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57)
아빠는 강하다(1)
‘근데 아직도 홍시 못 먹어?’
‘뭐?’
빛바랜 기억.
‘예전엔 못 먹었잖아. 먹으면 여기, 이렇게 두드러기 났었지?’
언제나 소중히 간직해 온 추억.
‘지금은 괜찮아? 한 입 먹을래?’
‘…알러지 있다는 사람한테 뭐라는 거야? 알러지를 우습게 보면 안 돼. 기자라는 여자가.’
‘아니이!’
미미는 작은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분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부푼 배 위에 얼린 홍시를 담은 컵을 올려놓은 모습이 귀여워서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도 잊은 채 킬킬 웃었다.
‘각성자가 되면 몸이 튼튼해진다고 하잖아. 있는 병도 낫는다는데, 그럼 알레르기도 나을 수 있지.’
‘잘 모르겠는데.’
‘자기 동료들은? 알레르기 있었다가 없어진 사람 없어?’
‘물어본 적 없는데.’
‘음… 먹어 볼래?’
홍시 한 숟갈이 눈앞에 들이밀어진다. 홍석영은 그걸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너 많이 먹어. 먹고 싶다며?’
‘응. 혹시 알레르기 있을까 봐 그래?’
‘그렇다기보다는…. 옛날에 먹고 탈 났던 기억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기분상 먹기가 꺼려지는데.’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
‘그럼. 나도 아빠랑 마지막으로 먹었던 국밥은 아직도 싫어하는걸.’
미미는 까르르 웃었다.
‘그래서 내가 너랑 국밥 같이 안 먹는 거잖아.’
‘어이구, 그래요. 아주 일등 신랑감이야.’
‘돈도 잘 벌어 오고.’
‘맞아. 그게 젤 중요하지.’
‘잘생겼고.’
‘그건 잘 모르겠는데….’
‘몸도 좋고?’
‘최고지.’
미미는 엄지를 세웠다.
‘그러니까 우리 신랑이 더 멋진 신랑감이 될 기회가 있는데….’
‘뭐가 먹고 싶은데?’
미미는 홍시를 마저 먹으며 해사하게 웃었다.
‘족발!’
생각해 보면 이때가 가장 걱정 없이 편안했던 시절이었다.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 와서 함께 나누어 먹고 웃던 시절.
그 뒤로는….
…….
홍석영은 자신에게 가족이 생길 거라고 믿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철이 들 무렵부터 혼자였기 때문이다. 가족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부러웠기에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빠르게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홍석영은 혼자서 강해지는 법을 익혔다.
무작정 헌터가 되겠다고 나타난 어린 각성자를 써 주는 길드는 없었다. 작은 길드 하나에서 그럼 짐꾼으로 일하지 않겠냐고 묻지 않았더라면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했을 것이다.
홍석영이 짐꾼으로 일한 길드는 규모가 크진 않았다. 하지만 관리하는 던전 중에 마력초가 나오는 던전이 하나 있었다. 홍석영의 일은 그런 던전에 따라 들어가 길드원들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동안 마력초를 채취하여 등에 이고 나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던전 등급이니 통행세니 하는 것들이 제대로 규정되기 전이었으니, 짐꾼인 홍석영이 아무렇지 않게 게이트를 넘나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헌터들의 전투를 보게 된 홍석영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저것보단 잘하겠는데.’
실제로도 잘했다.
헌터로서의 홍석영은 끝내줬다.
빠르게 명성을 얻어 가던 중 미미와 재회했다. 처음에는 고아원에서의 이야기와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걸로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미가 멱살을 잡아채더니 입을 맞췄다.
그렇게 홍석영의 인생에 연애가 등장했다.
불같은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단 소식을 들었을 땐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여겼다. 지금이 내 전성기라고.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정말? 그 정도로 내가 좋아?’
‘그래.’
‘고아원에 있었을 때는? 그땐 날 이렇게 좋아하게 될 거라고 알았어?’
