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58)
아빠는 강하다(2)
포션병의 뚜껑을 열었다.
진득한 탄내 사이로 포션의 청량한 향이 느껴졌다. 홍석영은 조심스럽게 우희재의 상처를 확인했다.
폭발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폭발이 일어난 이상 크게 중요하지도 않다.
“…쯧.”
방어구라도 입고 있었다면 이렇게 크게 다치진 않았을 텐데. 헬기 안에서 뭐라도 입혔어야 했다. 홍석영은 뒤늦게 후회했다.
우희재의 상처는 등에 집중되어 있다. 동생을 언급한 걸 보면 그 아이를 지키느라 그랬겠지.
홍석영은 이를 악물었다. 동생을 구해 달라고 부탁받았다. 시간을 허투루 쓸 순 없다.
우희재의 어깨에 박혀 있는 칼을 뽑았다. 버릇없는 검은 처음 멋모르고 검을 쥐었을 때처럼 화르륵 타올랐다. 홍석영은 마력으로 강제로 검을 꺾었다. 불길이 손안에서 날름거리다가 기세가 꺾였다.
칼을 뽑고 나서 곧바로 포션을 부었다. 제대로 치료를 받긴 해야 하지만 응급 처치 정도로는 충분하다. 포션을 몇 병 더 꺼내서 우희재의 등에도 뿌렸다. 혹시 몰라 포션병을 기울여 입 안에도 흘려 넣어 주었다.
홍석영의 후계자가 아닌 아들.
시범고도 나오지 않았고, 일반 대학에 들어가 영화도 만들었다지.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직접 전투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헌터 라이센스는 있다고 했으니 기껏해야 던전 몇 번 돌아 본 게 전부겠지. 홍석영, 자신이라면 아이가 싫다고 하면 억지로 시키지 않았을 게 분명하니까.
‘아빠.’
홍석영은 희미하게 웃었다.
어쩐지 도련님 같은 구석이 있다고 했지. 내가 오냐오냐 키웠구만. 안 봐도 뻔하다.
서둘러 움직여야 하지만 다시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안한 공간에 애를 두고 갈 순 없었다. 포션으로 응급 처치를 했으니 당장은 괜찮을 거다. 홍석영은 조심스럽게 우희재를 부축했다.
부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휴게 공간으로 이동했다.
홍석영은 너른 소파에 우희재를 눕혔다. 그사이에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우희재가 흐릿하게 눈을 떴다.
홍석영은 손바닥으로 그 눈을 다시 감겨 준 다음 말했다.
“아빠가 꼭 동생 데려올게.”
“…….”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우희재가 무어라 중얼거린다.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싶어서 잠시 귀를 기울이자 투덜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뭐라는 거야. 또 헛소리하잖아. 지겹지도 않나.
홍석영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아빠한테 다 맡기고 쉬고 있어.”
* * *
‘홍 선생님은 제 마법이 어떤지 알고 계시죠?’
서재에서 김채민은 빠르게 말했다.
‘대충 아시겠지만 좀 더 자세히 설명할게요.’
당연하지만 펜션은 넓다. 수백 평이나 되는 공간을 감시, 방어하느라 김채민은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장미가 펜션을 뒤덮고 있는 만큼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있었다.
‘제 마법은 촘촘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넝쿨이니까요. 당연히 틈이 있어요.’
‘그거야 알지.’
‘하지만 막지 못한다는 말도 아니에요. 물고기가 왜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하겠어요? 제 넝쿨이 그물 역할을 해요. 틈으로 기어들어 오려고 해도 막혀요.’
‘음.’
‘지금 그 틈으로 계속 안을 찌르는 놈이 있거든요?’
‘위치는?’
‘부엌 쪽이요. 넝쿨이 끌어당기기 전에 주춤하는 걸 보면… 한 선생님이 막고 있는 거겠죠. 그래도 오래 버티진 못할 거, 아. 우 선생님도 그리로 간 것 같은데요. 누가 움직이고 있어요.’
‘내가 보냈어. 이록이 찾으라고.’
김채민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래도 바깥으로 내쫓으려는 마법 특성상 내부에서 침입자를 잡는 건 힘들어요. 금방 끌려 나가니까요. 그러니까 안에서 잡으려고 하는 것보단 차라리 도망갔을 때 잡는 게….’
홍석영은 건물 밖으로 나오며 김채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김채민이 받았다.
-홍 선생님?!
