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55)
구조요청(1)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해졌다.
김채민은 새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음을 깨달았다. 대단히 한 것도 없었는데, 벌써 이렇게 됐단 말야?
“선생님!”
“마법사는 마법만 잘 쓰면 되는 거 아니에요?!”
“마법이든 뭐든 하체가 부실하면 안 돼.”
새끼 마법사들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제는 제법 마법사 티가 난다.
“자, 꾀부리지 말고 마저 하렴.”
김채민은 투덜거리면서도 시키는 대로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어린 마법사 두 명을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진우보다 서현이가 예민한 기질이 있다 보니 지난번의 실수 이후로 한동안 풀이 죽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아주 괜찮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실수를 하고 뻔뻔하게 구는 것보다는 눈치를 보는 편이 인성적으로 걱정이 덜하지.
‘누군가를 가르치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역시 살다 보면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난단 말이야.’
그렇게 따지면 그 홍석영이 학교를 만든 것부터가 신기한 일이다. 아직도 새삼스러운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익숙해지려면 한참 먼 모양이다.
“쟤들도 같이 하고 있잖니.”
“쟤들은 당연히 해야죠!”
최진우가 꽥 고함을 질렀다.
이게 이 아이의 최대 반항이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함을 지르는 것.
김채민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
박서현도 입술을 비죽거리고 있다. 그래도 열심히 스쿼트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마냥 귀여웠다.
김채민이 앉아 있는 파라솔 달린 야외 테이블 반대편에는 다선 헌터가 감독 중인 헌터 지망생들이 있다. 넓은 정원을 달리고 있는 모습이 역시 귀엽다.
정원 한가운데서는 순순진과 오현욱이 대련하고 있다.
쿵!
“야! 치사하게!!”
“모로 가도 공략만 잘하면 된댔어!”
오늘도 어김없이 바닥이 파헤쳐진다. 잘 가꾸어진 정원은 처음의 모습이 이미 없어졌다.
급하게 거처를 옮겼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고아한 정원에 기가 눌려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를 보다 못한 홍석영이 누가 봐도 신경 써서 꾸며 놓은 작은 폭포를 부수고, 그 뒤를 이어 우희재가 비싸 보이는 소나무를 베어 버렸다. 그쯤 되니 아이들도 정원이 부서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게 모로 가는 거야?!”
오현욱은 몸집이 작고 잽싼 순순진에게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김채민의 눈에는 오현욱도 나이에 비하면 잘하고 있었지만, 움직임은 은근히 정석인 면이 있었다. 우희재가 그런 오현욱을 향해 뭐라고 했더라.
‘쟨 옛날 경험 때문인지 결벽적인 면이 있더라고요.’
그러고는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커서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긴 한데….’
경험이 늘수록 헌터들의 잔꾀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 걸 생각하면 우희재의 말도 이해가 갔다. 저 애가 언제까지 저런 순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날아가든 기어가든 당한 놈 잘못이지!”
조금 전 오현욱의 눈에 흙을 뿌린 순순진은 당당하게 외쳤다.
우희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도 역시나 귀엽다. 다른 마법사들도 이런 재미로 제자를 들이는 걸까?
‘지난 3일, 미국 캘리포니아 모 대학에서 제자 마법사가 스승을 공격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불과 며칠 전 보았던 뉴스를 떠올린 김채민은 웃는 얼굴 그대로 하늘을 보았다. 역시 그건 아닌 것 같다.
우우우웅.
김채민은 턱을 괴었던 손을 떼고 휴대폰을 보았다.
우희재.
김채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픽 웃었다.
포럼 장소였던 호텔에 던전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진작 들었다. 어차피 홍석영이 있으니 금방 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다.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황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전화를 거는 걸 보면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고.
애들이 걱정할까 봐 전화한 걸까?
“던전 공략은 잘 했어요?”
그래서 김채민은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우희재의 목소리는 밝지 않았다.
