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56)
구조요청(2)
“다 왔어.”
이를 악물었다.
“김 선생에게는 말해 놨네. 그냥 찢고 들어가게.”
옆에서 홍석영이 말했다. 헤드셋을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곤두선 감각은 성능 좋은 헤드셋을 뚫고 헬리콥터의 로터 소음을 잡아냈다.
검을 쥐었다. 검 끝에서 타닥, 불꽃 튀는 소리가 들렸다. 홍석영은 내 손을 붙잡았다.
“진정해. 헬기가 추락하면 우린 괜찮을지라도 조종사는 죽으니까.”
조종석을 보았다.
불타는 서울에서 헤어졌던 조종사. 죽을 줄 알면서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이를 악물었다. 내가 구할 거다. 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빌어먹을 놈들만 다 처리하면.
“…죽였어야 할까요?”
이미선이 급하게 헬리콥터를 제공해 주었다. 복잡한 절차는 모르겠다. 이미선이 알아서 다 했겠지.
아이들이 있을 펜션으로 내려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맴돌던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내가 괜히 어쭙잖은 위선으로…!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홍석영은 단번에 부정했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결코 지름길이 될 수 없네.”
홍석영은 헬리콥터 문을 열었다.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고도를 낮추겠다는 조종사의 말이 들렸다.
“자네의 선생님도 그걸 원하진 않았을 테니까.”
“…….”
“그러니 자네도 죽이지 않았잖은가?”
나는 아래를 보았다. 펜션이 보인다. 그 주위를 감싼 김채민의 마력도. 만개한 장미처럼 붉은빛과 푸른빛이 촘촘히 엮여 있다.
“자. 동생에게 부끄러운 형이 되면 안 되지.”
내가 뛰어내리기 직전, 홍석영이 덧붙였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린 나 자신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다.
아직도 제대로 그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거칠게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느꼈다. 김채민의 마력이 가까워졌다. 검을 세워 마력을 감았다.
파각!
김채민의 마법을 찢고 정원으로 내려왔다. 뒤이어 홍석영이 내려오고, 찢어진 부분은 빠르게 복구되었다. 김채민이 무사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방어진을 구축하느라 서재에서 움직일 수 없다고 했었지.
나는 홍석영을 보았다.
“동생을 찾겠습니다.”
“난 서재로 향하겠네.”
마찬가지로 서재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한태경이 그 아이와 같이 있기를 바라며.
나는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 * *
펜션 안은 장미로 가득 차 있었다.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의 장미다.
마치 화려한 장미정원에 들어온 것처럼 모든 벽을 장미가 점령했다. 코가 마비될 정도로 짙은 장미 향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 비릿한 피 냄새가 섞여 있다. 놓치려야 놓칠 수 없었다.
그 피 냄새를 쫓아 움직였다. 펜션의 크기는 전혀 도움 되지 않았다. 가끔 멀리서 쿵, 쿵 하는 진동이 들렸다.
아마 한태경일 거다.
‘우리 바퀴벌레가 적응을 언제 끝낼지가 관건이긴 한데…. 그래도 저 아저씨가 도착하면 걔도 도망칠 수밖에 없긴 할걸?’
알렉스 호프가 말한 적응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마는, 좋은 게 아닌 건 확실했다. 공동에서의 셈 블룸에게선 대단한 실력을 느끼진 못했지만…. 김채민의 도움이 있다면 한태경도 놈을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거다. 시끄러운 놈이기는 해도 실력만큼은 진짜니까.
쿠웅!
“으윽…!”
그러나 내 앞으로 한태경이 나타났다.
무언가에 걷어차인 듯, 벽을 뚫고서.
한태경은 스탠드 등을 꽉 쥐고 있었다. 너덜너덜한 갓만큼이나 한태경도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한태경은 피를 쿨럭 뱉어 내면서 흐릿한 눈으로 나를 올려 보았다.
“어… 우 선배?”
쓰러진 몸 위로 유지은이 겹친다. 유지은도 저렇게 피를 울컥 토했다. 복부에는 포션도 통하지 않을 만큼 심한 상처가….
“…한 선생님?”
한태경은 스탠드 등을 지팡이 삼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손을 흠뻑 적시고 있는 피에 미끄러져 다시 쓰러지려는 걸 뒤늦게 정신 차리고 부축했다.
“그, 이상하게 생긴 놈이…. 김 선생님 마법을 어떻게… 뚫, 고.”
“이상하게 생긴? 어떻게 생겼습니까?”
“파란, 머리에, 팔이 날개처럼 생… 긴.”
셈 블룸.
“아마, 마법사가 아닌가 싶긴 한데요….”
일어설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한태경을 앉혔다. 스탠드 등이 도르륵 굴러간다. 마땅한 무기가 없어 저걸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을 거다.
한태경의 복부를 눌러 지혈했다. 유지은처럼 치명상은 아니다.