‘알았으면 나도 너랑 같이 가겠다고 드러누웠을걸.’
자신의 말에 숨도 못 쉬게 웃던 미미는 죽었다.
죽음의 의미는커녕 엄마의 얼굴을 알기나 할까 싶은 어린 아들은 울기만 했다. 미미를 입양했던 가족들은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결혼식 이후로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미미의 양부모는 어두운 방 안에서 넋 놓은 듯 앉아 있는 사위를 보고 딸을 죽인 놈이라며 소리치지 않았다. 대신 찬장에 있는 분유를 확인하고 물을 데워 낑낑거리고 있는 손자를 먹이고 재웠다.
미미의 가족들은 홍석영을 대신하여 딸의 장례식을 준비했다. 양부모는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 손주를 돌보았다.
홍석영은 아들이 처음 기었던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처음 혼자서 일어났던 날도 기억하지 못하고, 걸었던 날마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렸다.
어슴푸레하게 밝아 오는 푸른빛이 창문을 통해 집을 비추었다. 홍석영은 홀린 듯 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난간이 있는 작은 침대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잠에서 깨어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그리고 오동통한 손을 홍석영에게 뻗더니, 미미를 꼭 빼닮은 눈으로 환하게 웃었다.
‘아빠!’
라고 말하며.
장모는 홍석영의 손을 꽉 쥐며 말했다.
‘우리 딸을 그만큼 좋아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애가 있잖아. 아빠가 힘을 내야지.’
좋은 사람들이다. 홍석영은 아들을 보며 울었다. 미미의 두 번째 가족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구나. 그래도 사랑을 많이 받고 갔구나 싶어서. 그래서 고아원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미미가 그토록 사랑이 많았구나 싶어서.
그렇게 넘치는 사랑을 아들에게 줄 새도 없이 가 버린 아내가 안타까워서.
홍석영은 울고 또 울었다.
그렇지만 장모의 말이 맞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했다. 미미가 남긴 갓난쟁이 아들이 있었다. 아빠를 보면 해맑게 웃는 아이. 뒤뚱거리면서 냉큼 달려와 안기는 아이. 미미처럼 책을 좋아하고, 마음에 차지 않는 게 있으면 코를 킁킁거리고, 달팽이가 귀엽다며 키우게 해 달라고 떼쓰는.
홍석영에게 그 아이는 세상이었다.
미미와 다시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홍석영의 명성은 높아졌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기만 해도 홍석영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가 늘었다.
‘아빠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그렇게 투덜거리면 제 엄마를 닮아 어른스러운 아들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며 자신을 혼내곤 했다.
‘아빠를 응원해 주는데. 그치?’
그래도 홍석영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강한 헌터라는 별명보다는 세운이 아빠라고 불리는 것이 더 좋았다.
‘세운아, 아빠 헌터 그만둘까?’
‘응? 왜?’
‘아빠가 헌터 그만두면 세운이랑 놀이동산도 갈 수 있고, 영화관에도 가고….’
‘싫어.’
‘싫어? 아빠 헌터 계속할까?’
열 살배기 아들은 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한테 아빠가 헌터라고 자랑했단 말야.’
‘그래?’
‘헌터는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라며. 난 아빠가 히어로인 게 좋아.’
‘흠…. 그럼 아빠가 계속 세상을 구해야겠네? 히어로 하려면?’
‘응.’
‘세운이랑 놀이동산 못 가는데.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정말?’
‘응. 그동안 나는 피자 먹고 있을래.’
아빠가 일하는 동안 피자나 먹겠다는 발칙한 아들은 그렇게 좋아하는 피자도 영영 먹지 못하게 되었다.
홍석영은 무너졌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작은 아이는 더 작게 되었다.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이젠 이런 것밖에 없어서 최대한 비싼 유골함을 골랐다.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한 엄마와 조금이라도 가까웠으면 해서 미미의 봉안당도 옮겼다. 모자는 나란히 작은 항아리에 담겨 아버지를 배웅했다.
