안된다니까. 우아하질 못하다.
여기 법사들을 보아라. 이 얼마나 우아하….
“아, 씨발! 또 틀렸어!!”
최진우는 종이를 구겨 뒤로 던졌다. 이미 그렇게 던져진 종이가 바닥에 산더미처럼 있었다.
“…….”
뭐…. 어느 시대든 고등학생은 다 똑같은 법이다. 허구한 날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며 보고서가 올라오던 헌터 아카데미를 떠올렸다. 아카데미가 관리청 산하여서 나한테까지 그게 올라왔다.
이유는 늘 똑같았다. 학생들이 부쉈다. 동기랑 놀다가, 싸우다가, 수련하다가, 실험하다가.
시범고는 그런 헌터 아카데미의 전신이다. 교장이 홍석영인 이상 그 정신머리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이점은 단 하나.
시범고 건물은 부서지지 않을 뿐이다.
부서질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
“우… 우어어, 컹컹.”
머리를 쥐어뜯다 못해 인간의 언어를 잃고 있는 최진우와 달리 박서현은 얌전하다.
너무 얌전해서 불안할 지경이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헝클어진 채다.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탓에 눈마저 가려서 분위기를 한층 더 어둡게 하고 있다.
…앞이 보이기는 하나? 어떻게 저 상태로 룬을 그릴 수 있지?
아차. 칭찬. 칭찬해 줘야지.
그래도 아무것도 없이 칭찬을 할 순 없으니까 박서현이 그리고 있는 룬을 보았다.
“…….”
흘러내린 머리카락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박서현 학생?”
“…………네?”
박서현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어깨와 몸은 책상에 거의 붙을 정도 숙인 채 고개만 들었다.
그러니까… 무섭다고.
“룬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데. 나한테 보여 줄 수 있을까? 제대로 그리고 있는지 봐줄 테니까.”
“아뇨!!!”
박서현은 화들짝 놀라며 그리고 있던 룬을 숨겼다.
“더, 더 이따가 보여 드릴게요….”
…왜?
왜 갑자기 내외하는 건데? 언제는 하나하나 나한테 확인 맡더니?
“지금 보여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고칠 수 있고….”
“나중에…. 잘 그릴 수 있게 되면…… 그때 보여 드릴게요….”
“내 역할은 너희가 잘 그릴 수 있게 도와주는 거니까 지금 바로 보여 주는 게 훨씬 도움이 될 텐데?”
“나, 나중에….”
“그러니까 안 좋은 버릇이 들 수도 있으니 바로 확인을….”
슬슬 언성이 높아지려던 찰나에 정신을 차렸다.
칭찬!
칭찬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애한테 짜증을 내봤자 뭔 소용이 있겠는가!
젠장, 칭찬을 해 봤어야 알지.
칭찬을 하면 진짜 자기가 잘하는 줄 아는 놈들 때문에 칭찬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주 안 하진 않았을 텐데. 내가 어쨌더라?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하셨다고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독창적인 방법이군요.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그동안 하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몇 년 전에 댁처럼 창의적인 시도를 하려던 헌터가 있었죠.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결과만 말해 주자면, 정말 운 좋게 시체는 건질….’
칭찬이 아니잖아.
주변의 사례를 떠올렸다.
유지은은 어땠더라.
‘정말 그게 최선의 판단이었어? 허이구, 똑똑이 납셨네. 그래, 그래. 그렇게 본인이 똑똑하다는데. 네가 앞으로 우리 팀 두뇌다. 자, 모두 박수!’
……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조금 더 빨리! 그래, 그렇지! 하면 할 수 있잖아!”
홍석영은 여전히 아이들과 뒤엉켜 있었다. 목소리에 뿌듯함이 묻어난다. 아이들 중 누군가가 꽤 괜찮은 공격을 날렸던 모양이다.
‘뭐? 학교에서 뭘 했다고?’
나는 헌터 아카데미를 나오지 않았다.
가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각성했다. 대한민국 제일가는 헌터의 양아들이다 보니 이래저래 보는 눈도 많았다.
본부장도 내심 내가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가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놀라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시험 기간이었어? 언제? 아니, 시험이었으면 말을 해야지! 그럼 아저씨가 찹쌀떡도 사 주고, 엿도 사 주고…. 그건 수능이야? 수능이 언제더라? 가을? 아직 멀었는, 아, 그냥 기말고사였다고…. 아니, 기말고사가 그냥이야?! 그것도 어려웠겠지! 음? 성적이 나왔다고?’
그럼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보길래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럼 공부를 잘해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묻길래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전교 2등?! 캬, 우리 집안에서도 그런 숫자가 나오는구나. 이 아저씨는 너만 한 나이 때 뭘 했는 줄 아니? 아무것도 안 했어!’
전투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굴곤 했지만 그래도 내 일에는 항상 발 벗고 나서던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도.
‘잘 봤는데 왜 그렇게 풀 죽어 있어? 1등 하고 싶었다고? 다음에 하면 돼! 간단히 말하지 마? 다음번엔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그럼 어떠냐. 네 점수가 어떻든 넌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을 건데.’
내가 전교 2등이 아니라 꼴등을 하더라도 그 아저씨는 똑같은 말을 했을 거다.
‘이 아저씨가 다 하게 해 줄게.’
그다음 시험에서는 전교 1등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외의 숫자는 용납하지 않았다.
