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50)
그리하여 너는(1)
홍석영은 손쉽게 바닥을 부쉈다. 요령 좋게도 복도 아래의 바닥만 둥글게 부쉈다. 홍석영은 뭔가 기대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무시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홍석영이 내 뒤를 따라 내려왔다. 여전히 내 얼굴을 흘깃거렸지만 무시했다. 다른 곳을 무너뜨리지 않고 딱 필요한 크기로 바닥을 예쁘게 도려낸다?
누구나 손쉽게 해낼 수 있는 기교는 아니지만, 홍석영이 바라는 것처럼 감탄을 해 줄 만큼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나는 나도 할 수 있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
“…내가 또 하나?”
“그럼요?”
“아니…. 대충 알겠어.”
홍석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묘하게 기분 나쁜 눈빛이다.
어쨌든 홍석영은 바닥을 부쉈다. 와르르 무너지는 돌무더기를 보니 복잡했던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알렉스 호프는 두 개 층을 내려가면 된다고 했다.
짧은 잡담이 없었다면 1분도 걸리지 않았을 간단한 작업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운동장 하나는 족히 들어갈 만큼 넓다. 축축한 습기와 어두운 불빛. 중앙에 덩그러니 있는 깃털 덩어리.
처음 보는 생김새의 몬스터다. 얼핏 보았을 때는 주먹만 한 솜뭉치 같은 건가 싶었다. 주위에 크기를 비교할 만한 것이 없어서 거리감이 헷갈렸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동에 우두커니 놓여 있는 모습이 몬스터보다는 먼지 뭉치처럼만 느껴졌다.
그러나 모습을 인지함과 동시에 코끝을 찌르는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단순히 먼지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다. 죽어 가는 동물에게서나 날 법한 꿉꿉한 냄새였다.
그다음으로 깨달은 건 크기였다.
순간적으로 착시가 있긴 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깃털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한 파란 머리의 마법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작은 먼지 뭉치는 개뿔. 그건 컸다. 거대했다.
눈대중만으로도 얼추 일반적인 버스보다도 더 큰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축 늘어진 깃털 사이로 느리게 끔뻑이는 황금색 눈이 보였다. 사람 머리통만 한 눈이 감길 때마다 빛이 사라졌다. 죽은 안광에 생기 없는 눈은 천천히 우리를 보았다.
그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불길함이 몸을 짓눌렀다.
탁.
여기까지가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는 짧은 순간에 파악한 정보.
“…….”
바닥으로 착지하자 좀 더 상황이 명확하게 들어온다. 파란 머리 마법사, 알렉스 호프가 그렇게 죽이고자 하던 셈 블룸은 깃털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쭉 내밀고 있었다. 공격당하고 있다고 여기기에는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었다.
깃털은 셈 블룸의 팔을 간지럽히고 있다. 금색 눈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셈 블룸의 팔을 타고 깃털이 올라오고 있다.
잡아먹히고 있는 건가? 아니면?
평소였다면 몬스터 앞에 인간이 있고, 그 인간이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심지어 삼켜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면 당장이라도 구하려고 달려갔을 것이다. 최소한 하는 시늉이라도 했겠지.
하지만 무언가 이 미묘한 고요함이 내 발을 붙잡고 있었다. 알렉스 호프의 말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 늦었다는 예감? 혹은 헌터의 감에 의거한 불길함 때문에? 그도 아니라면 그저 내가 합리화하는 것뿐인가?
하지만 내가 주춤하는 동안 홍석영은 움직였다.
홍석영이 먼저 판단을 내렸던 건지, 아니면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몸부터 움직였던 건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던전을 벗어난 뒤에도 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묻지 못했을 수도 있다.
홍석영이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는 걸 본 나도 생각을 멈추고 따라갔다. 홍석영의 행동에 맞출 생각이었다. 저 깃털 덩어리를 공격하든, 셈 블룸을 공격하든.
쿠웅!
홍석영은 몬스터를 공격하였다.