-김 선생님. 별장 주위에 보호 마법 다 둘렀었죠?
“네?”
-보호 마법이요. 작업했죠?
“어… 네.”
김채민은 눈을 깜빡이다가 느리게 말했다.
“여기로 오게 된… 이유가 이유니까, 이 헌터가 요청해서…. 게다가 승연이가 가출한 이후로 여기 드나드는 사람들도 다 체크하고 있.”
-지금 거기 다선 헌터들은 몇 명 있죠?
“이 헌터가 데려가긴 했는데….”
소속을 숨기고 있긴 하지만 협회 소속인 이미선은 포럼 때문에 무언가 할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대답을 해 줄 것 같았지만, 크게 관심이 없었던 김채민은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방주와 관련된 일이라면 나중에라도 자기 귀에 들려올 거라 여겨서였다.
김채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희재의 질문에 답했다.
“세 명이요. 지유건 헌터랑….”
우희재는 누가 남아 있는지는 상관없었는지 김채민의 말을 끊었다.
-그럼 애들 모아서 헌터들과 같이 있으세요.
“네?”
-애들 다 있죠? 저나 홍 선생님이 갈 때까지 같이 있어요. 지금 당장요!
“무슨 일이에요?”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지금 바로 움직여요!!
우희재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건 처음 보았다.
김채민은 상대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네, 네! 알겠어요. 애들이랑 같이 있으면 되는 거죠?”
-부탁하겠습니다.
우희재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선생님밖에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애들을 지키라는 거죠?”
원래 우희재와 홍석영이 포럼에 참석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아니, 홍석영은 매년 참가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알렉스 호프의 이름을 떠올린 김채민은 얼굴을 싸늘하게 굳혔다.
한 번 습격한 놈이 또 습격을 못 할 건 없어 보였다.
“저 대마법사예요, 선생님.”
열일곱 생일, 처음으로 장미 봉오리를 피워 냈다.
한 달이 지나기 전, 짙은 장미 향과 함께 고유 마법 발현에 성공했다.
그해 겨울이 오기 전, 대마법사가 되었다.
부모님의 교육 방침에 따라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스무 살이 된 이후다. 그런 자신을 두고 아직 경험이 부족한 어린 마법사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안다.
대마법사로서의 자존심이 상한다. 정작 자신의 얼굴을 보고서는 아무 말도 못 하는 놈들이 입만 살아서는!
“누가 오든 절 지나치기는… 글쎄요. 쉬울까요?”
우희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칠던 호흡이 천천히 진정되었다.
조금 뒤 다시 입을 연 목소리는 한결 안정되었다.
-그럼 믿고 있겠습니다.
“네.”
통화가 끊겼다.
“얘들아! 오늘 수업은 끝!”
김채민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런 일은 시간이 생명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김채민의 시야가 닿는 곳에 있었다.
열심히 하체 운동을 하고 있던 새끼 마법사들도, 정원을 달리던 아이들이나 대련 중이던 순순진과 오현욱까지. 덩달아 다선의 헌터 세 명도 김채민을 보았다.
“모두 날 따라와!”
“네?”
“자,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동시에 김채민은 펜션 주위의 방어 마법을 확인했다. 작업만 해 놓고 가동하지 않았던 마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작동시키고, 어긋난 부분이 없는지 되새겼다. 펜션 내부의 마력 흐름이 바뀐 것을 눈치챘는지 다선의 헌터 세 명의 얼굴이 굳었다.
김채민은 강태우의 얼굴이 희게 질린 걸 보았다. 연구소 출신에, 알렉스 호프를 보았던 아이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빠르게 알아챌 법도 했다. 강태우의 얼굴을 본 이승연도 얼추 짐작이 갔는지 평소라면 했을 농담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문 채 김채민을 따라왔다.
어른들과 친구의 분위기가 바뀌자 덩달아 다른 아이들도 휩쓸렸다. 제일 나이가 어린 유지은이 언니 곁에 바싹 달라붙는다.