“여기 있어요. 정신 잃지 말고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
“우 선배님.”
한태경은 내 옷을 꽉 잡았다. 하얀 와이셔츠에 붉은 자국이 남는다.
“그 꼬맹이.”
“꼬맹이?”
한태경이 꼬맹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미니미.
“걔, 부엌. 부엌으로, 도망치게 했거든요. 제일 큰 데 있잖아요.”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가요.”
나는 그대로 일어나 한태경이 말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짧은 거리다. 숨이 찰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어쩐지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검을 휘둘러 되는 대로 불을 지르고 싶다가도, 눈앞에 있는 장미가 김채민의 것이라는 사실에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마법이 사라지면 오히려 놈이 활개 치기 좋은 환경이 될 거다.
검을 쥐었다.
열댓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넓은 식탁이 보인다. 평소 식사 시간이 되면 다 같이 앉아서 먹곤 했다. 미니미도 투덜거리긴 해도 내가 데려오면 뚱한 얼굴로 그 사이에 앉아 밥을 먹었다.
바닥은 엉망이다. 식탁도 너저분하다. 의자는 나뒹굴고 있고, 김채민의 장미가 여기서만큼은 온전한 모양새를 찾기가 힘들었다.
‘내가 왜 한국에 왔는지 알아?’
알렉스 호프는 나와 홍석영을 측은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희 두 사람을 끌어내라는 말을 들었거든. 걸릴 수밖에 없는 함정이라는 건 나도 이해하는데, 너무 잘 걸려 버렸잖아.’
김채민의 마력이 흔들린다.
더 볼 것도 없이 그리로 검을 던졌다.
“악!”
셈 블룸이 검이 꽂힌 팔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검에 붙은 불이 셈 블룸의 날개를 태웠다. 놈은 이를 악물고서 검을 뽑았다. 여전히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은 다 태워 버리는 유지은의 검은 불길을 더욱 키웠다.
“크윽…!”
챙그랑.
놈이 검을 떨어트렸다. 피가 후두둑 떨어진다.
그 틈을 타 김채민의 장미 넝쿨이 놈을 붙잡아 허공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런 식이었군.
나야 마력이 보이니 미리 쳐 낼 수 있지만 한태경은 어쩔 수 없이 첫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 정도 상처로 막아 낸 게 대단한 거다.
‘산드라가 항상 나는 말이 짧아서 문제라고 그랬거든.’
나는 부엌을 살폈다.
‘그래서 말하는 건데…. 나 말 안 했다? 말 안 했는데, 걔가 눈치채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리고 세미도 도착하면 바로 눈치를 챌걸. 걔가 그래도 눈은 잘 뜨고 다닌다니까.’
솔직히 말이 짧은 게 문제가 아니라 설명을 제대로 못 하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걔가 데려가면 지인짜 곤란해지거든. 큰일 나. 그러니까 이번에는 꼭 죽여. 나랑 약속했다?’
알렉스 호프는 강태우를 노렸었다. 그래서 데려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연히 강태우를 떠올렸다.
김채민이 우이록의 이름을 거론하기 전까지는 놈이 노리는 게 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셈 블룸이 여기서 난리 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게 맞는 듯했다.
“악!”
셈 블룸은 또다시 팔을 움켜쥐고 김채민의 넝쿨에 끌려갔다.
한태경에게도 당했고, 뒤를 이어 나에게도 막혔다. 배우는 게 없다. 알렉스 호프가 바퀴벌레라고 부른 것도 다 이유가 있어 보였다.
“…….”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서재로 가자. 일단 안전을 확보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여기에 우이록을 두고서는 제대로 싸울 수도 없다.
다시 셈 블룸을 막아 내고, 냉장고 옆에 있는 문을 두드렸다. 식료품 창고로 쓰고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긴장한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고.
“이록아.”
“………형?”
한참 뒤에야 우이록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형이야. 문 연다?”
우이록은 창고 제일 안쪽, 선반 아래에 있던 박스를 치우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잔뜩 겁을 먹고 울고 있지 않을까 했다. 내가 열 살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형이 없는 나라면 같은 일을 겪었더라도 울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저 미니미는 내가, 형이 있지 않은가. 독립적인 영혼이었던 나보다는 훨씬 의존적이니까.
그러나 우이록은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울고 있진 않았다. 덜덜 떨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우이록은 선반 아래에서 기어 나와 말간 얼굴로 나를 보았다. 미니미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형!”
“이록아.”
“형이 나 구하러 올 줄 알았어!”
우이록은 내게 폴짝거리며 다가왔다.
“저번에는 좀 늦었지만 그건 봐줄 수 있어.”
“어… 이해해 줘서 고마워.”
“이제 다 괜찮은 거야?”
“…아니. 아직 조심해야 해.”
미니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게 손짓했다. 그 손짓에 맞춰 허리를 숙여 주자 환하게 웃으며 등에 업혔다. 어린아이의 온기가 등에서 전해진다.