어쩐지 아버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셈 블룸이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셈 블룸은 자기 입으로 떠들 말이 있는 인간이지 않은가. 아버지는 항상 사람을 구하고자 했으니 그 창끝이 몬스터를 향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창은 그 어떤 곳에도 닿지 못했다.
“……!”
셈 블룸의 로브가 홍석영의 창을 막았다. 폭발을 정통으로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로브에 수놓인 룬은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
수십 개씩 중첩된 룬은 내가 말했던 대로 홍석영의 공격을 무사히 막아 냈다.
그래서 내가 뒤이어 공격했다. 셈 블룸이 몬스터를 지키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으니 망설임은 없다. 룬을 단번에 깨 버리겠다는 목적으로 검에 마력을 실었다.
챙!
룬이 깨진다. 내 눈에는 보인다. 층층이 정성스럽게 짜 맞춰진 룬이 무효화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세 번째라면 완전히 부서지겠지만… 다른 방법이 있는데 굳이? 헌터의 감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하지만, 때론 헌터의 감만큼 정확한 것도 없다. 비각성자보다 오감이 발달한 각성자는 같은 시간에 받아들이는 정보 값이 훨씬 많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불길하다. 초조함에 마음이 급해진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나게 두면 안 된다는 것만큼은 자명했다.
그러니 빠르게 제압해야 한다.
화르륵. 유지은이 내게 남긴 검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유지은처럼 새빨간 불꽃은 아니었지만, 불꽃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어찌 되었든 룬은 천 위에 있지 않은가? 수를 놓았으니 쉽게 지워질 리는 없겠지만 방화(防火) 룬은 없으니… 뭐, 있었어도 이 성능 좋은 검이 룬을 지우지 못할 리가 없지.
“읏…!”
로브 끝에 불이 붙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불꽃이 마력 간섭을 일으킨다. 덕분에 룬은 빠르게 망가졌다. 열기 때문에 물러날 법도 한데 셈 블룸은 끈질기게 깃털에 매달려 있었다.
그래.
매달려 있다.
가까이서 보니 상황은 더욱 명백했다. 몬스터 또한 셈 블룸을 잡고 있긴 했지만, 셈 블룸에게도 몬스터에게서 벗어날 의지가 없었다.
“됐습니다!”
아직 룬 몇 개가 남아 있긴 했지만 가벼운 충격에도 부서질 만큼 연약해진 상태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홍석영을 불렀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홍석영은 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창을 그대로 내질렀다. 위층처럼 좁은 복도였다면 홍석영도 무너지는 것을 대비하여 힘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다행히 여긴 장애물 하나 없이 탁 트여 있다. 덕분에 홍석영은 꽤 진심을 담아 움직였다.
깡!
그러나 절대 들릴 수 없는 소리가 났다.
창과 몬스터가 아니라 마치 망치와 모루가 부딪친 듯한 소리다.
텅 빈 공동에 높고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깃털 속에서 얇은 팔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그게 홍석영의 창을 막았다. 붙잡거나 그런 게 아니라, 팔뚝으로 막고 있었다.
팔뚝 아래에는 깃털이 빼곡하게 있다. 쭉 뻗은 팔은 마치 날개를 활짝 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날개는 자신의 품속에 있는 셈 블룸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피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는지 창날에 베인 상처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팔과 똑같이 생긴 몬스터의 팔에서 피가 흐르는 광경은 소름 끼칠 정도로 이질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안심이 되었다. 홍석영의 창은 놈을 해칠 수 있었고, 그렇다면 홍석영은 틀림없이 놈을 잡는다.
홍석영은 공격을 이어 갔다. 깃털 아래에서 더 많은 팔이 나와 홍석영의 공격을 막았다. 그런 주제에 커다란 눈은 나를 똑바로 향하고 있다. 내가 허튼짓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것처럼.
지켜보면 어쩔 건데.
“…….”
나는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검을 들었다. 검에서 뚝뚝 떨어지는 불꽃은 셈 블룸을 향해 기어갔다. 꼴에 마법사라고 저항하고 있긴 하다마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셈 블룸에게 억울한 사정이 있었다면 우리가 공격한 순간 무어라 항변했을 것이다. 혹은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몬스터에게 홀렸다면 저렇게 눈을 부릅뜨지 않았을 것이고.
