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54)
그리하여 너는(5)
셈 블룸이 죽었다.
상황이 얼추 정리된 뒤에야 들은 소식이다.
던전은 알렉스 호프가 말했던 대로 자연 소멸했다. 우리가 핵을 찾아서 없애고 할 것도 없었다.
게이트 생성 자체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게 도심 한가운데라서 일반 시민들이 휘말리는 일도 드물지만, 간혹 일어나긴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에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덕분에 즉각 던전 공략이 끝난다?
이건 처음 일어난 일이다.
휩쓸린 헌터 중에 홍석영이 있으니 공략은 문제없다. 그렇게 판단한 기자들이 호텔 주위로 잔뜩 몰려들었다. 홍석영은 인상을 잔뜩 쓰며 기자들을 밀어 내다가 포기했다.
“불행히 젊은 마법사가 게이트 생성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물론 셈 블룸은 죽지 않았다.
폭발에 휘말렸다는 추측만 있을 뿐 시체는 없다. 타 버린 로브만 남았을 뿐이다. 그 피 묻은 로브가 왜 그 꼴이 됐는지 잘 알고 있는 나는 코웃음만 쳤다.
“안타까운 희생에 조의를 표합니다.”
죽은 사람을 언급하자 기자들도 조용해졌다. 다행히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그게 아니면 홍석영 주위를 맴도는 날카로운 기세가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홍석영이 아직 쥐고 있는 창 때문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눈이 있다면 막 전투를 끝낸 헌터를 건드리고 싶진 않을 것이다.
눈치를 보던 기자들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홍석영은 창을 휘적휘적 휘두르며 기삿거리를 찾는 하이에나 사이를 벗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홍석영의 심기가 불편해 보여서 그런지 아까 말을 걸었던 베넷 이후로 다가오려는 이가 없었다.
홍석영은 내 옆에 오고 나서야 흉흉한 기세를 갈무리했다. 한참을 말이 없던 홍석영은 거칠게 손바닥으로 얼굴을 슬었다.
“내 실수야.”
기가 죽은 목소리다.
나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홍석영을 보았다. 이 아저씨가 이러는 건 드문 일인데.
“둘 중 한 놈이라도 잡았어야 했는데. 판단을 잘못했어.”
그게 꽤 충격적이었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나오면 뭐라 할 수도 없잖아. 애초에 나도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긴 했다.
“아뇨, 그렇게 치자면 저도 잘못했기는 마찬가지라서요.”
누구나 실수는 한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
홍석영은 그 절대적인 진리를 거스르려고 했다.
“거기서 하다못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엔 홍석영이 나를 보며 입을 뻐끔거린다. 당연히 나는 무시했다. 아버지 말도 듣지 않았는데.
“처음 마법을 깨고 나왔을 때 가지고 놀면 안 됐습니다.”
“그게 뭐가 가지고 논 건가.”
“제 기분에 따라 움직였거든요.”
내 사적인 분노를 우선시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셈 블룸에게 틈을 준 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녀석이 호프를 부를 만할 시간은 그때밖에 없었다. 태평하게 속을 긁어 대느라 시간을 날렸다.
홍석영은 눈을 찌푸렸다.
“그렇게 따지면 나 정도 되는 헌터가 마법에 붙잡혀 있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정신 마법은 단련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불가항력이죠, 그건.”
“자네는 금방 풀려났지 않은가?”
“그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꼴도 보기 싫은 기억이라서요.”
홍석영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그럴 줄 알았지. 저 아저씨, 이상한 데서 묘하게 섬세하니까.
“그래도….”
그리고 끈질기다.
대충 넘어가면 좋잖아. 서로 잘못한 부분이 있고, 인정하긴 싫지만 방심한 부분도 있고.
게다가 여전히…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무엇 하나 제대로 규정된 게 없다.
홍석영을 돕겠다고 제자 행세까지 하며 나서긴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덕분에 내가 살아온 시간마저 의심하게 됐지 않는가.
“그만하시고요.”
자신이 더 경계를 해야 했었다, 나 정도 되는 헌터가 거기서 무방비로 현혹되는 게 말이 되냐,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나는 별 희한한 개소리를 지껄이는 홍석영을 가로막았다.