김채민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미선이 사용하는 서재로 왔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대피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해 놓은 곳이다.
솔직히 만들면서도 너무 과하지 않나 싶었는데, 역시 다 쓸모가 있다. 언제나 모자란 것보다는 과한 편이 낫다.
김채민은 아이들을 살폈다.
“좋아. 빠진 사람 없….”
뭔가 허전한데.
김채민은 아이들을 다시 보았다. 왜 허전함을 느꼈는지는 바로 알아차렸다.
“이록이!”
김채민은 비명을 질렀다.
“이록이 어디 있어?!”
없는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그리고 누구 한태경 본 사람?!!”
* * *
-보니! 그러면 안 돼!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작은 태블릿 PC 안의 괴상하게 생긴 분홍색 고양이가 움직였다.
고양이가 아무리 말을 해 봤자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심술궂은 여자아이의 귀에는 작은 고양이가 자길 졸졸 쫓아다니며 야옹거리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우이록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투성이였지만 한번 보기 시작한 시리즈를 도중에 꺼 버리는 건 자존심 상했다. 시즌이 몇 개나 되는 애니메이션이니까 보다 보면 한 편 정도는 마음에 드는 게 나올 수도 있는 거고.
-야옹야옹야옹야옹!
-체이시, 그렇게 내가 좋아?
-야옹야옹!
…글쎄, 그럴 일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우이록은 대체로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일단 형과 같이 지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이록은 대부분의 일을 참을 수 있다. 형이 자신에게는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연구소에서 매번 불려 갈 때마다 싫어하던 모습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나에게 말해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무리 형이라도 연구원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청소부가 하는 일이야 뻔하지.
쓰레기를 치운다.
연구소에서 나올 만한 쓰레기가 뭐가 있겠는가? 이따금 연구원을 따라 나간 뒤 영영 돌아오지 않던 아이가 몇 명이던가?
우이록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야옹!
분홍색 고양이가 울고 있다.
우이록은 소파에 누워 애니메이션을 계속 보았다.
어쨌든 이곳 생활은 마음에 든다. 형이 바쁘다는 사실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어차피 연구소에서도 형을 자주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은 형이 내가 필요할 때 와 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던 그때와는 다르다. 지금도 형은 3일만 있으면 돌아올 거라고 약속하고 갔다. 형과 이야기하고 싶으면 여자 선생님에게 말하면 전화를 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니까….
“꼬맹아!”
우이록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선글라스를 낀 시끄러운 남자가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괜찮지?”
“뭐가요?”
“김 쌤이 갑자기 마법을 발동해서…. 젠장!”
한태경은 그대로 몸을 날렸다. 우이록은 비명도 못 지르고 한태경의 품에 안겨 바닥을 뒹굴었다.
“뭐야, 씨발!”
“흐음….”
허공이 찢어지며 파란 머리의 소년이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우이록은 한태경의 어깨 너머로 소년을 겨우 볼 수 있었다.
팔뚝 아래로 하얀 날개가 달려 있다. 가끔 TV에 나오는 괴물처럼 보였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쭉 뻗어 나왔다.
한태경은 우이록이 들고 있던 태블릿을 세워 소년에게 던졌다. 태블릿은 소년의 머리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소년은 팔로 머리를 가렸다.
“……!”
갈라진 허공에서 뾰족한 가시가 달린 넝쿨이 튀어나와 소년을 감쌌다. 넝쿨은 소년을 끌어당겼다.
소년은 짜증을 잔뜩 내며 넝쿨을 잘라 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그대로 허공 안으로 끌려 사라졌다.
“…미친?”
한태경은 벌떡 일어났다.
허공이 다시 갈라지며 하얀 깃털이 흔들린다. 가시에 찔려 피가 뚝뚝 흐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든 손을 내밀고 있었다.
“미친!!!”
한태경은 우이록을 안은 채 달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