애초에 가족을 가지면 안 되었다. 그러면 이렇게 괴로울 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이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후회할 수도 없었다. 가족은 홍석영에게 모든 것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겼더라도 다시는 그게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홍석영은 그냥 지내던 대로 지냈다. 던전을 공략하고, 던전 브레이크 수습을 하고, 요청이 있다면 해외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홍석영의 생활에서 바뀐 게 있다면 주거지이다. 미미와 아들의 흔적으로 가득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새로이 구한 작은 아파트 거실에서 홍석영은 고민했다.
더 이상 자신이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이 작은 마음가짐이 헌터에게는 삶을 좌지우지하는 갈림길이 되기도 했다.
어쩌다가 던전에서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그걸 못 본 척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세운이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인 아빠가 좋다고 했다.
홍석영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세상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끈질기게 눈앞에 나타난 미래에서 온 몬스터의 존재를 어떻게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놈들이 나를 죽이려 든다면.
아니, 세운이는 싫어할 거야.
시간 흐르는 줄도 모르고 고민했다. 고민을 거듭했다.
십 년 전, 아이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날과 똑같이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집 안을 비추고 있을 무렵.
홍석영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내 일을 대신 해 줄 사람을 만들면 된다.
하는 데까지는 해 보자. 그런데도 내가 부족해서 죽으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세운이도 이해해 줄 것이다.
대신 홍석영의 뒤를 이어 세상을 구할 영웅을 만들자. 재능 있고, 올곧은 아이들을 모아서 훈련시키자. 그래서 언젠가 내가 죽어도 세상을 구할 수 있도록.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헌터 시범 양성 고등학교 설립 동기였다.
* * *
‘뭐… 후계자 비스름한 거긴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의아했다.
홍석영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한번 정한 일은 바꾸지 않는다.
우희재의 설명은 완벽했다. 보육원에 봉사 활동 가는 거나, 거기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에게 정을 붙이는 건 자신이 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뭐, 애가 각성해서 헌터가 되고 싶다고 하면 노하우 같은 것도 가르쳤을 수 있다.
하지만? 후계자라고?
기껏 시범고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후계자를 고르지 않았다?
유지은을 키워 보겠다고 농담 삼아 말하자 괜히 발끈했던 것도 걸렸다.
그래도 거짓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홍석영은 아무 말 않고 넘어갔다.
그러나 한번 눈여겨보기 시작하자 이상한 부분은 계속 나왔다.
알렉스 호프와 싸우는 영상을 보았을 때도, 일부러 한태경과 대련하게 뒀을 때도. 여전히 신경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 우희재를 보았을 때 미노타우로스를 피해서 자신의 등 뒤에 숨었던 것조차 신경 쓰였다.
이미선이나 김채민에게도 여전히 벽을 세우며 깍듯하게 대하는 놈이 유달리 자신에게만 편하게 농담을 거는 것도.
그 위화감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확신한 건 던전 안에서 셈 블룸을 상대했을 때다. 싸우는 거야 뭐 어찌 되었든 좋다. 여차하면 내 뒤를 맡길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셈 블룸을 죽이지 못했다. 죽이고 싶지 않아 했다. 마땅한 죄목도 없이 죽이는 건 살인자와 같지 않냐고.
그때 홍석영은 확신했다.
정말 우희재가 자신의 후계자라면 이렇게 무르지 않을 거라고.
자신이라면 후계자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적을 죽이라고 가르쳤을 것이다.
그래서.
“…동, 생.”
불탄 부엌에서 쓰러진 우희재를 발견했을 때.
“아저, 씨….”
자신을 보고서 필사적으로 팔을 뻗는 우희재를 발견했을 때.
“…빠. 아버, 지. 도, 동생… 동, 생을, 제발.”
덜덜 떨리는 손을 잡아 주자 눈에 띄게 안심하는 우희재를 발견했을 때.
“아빠.”
홍석영은 놀라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