고개를 슬쩍 돌려 홍석영을 보았다. 오현욱과 이승연이 나가떨어졌다. 아직은 낯선 얼굴의 학생들이 홍석영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홍석영은 활짝 웃으며 갈대 하나를 쥐고 아이들의 머리를 한 대씩 쳤다. 마력을 넣었는지 갈대는 휘지도 않고 단단했다.
“타이밍은 아주 좋았어! 하지만 뭐가 잘못됐는지 너희도 알지?”
“힘이 부족했어요.”
“조금 느렸어요.”
“연계가 제대로 안 됐어요.”
“내가 더 말해 줄 것도 없는데? 바로 그런 자세지! 한 번 더 가 볼까?”
홍석영의 교육 방침은 단순했다. 잘한 건 잘했다고 하자. 못한 것도 잘했다고 하자.
그 가르침 아래서 헌터 아카데미는 번창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처럼 해서 나쁠 건 없겠지. 이십 년 동안 검증된 교육 철학이니까.
목소리를 가다듬고 박서현을 보았다. 박서현은 종이 뭉치를 꼭 끌어안은 채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큼. 그래. 알겠어. 너도 네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
기억하자.
칭찬이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나중에 보여 주고 싶으면 날 찾아오고.”
얼굴은 웃는 게 좋지. 어디서 인상 나쁘단 소린 못 들어봤다.
“나도 혼자 해 보는 게 더 집중되고 좋더라.”
하는 김에 자신감도 채워 줘야지. 명동에서 저질렀던 실수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으니까.
“명….”
명동 얘긴 꺼내면 안 되지, 참.
“크흠, 내가 보기엔 넌 재능이 있어. 대마법사가 되고도 남을걸. 내 경험상 대마법사들은 어릴 때부터 고집이 있어서 방해받는 걸 싫어하더라고.”
애들 비위 맞춰 주기 한번 힘들다.
본부장은 이런 걸 어떻게 입에 달고 다녔나 몰라.
더 이상 말을 지어내는 것도 힘들고, 이만하면 됐겠지 싶어서 박서현을 보았다.
“…….”
“……?”
뭐지. 분위기가 이상한데.
왠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꿀꺽. 최진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잔뜩 긴장한 게 느껴졌다.
…뭐야?
“…킁.”
박서현이 코를 훌쩍였다.
뭔데? 우는 거야? 아니지? 아닌가? 너무 감동받아서 눈물이라도 났나?
“…….”
씨발.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 싸늘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겠나.
아니, 하지만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도대체 왜?
“죄, 죄송해요……….”
박서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지만 떨리는 목소리를 숨길 순 없었다.
박서현은 주섬주섬 끌어안고 있던 종이 뭉치를 내게 내밀었다.
“검사… 맡을게요……….”
“아니, 너 하고 싶을 대로 해도 된다니까?”
“죄송해요…….”
“괜찮다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편하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잘못했어요….”
뭔데, 진짜!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잘못한 거냐고! 아니, 칭찬해 준 것도 잘못이냐고!!!
* * *
박서현은 학교가 마칠 때까지 코를 훌쩍였다. 최진우는 입을 다물고 내 눈치만 살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다!”
이유를 알아내기 전에 수업이 끝나 버렸다.
시범고의 등하교는 원시적이다.
헌터 아카데미의 시설 좋은 기숙사도 없으니 홍석영이 봉고 하나를 몰아서 여기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인근 마을에 내려 준다. 등교도 그 마을에서 집합해서 홍석영이 버스로 데리고 온다.
홍석영이 차를 세우면 마중 나온 학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간다. 이승연도 마찬가지다. 가족처럼 보이진 않지만 거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이승연에게 깍듯하게 인사한다.
“선생님, 내일 봐요!”
“안녕히 가세요!”
통학이 힘든 아이들은 홍석영이 구해 놓은 숙소를 기숙사처럼 사용한다. 내 숙소로 구한 여관방보다는 훨씬 모양새가 좋은 곳이다.
잘도 이런 열약한 학교에 애를 보낼 생각을 했구나. 나 같으면 사기꾼이라고 신고했을 텐데. 홍석영이라는 이름 때문인가.
“선생님은 기숙사 안 가세요?”
“오늘은 할 일 있어서 늦게 들어가. 너희 있는지 없는지 다 확인할 거니까 돌아다니지 말고. 알았지?”
“네!”
남은 기숙사생들은 까르르 웃으며 인사했다. 그중에는 박서현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박서현한테 너무 휘둘렸다.
박서현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봤어야 했는데. 이게 내 소개만 대충 끝내고 통성명도 해 주지 않은 홍석영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기숙사생들도 인사를 하고 사라지자, 홍석영이 나를 돌아보았다.
과거로 온 뒤로 봤던 얼굴 중 가장 심각한 얼굴이다.
“자네가 말한 아이들이 많은 곳 말이야.”
“네.”
“최근에.”
그 어느 때보다도 홍석영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동 납치 사건이 늘었어.”
“안타까운 일이군요.”
“대상은 주로 각성자들의 아이였지.”
“…….”
“몸값을 요구하지도 않아. 목격자도 신경 쓰지 않지. 대로변에서 그대로 납치해 가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홍석영 주위로 바람이 조금씩 모인다. 살이 에일 듯 차가운 바람이다. 마력이 모여들고 있다.
“거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