“그래도 형이 나 지켜 줄 거잖아.”
아이의 목소리에는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는.
한때 내가 가졌던 것과 똑같은 믿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보육원에서 데려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매일 자신을 보고 있는지 꿈에도 모른 채로.
그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자신의 온 세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형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자연히 사그라들었던 믿음이 아버지를 통해 다시금 부활한 것처럼.
“…그래.”
열 살 어린애의 가벼운 몸무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형이 지켜 줄게.”
나는 이 아이의 형이다.
이 아이의 모든 세상.
이 아이가 기억하는 모든 세상.
이 아이가 자라면서 배울 모든 세상의 기준.
눈이 시큰거렸다.
이제야 각오가 섰다.
우이록의 형이 될 각오가.
“형 꼭 잡고 있어야 해.”
“응.”
목을 감싸는 힘이 제법 단단하다.
창고를 나오자마자 마력이 흔들렸다. 셈 블룸은 도무지 배우는 게 없다.
유지은의 검은 더 이상 던지지 않았다. 자칫 잘못해서 셈 블룸과 함께 김채민에게 끌려가면 되찾기 힘들 수 있다. 좋은 아이템을 그렇게 잃어버릴 순 없지.
이미선이 준 단검은 아직 몇 개 더 남았다. 드워프의 금 단검은 마력 차단에 효과가 좋다. 알렉스 호프가 이동하는 게 던전 아이템이나 마법 아티팩트를 사용한 거라고 생각해서 준비했었다. 무엇이든 잡으려면 도망갈 길부터 차단해야 하는 법이니까.
셈 블룸은 이번에도 팔로 검을 막아 냈다. 이번에는 비명도 지르지 않고 곧바로 단검을 뺐다. 난도질당한 팔에선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장미 넝쿨이 움직인다.
그러나 셈 블룸은 곧바로 손을 뻗었다. 나나 내 등에 업힌 우이록을 향해서가 아니라….
바닥을 향해.
“……!”
셈 블룸의 손을 따라 내 시선이 움직였다. 놈이 흘린 피로 가득한 바닥.
피는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마치 일부러 그렇게 흘린 것처럼.
그리고 그 떨어진 피들은 어쩐지 눈에 익숙한 배치였다. 마치 연구소에서 몇 번이고 보았던 룬처럼.
룬!
뒤늦게 셈 블룸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셈 블룸을 막으려고 하는 대신 내 등에 매달려 있는 동생을 껴안았다.
콰아아앙!!!
폭발이 부엌을 휩쓸었다.
* * *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무엇 때문에 룬의 효과가 이렇게까지 증폭되었는지 모르겠다. 장소가 부엌이었으니 기름이나, 가스가 폭발을 더 키웠을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겠지.
결국 헌터도 무적은 아니다. 마력이 깃든 공격만으로 헌터를 해칠 수 있다는 그런 상황 좋은 설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들보다 튼튼하기는 하지만. 그러니 그 폭발에서도 등만 다치고 살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정신이 들자마자 마지막으로 품에 껴안았던 동생부터 찾았다.
“…이, 록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하얀 얼굴이 꿈틀거린다.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살아 있다. 그럼 되었다.
“시간이 너무 걸렸네.”
눈앞에서 허공이 갈라진다.
“너, 너….”
“아까 던전 안에선 고마웠어.”
셈 블룸은 히죽 웃으며 내 검을 주웠다. 화상에도 아랑곳 않고 주운 검을 내 어깨에 박았다.
고통보다도 놈이 뻗는 손이 더 신경 쓰였다. 녀석이 우이록을 붙잡아 당기자 내 품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셈 블룸은 내 얼굴을 흘깃 보고는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내 동생과 함께.
“……끄, 윽.”
분함을 참지 못하고 바닥을 벅벅 긁었다. 김채민의 마법이 있으니 아직 펜션 근처에 있을 거다. 당장 일어나서 쫓아야 한다.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걘 내 동생인데. 동생이라고 드디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우 선생!!”
다급한 발소리가 내 옆에서 멈췄다.
“이게 무슨….”
웅웅거리는 소리가 서서히 형체를 갖추어 나간다.
“우 선생, 정신 차리게! 지금 기절하면 안 돼! 잠깐, 내가 포션… 포션 들고 다니는 게 있는데.”
“…도.”
“우 선, 우희재!”
내 이름.
흐릿한 눈이 일순 밝아지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정신이 들어? 내가 보여? 내가 누군지 알겠나?!”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 수염 자국이 남아있는 거친 턱. 흉터로 가득한 손.
언제나 나를 지켜 주기로, 도와주기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 주기로 약속한 사람.
“…동, 생.”
“동생? 이록이?”
“아저, 씨….”
“셈 블룸이 데려갔어?!”
“…빠. 아버, 지. 도, 동생… 동, 생을, 제발.”
아버지.
“아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