“그냥 둘 다 잘못했다고 합시다.”
“…그건 또 억울한데.”
진짜, 까다롭네!
“그럼 잘못 없는 걸로 합시다.”
“하지만 역시 두 놈 중 하나라도….”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홍석영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껄껄 웃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두 놈 중 하나라도 죽일 걸 그랬다고요?”
“필요하다면.”
“무슨 명목으로요?”
나는 홍석영을 똑바로 보았다.
“알렉스 호프야 사람을 죽인 정황이 있긴 하죠. 하지만 놈이 죽였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CCTV? 알렉스 호프가 보육원에 들어갔던 모습만 찍혔다. 그걸 꼬투리 잡아도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내부를 확인했다고 하면 이쪽도 할 말이 없다. 보육원에서 일어난 일은 전부 몬스터 짓으로 처리되었으니까.
강태우를 습격한 일도 마찬가지다. 이쪽은 좀 더 의도가 분명하지. 하지만 벗어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알렉스 호프가 정말 아이들을 죽이려고 했는지는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셈 블룸으로 가면 더하다.
아무리 본인 입으로 인간이 아니라고 떠들어 대도, 그렇다고 셈 블룸이 몬스터가 될 수는 없다.
그 녀석이 뭔가 상상도 못 할 미친 짓을 저질러서 몬스터와 결합했다고 해도 그건 놈이 미치광이라는 증거는 되더라도 사람을 해할 거라는 말은 아니었다. 기억 마법과 환영 마법의 조합으로 짜증 나게 굴긴 했지만, 공격은 안 하지 않았는가. 사실 공격한 건 나지. 걸린 마법에 비해 과하게 손을 썼다.
“저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이지 못했다.
죽이지 않았다.
“살인자가 아니니까요.”
어느 날 그때 셈 블룸을 죽여야 했다며 후회하게 되는 날이 올지라도, 동시에 그날 죽여서 후회하게 될 것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배웠다.
홍석영의 눈을 피했다. 아버지라면 잘했다며 웃을 것 같은데, 홍석영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
나는 아들이지만 지금의 홍석영에게는 미래에서 온 제자이지 않은가. 그런 나약한 후계자는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
“잘했어.”
홍석영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거기서 놈을 죽였다면 내 제자의 인성에 실망했을 거네.”
…정작 내가 과격한 수단을 써도 되냐고 허락을 구했을 때는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
그제야 얼굴을 들어 홍석영을 보았다. 홍석영은 뿌듯해 보이는 눈으로 웃고 있었다.
자연히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그럼 제가 죽였다면 저를 내칠 생각이었습니까?”
아직도 그 빌어먹을 시험이 남아 있던 건가?
“뭐?”
그러나 홍석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부정했다.
“그럴 리가. 내 제자의 판단을 어떻게 의심하겠나?”
“…….”
“오히려 어려운 결정을 했으니 내가 믿고 지지해 줘야지.”
홍석영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짜 얄미운 아저씨다.
* * *
던전 뒤처리는 지지부진했다.
몇 안 되는 부상자들이야 진작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그 외의 헌터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던전에서 무얼 하셨다고요?”
협회 직원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헌터들의 증언을 듣고 있다. 워낙 특수한 상황이다 보니 한 명 한 명 확인하고 있었다.
뭐… 게이트 생성 시 폭발이 일어나는 일도 드문데, 거기에 휘말린 사망자가 나오는 건 처음이잖은가.
진짜 사망자는 아니긴 하지만.
“그런데 말이지.”
홍석영은 턱을 매만지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무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지 얼굴이 어두웠다.
“왜 그럽니까?”
“사망자는 한 명뿐이라고 들었거든.”
“네. 셈 블룸이요.”
아마 원래 내가 있던 시간 선에도 지금처럼 자신의 사망을 꾸며 냈을지도 모른다.
꼭 던전을 열어젖힌 게 아니라, 공략하다 죽었든 어쨌든.
“알렉스 호프가 처음엔 죽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 고생을 하며 살려 간 애를 죽였을 것 같진 않거든.”
“뭐… 죽일 생각이었다면 그냥 거기서 죽이는 게 빨랐죠.”