으득.
셈 블룸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핏줄 선 눈을 떴다.
그런 셈 블룸의 머리 위로 홍석영의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된 몬스터의 팔뚝에서 피가 솟구쳤다.
몬스터의 피는 깃털을 따라 흘러내렸으며, 그 아래에 있는 셈 블룸의 파란 머리를 흠뻑 적셨다.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셈 블룸은 여전히 몬스터를 붙잡고 있었다. 금색 눈 아래의 깃털은 셈 블룸의 팔 대부분을 삼켰다. 셈 블룸 주위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은 마치 어린 마법사를 모조리 태워 버릴 것 같았다.
[그리하여 너는 날아오르고>“…크윽!”
“큽!”
남자인지 여자인지. 혹은 노인인지, 어린아이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아니, 그건 목소리라기보다는 온몸을 뒤흔드는 거센 진동에 가까웠다. 이해하기보다는 강제로 주입받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이런 거에 약한 소리를 낸다면 헌터가 될 수 없다.
움직이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우 선생!”
오히려 홍석영은 처음으로 나를 큰 목소리로 불렀다.
홍석영은 수없이 늘어난 몬스터의 팔을 쳐 내며 외쳤다.
“죽여!”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는 행동이다.
처음에는 셈 블룸을 잡으려고 했다. 알렉스 호프의 말대로 무작정 죽이기엔 의심스러우니까. 홍석영이 하던 대로 셈 블룸을 붙잡아 털어 보려고 했었지.
무엇이 홍석영의 마음을 바뀌었을까?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의문은 결국 의미가 없다.
홍석영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움직였다.
검을 휘두른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렇게 검을 사용했는데도 아직도 적응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등산할 때도 검을 안 쓴 건 아닌데.
그냥 유지은의 검에 적응하기 싫었던 거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나는 별이 되네>나는 셈 블룸의 목을 노렸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마법사의 등은 여전히 무방비한 채다. 두 손이 묶였으니 제아무리 실드를 펼친다 해도 나를 막을 순 없다. 홍석영의 공격을 막아 냈던 룬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콰아앙!!!
인간의 육신과 검이 부딪쳤을 때 나면 안 되는 소리가 났다.
손이 얼얼하다. 나는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가 무너졌다. 동시에 어둠이 찾아왔다.
“아….”
어둠 속에서 작은 신음이 들린다. 목소리와 기척을 따라 공격을 날렸다. 익숙한 마력이 옆에서 느껴지는 걸 봐선 홍석영도 나와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 아아아.”
소년의 목소리가 낭랑히 울려 퍼진다. 잠긴 목소리를 풀고 있는지 느리게 높낮이가 바뀐다. 노래처럼 들리지는 않지만, 운율은 있었다.
“아아.”
빛이 돌아왔다.
황금빛 눈을 가진 몬스터는 없었다. 마치 풍선이 터진 것처럼 깃털이 잔뜩 흐트러져 있다.
셈 블룸은 바로 그 깃털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발밑에는 피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로브는 피를 흠뻑 머금었고, 내가 붙였던 불은 꺼졌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몬스터 피에 젖어 있는 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금색 눈이 보인다.
…셈 블룸의 눈 색이 원래 저랬던가?
“됐다.”
셈 블룸은 마치 짐승처럼 활짝 웃었다.
그리고 날개를….
…날개?
불에 탄 로브 아래로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날개가 보였다. 셈 블룸은 날개를 들었다. 두 팔이 있어야 할 자리를 날개가 대신하고 있었다.
로브가 흘러내린다. 셈 블룸은 팔을, 날개를 활짝 펼쳐 앞뒤로 흔들었다. 어린 새가 처음으로 비행을 배우는 것처럼.
“그리하여 나는 날아오르고.”
홍석영이 욕과 함께 읊조린 목소리가 마지막 기억이다.
“말하는 몬스터와 엮이면 좋은 일이 있던 적이 없어….”
애초에 몬스터와 엮여서 좋은 일이 있을 리가 있나.
시야가 반전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