“한 선생과 우 선생이 다쳤어. 포션을 부어 놨으니 당장은 괜찮겠지만 치료가 필요해.”
-다쳤, 네, 네! 지금 다선 헌터들 내보낼게요.
“그리고 침입자가 도망쳤네. 지금 쫓아갈 생각인데.”
김채민이 조용해졌다.
“혹시 놓친 건 아니겠지?”
홍석영은 창끝으로 정원 흙바닥을 긁으며 기다렸다. 다행히 홍석영의 인내심이 끝나기 전, 김채민이 입을 열었다.
-제 마법은 안보다 바깥이 더 까다롭다니까요? 제가 놓쳤을 것 같아요?
“그럼?”
-아직 벗어나지 못했어요. 북쪽, 5km 이내. 선생님이시라면 바로 찾으실 거예요.
“고맙네.”
던전 안에서 셈 블룸은 날개를 얻었다.
홍석영이 그간 몬스터를 잡으며 알게 된 사실은, 몬스터의 외관과 그 능력이 대체로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건 없다.
날개가 달려 있으면 날 수 있다. 다리 근육이 발달하여 있으면 돌진한다. 날카로운 발톱이 있으면 휘두른다. 거미처럼 생긴 놈은 거미줄을 내뱉고, 양처럼 생긴 놈들은 무리 생활을 한다.
셈 블룸에게는 몬스터의 날개가 생겼다. 크기를 보면 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기동력과 관련된 능력이 생겼다고 봐도 이상하지는 않다.
서울에 위치한 호텔에 있던 놈이 불과 몇십 분 만에 여기까지 도착한 걸 보면 확실하다. 하지만 김채민은 놈이 본격적으로 틈을 노려 침입을 시도하려던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곳으로 샜던 게 아니라면, 알렉스 호프처럼 순간이동을 해 대는 능력은 아니다.
그리고 물리적인 이동이라면 놈의 머리통만 보여도 충분하다.
바로 지금처럼.
홍석영은 땅을 박찼다. 뛰쳐나간 홍석영보다 한 박자 늦게 땅이 갈라지며 파공음이 들렸다.
넝쿨에서 벗어나기 위해 끙끙거리고 있던 파란 머리의 마법사는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홍석영의 존재를 깨달았다.
“큭…!”
이미 너덜너덜한 날개다. 한태경과 우희재의 작품이다.
홍석영은 셈 블룸의 코앞에서 속도를 늦췄다. 놈의 눈이 흔들린다. 속도를 쫓아오지 못했다. 놈이 혼자였다면 그대로 창을 휘둘러 베어 버렸을 텐데 축 늘어져 정신을 잃고 있는 우이록을 들고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대신 홍석영은 창을 빙글 돌렸다.
창을 거꾸로 쥐고 뭉툭한 창대로 셈 블룸의 명치를 찔렀다.
“커헉!”
셈 블룸은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배를 붙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래서 마법사 놈들은. 충격으로 셈 블룸의 저항이 약해지자 김채민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넝쿨이 재차 달려들어 셈 블룸을 휘감았다. 움직임을 완전히 제어할 순 없지만 적어도 갑자기 날아서 도망치지는 못할 것이다.
이래서 믿을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다면 일이 편하다. 대부분의 마법사를 믿을 수 없다는 게 문제지. 역시 김채민을 데려온 게 정답이었다. 룬이 아니었다면 붙잡기 힘들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미래에서 온 아들에게 참 많은 신세를 졌다. 여기서 놈을 놓치면 볼 면목이 없다.
“가까이 오지 마!”
셈 블룸은 허둥거리며 우이록을 끌어당겼다. 몬스터 앞에서 어딘지 모르게 초연한 표정을 짓던 것과는 달랐다. 이쪽이 좀 더 인간답다면 인간답고, 생동감 넘치기는 했지만, 하는 짓이 어린애 몸으로 자기 몸뚱아리를 가리는 거라면….
홍석영은 기분 나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애를 인질 삼으면 내가 봐줄 것 같나?”
“홍석영이 아이를 좋아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알아!”
“…외국인이라 그런가? 어감이 좀 그런데. 기왕이면 아이한테 다정한 남자라고 말해 주지 않겠나?”
홍석영은 창을 놓았다. 창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홍석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그걸 아는데 내가 어린아이를 인질 삼는 놈은 살려 두지 않는다는 사실은 몰라?”