“그래. 그럼 셈 블룸은 그렇다 치고.”
“그렇다 치고?”
“알렉스 호프는?”
“……!”
“놈은 던전에서 나왔을 거 아냐. 내가 못해도 갈비뼈 대여섯 개는 부쉈을 텐데?”
아무리 헌터라도 최소 4주는 병원에 누워서 힐러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부상이다.
“하지만 부상자는….”
헌터 중에서는 없다고 들었다. 넘어진 호텔 직원들의 찰과상이 전부였다.
나도 홍석영을 따라 주위를 훑었다.
알렉스 호프만큼 개성 넘치는 생김새가 묻힐 리가 없다.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이유는 하나뿐이겠지.
놈이 우리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거다.
보이지 않는 알렉스 호프를 찾는 대신 요 이틀 동안 익숙해진 호주 헌터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호주 헌터들의 속사정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알렉스 호프가 답답해하던 걸 보면 항상 주시하고 있을 것 같았다.
“아.”
한참 보이지 않던 호주의 헌터들이 협회에서 임시로 세워 둔 천막 안에서 비척거리며 걸어 나왔다. 크리스 윌슨은 협회 직원을 보며 무어라 물어보고 있었다.
“이제 들어가도 괜찮습니까? 저희도 좀 쉬고 싶은데요.”
“네, 방으로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호텔 밖으로 나가는 건 안 됩니다.”
“언제까지요?”
“어, 글쎄요…. 따로 저희가 공지를.”
“아니, 이거 그냥 방에 가둬 두는 거 아닙니까?”
“아뇨,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하고요….”
인상을 잔뜩 찌푸린 호주 헌터들의 부대장 뒤로 작은 체구가 하나 보인다. 헐렁한 옷을 입은 빨간 머리.
알렉스 호프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이틀 내내 보았던 짜증 나는 얼굴은 그대로다. 그러나 미세하게 움직임이 조심스럽다. 호프는 검지로 눈 밑에 줄무늬를 그리며 우는 시늉을 했다.
그걸 못 본 척하고 있자 이번엔 다리를 절뚝이는 흉내를 냈다. 그것도 못 본 척하자 이번에는 손목을 붙잡으며 입을 쭉 내밀었다.
…뭐 하자는 거지?
“부대장! 난 방에 들어가서 쉴게요!”
“뭐? 호프!”
“피곤하다고요!”
호프는 윌슨의 손을 뿌리치고 호텔 안으로 낼름 들어갔다. 들어가기 직전 우리를 보며 고개를 까딱이는 게….
“따라오라는 것 같은데요?”
“어쩌겠나?”
“무슨 소리 하는지 들어나 보죠.”
홍석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 안은 어수선했다. 호프는 1층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호프는 볼멘소리로 외쳤다.
“죽이라고 했잖아!”
“뭐?”
“덕분에 걜 구해야 했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내가 진짜… 어휴. 됐다, 됐어. 말을 말아야지.”
호프는 노골적으로 실망한 티를 냈다.
우리가 왜… 이 녀석에게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지?
“정말… 내가 괜히 너흴 던전 밑바닥으로 보냈겠어? 걜 죽이면 귀찮은 일도 없이 다 좋았잖아! 왜 안 죽인 거야?”
홍석영이나 내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 호프는 속사포같이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착한 내가 다 감수해야지. 우리 엄마가 원래 착한 사람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법이랬어. 그게 나중에 자기 자신한테 돌아온다더라고? 사실 맞는 말 같아.”
그게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알렉스 호프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어 보였다.
호프는 나와 홍석영을 번갈아 보았다. 미심쩍은 눈이긴 했지만 공격할 것 같진 않아 보이고. 그럼 뭐 하자는 걸까.
“이번에야말로 꼭 죽이자. 알았지?”
“셈 블룸을? 왜? 같은 편 아닌가?”
“같은 편이라면 같은 편인데….”
호프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같이 일한다고 해서 같은 편이지는 않지.”
“내분이라면 알아서 처리해.”
“내분은 아닌데. 아유, 너희가 걜 죽였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거라고!”
호프는 발을 동동 굴리며 말했다.
“너희 있잖아, 너희 집 경비는 잘 세워 뒀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