홍석영이 애용하는 무기는 창이다. 홍석영의 키보다도 큰 창. 무기가 주는 존재감과 위압 때문인지 사람들은 종종 홍석영이 창이 없어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곤 했다.
결국 무기는 헌터를 보조할 뿐, 헌터의 실력이 될 수 없는데.
그리고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오지도 못하는 이에게 속절없이 당할 만큼 홍석영은 어리숙하지 않았다.
셈 블룸이 붙잡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힘없이 늘어진 모습이 걱정되긴 했지만, 얼굴에 긁힌 자국 말고는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호흡도 안정적이다. 아니, 안정적이다 못해….
기절한 척하고 있는데?
홍석영은 씨익 웃었다. 똑똑한 아이다. 저게 커서 우희재가 된다고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도 알맹이는 똑같구나 싶어서.
바로 잘라 버리려고 했지만, 아이가 있으니 너무 잔인하게 구는 건 정서에 좋지 않아 보였다. 봐줄 생각이야 당연히 없지만, 글쎄.
피를 보지 않고도 누군가의 목숨을 취하는 방법이야 많다. 홍석영은 던전만 공략하고 다니는 헌터가 아니었다. 국내나 해외에서 정부의 요청이 있다면 불법 각성자를 추적하고 처리하는 일도 종종 맡아 왔었다.
그래서 홍석영은 거리낌 없이 바로 셈 블룸의 목을 쥐었다. 마법사는 역시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또각.
가녀린 나무 막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홍석영은 차갑게 식은 얼굴로 두 눈을 부릅뜬 셈 블룸을 내려 보았다. 놀고 있을 생각은 없다. 셈 블룸의 장단에 맞춰 놀아 줄 생각은 더욱 없고.
셈 블룸의 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무너졌다. 홍석영은 그 손에서 우이록을 받아 냈다. 가벼운 몸을 들어 품에 쏙 안자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아니, 얜 도대체 누굴 닮았대.
“…이제 눈 떠도 된단다, 이록아.”
“…….”
“나쁜 사람은 없어. 아저씨가 혼내 줬단다.”
“…….”
축 늘어진 몸을 보자 앞으로의 육아가 쉽지 않을 거란 직감이 왔다. 아빠로서의 본능이었다. 우희재가 알았다면 아직도 헛소리하고 있냐고 짜증을 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우희재가 없었다.
그래서 홍석영은 다소 가볍게 생각했다.
“형한테 돌아갈까?”
미래의 자신이 했던 일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도 할 수 있다.
‘…아. 이러면 앞으로 열심히 살아남아야 하나.’
“……으음.”
형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아이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폭발의 충격으로 기절했다가 눈을 뜨니 낯선 사람과 함께 있다. 평범한 어린아이라면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을 텐데, 그런 기색도 없다. 오히려 말똥말똥 뜬 눈으로 홍석영을 보았다.
“형은 괜찮아요?”
“응?”
“형이요. 아까 저… 사람이.”
우이록은 쓰러져 있는 셈 블룸을 슬쩍 가리켰다. 홍석영은 우이록을 추스르는 척 아이의 시야를 가렸다.
“형이 죽었을 거라고….”
“조금 다치긴 했지만 괜찮아.”
“…다쳤다고?”
우이록이 버둥거렸다. 홍석영은 서둘러 아이를 진정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고요?”
“다쳤지만 치료를 받고 있어. 바로 움직이면 상처가 덧날 수 있으니까 아저씨가 이록이를 데리러 온 거야.”
우이록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우희재와 같은 버릇.
그러다가 무슨 생각인지 얼굴이 풀렸다.
“형이 괜찮으면 괜찮아요.”
“그래?”
“예전이랑은 달리 치료해 줄 사람도 있다면….”
“…그래.”
우이록은 방주의 인체연구소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다. 그런 성장 과정을 가진 아이가 이렇게 바르게 자란 것에는 죽었을 거로 추정되는 형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거다.
우이록은 몸을 비틀어 홍석영의 품에서 벗어났지만, 홍석영은 잽싸게 다시 들어 올렸다.
“아, 뭐예요!”
“여기서 펜션까지 거리가 멀거든.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난 어린애가 아냐!”
“그래도 아저씨가 데려다주는 게 편할 텐데.”
얼굴을 잔뜩 찌푸린 얼굴이 홍석영을 노려보았다. 같은 사람이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 얼굴이 우희재와 너무 똑같아서 홍석영은 저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아저씨 아들 안 할래?”
오